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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단지화의 문제점 - 그 원인과 해결방안
    아파트 단지화의 문제점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국민 대다수가 대단위 초 밀집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나라이다. 전국 주택 수 1,669만호 가운데 아파트가 1,003만호로 60.1%를 차지할 만큼 우리는 아파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필자 또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파트에서 생활해왔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아파트는 장점이 많은 주거 형태이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보수유지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고, 사고팔기에 편리하다. 정부 입장에서도 아파트는 주택 부족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점점 더 많은 고층아파트 단지가 도심에 들어서고 있다. 도시계획과 단지계획을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여러 제도를 통해 아파트는 외관적으로, 생활 편의 측면에서 많이 발전해왔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도시 지역과 단지 내 커뮤니티 단절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우리나라 아파트는 단지화 혹은 대형화되어 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유사한 평면과 규모로 대량생산되어 평소 사는 동네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아파트로 인해 도시경관이 획일화되었다는 것이다. 각각의 개성을 살리면서 전체적으로는 같은 이미지를 갖는 것을 통일성이라 한다면, 아파트 단지는 획일화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즉, 아파트 단지는 도시 가로를 단절시키고 도시 내의 섬과 같은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단지화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이 글에서는 첫 번째로 아파트가 단지화되는 원인 4가지를 정책의 문제와 형태의 문제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로, 4가지 원인에 따른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지어진 해외 아파트 사례를 통해 이윤 창출과 도시경관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아파트 단지화의 원인과 그 영향을 파악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아파트 단지화의 첫 번째 원인은 정책적 문제이다. 2019년 11월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5171만 명이며 총인구의 절반인 2589만 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서울은 가구 수보다 주택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이렇게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데도 정부는 임대차 3법과 조세 3법 등으로 주택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매년 초 ‘올해는 몇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라는 발표를 해왔다. 이러한 그들의 전략은 아파트 단지화 원인의 중심에 있다. 잠실 개발 이후 정부는 편리성과 환금성을 이유로 아파트 단지 개발 방식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들은 건설업체들이 아파트를 ‘분양’하여 그 안에 공원, 놀이터, 경로당 등 복리시설을 만들게 정해놓고 도시 공공공간과 편의시설 그리고 주택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단지 내 시설은 열악한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아파트가 인기를 독차지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화의 주원인은 사람들의 선호도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의 문제이다. 정부가 아파트 단지 개발의 문제점을 미처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부작용을 감수하고도 이익과 편리성을 이유로 정부가 선택한 전략의 결과인 것이다.아파트 단지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단위세대 평면이 있다. 건설업체들은 청약예금액에 따라 정해진 규모 범위에서 최대한 큰 규모로 아파트 평면을 설계한다. 청약제도에 따라 전용면적 85m2, 102m2, 135m2 등등의 평면 타입으로 나누어 아파트 평면을 설계하고 단위세대 면적을 유형화한다. 이때, 개방성과 전면 폭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똑같은 형태의 단위세대 평면이 만들어진다. 또한, 아파트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발코니가 없어지고 내부공간이 넓어졌지만, 똑같이 생긴 평면과 단면 그리고 밋밋한 아파트 외관이 형성된다. 이러한 관행이 계속 유지된다면 현대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한다.아파트 단지화의 세 번째 원인으로는 획일화된 주동 형태이다. 한국인들의 맹목적인 남향선호와 평면 타입 유형화가 합쳐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 즉 땅에 집중하여 단지를 배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렇게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아파트 단지는 필연적으로 도시 소필지 조직을 감소시킨다. 크고 작은 길과 필지들이 거미줄처럼 형성된 소필지 도시 조직 대신 대규모 단지들이 채워지면서 시민들의 생활 편익과 쉼터를 파괴하고 있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제한된 출입구와 진입체계이다.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파트 출입구는 1개에서 3개 사이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 주변에 담장을 쳐서 다른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다. 이는 도시경관 획일화와 흐름 단절뿐만 아니라 집단이기주의로까지 이어진다.아파트 단지화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도시의 가로 단절, 밋밋한 도시경관 형성, 주민 간의 소통 단절, 폐쇄적인 문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딱 들어맞는 영화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다. 이 영화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아파트가 등장한다. 지어진 지 30년은 된 듯한 중정형의 낡고 허름한 아파트와 일산 신도시의 새로 들어선 쾌적한 아파트이다. 주인공들의 엇갈린 성장배경만큼 두 아파트는 극명하게 대비되어 주거 양극화의 현상 또한 잘 보여준다. 투자 대상으로 전락한 주거지 즉 아파트는 무관심이라는 방관적 태도를 통해 소통, 안정과 보안을 파괴하고 있다. 아파트는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힘든 폐쇄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은 두렵다.이러한 구조는 주민 간의 소통을 단절시켜 닫힌 문화로 이어지고 층간소음, 주차 전쟁, 간접흡연, 고독사 등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흉기를 휘두르거나 방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코로나 19 사태 이후 그 심각성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어떤 아파트들은 아파트 세대 수보다 주차장이 적어서 주차 전쟁을 한다. 이중, 삼중으로 주차를 하고 차를 빼는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에 흡연으로 접수되는 민원을 보면 흡연 장소 확인이 가능한 1464건 중 55.2%가 세대 내부 흡연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을 만큼 간접흡연 또한 아파트의 심각한 문제이다. 1~2인 가구 증가하면서 고독사 또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고독사로 하루에 11명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아파트 주거 환경 특성상 이웃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형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과학| 2021.06.28| 4페이지| 1,000원| 조회(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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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발표/영어스피치/영어에세이/영작]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Leaders are very attractive because they have the power to control the groups, the companies, the nations and even the world. So, many people respect them and also want to be like them. But, the leaders who are obstinately stuck on their own opinions and do not listen to others are not attractive at all.
