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재형성(1945-1960) 독서보고서I. 들어가는 말[해방 이후 한국교회 재형성]은 처음 접한 내용이다, 일제치하로부터의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한국교회가 정체성을 갖는 시기까지 한국교회의 역사를 배웠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소속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아는 것은 중요한 것으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서 우겨쌈을 당한 한국교회 입장에서 다시 우리를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교회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면도 많이 있지만 탈 많고 말 많았던 한국교회를 과거사를 통해서 조명해 보고 재건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본 필자는 그 동안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결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II. 본론 말1. 일제 강점기의 한국교회일제 치하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반일감정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 유입이 되어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권으로 등장했다. 한국교회가 항일 에너지와 결합됨으로 높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서 1890년부터 1906년에 걸쳐 놀라운 성장을 했다. 한국교회의 배일사상은 한일 합방 후에 기독교인을 가장 껄끄러운 대상으로 여겼다. 민족주의 운동의 주역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많은 것도 이를 대변해준다. 일제의 이런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부담은 식민정책의 핵심에 천황제 이데올르기가 자라잡고 있었다. 이 천황 이데올르기는 일제의 한국 통치의 근간이 되었고 정치적 및 종교적 이데올르기였다. 기독교의 신관 및 교리 특히 재림신앙은 천황의 신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알제 말에 한국교회가 극심한 수난을 당한 것도 이 천황제의 종교적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다.한국강점 후 일제의 기독교 정책은 서구에 연계된 기독교에 강력한 구제를 가했다. 선교사와 그들이 관활했던 교회와 기관들이 한국 지배에 걸림돌이었다. 일체는 사립학교규칙과 개정사립학교규칙을 재정하여 선교활동을 제한했다. 일제가 만든 선교사들에 대한 참여는 해방 후 기독교의 높아진 사회적 위상에 기인했다. 또한 해방과 함께 좌익세력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위기의식도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미군정이 한국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었고 개신교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물질 지원이 있었다. 미군정은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기독교청년들의 참여를 기대했다. 한국교회 현실참여는 몇몇 교회들이나 지도자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보편적 관심사였다.한편 해방을 맞은 북한의 개신교는 남한에 비해 상당한 부흥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이는 북한 기독교의 정치참여를 활발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기독교사회민주당은 남북한을 통해 생겨난 최초의 기독교 정당으로 소련군이 조직한 공산당에 대결하고 그 세력의 확산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했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독교 정당들은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공산당을 견제코자 했지만, 지도자들 탄압 등으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았다. 이북 기독교는 공산당과의 관계에서 반공과 친공 등으로 분열돼 있어 기독교적 입장에서 건국 운동을 생각할 수 없었다. 한편 남한 교회의 현실참여 상항은 북한과는 달리, 미군정과 제1공화국을 거치면서 지속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런 정치참여를 통해 적극적인 복음화를 꾀하고자 했다. 특히 기독교 국가 건설이란 당면 과제와 맞물려 전개됐다. 남한의 기독교 정치 참여는 목사 중심의 정당정치보단 기독교 단체나 우익정당에의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도 정치 사회적 역량은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지만 한국교회는 미군정과 제1공화국에 주일선거반대운동을 총선거를 앞두고 실시하기도 했다.해방후 한국교회의 국가 재건의 공헌은 자유민주주의 체재를 옹호한 것이었다. 이런 교회의 노력은 남한에 공산혁명을 시도하려던 좌익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세력들과 싸우면서 이루었다. 당시 남북한은 좌익계열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해방후 1년간 홍수같이 범람한 서적과은 사회 전반에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미군정은 반공정책과 아울로 민주화에 관한 8개준칙을 발표하면서 서구식 민주화 정책을 추진했다. 