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에 의해 다수가 변화한 사례에 대하여 두 가지의 예를 들 것이다. 첫째는 성소수자에 대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담론은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커밍아웃 이전에는 종로일대를 배회하는 변태적 성욕을 지닌 ‘동성연애자’에 관한 일화와 같은 황색언론을 통해 종종 기사화될 뿐 성소소수자에 대한 대중적 담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성적지향의 문제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사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보도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시작으로 동성애자는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성소수자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간에 첫 시작은 항상 어렵고 고되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커밍아웃은 더더욱 그에게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커밍아웃 하기 전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며 혐오 대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틀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것이라고 혼자 주장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고,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고, 가족도 이해하지 못하여 매우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어렵게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며 오히려 낙인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디어를 통하여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현재는 한국의 대표 게이 연예인이 되었다. 그가 방송에 나와 얼굴을 비추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하여 주장하면서 한국의 많은 동성애자들이 용기를 얻어 그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계기를 제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주로 애용하는 편인데, 심심치 않게 동성애자의 채널들을 접하게 된다. 그것들을 보며 아직 동성애자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그들이 사회의 시선을 타파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빨리 그들이 동성애자로서의 법적인 권리를 취득하고 똑같은 사람으로서 취급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두 번째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것이다. 사이비 세력의 포교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교묘하게 발전하고 집단의 세력 또한 점점 더 넓혀지고 있다. 요즈음 대학가에서도 흔하게 사이비 단체들의 포교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포교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 유튜브 촬영, 웹드라마 제작 등의 내용으로 접근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들에게는 아르바이트로 유혹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학교 화장실 안의 동아리를 모집하는 광고 또한 포교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적지 않게 놀랐던 경험이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논리로 일반인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사이비 신앙을 주입하곤 한다. 나는 사실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가 비판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돈을 갈취하고 특정 영리를 추구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조장하는 등의 반사회성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녕 옳은 교리를 실천하고 있다면 교포를 할 때에 자신의 소속과 집단을 속일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비종교는 다수의 주관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완전히 의존하게 만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끔 하기에 이에 대해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접하게 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머물러 있으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발로 빠져나오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 가끔은 그러한 부정적인 존재에 기대어 의지하고 싶을 순간이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자기 주관을 명확히 하여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차별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적장애인차별이 있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수많은 사례 중 두 가지를 소개할 것이다. 첫 번째 사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한 사건이다. 이해찬 대표는 척수장애인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의 의지를 칭찬하는 과정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2018년 12월에는“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처럼 비쳐도 지적장애인들이 많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례는 사회복지사 A씨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장애인 보호시설에 근무하며 지적장애인 B씨를 10여 차례 때리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전치 4주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설 이용자 4명을 20여 차례 폭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CCTV에는 A씨가 팔로 장애인 목을 조르거나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는 장면, 뒷짐을 지고 머리를 땅에 박게 하는 소위‘원산폭격’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첫 번째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 사회심리학 이론에는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이 있다. 지적장애인에게 편견이 생기고 차별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렸을 때 주변 지인들이 행동하는 것을 관찰 학습하거나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경험 때문이다. 