    인문/어학| 2021.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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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에세이] 흑사병의 영향
    There have been lots of diseases reported historically such as measles and small pox but the Black Death was the most dreadful one. It was an epidemic disease during the medieval ages in the 1400s. It had an important effect on the cultural, economical structures of medieval Europe and was an important event in medieval system.Firstly, there was a major change in people’s diet patterns during the late Middle Ages after the Black Death. The importance of bread had much diminished and meat became a large part of the diet of all social classes.
    인문/어학| 2021.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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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독후감 - 삶의 목적과 행복의 의미
    삶의 목적과 행복의 의미-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삶의 예시를 적용하여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내 삶에 중요한 것과 그 목적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에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동, 자연, 역사, 사물 등 모든 존재는 목적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이때 ‘행복’이라는 것은 삶의 의미이자 목표이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답변들이 있을 수 있다. ‘배움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을 한다면 왜 배우고 싶어 하는지, 그 목적은 무엇일까? 이렇게 어떤 행위의 목적, 그 목적의 목적, 목적의 목적의 목적은 계속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최종 목표,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은 그 자체로 추구되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내 행위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 각기 고유한 목적과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인간도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때 인간답다고 말한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삶이란 쾌락이나 정치를 좇는 삶과는 다르다. 쾌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쾌락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려는’ 행위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본질적인 행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동물적 차원에 속한 것으로 지성적 존재인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덕이 될 수 없다. 정치는 고상하고 탁월한 행위에 속하지만,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족성이 결여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에는 목적이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복잡한 세상이 될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유 없이 일어나고, 그냥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유 없이 진리처럼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도 우리가 하는 행위들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내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의 예시를 중심으로 내가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지,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 서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 ‘돈’을 수단으로 나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지 알아보고, 즐거움과 고통의 성질을 생각하며 좋은 것과 나쁜 것, 여러 즐거움의 기원, 그리고 행위에 대한 규준에 대해 정의하고자 한다. 세 번째, 좋음과 잘함에 대해 생각하며 행복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된다고 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어떠한 행복인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이다.첫 번째로, 행복한 삶이라고 하면 ‘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돈을 잘 버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너무 속물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행복한 삶의 후보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돈을 잘 버는 삶이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행복’에 대해서 토론하고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도 행복하지만, 돈을 통한 물질적인 행복은 그것보다 더 크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버는 삶이 일종의 강제된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어떤 유형의 사회에 살더라도 돈은 필요한 것이다. 돈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면 돈 버는 일은 우리가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일이고 피할 수 없으며 강제된 일인 것이다. 그러니 돈을 버는 것은 우리의 궁극 목적이 될 수 없다. ‘꼭 필요하다’라는 말이 ‘목적이다’라는 말과 혼동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병원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병원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자 목표가 되지 않는다. 또, 밥을 먹는 행위는 꼭 필요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돈이 꼭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그렇다면 나는 돈을 수단으로 어떤 목적을 추구할까? 돈 자체로 목적이 될 만한 내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즐거움을 누리는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즉, 향락적인 삶을 말한다. 즐거움은 그 자체로 좋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즐거움을 삶의 목적으로 여긴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가방 등등 돈이 있으면 누릴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돈을 버는 삶은 일종의 강제된 삶이다. 또 부가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돈은 다른 것을 위해서 유용할 따름이니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향락을 좇는 삶은 ‘노예와 다름없는’ 삶이라고 일축한다. 향락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일어나며 이러한 자극에 집착하게 하고 더욱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자극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자극과 즐거움만 가득한 삶이라면 그 즐거움이 즐거움인지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며,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어도 그것들이 계속되면 자신이 행복한 줄 모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또한, 즐거움과 고통의 성질을 설명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2가지 요소를 사용하여 말한다. 