미군정은 남한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적용시킴으로서 새로운 민주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남한의 정치노선인 반공은 남북분단의 주범이 되었다. 그러나 반공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에서 필요했다. 미군정의 민주화정책은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 또한 정치발전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한국 내부에서가 아닌 미군정 주도하에 이루어짐으로서 개인적 권위주의로 변질되거나 군사독재체재로 악화되어 버렸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악재 속에서도 재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민주주의 체재에 생명을 유지해갔다.미군정의 종교정책은 반공과 서구 민주주의 체재의 수립의 틀에서 시작됐다. 미군정는 천황 이데올르기 잔재들을 없앴다. 미군정의 종교정책에 따라서 국개의 기독교 세력을 지원, 육성하며 기독교 우호정책을 전개했다. 또한 좌익 성량의 종교단체에 대해선 법적 장치로 규했다. 유교나 불교에 대한 통제가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이념적인 차원에서 행해졌다. 반대로 한국교회는 미군정 하에서 방송선교, 형목제도 실시, 주일총선거일 변경, 주일의 공휴일 지정 등과 같은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이 정책은 기독교 편행적 성격이 아니라. 기독교 노선이 민군정의 노선과 맞았던 것이다. 미군정의 기독교에 대한 우호정책은 종교관련 적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미군정은 제2호를 공포하고 전산의 이전 및 가타 처분을 금지하는 패전국 재산에 대한 동결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33호를 공포하여 적산을 군청청에 귀속시켰다. 미군정은 일본신사나 일본 사원이 위치한 곳에 교회, 신학교, 기독교계 학교 등 기독교 관련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종교관련 적산들이 기독교에 호혜적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미군정청이 친기독교적 성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와 해방 후 공산정권에 의해 가장 큰 희생을 치렀던 기독교에 대한 보상이라는 동정적 차원도 컸년 10월에 중국에서 선교하던 헤인스 선교사를 한국 책임자로 내한하게 했다. 그 이후에 길보른 선교사가 내한하면서 본젹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동양선교회는 교회당 복구, 군목후원, 십자군전도대 활동에 지원을 아까지 않았고 서울신학대학교 복구와 운영에도 적극 협조했다. 동양선교회의 지원이 한국성결교회 복구와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양선교회는 사업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나병환자 수용소, 소년원 및 고아원, 모자원, 양로원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1956년 5월에는 사회사업재단을 구성하여 보사부장관의 인가를 받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 다수의 새로운 선교부들이 입국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국내 군소교파들이 해외 관련 선교부와의 재휴를 목색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복음주의적 선교를 지향하던 단체들의 새로운 유입도 이루어졌다. 해방 후 새로 입국한 선교부들로는 남침례교, 하나님의 성회, 나사렛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루터교회 등이다.한국에 유입된 개신교는 본래 교파형 교회였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하나의 교회로 통합되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국의 시책에 순응하는 교회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교의 시장상황이 성립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가 직면해야 할 상황은 종교경쟁시장이었다. 일명 종교 카르텔로 알려진 선교지역 분할협정과 식민지상황 아래서 교파든 간의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되었다. 해방 이후 다양한 새로운 교파들의 유입, 선교지역 구도의 철폐, 북한기독교인의 월남과 교회 재건, 범교단적인 분열 등으로 종교의 경쟁시장은 확대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 분열은 새로운 선교부의 유입과 교파별 분화성으로 촉진되었다. 이런 교파별 다양성은 종교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는 측면도 보여준다.선교지역 분할협정은 교파선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네비우스 정책과 함께 초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정책이다. 이것은 먼저 장로횟너교회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1893년에는 북장로회와 북 감리회 선교구 사이에도 체결되었다. 그러다국교회는 이데올르기 문제로 ‘또 다른 분열을 경험햇다. 기독교연합회는 NCC와 복음주의협의회 NAE 가입과 탈퇴 등으로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장로교합동측과 통합축 분열, 성결교회의 기성측과 예성측의 분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교회는 NCC와 관계를 맺으면서 점차 진보주의 노선으로 기울었다. 