어렸을 때 학습 과정에서 부모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대중매체, 친구, 교사의 태도와 행동을 통하여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대중매체의 경우에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범죄행위가 발생하지만 이 같은 범죄 사건들이 전부 신문기사와 TV뉴스를 통해 보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범죄행위는 일반인들에게 더욱 자극적이며 동시에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매번 보도하며 대부분 크게 공론화 시켜 일반인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두 번째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에는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중 전치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공격 충동을 그 감정을 유발한 대상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대상에게 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 수준이 어린 아이와 비슷하여 약자라고 판단되어지는 지적장애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격 충동을 행동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편견과 차별행동은 이 장애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적장애인의 도전적인 행동의 이유가 무엇이고 어떠한 특성으로 인해 그러한 행위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지적장애에 대한 이해력을 증진시키고, 대중교육을 시키는 것이 요구되어진다. 대중교육을 시키는 데에는 Allport의‘접촉가설’이 효과적이다. 접촉가설이란 두 집단이 서로 만나는 것이 집단 간 긴장과 적대감을 줄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조건은 접촉이 동등한 지위에서 장기적으로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두 집단 간의 상호 협조적인 의존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편견은 잘못된 것이며 집단 구성원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회적 규범이 수용되고 분쟁의 조정과 감독 역할을 하는 사람들 간에 이를 받아들이는 합의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활동을 통해 지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나 또한 그들은 두려움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그들을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아주 드물었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특성은 내게 생소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봉사를 통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복지관 실습을 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불안이 현저하게 감소하였고 조금이나마 어떠한 특성을 지닌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적인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지적장애인과의 접촉을 통해 편견을 해소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관찰하였다. 이처럼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킨 접촉뿐만 아니라 TV나 광고를 통한 사소한 접촉경험이라도 편견을 감소시키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동복지법판례분석‘아동학대를 중심으로’학과 :학번 :이름 :교수 :목 차Ⅰ. 신체적 학대 _______________________ 3Ⅱ. 정서적 학대 _______________________ 4~5Ⅲ. 성적 학대 _________________________ 5~6Ⅳ. 방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8Ⅴ. 총평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8~9Ⅵ. 참고문헌 __________________________ 10Ⅶ. 부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1~40Ⅰ. 신체적 학대1. 판례내용피고인은 어린이집 보육교사이다. 보육 아동인 만 1세 피해자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팔을 움켜잡아 강하게 흔들고,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 색연필 뒷부분으로 볼을 찌르거나 손으로 볼을 꼬집고, 손으로 엉덩이를 때리거나 자신의 다리를 피해자의 몸 위에 올려놓고 누르는 등 5회에 걸쳐 신체적 학대행위를 하였다는 취지로 기소되었다. 이에 원심은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하지만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적정한 징계권의 행사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항소하였고,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하였다. 이에 지방법원은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하였다. (울산지법 2017. 8. 4. 선고 2017노542 판결)2. 관련 법 조항제1조이 법은 아동이 건강하게 출생하여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동의 복지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3조 제1호"아동"이란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제3조 제7호"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제17조 제3호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 아동청소년에 대한 교육과 달리 영유아의 경우 그 보육방법으로 징계 관련 규정을 전혀 두고 있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보육교사는 원칙적으로 영유아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징계가 허용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경우에 따라 부득이하게 신체적 제재를 통한 보육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유아의 경우 초·중등학생에 비하여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숙한 반면에 완전하고 조화로운 신체 및 인격 발달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필요성이 더욱 크므로, 위와 같은 보육방법의 허용 범위는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2) 판단가) 살피건대, 이 사건 어린이집 ○○○반에 설치된 CCTV 영상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바, 이에 따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상대로 원심판결의 범죄사실에 기재된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1) 2016. 8. 10. 