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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Line of Advantage> 서평 (정치외교학과 생기부, 일본과 국제관계 서평)
    <Line of Advantage> 서평 (정치외교학과 생기부, 일본과 국제관계 서평)
    서평 과제『Line of Advantage』 서평1. 서론에서 마이클 그린은 아베 시기 일본의 외교정책 변화를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외교, 안보정책은 시대를 달리하면서 변해왔고, 아베는 이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본의 외교정책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마련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 식민지배의 역사는 아직까지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맺는 가장 큰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서 일본의 전략적 행위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지 않기도 한다. 따라서, 일본의 외교정책을 단순히 한국과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정치적 맥락을 망라하여 분석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안보, 외교정책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할 기회를 제공한다.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성은 아베를 합리적 행위자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아베가 정치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역사 인식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베의 우경화된 역사 인식은 한일관계에서 항상 논란을 만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발언하는 한편,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 왜곡 문제로 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한국이 ‘어리석은 국가’라는 등의 혐한 발언과 관련된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었다(서울신문 13/11/15).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아베에 대한 한국의 민족적 감정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아베라는 특수 요인에 가려 일본의 전략을 잘못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대전략의 설계자로서 아베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은 한국에게 매우 어려운 분석의 대상이 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장애물에 직면하지 않고 일본의 외교사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일관계에도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과 일 전략은 주로 일본의 국가 생존과 경제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이는 요시다 노선으로서 이어져왔다. 그러나 “Japan is back”을 외친 아베에 의해 일본은 해양 전략으로의 복귀를 하게 되었고, 미국과의 안보적 협조를 토대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사상적인 중심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그린의 아베 외교정책에 대한 평가이다. 특히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서 일본은 아시아 지역 자유주의의 리더가 되었다. 그린은 이러한 일본의 해양 전략으로의 복귀와 아베 정권에서 나타난 변화를 두고 ‘요시다 노선의 종결’이라고 표현했다. 지정학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미국에게 안보를 위임하고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던 요시다 노선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것이며, 아베의 대전략이 향후에도 정부의 중요한 외교정책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은 이 과정을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통해 바라보면서도, 아베 개인 행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그린의 주장은 대체로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일본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국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미국과 동아시아의 대전략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린은 아베의 외교정책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린은 아베의 외교정책을 일관되게 해석하느라 그 한계점을 하나도 지적하지 않았다.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적 인식으로 인한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등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일본 내부의 역사적 인식은 더욱 우경화될 것이며, 주변국과의 축적된 관계 악화는 국가 간 신뢰 하락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그린은 일본의 외교적 변화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정책적 변화의 원인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외교사적 맥락을 통해 그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의 외교전략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패턴에 대한 분석일 뿐이다. 일본의 대전략은 국가 이익에 따라 설정되었을 것이며, 오히려 외교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아베의 대전전략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의 원인은 모두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리더십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과거처럼 경제력을 통해서 이를 추구할 수 있고, 미국과 협력하고자 한다면 안보협력을 강화하면 된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일본이 홀로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는 견제할 수 없고, 다른 우방국과 협력해서 균형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다. 중국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면서도 다른 국가들을 규합할 수 있는 외교 수단으로 가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가치가 강력한 외교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우선, 가치란 실체가 없다. 가치를 어기는 국가가 존재할 때만 가치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치를 어기는 존재가 사라지면 가치가 가지는 힘은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치는 이익이 아니다. 가치를 따르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가치 외교에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일본은 외교 수단으로 가치를 잘 활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치를 통해 중국에 대해 균형 전략을 취하면서도 가치 외교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경제, 안보적으로 협력하여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중국을 균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라지거나, 일본과의 협력이 다른 국가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때, 가치 외교는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 가치 외교의 당위성이 사라지면 일본이 가치 외교를 통해 축적한 리더십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더욱이 가치 외교는 실용주의 외교에 전면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동의 산유국 등, 일본이 강조하는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국가는 많다. 가치 외교는 이들과의 외교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가치 외교로 설정한 규범이 향후 자국의 외교적 범위를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이 빈살만 왕세자를 방문한 것을 두고, 가치 외교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한겨레 23/06/16). 