또한 장로회 측에서는 WCC 에큐메니칼 연합운동에 대해선 찬성하면서도 단일교회 운동이나 용공성에 대해 선을 긋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 NCC는 중공 유엔 가입을 반대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한국교회는 WCC의 신신학. 용공 문제로 에큐메니칼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한편 NEA는 자유주의신학 반대에서 태동되었다. 1948년 신앙동지회를 결성하면서 1951년 북장로회 남침례교 동양선교회를 통해서 구호물자를 보낸 미국 NEA와 신앙적인 동칠성을 확인했다. 1951년 미국 NEA가 세계복움주의협의회(WEF)로 발전하면서 국제적인 기구로 발돋음했다. 이들과 관계했던 일부 한국교파들은 교파연합사업 NCC에는 협조하나 자유적 경향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표방했다. 장로교 합동측과 통합측 분열의 발단은 신학노선의 차이로 NCC측과 NEA측로 나뉜 결과였고 성결교회 기성과 예성도 신학노선의 차이로 분열됐다. 또한 한국교회의 분열은 선교보조금 문제나 선교부와의 갈등이 요인이 되었다. 감리교회는 일제청산 문제를 넘어 선교비 불법운영 사건 때문에 호원측이 분리되어 나갔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한국지도자들과 선교부와의 갈등 등으로 나타났다. 그 예가 한국침례교가 대전침례교측과 포항침례교측의 분열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오순절파인 하나님의 성회도 1957년 9월에 한국인과 선교부 간의 주도권 문제로 분열되었다.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각 교파분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장로교회에서 고신파 분열과 기장측 분열은 모두 장로교주류에서 밀려났다. 이것은 양극단을 경계하고자 했던 장로교 총회의 교육지책의 결과로 여겼다. 이것은 재한선교부의 주 흐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재한선교
묻고 답하는 ‘예배학 카페’ 독서보고서I. 들어가는 말조기연 교수의 ‘묻고 답하는 예배학 Cafe’는 나에게 까마듯했던 예배와 그 궁금증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기준없이 모호했던 예배에 관한 의문들을 해소해 주는 교회의 모든 신자들과 특히 목회자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성경적인 관점과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예배에 대한 바이블과 같은 도서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본서는 예배의 습관 속에 젖어 아무 생각없이 예배하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고, 예배에 대해서 더 진지한 태도를 갖게끔 해 준다. 예배학 카페는 그야말로 카페에 앉아서 서로의 궁금증을 주고 받고 하는 것처럼, 토의해 볼만한 57가지 질문을 중심 주제로 삼고, 그와 관련한 내용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증거들을 토대로 하여 해설하였다. 본인은 이 본 도서를 읽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요약(몸말)하였고, 느낀점(나가는 말)을 쓰고자 한다.II. 몸 말제1장 예배의 일반적 이해예배는 십계명과 초대교회의 예수 부활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후 첫 날인 제8일에 해당하는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 모든 성도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반드시 성수주일이 원칙이며, 하나님께 주일에배를 합당히 드려야 한다. 그리고 주일예배는 폴리니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초대교인들은 주일 새벽과 저녁에 드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침 예배와 성만찬, 그리고 다시 저녁에 모여 애찬식을 갖은 것으로 볼 때, 주일예배는 낮예배와 오후예배나 혹은 저녁예배를 드리는 것이 성서적이고 전통적인 예배양식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자체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공예배로 모이는 것을 말하며, 개인적인 경건을 통해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라기보다 경건이나 기도시간으로 구별해야 할 것이다. 예배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중요하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거나 기울이게 되면 예배로서의 정체성과 기능을 다 하지 못하게 된다. 두 가지 형식과 내용을 온전히 갖추누스가 기독교를 공인 한 후에 이루어졌다. 이 형렬은 성찬예배시에 더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일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은 다양한다. 찬송을 부름과 동시에 시작을 알리기도 하고 타종이나 묵도 등 예배의 부름에서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배시 대표기도는 성경적으로 목회적 직무를 위해 안수를 받은 자인 목회자에게 위임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 사무엘 모벳이 1895년에 편찬된 [위원입교인규도]의 예배 지침에는 “교우 중에 한 사람이나 두 ㅅ람이 기도를 할 것이요”로 규정되었다. 즉 공예배시 대표기도가 평신도에게 위임되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기원후 215년경에 기록된 [사도전승]에는 기도를 맡은 사람은 기도의 규범대로 하거나 재랑권에 맡겨지기도 했다. 현대의 예배의 대표기도자는 두 가지 방식, 준비된 기도문이나 즉석 기도가 가능하며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주기도문은 초대교회부터 예배의 일부분이 되었다. 