10:24경 영상에 의하면, ㉠ 피고인이 피해자를 포함한 4명의 아동들을 좌식테이블에 앉혀놓고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오른손으로 피해자의 왼쪽 팔을 잡아서 들어올리고, 이에 피해자가 피고인을 쳐다보면서 왼쪽 팔을 만지는 장면(증거목록 순번 21번 CD에 첨부된 2번 파일 00:38), ㉡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피해자의 양팔을 잡고 강하게 흔들어 자세를 바로잡고, 이에 피해자가 양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는 장면(증거목록 순번 21번 CD에 첨부된 2번 파일 00:50)이 각 확인된다.(2) 2016. 8. 29. 15:26경 영상에 의하면, ㉠ 피고인이 구석에 서 있는 피해자의 왼팔을 잡고 몸이 다소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끌고 와 약 3m 떨어진 다른 아동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오는 장면(증거목록 순번 21번 CD에 첨부된 7번 파일 00:37), ㉡ 잠시 후 그곳에 서 있는 피해자의 오른쪽 팔을 강하게 잡아 당겨서 자리에 앉히는 장면(증거목록 순번 21번 CD에 첨부된 7번 파일 00:48), ㉢ 그 후 피해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피해자의 양팔을 잡아소년이 성적 행위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자발적이고 진지하게 행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나아가 피해자의 성적 가치관과 정서, 건강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 것이 분명하므로 피고인의 행위는?아동복지법이 금지하는 성적 학대행위에 해당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사실, 제1심은 “공소사실의 사실관계가?아동복지법?제17조 제2호?후단의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의 항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볼 여지가 있으나, 위 후단 항목이 같은 호에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킨 것’과는 행위의 태양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예비적 또는 택일적으로 공소제기가 되지 않은 이상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다.”라고 설시한 사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①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②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매개하거나, ③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행위를 모두 포섭하여 기소하였음에도 제1심이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는 행위’ 부분만을 기소한 것으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사실, 한편 원심은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도 기소된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검사에게 석명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제1회 공판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 사실을 알 수 있다.3) 위와 같은 공소장의 문언 및 심리의 경과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검사는 이 부분 피고인의 행위를 ‘아동에게 음행을 시키는 행위’뿐만 아니라 ‘성적 학대행위’로도 기소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원심으로서는 의견서 및 항소이유서에서 검사가 한 주장을 감안하여 검사에게 이 부분 공소사실이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인지 및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는 행위’와의 관계 등에 관하여 석의 수사기관 진술의 구체적 내용과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의 수사 경위 및 위 공소사실에 대한 공소외 6 등 관련자들의 수사기관 등에서의 진술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가 피고인의 위 주장과 같은 이유 등으로 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해사실을 허위로 꾸며내어 진술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나) 한편, 피해자는 당심 및 원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를 강제추행하거나 유사성행위를 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가 피고인이 너무 미워서 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거짓으로 진술하게 되었다’라는 취지로 증언하여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을 번복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피해자의 당심 및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여러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려워, 피해자의 위 당심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만으로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또한 피해자는, 2018. 11. 15.과 2019. 2. 12. 및 2019. 5. 30. ‘피고인이 밉거나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허위로 피고인으로부터 성추행 내지 성폭력을 당하였다는 취지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하였는데, 이는 거짓이다’라는 취지의 서면들을 피고인의 변호인 등을 통해 원심 법원 내지 이 법원에 제출하였는데, 아래에서 살펴보는 여러 사정들을 고려해 보면, 위와 같은 피해자 제출의 서면들의 내용도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① 피해자는 당심과 원심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해 평소에 폭언을 하고, 공부를 잘하는 오빠와 피해자를 차별하였으며, 집안일을 여성인 피해자에게만 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그 중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오빠와 차별하는 것이 제일 큰 불만이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싫어서 피고인이 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에 대해 추행 등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피해자의 친구에게 피고인으로부터 추행 등의 피해를 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미워 2011전도12 판결?참조).다만, 원심판결 중 피고사건의 유죄 부분에 위와 같은 직권 파기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심판결 중 피고사건의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위 사실오인 주장은 여전히 이 법원의 판단대상이 되므로, 아래에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3. 원심판결 중 피고사건의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에 관한 판단가. 