일본은 과거 인도 펼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특히 미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2015년 미일신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국내적으로는 안보법제가 입법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안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안보정책은 2010년과 2012년 센카쿠 열도 분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다시피 중국에 대한 위협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2012년 센카쿠 분쟁 이후에는 중국이 동중국해에 해양감시선을 지속적으로 파견하면서 해양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위협인식이 매우 높아졌고 이에 대해 대응하고자 일련의 안보정책 변화가 나타났다고 파악할 수 있다.그러나 그 방식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상호의존성을 과도하게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린이 설명하다시피, 트럼프를 비롯해 부시,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도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큰 불확실성을 감당해왔으며, 이로 인해 일본 대중의 동요가 존재했다. 미국과 일본, 혹은 한국이 포함한 안보협력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된 것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은 현재 상황에서 일본에게 미국과의 동맹이 매우 중요하며, 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된 것도 일본이 미국으로부터의 방기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그린의 주장을 모순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일 관계는 일본의 안보에 있어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일본에 대한 불확실성이 언제나 존재해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군사적 상호의존성을 강화하는 것은 기존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도박이라고 생각한다.트럼프와 같이 미국의 이익과 일본의 이익이 합치되지 않는 미국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면 일본의 미국과 상호의존성 강화는 무용지물해질 수 있으며, 오히려 일본이 스스로 만든 상호의존으로 일본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조치에 연루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 대한 방위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유지하는 상자 했다. 이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극시켰다. 그랬던 역사 수정주의자가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며 국제질서에 따라 일본의 역사를 해석하게 된 것이다.아베의 국제주의적 역사 해석은 역사 화해노선과 차이점이 있다. 단순히 민주주의, 자유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그 자체를 역사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미국 중심 질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더욱이 이는 역사정책의 청자를 미국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역사 화해노선과 차이가 있다. 역사 화해노선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피해 당사자인 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역사정책이었으나 아베의 국제주의적 역사 해석은 역사 문제에서 아시아를 상대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린은 아베 담화에 대해서 언급은 하고 있지만, 아베 담화에 담긴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계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을 청자로 하는 아베의 역사정책은 전범국이라는 일본의 역사적 한계를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강대국의 국민들은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강대국이 아니더라도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의 국민들에 의해 일본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역사는 매우 양극화되고 정치화되어 있어서 일본에 대한 이슈가 발생하면 이와 관련된 정체성 정치가 등장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역사 문제를 정부 간의 외교 문제로만 바라본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일본은 정부 간 합의를 통해서 한일 간의 역사 갈등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물론 최종적인 갈등 해소의 형식은 정부 간의 합의가 되겠지만, 일본이 역사 문제를 한국을 비롯한 피식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일본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마다 역사 갈등이 꼬리표처럼 따라 나와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역사 갈등 문제가 국민적 수준에서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적 정권이 들어다.
    사회과학| 2025.09.10| 6페이지| 5,000원| 조회(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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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독후감 (환경 관련 생기부)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독후감 (환경 관련 생기부)
    세계와 지역의 환경문제 서평 과제지구와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역사-클라이브 폰팅의 를 읽고-서론중학교 때부터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전부 공부하면서, 역사란 본래 인간이 주인공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세력이 흥하고 어떤 세력이 멸하며, 누가 그 사건의 가운데에 있었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공부하는 일이 매우 즐거웠다. 그런 사건들의 배경이 되는 환경은 역사를 배우면서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는 인간들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파괴해왔고, 환경은 인간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인간은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써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인간 문명 중심의 사고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 환경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지구의 생태계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인류의 탄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 지 생각이 들었다. 는 현재 기후위기, 환경오염 등의 위기를 맞은 인류가 향후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을지 잘 보여줄 수 있는 책이다.인간의 환경 파괴의 역사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일까? 아니면 생태계와 독립된 존재일까? 이 책은 서두에서 이스터 섬의 역사에 대해 소개한다. 이스터 섬은 매우 작은 섬인데도, 수수께끼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여러 개 존재해서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보였다. 그러나 그 역사는 우리에게 우울한 경고를 알린다. 이스터 섬은 본래 문화 유산이 발달한 곳이었다. 제례의식도 발달했기 때문에 섬의 부족들은 족장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모아이 석상을 세웠다. 그러나 그 방식은 거대한 돌을 여러 나무 도막에 굴려서 운반하는 방식이었으며, 많은 나무와 인력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에 이스터 섬은 극심한 삼림 벌채가 이뤄졌고 이로 인해 토양이 황폐화되면서 문명의 파괴가 벌어진 것이다. 자신들이 문명이라고 여기던 행위로 인해서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었던 사실을 그 사기술을 개발하면서 여러 생태계에 적응하며 지구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그러나 혹독한 환경에서 식량 공급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식량을 통제하기 위해 고도로 발전되고 복잡한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큰 사회적 통합이 촉진되었다.1만년 전부터는 인류 역사에 농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이란 기존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를 없애고 인간이 키우고자 하는 작물의 인공 서식지를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는 극심했다. 더 나아가 인간이 농업을 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마을과 도시가 생겼고,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해짐에 따라 환경에는 더 큰 부담이 가해졌다. 