주기도문은 예배를 마치는 형식으로서의 기도문이 될 수 없고, 예배의 요소로서 긴장감이 있는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사도신경, 즉 사도의 신앙고백은 기독교가 시작된 때부터 예배 가운데 있었고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롬 10:9,10). 이 고백은 세례받은 사람에게 믿음에 대한 고백으로 요청되고 중요했다. 주기도문처럼 예배의 일부로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왔다. (나중에 더 추가하기)제3장 집회 및 기도회기독교예배는 주일공예배와 성무일과이다. 이 성무일과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기도회로 유대교에서 물려받았다. 이 전통은 카톨릭과 동방정교회. 루터교와 성공회에서 지켜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독창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 새벽기도회가 중요한 이유는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주일저녁예배도 구령열이 높은 선교사에 의해서 한국에서 생겨났다. 저녁예배나 오후예배는 성경적인 전통이 아니므로 상황에 따른 시간의 변경 등은 무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은 아는 주님의 명령이며, 유대인들의 종교습관 때문에 성만찬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교회전통에서 예배는 말씀과 성만찬이 함께 할 때, 생생하게 주님을 만날 수가 있다. 주일공예배에서 성만찬을 매주 거행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신학적이다. 성만찬시에는 정해진 떡을 먹었으며, 성만찬 후에는 빵뿐만 아니라. 야채나 고기 등 다른 음식들도 함께 먹었다. 애찬식은 성만찬과 분리되어 저녁 예배에 시행했다. 그 이유는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일이지만, 애찬식은 친교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성만찬은 오직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가정에서 거행했으며 디다케에 의하면 성만찬 참여를 세례받은 사람들로 한정했지만, 한국교회는 서방교회의 전통에 서 있기에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도 성찬 참여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의 성만찬은 단지 예수의 죽으심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축하하는 것으로 기쁨의 떡을 떼었다. 또한 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천국잔치를 현재에서 맛보는 것이다. 이처럼 성찬의 의미는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성찬식에 포도주를 사용했다. 그런데 18세기 미국에서 성찬식에 포도즙을 사용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음주운동의 여파로 성찬식에 포도주보단 포도즙을 사용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전통에 따라 포도즙을 성찬식에 사용하는데, 알콜없는 포도즙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남은 빵과 포도즙은 목사와 성도가 함께 하는 공동식사 때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성만찬시 떡과 포도주는 가정중심으로 모였을 때에는 한 곳에 모여서 둘러가면서 나누었지만, 성도들이 많아지고 제도가 생겨나면서부터는 사제한데 떡과 포도주를 받기 위해서 앞으로 나왔다. 떡과 잔은 성만찬 상에서 먹는 일이기에 성찬상 앞으로 나오는 것이 합당한 것이었다. 성례전에는 성만찬 이외에 세례의식이 있다. 세례는 신자에게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고, 둘째는 교회와 연합하는 것이다. 셋째는 중생,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넷째는 죄를 씻배찬송은 하나님의 인격과 업적을 노래하되 하나님을 대면하여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일 공예배는 온전한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내용의 찬송을 부르는 것이 옳다. 찬송의 세 가지 기준은 첫째 개인적 체험보단 복음적 내용을 가사로 한 것, 둘째는 1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 찬송, ‘나보다 우리나 저희는’ 이란 명사로 공동체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세 번째는 직접화법의 존칭형 어미를 사용한 찬송이어야 한다. ‘합니다. 하나이다’로 끝나는 것이 좋다. 예배 찬송 가운데 복음송이 불려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찬송가의 절반 정도가 19말~20세기초 미국의 전도집회에서 불렀던 복음송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배찬송에는 성가대의 찬양이 있다. 이 찬송은 회중이 찬송을 잘 할 수 있도록 앞서서 이끄는데 있다. 따라서 성가대는 그 목적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하나됨을 나타낼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성가대가 특별한 찬양을 부르는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지양해야 한다. CCM과 같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은 예배음악으로서 적절치 못하다.