즐거움이 좋은 것이고, 고통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 고통이란 몸이나 마음이 아픈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나쁜 것일까? 즐거움만 가득한 삶이 행복한 삶일 수 있을까?나는 고통스러운 경험 뒤에는 교훈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여러 인간관계의 실패를 통해 많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받아들인 고통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고려할 요소도 많았고 행동에도 많은 불편함이 따랐다. 게다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관계에 쓸데없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교우 관계, 연애 등등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며 그 속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인정받고자 한 것 같다.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은 너무나도 쉽게 없어지는 것이었다. 고통과 즐거움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마라톤은 고통스러운 레이스가 끝날 때 느끼는 희열감으로 마무리 되고, 번지점프는 공포감 뒤에 느끼게 되는 희열감으로 마무리 된다. 역으로, 즐거웠던 휴가의 끝은 집에서 허무함으로 마무리 될 수 있고, 마약을 통해 얻은 순간의 짜릿함은 곧 허탈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고통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고통 후에도 삶은 이어지며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움 없이 유지될 수도 없지만, 고통 없이도 유지될 수 없다. 순간의 고통과 순간의 즐거움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고통의 혜택’과 ‘즐거움의 비용’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울 때 고통만을 생각하지 않으며, 즐거움이 있을 때 즐거움만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제대로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아니면 나쁜 방식으로 그러는지는 행위에 대해 적지 않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니까. 또 헤라클레이토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즐거움과 싸우는 것이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음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은 즐거움과 좋아하는 것에 끌려다니기 쉽다고 말한다. 먹는 즐거움과 체중 감량, 음주와 금주, 흡연과 금연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즐거움에는 우정으로 인한 즐거움, 사랑에 있어서의 즐거움, 일에 있어서의 즐거움과 같이 수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이것들에는 각각의 요소와 이유가 존재한다. 친구에게서 오는 우정의 즐거움, 연인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즐거움, 일을 하며 느끼는 성취감의 즐거움 등 즐거움의 각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연인과 어울려 다니며 자신의 본업에 소홀하고,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일에 빠져 주변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챙기지 못한다면 안된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그것들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채찍과 당근을 줄 수 있도록 행위의 즐거움과 고통을 자신의 행위에 대한 규준으로 잘 사용해야 하며 좋은 것들 사이에 질서를 부여하고,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슬픈지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좋은 것인 행복이 우리에게 고유한 어떤 것이며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고유한 것은 우리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어떤 일을 한다. 그러므로 잘살고 있는지는 내가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유명한 건축가가 되어 돈도 잘 벌고, 그 돈으로 향락을 즐기며 명예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을 때 내가 나의 건축 커리어 혹은 건축물에 대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일까? 나의 행복은 남들이 나에게 해주는 평판, 나의 연봉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어떻게 내 일을 만족할 만큼 잘 해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좋음과 잘함은 같은 일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고, 잘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이때, 어떤 것의 좋음과 잘함은 그것의 기능에 있다. 그 기능은 ‘덕’에 따라 발휘된다.
    독후감/창작| 2021.01.10| 4페이지| 1,5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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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정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의 대조 평가A+최고예요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 대조-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윤리형이상학정초』다음 에세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임마누엘 칸트의 이론을 대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는 복잡한 윤리 이론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할 윤리적인 것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한 철학가이다. 칸트는 법률적 관점에서 의무를 관찰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표를 구상했다. 인간 행동에 대한 그들의 각기 다른 관점은 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윤리적이라고 믿었고, 두 사람 모두 항상 이성의 개념을 적용했다. 또한, 그들은 좋은 인품과 덕행을 통해 사람들이 잘 살고 잘 행동하도록 격려하였다. 하지만,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는데, 덕과 행복 그리고 인간의 선이라는 주요 개념은 그들의 철학을 구분한다. 칸트는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나쁘다는 당위적 가치에 대한 강요가 실현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덕을 실천해야 하는지, 인지적, 행동적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철학적 기반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첫 번째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도덕에 대한 경험적 설명을 제공하는 반면, 칸트의 이론은 '순수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칸트는 자신의 합리성과 인간성에 대한 개념에 맞지 않는 이론을 반대한다. 칸트의 도덕적 의무론과 정언적 명령론은 선과 덕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에 대한 설명과 대조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에 대한 설명은 경험론에 의존한다. 이는 도덕이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덕은 선천적인 자질이 아니라 오히려 학습된 특성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뒤따른다. 하지만 칸트는 경험적 원리가 도덕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보다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중심을 둔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의 원칙은 외부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칸트의 윤리는 이성에 대한 '선험적' 사상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경험 밖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과 관계없이 모든 이성적인 인간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의무들이 있다는 주장이다. 