환경을 개발하면서 인간 사회는 점차 안정되고 계급이 나타났으며 인구도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환경 파괴는 급속도로 진행된다.이 시기 여러 문명이 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문명 붕괴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환경파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확인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토양 염류화, 중국 문명의 삼림 벌채, 인더스 문명의 토양 염류화 등 각각의 문명은 모두 환경 파괴로 인해 농업생산력이 저하되면서 붕괴를 맞이한다. 물론 각기 문명의 사회, 경제적 불안요인이나 자연재해도 문명 붕괴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규모 인구의 식량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는 환경에 과도한 부담을 주었고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나일강의 범람으로 영양원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었던 이집트 문명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농경이 인류 문명에 도입되었으나,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 시기 인간의 역사는 자연과 농업생산성 간의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건지 농업, 유럽은 밭농사를 했는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농업 생산이 이뤄졌다. 두 지역 모두 농업생산량 증대를 위해 유의미한 발전이 있었으나, 인구 증가의 문제로 인해 인구와 식량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심각해지는 일이었다. 유럽에서는 삼림 벌채가 심했고, 식민지에서는 학살, 질병, 착취와 함께 생태계도 붕괴했다. 특히 잉카제국은 유럽의 정복 이후에 인구가 1/4로 급감했다. 이러한 점은 유럽에 의한 세계 자원 지배가 성공의 역사가 아닌 불행의 역사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유럽 팽창과 더불어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지구의 역사에서 두 번째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산업화로 인해서 환경 파괴는 무자비하게 진행되고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아진다. 선진국에 의한 화석연료 개발, 제3세계에 의한 집약적인 농업은 극심한 환경파괴를 초래했다.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철학적인 전제는 인류를 불행 속으로 빠뜨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전경제학은 물질적 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자원고갈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현재 인류는 수질오염, 대기오염, 산성비, 살충제로 인한 생태계 파괴, 핵폐기물, 지구온난화,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 등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직면하고 있다. 인류의 환경 파괴는 더더욱 가속화되었고, 인류의 빈곤 문제는 더욱 불평등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지구의 불길한 미래를 제시하며 끝맺는다.감상 및 비평중학교 때 사회 과목 교과서에는 지구를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두 가지로 나누어 가르쳤다. 그러나 를 읽은 이후에 이러한 지식에 대해 강한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만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문화 유산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겠지만, ‘인문환경’이라는 단어는 마치 인간의 자연 개발을 합리화시키고자 자연과 인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분리시킨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책의 1장 마지막 부분에는 ‘닫힌 체계로서의 지구’에 대한 설명이 있다.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식물과 동물이 커다란 전체의 일부이듯, 생태계 자체도 더 큰 전체, 즉 지구의 일부이다. 모든 점에서 지구는 닫힌 체계이다… 지구가 닫힌 체계라 함은 아무것도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쓰레기들은 인류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를 인식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평소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생활 방식 자체가 본래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인간의 농경과 산업사회는 2023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생활은 자연과 절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특히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직접적으로 실감하면서 단순히 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복잡계의 관점에서 볼 때, 지구온난화나 환경파괴가 미시적인 변화에서 국가 안보의 문제까지 ‘창발’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는 댐을 두고 무력충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란 내에서도 지속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특히 건조 기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농업 위주의 경제를 선택하면서 농업용수로 지하수는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 중동 전반에서 지구온난화, 사막화가 심화하면서 아프가니스탄도 가뭄이 심화했고 이란으로 흐르는 강물에 댐을 설치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란의 가뭄 사태를 아프가니스탄의 댐 건설에 책임을 돌리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시도하며, 지구온난화라는 환경 문제가 지정학적인 국가 권력 충돌의 문제로 ‘창발’했다. 이러한 사례와 같이 환경문제는 향후 우리의 삶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같이 환경문제에 사람들은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수 있고, 쟁점 사안은 국내정치 차원에서 안보화 되고 정치화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 전반은 인류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논의의 과정에서는 충분히 다른 의견들도 존중 받을 수 있어야한다. 를 읽으면서, 이러한 관점이 책 전반에 있어서 통일성을 갖는다는 장점은동을 변화하고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러한 논의 과정에서 인류가 현재 이뤄놓은 편리와 기술을 포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인간의 업적을 포괄하면서도 어떻게 우리의 생활 양식을 바꿀 수 있을지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결론적으로 인간이 미래에 지속가능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더 이상 개발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도 지구 생태계의 일부이자 조화와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 봐야할 것이다. 국내, 국외에서 환경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는 현재 상황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길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숙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이런 논의가 축적된다면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이어질 것이고 정부나 기업의 변화까지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논의를 통해 관점이 바뀌고 관행이 바뀐다면 인류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동조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맺는 말최근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고 기후온난화 문제를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실감하면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인류가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고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하겠지만, 이전의 빙하기라는 혹독한 기후 환경에서도 적응했던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인간은 앞으로의 변화할 기후에 대해서 끊임없이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클라이브 폰팅의 는 과도하게 ‘환경파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 충분히 절망적이고 환경 문제에 의해서 압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조금씩 진보하고 있고, 공동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다.