제6장 예배당 건물, 예복, 상징예배당은 구약의 성막이 시초이며, 신약에 와서는 교회로 가정교회로 발전하였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예배당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수도원 등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예배하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교회의 예배당이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예배당의 구조와 예배의 의미가 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교회 예배당은 장년 위주의 구조로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젊은 세대와 다음세대에 맞추어진 통합적인 예배당과 예배의 회복이 필요하다. 예배당 설교단 뒤에 있는 십자가는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을 상징하고 그 복음을 따르는 신앙고백적인 상징물이다. 다른 복잡한 조형물이나 글씨보단 십자가가 회중들에게 더 강력한 힘을 주므로 십자가가 강단에서 약화되거나 다른 조형물에 의해서 가려져서도 안 된다. 예배당은 설교강러나 검은색 가운은 지양해야 하며 오히려 부활의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가운이 좋다. 그러나 절기에 따라서 가운을 색깔별로 착용하는 것은 그 날 예배의 핵심 주제를 뚜렷이 부각시킬 수 있다. 예배의 가운의 색깔은 예배를 돕는 위원들에게까지 통일성을 유지하면, 교회력에 따른 색깔이 주는 상징언어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예배인도자가 학위가운이나 양복을 입는다든지, 겨울에는 검은 가운 여름은 흰색 가운을 입는 관행을 고쳐야한다.제7장 예배신학기독교 예배는 삼위일체되신 야웨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그는 창조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랑과 은혜를 주셨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다. 교회는 세례받은 자들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모든 사람들이 차별이 없이 예배하는 곳이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이며 하나의 신비이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순종의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한다. 구약의 예배는 희생제사가 그 핵심이다.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드려진 예배이다. 그러나 신약의 예배는 피 흘림이 없는 예배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단번에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 예배의 공통점은 ‘희생제사’이다. 신약예배는 구약예배로부터 유래한다. 신약의 설교는 구약의 회당 예배에서 유례했고, 신약의 성만찬은 구약의 식사의식으로부터 온 것이다. 예배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독교예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생겨났다. 신약의 예배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 기간 동안에 경험을 토대로 해서 완성하였을 것이다. 회당예배는 성경봉독과 해석과 권면 즉 강론이 있었다. 제자들이 이 강론 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채웠다. 그리고 회당예배의 순서는 없지만 성만찬 의식이 채워졌다. 기독교예배의 원형은 신약공동체의 예배로서 성경읽기와 강론 그리고 성만찬으로 구성되었고 거기에 기.
‘마가복음’ 독서보고서도널드 H. 주엘이 쓴 마가복음서는 마가복음의 해석이 읽는 독자들의 몫인 것을 강조한다. 연극을 관람하는 청중마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각각 다르고 느낌과 충격이 달라질 수 있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과 선지식, 세상을 읽는 힘 만큼 성서를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그 동안 성서를 바라보는 다양한 연구와 시각과는 달리 성서를 문학비평적 관점에서, 독자 비평의 관점에서 본 마가복음 주석서가 나왔다. 성숙한 독자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반응하고 삶과 생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과 독자 사이에 관계를 더 가깝고 깊게 만들어주는 성경읽기 방법론이라고 생각된다.I. 요약제1장 서두(막 1:1-15)마가복음의 서두는 이 복음서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나 다른 복음서와 달리 탄생 설화가 없으며 세례요한의 등장과 함께 내 뒤에 오실 분, 곧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보다 능력이 있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한 마가복음의 첫 무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선포되며, 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와 청자들, 특히, 구약의 예언의 약속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경의 예언과 약속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주의와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마가복음 내러티브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이 예수의 이야기가 세례요한을 통한 예수의 수세가 하늘의 갈라짐과 성령의 강림, 하나님의 아들의 선언인 처음과 이 마가복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예수의 죽음과 함께 찍어진 성소의 휘장, 그의 숨이 떠나고(그의 영이 떠남), 백부장의 ‘하나님의 아들’의 고백 등이 서로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제2장 등장인물마가복음에는 여러 부류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 인물로 나온다. 