칸트는 경험적이라기보다는 '순수한' 도덕성을 제시한다.두 번째로, 칸트의 선에 대한 주장은 특히 행복의 기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크게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동의 선은 행동을 추구하는 ‘목적’ 과 결부된다. 여기서, 칸트 역시 행동의 가치가 근본적인 동기 부여에 의존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비슷하다. 그러나, 두 철학자는 어떤 동기가 도덕적인 행위에 적합한지에 대한 다른 주장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다른 모든 행동이 추구되는 가장 높은 선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행동은 영혼의 노력과 덕이 일치할 때 선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칸트는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선함이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칸트의 도덕 관념은 좋은 삶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 격언, 즉 행동 이면의 동기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 칸트는 도덕률에 따라 행동하려는 도덕적 동기가 있을 때만 행동이 도덕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칸트는 도덕의 문제와 행복의 문제를 분리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덕에 따르는 영혼의 행위로 정의하면서 행복이 인간의 가장 높은 선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이 모든 인간 행동의 궁극적 이유이며 도덕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칸트의 이론은 이 같은 입장을 행복에 반영하지 않는다. 즉 그는 도덕의 기초로서의 행복이라는 개념에 반한다. 칸트에 따르면 행복에 대한 이해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행복에 대한 근거는 신체적 또는 윤리적 감각의 경험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행복은 도덕의 기초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설명이다. 오히려 도덕은 보편적이고 의무적이다. 따라서 행복은 칸트의 윤리의 토대가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로,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설명이 다른 이유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또한 많은 사람이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알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이 행복으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칸트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결정하는 데 할당된 시간이 궁극적으로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능력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셋째, 칸트의 도덕 이론은 의무에 근거한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칸트는 의무와 권리의 규정에 있어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명확한 설명을 제시했는데, 그의 사상의 토대는 인간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것에 있다. 따라서 칸트는 기존의 행복의 총량을 중시하는 공리주의를 비판하여 행복 극대화는 도덕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주장했다. 즉, 행복 극대화라는 생각 자체가 권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행위이며, 우연히 생기는 욕구나 본능에서 도덕 원칙을 도출해낸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이론은 개인주의적이고 보상 기반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도덕적으로 선택하며, 궁극적인 보상을 얻을 기회를 얻고자 한다.그렇다면 도덕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 동기는 무엇일까?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위의 도덕적 판단은 결과가 아닌 동기에 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스스로 행복에 대한 매우 강렬하고 내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이념 안에서 모든 경향성은 하나의 합계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은 곧 경향성에서가 아니라 의무에서 그의 행복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의 태도는 본래적인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 결과를 낳아서가 아니다. 설령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할지라도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와 행복 추구에 반하여 칸트는 의무동기만이 어떠한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쫓는 ‘끌림 동기’는 의무동기와 구분된다.칸트는 끌림 동기와 의무동기를 구분하고, 도덕적 판단을 결과가 아닌 동기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끌림 동기와 의무동기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끌림 동기가 일부분 포함되어 있지만, 의무동기도 포함되어 있을 때 그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칸트의 주장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 의무동기는 필수조건이지만, 끌림 동기의 포함 여부, 그리고 그 정도에 대한 이론이 명확하지 않다. 의무에 따르는 것이 어떻게 자유로운 행동일까?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의 목적론에서 행복은 모든 행위의 궁극적 목표가 되며 인간은 생활습관, 이성적 능력을 포함한 덕을 통해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적절한 행위를 해야 한다. 에토스(ethos)는 공동체적 관습을 내면화하고 체화한 습관에 따라 형성된 인격적, 성품적 측면의 덕이다. 이것은 문화권, 역사적 배경, 성별 등등 다양한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칸트는 다양한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주의라고 생각하고,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인간의 궁극적인 도덕성의 절대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대해 감각 경험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것은 보편성이나 필연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칸트는 욕구에 따른 행위와 선의지에 따른 행위를 나누어 선험적 개념을 제시하면서 정언적 당위에 따른 도덕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칸트는 행위가 다른 무언가를 위해, 즉 수단으로서 선하다면 그 명령은 가언적이라 말한다. 반면, 행위 자체가 선한 것으로 표상되면 그 명령은 정언적이다. 그는 선의지에 따라 정언적 당위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발견한 한 남자가 아이를 구해 냈다.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아이가 물에 빠졌기 때문에 그 아이 자체를 목적으로 구조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언명령에 따른 행위로 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돈을 원하거나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고자 아이를 구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언명령에 따른 행위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대할 때 정언명령에 따른 선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두어야 한다.
    인문/어학| 2021.01.08| 4페이지| 1,5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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