공소사실의 요지1)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제추행)피고인은 2014년 여름 날짜불상 주말 낮 시간에 이천시 (주소 생략), 1005호에 있는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피해자(당시 9~10세)가 안방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관계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고 음부를 만졌다. 이로써 피고인은 친족관계인 13세 미만의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2)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유사성행위)가) 피고인은 2017년 가을 날짜불상 평일 밤 시간경에 위 ‘1)항’ 기재 장소에서 안방에 누워 있는 피해자(당시 13세)에게 다가가 피해자가 덮고 있는 이불을 함께 덮은 후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관계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음부를 만지고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였다.나) 피고인은 2018. 3. 초순 낮 시간경에 위 ‘1)항’ 기재 주거지 거실에서 방에 있는 피해자(당시 13세)에게 발로 피고인의 발을 밟는 방법으로 안마를 해달라고 요구한 후, 피해자가 안마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이리 와. 어디 가냐.”라고 말하여 피해자를 가지 못하게 한 후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관계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음부를 만지고 손가락을 음부에 삽입하였다.나. 원심의 판단원심은 위 공소사실에 대하여, ①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5조
차별받은 식탁이 책의 저자는 미국 흑인, 브라질 도망자, 불가리아와 이라크 유랑자, 네팔 금단의 요리, 일본 부락 등 전 세계에서 차별받고 궁핍한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저자가 이들을 책의 주제로 삼은 것은 단지 특색 있거나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울 푸드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며, 이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봄으로써 차별을 해소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사실 이 책의 저자도 일본의 ‘부락’ 출신으로, 적지 않은 차별을 겪었다. ‘부락’은 죽은 소나 말 해체작업을 하는 최하층민이 모여 사는 공간을 말한다. 작가는 어렸을 때 소의 내장을 수시로 먹곤 하였는데 학교에 가서야 자신이 먹는 음식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어렸을 때 먹었던 ‘부락민들의 음식’이 자꾸 생각났고 그런 ‘부락민들의 음식’의 뿌리와 세계 곳곳의 차별받는 사람들의 음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자유의 나라 미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흑인노예와 인종차별일 것이다. 작가 또한 여행 도중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호스피탤리티(southern hospitality)에게 차별을 느끼고 미국의 흑인들도 직접적인 차별은 사라졌지만 그들과 백인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 골은 꽤 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울 푸드는 오래 전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노예제 시절에 백인 농장주가 먹지 않던 식재료를 가지고 흑인 노예들이 가져다가 먹을 만하도록 만든 음식으로, 흑인 노예들의 음식이면서 지역적으로는 미국 남부 시골 음식이다. 그들이 먹던, 어찌 보면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음식이 소울 푸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흑인 차별 철폐 운동 무렵부터이다. 이 때 미국 흑인들이 자신들만의 음식의 독자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심하다가 따로 붙인 이름이 ‘소울 푸드’이다.1장 미국?흑인의 소울 푸드 편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국 흑인의 소울 푸드 중 대표적인 하나가 프라이드치킨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 음식 중에 가장 친숙한 음식인 만큼 내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닭의 허벅지나 가슴살은 백인 농장주가 즐겨 먹었기 때문에 흑인 노예들은 접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백인들이 입에 대지 않던 날개, 발, 목처럼 뼈가 많은 부위는 자연스레 노예들 차지가 되었고 그것을 뼈째 씹어 먹을 수 있도록 바싹 튀긴 것이 프라이드치킨의 유래이다. 이밖에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히 판매되고 있는 메기 요리도 내게 새롭게 느껴졌다.2장 브라질-도망자들의 가난한 낙원 편에서는 페이조아다가 대표적인 브라질의 소울 푸드로 소개되고 있다. 브라질에는 1888년까지 노예제가 존재하였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노예들은 백인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했다. 페이조아다는 백인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만든 요리로, 돼지 내장, 귀, 코, 발, 꼬리 등을 콩과 함께 삶아 만든 브라질의 국민적 요리다. 이곳에서도 인종 차별이 만연하나,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물라토가 두 인종 간의 완충적 존재여서 문제의 본질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장에서 눈여겨보았던 것은 흑인 노예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킬롬보 혹은 카온지의 존재이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쯤 전에 도망쳐온 노예들이 만든 곳이라고 한다. 킬롬보에서 이들은 거의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고 모든 관계가 혈연으로 맺어져 있다. 이처럼 킬롬보는 브라질의 인종차별이 뿌리 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이런 식으로 생활하다보면 그들의 고립감은 더욱 심화되고 다른 인종과 완벽하게 차단될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굶주림도 차별도 없는 이러한 곳이 안락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3장 불가리아-유랑자의 만찬 편에서는 고슴도치 요리가 나온다. 고슴도치 요리는 내게 상당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고슴도치를 먹는 이유는 독특한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는 박해를 피해 살아야 했으며 외부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 불결하다는 독특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해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온몸이 바늘로 뒤덮여 있어 외적은 물론 불결한 요소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고슴도치를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불가리아에 왔으니 고슴도치 요리를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 고슴도치를 먹지 않는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다. 