세례요한을 비롯해서 많은 군중들, 정치와 종교적인 기득권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 헤롯당원, 장로들과 대제사장, 예수의 제자와 그의 가족들, 소외된 자들, 그리고 사탄과 더러운 귀신들이 등장한다. 바리새인 목적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제3장 하나님은 누구인가?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이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체성을 갖으며, 관계로서 중요하다. 마가복음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식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주님이다. 또한 예수는 주님으로 표현되어, 하나님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는 서기관이나 사두개인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주님이라는 인식은 신성모독 행위로 간주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수세시 하늘을 여시고, 예수의 죽음 이후에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버리고, 무덤의 돌을 굴리시는 분이다. 또한 마가복음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빈번한 등장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그 나라가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도 알려준다. 예수는 그의 사자이며 대리인이지만, 최종 통치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모세 율법의 배후에 있는 권위로서 이 복음서에서 중요하다. 예수는 율법의 고르반 제도나 이혼증서 등 대한 본질을 오해하는 그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삶을 규제하고 구성케 하는 율법의 창시자이다. 예수는 율법의 해석자로서 권위를 가지며 심지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한다. 하나님은 미래를 계획하시는 분으로 예수를 통하여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알린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은유’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서 예수를 그리스도(혹은 메시아)로 선포하고 정의한다.제4장 예수는 누구인가?예수의 정체성은 사람들이 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해서 상이한 평가들이 있었다. 흔히 자기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가족 집단에서 형성된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하였다. 가족 밖에서 그의 정체성 진술은 파격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율법의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도 바리새인, 서기관, 헤롯당과 결을 같이 하지 않았다. 저들과의 갈등은 예수종교적 지도자들은 예수를 거부한 사람들이며 저들은 예수에 압도되었고 두려워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적대적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인해 피의자 신분이 되고 신성모독죄로 예수를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 질문은 독자가 평가할 몫이다. 가장 명백한 요지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선언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에서 비롯된다. 그의 정체가 서두에 드러난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 예언자, 선생, 다윗의 자손, 예언자, 선생, 다윗의 자손 등 이런 호칭들은 유대인들의 미래에 관한 환상 및 꿈에 등장하는 특정한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선고를 받고 죽지만, 마가복음은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키 위하여 ‘더강한 분’으로 등장되며 회당을 통해서 병든자 귀신들린 자를 치유함으로 귀신과 사탄의 진을 무너트린다. 그는 세계요한이 소개한 대로 ‘내 뒤에 오시는 더 강하신 분’인 것이다. 사탄의 집을 강탈하는 것의 이미지가 예수에게 부각된다. 또한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선생’으로서 다른 복음서보다 더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예수의 사역은 가르침보다 행동에 관한 것이다. 그의 행동 속에는 율법의 경계를 넘어 있다. 그것은 그에게 신성모독이라는 죄를 부가시켰다. 예수의 정죄는 율법의 경계를 넘어서 주어지며 그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세계요한의 죽음으로 예수의 사역이 시작된 것처럼 예수의 죽음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죽음 이후에 새로운 시작이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찬송받을 이의 아들”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야)이다. 