저자는 거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어렵게 고슴도치를 먹는다는 로마 마을을 찾아갔으나, 그들 또한 먹지 않는다고 얘기하자 어리둥절해진다. 알고 보니, 로마는 전통적으로 외부인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정말 신선하고 인상 깊게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로마사람은 외부사람을 불신하기 때문에 변덕을 잘 부리고 거짓말도 잘하며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4장 네팔-금단의 소고기 요리 편에서는 소가 소울 푸드로 소개된다. 네팔은 힌두교의 나라로, 인도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 카스트제도에 따른 계급 중에 최하위계급인 불가촉천민은 절대 손이 닿아서는 안 되는 불결한 계층으로 여겨진다. 네팔은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카스트해방령’이 나왔으나 사회문화적 분위기는 여전한 상황이다. 불가촉천민은 높은 계급의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도 나누지 못하며 함께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되는 계급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직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소를 잡아먹는 것이 금기가 되자 불가촉천민이 소를 잡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소를 잡는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 불결하게 여기고 차별함으로써, 일반 백성이 소고기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아리아인은 채식주의를 강화시켜 자신들을 더욱 신비한 존재로 만들었다.’ 사르키는 일반백성에게 세상은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으로 나뉘어 있다는 믿음을 퍼뜨리기 위한 말 그대로 도구로써 여겨졌다. 이들은 아예 인간으로서의 취급을 받지 못하고 카스트제도가 너무 깊게 뿌리내려져 있어 변혁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들은 내용에 의하면, 불가촉천민들은 지금의 제도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윤회 사상을 믿고 있어서 함부로 개혁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카스트제도는 정말 잘못된 것이며, 사람을 정해놓은 계급으로 나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식을 크게 바꾸기는 힘들지만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할 문제이다.인종차별은 집단의 신체적 특성이 보다 우세하거나 보다 열세한 인종이라고 확인될 때에 심리적 특성도 그와 같은 식으로 연결 지어 생각하려는 신념이다. 흔히 인종이나 민족 집단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 감정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확실히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차별도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받았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음식의 문화가 남아있고, 어딘가에는 아직도 차별이 잔재하고 있다. 나는 차별이라는 개념은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다름’을 뜻하지만, 차별은 ‘틀림’을 뜻한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다른 것을 틀리다고 느끼고 행동한다. 특정한 문화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다양한 문화를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별받은 식탁을 통해서, 세계에 존재했던, 더 나아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차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애초에 차별을 하지 않으면 지식의 차이도, 경제수준의 차이도, 인권의 차이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모두는 소중하다.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 없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으로, 생김새로, 계급으로, 능력으로, 우리는 차별받고, 차별하고 있다. 모든 편견은 차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왜 복지국가인가?비록 몇 십 년 전만 해도 후진국에 속해 있던 ‘한국’은 타국에 비하여 최단기간에 커다란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선진국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 여러 심각한 사회적 위험을 낳고 말았다. 이제는 구사회적 위험을 비롯하여 새롭게 등장한 신사회적 위험들에 대비하여 복지를 더욱 체계적으로 실현해야 할 때이다.이 책의 제 1부에서는 복지국가가 발전하게 된 경로를 시간의 흐름대로 풀어내었고 사회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다루었다. 여태껏 배워왔던 내용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자본주의와 복지국가가 이분법적 개념이며 그렇기에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이념을 살펴보던 중 자본주의에 인간 존엄과 연대, 사회정의의 이념이 결부된 것이 복지국가라는 말이 내게 인식의 전환을 일으켰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경제체제로써 자리매김 하였다. 여기에 복지적인 요소를 더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더 하나가 된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란 현대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빠지게 되는 비극적 상황을 집단적으로 방어해줌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여러 비극적 상황들 중에 여자로서 더욱 심각하게 와 닿는 주제는 출산과 양육, 실업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대책으로 책에서는 아동수당제도, 보육시설 이용에 대한 적극적 지원, 휴직제도 등이 언급되고 있다. 아동수당제도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지만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확정된 바이고 보육시설 관련해서는, 무턱대고 시설의 숫자만 늘리다보니 잇따라 낮은 수준의 보육교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보육시설 내에서 학대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부모라면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의 상황도 열악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순수 근로시간과 이들이 근로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감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고 있다.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인,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아동들을 위해 보육교사가 되는 조건을 상향조정하고 이들의 임금 또한 그에 걸맞게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휴직제도가 제도로써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을 마음대로 쓸 상황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교수님께서 수업 중에 말씀하신 대체인력지원센터의 개발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쓰라고 만든 제도를 누구는 사용하고 누구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휴직제도가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한 데에는 양육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깊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가부장적인 요소가 생활 곳곳에 깃들어있으며 상당히 지배적이다. 출산과 양육을 아직까지도 여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의 몫이지만 출산에 있어서, 그 이후의 양육 과정에서도 남녀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육아를 ‘돕는다.’는 것은 가부장제 요소를 바탕으로 한 표현이며 ‘함께 한다.’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이 재고된다면 육아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주제인 실업에 관한 현 상황으로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되지 않아 실업자로 살고 있는 청년들이 즐비하다. 취업을 해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다보니 다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하며 그러한 쪽으로 메리트가 있는 공무원에 이목이 집중되는 추세이다. 너도나도 안정적인 삶을 원하기에 자연스레 경쟁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식에 기반을 둔 인적자본이 중요한 시점에 청년 다수는 창의력 방면보다는 획일적인, 해야 할 일들이 체계화 되어 있는 쪽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사회가 이렇다한들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사회적 지지망의 부재로 인하여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청년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불안에 떨지 않고 과감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안정된 사회적 지지망이 필요하다. 책 내용 중에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복지국가로의 제도적 이행을 통한 인식 전환이 한국에서는 더욱 효과적일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인식 전환이라는 게 간단하면서도 참 어려운 것이라는 걸 느꼈다.제 3부에서는 한국이 왜 보편적 복지국가를 목표로 두고 가야하는지 더욱 강력하게 주장을 펼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운영 원리는 양적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 발전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은 오로지 그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꾸려가야 한다는 각자도생주의에 기반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고용 없는 성장이 어느새 정착되고 자본과 노동의 균형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지식기반사회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사람의 가치가 더욱 중시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전환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성장의 목표는 ‘복지를 동반한 성장’, ‘인간의 얼굴을 한 성장’이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해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이다.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한국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생활상의 위기로부터 예외일 수 없는 사회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겠어.’하는 안일한 태도를 가지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런 비극적인 일을 겪을 리 없을 것이라고 방심했다가 막상 위험이 닥치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무너져버리고는, 안전한 사회적 지지망을 해놓지 않은 국가를 원망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생활과 윤리에서 다루었던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개념이 떠올랐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에 가려 있는 원초적 상태를 제시하는데, 이러한 가상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원초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지위만을 고려하여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정의의 원칙들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 각자에게 이러한 무지의 베일을 씌워 언제든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지지망의 필요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빈곤 계층에 대한 집중 지원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결국은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빈곤 계층에게 최저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만 지원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들이 더 개선되지 못하며 그 수준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선별적 복지는 ‘받는 자’와 ‘주는 자’로 양분되는 사회를 만들게 된다. 수혜자는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한 선별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을 열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로써 나와 타인을 구분하게 되고 연대와 같은 사회적 규범을 저해시키는 원인이 된다. 또한, 사회 통합을 위한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보편적 복지가 화폐적 가치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해도 복지를 통해 사회 통합을 꾀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복지의 가장 큰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원의 조달에 소극적이게 돼 복지 재정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들이 재원의 조달에 소극적이게 되는 것은 자신이 받는 혜택이 없다고 혹은 미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확대된다면 세금징수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국가 재정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예방적·사전적 대응책이라는 측면에서 비용 효과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