메시야 전통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어날 다윗 가문 출신의 왕으로 이해된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야이며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죽음이었다. 예수의 호칭 가운데는 구인지를 알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예수의 권위는 귀신을 꾸짖어 명령하고 이에 순종한다. 그리고 축귀사역은 군중들에게 효과가 나타난다. 축귀로 병이 낫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린다.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의 권능을 부정치 못한다. 저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것을 알지 못한다. 거라사인의 땅에서 축귀사역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여기서만 ‘쇠사슬’만이 아니라 ‘고랑’까지 포함시켰다. 그 만큼 제어하기 어려운 대상을 보여준다. 예수는 돼지떼에 들어간 더러운 영을 쫒아낸다. 이 이야기는 예수와 귀신간의 긴 대화가 오고 간다. 축귀사역에 있어서 질병의 명칭을 붙이는 것은 치유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막 5:9) 무덤가에서 부정한 병자에게서 군대귀신을 더러운 돼지떼에 들어가게 해서 물살시켜 무덤가의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게 된다. 이 축귀사역은 예수의 권능을 경험하도록 생생한 방식으로 들려지고 있지만, 조짐이 좋은 만큼 위험도 있다. 예수는 사탄의 영향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한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은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아야 할 만큼 부정한 자였지만, 그 질병을 치료한다. 예수가 질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축출하며 적은 빵을 많은 무리를 먹이는 것은 “그 강한 자의 집을 강탈하기 위해서 왔다.”제6장 선생선생이란 명사가 다른 복음서보다 마가복음에서 많이 나온다. 비유의 이야기는 선생으로서 예수의 교훈이다. 씨 뿌리는 비유는 알레고리로 읽힌다. 또한 겨자씨의 비유는 시작하는 때와 수확의 때 사이의 대조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 비유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청중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이지만, 후에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교훈한다. 예수의 비유는 내부자들과 외부자들 사이에 분명한 대조점이 강조된다. “너희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주어졌다. 외부인들에겐 모든 것을 비유로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한다. 이것은 “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네 목숨을 잃는 것”과 관련된 현실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권한과 직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기 위함이다. 예수의 마지막 교훈은 13장에 나온다. 가난한 과부의 성전에서의 연보를 가르친다. 그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한다. 또한편 예수는 성전에 대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라라”(13:2) 두 가지는 대조적이다. 성전에 대한 예수의 교훈은 특별한 가르침이다. 미래의 성전은 종말적이다. 재난의 시작은 성전파괴와 이어지며 마지막 때의 하늘의 권능이 이스라엘에 임하는 것과 연결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깨어 있어야 할 근거를 준다. 그러나 잠에 대한 경고와 함께 여전히 제자들은 임박한 위험을 알지 못한다. 선생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은 예수의 재판과 죽음에 놓이면서까지도 제자들에겐 아직 효과가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의 반응은 종말의 시대 속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제7장 왕의 죽음(14:43-15:47)예수의 수난과 죽음 이야기는 마가복음 3분의 1에 해당하고 그 중에 6분의 1은 마지막날 24시간에 초점을 마춘다. 예수의 수난과 재판 앞에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께서 예언한대로 이루어졌고 베드로는 깨닫고 통곡하게 된다. 베드로의 곤경은 예수가 신성모독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가운데 대제사장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베드로의 실패로 예수의 예언은 성취된다. 마가복음의 화자는 예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언들이 “기록된 대로” 성취되고 있다고 보도한다. 이 수난 이야기는 예수가 시험받고, 조롱받으며, 마침내 왕으로 처형되는 것이다. 그는 ‘찬송받으실 이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을 상시킨다. 유대인의 다른 무리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예수를 조롱할 때 ‘그리스도’가 왕읭 표시라는 사실은 15장에서 확증된다. 특히 예수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