    생활/환경| 2025.09.10| 5페이지| 2,500원| 조회(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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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생애 발표 ppt
    孔子 소개 청년시절 【 【 소년시절 ***** 노년시절 그의 삶# 유가 # 논어 # 동양 # 증자 # 맹자 # 귀인 ? 1. 소개2500 년전 노나라에서 출생 이름은 구 , 자는 중니 조상은 송나라 명문 가문 무사였던 숙량흘이 노년에 안징재를 맞아 공자를 낳음 3 살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 홀로 공자를 키움 2. 소년시절2. 소년시절 아버지 유산 상속 X, 어머니 눈 멂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냄 – 창고지기 , 등 천한 일 종사 글과 지식으로서 인정 받으려함 제사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기를 좋아함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움 – 노자 30 대에 노나라 가장 박식한 사람 30 대 관리로서 지위 얻음 * 공자의 이상 – 덕치주의 , 인본주의 3. 청년시절명망이 높아짐 - 노나라 왕 가까이함 노나라에서 반란으로 제나라로 망명 , 정치 고문이 되지 못함 . 귀국 노나라 바로 세우고자 하였지만 벼슬 버리고 여러 나라 주유 3. 청년시절학문적 이상 실현 불가능 깨닫고 후학 양성에만 전념함 아들 백어 , 제자 안연과 자로가 죽음 “ 하늘이 나를 버렸다 .” 손자 자사를 키우면서 증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맥을 이어나감 73 세 되던 해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하함 제자들이 스승이 남긴 말씀들을 모아 논어 라는 책 저술 . 가르침 이어짐 . 4. 노년시절“ 나이 열다섯 에 학문의 길로 가기를 마음먹었고 , 서른 에 이르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렸으며 , 마흔 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 쉰 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 예순 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 일흔 에는 하고 싶은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 5. 그의 삶{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23.10.03| 8페이지| 4,000원| 조회(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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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의 역사 조사 레포트
    한국의 문화유산 과제: 우리동네 문화유산 소개하기 (블로그)***아름다운 바다 전경의 낙산사!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 사계절 내내 강원도를 찾는다. 양양의 낙산사는 강원도의 관광지 중 대표적인 관광명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낙산사는 걷기 좋은 산책길과 동해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 전경을 가지고 있다. 실로 의상대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전경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이 나의 모든 고민과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또한, 낙산사의 랜드마크인 웅장한 해수관음상을 보면 나의 소망을 이뤄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그 앞의 범종루에서 타종하면 종소리와 함께 내 소망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소망을 기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힐링을 하기 위해서 낙산사를 찾아온다. 천혜의 자연경관 그 이면에는 낙산사가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가 담겨있다. 그 역사는 신라의 의상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낙산사와 관련된 설화들의상대사와 낙산사 창건 설화낙산사 창건의 역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낙산사를 가장 먼저 창건한 사람은 의상대사로 알려져 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에 현재의 오봉산에 낙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의상대사는 오봉산 해안 절벽에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기도를 올렸고, 직접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 그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낙산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이는 의상대사의 불교사상과 관련하여 잘 이해될 수 있다. 의상대사는 중국의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화엄종을 받아들이고, 한국에 화엄종을 확산시킨 최초의 인물로 여겨진다. 그 맥락에서 낙산사 창건 설화를 본다면, 이는 관음사상과 화엄사상의 결합을 통한 불교의 대중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음사상이란 누구나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예배하면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상대사의 낙산사 창건은 “남방 해안에 있는 보타락가산에 관음이 상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을 찾아올 때 한 여인으로 변한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하였고, 또 낙산사에 이르러서는 풍랑이 심해서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굴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때문에 설화와 관련해 원효와 의상의 역학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존재하는데, 이는 기존 학자들에 의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의상과 그렇지 못한 원효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민중이 원했던 사상은 귀족불교를 택한 의상이 아니라 원효였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이한길, 2006).또한 에 실린 에서도 낙산사가 등장한다. 승려 조신은 낙산사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한 여인과 사랑이 맺어지길 기도한다. 그는 50년 만에 그녀와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고통을 안고 헤어지는 꿈을 꾸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이광수는 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이러한 문헌설화, 그리고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지는 구전설화들은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진신상주처로서 문화적, 역사적, 신앙적 전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해왔다는 연구가 있다(장정룡, 2012).여러 왕조를 거친 낙산사의 역사낙산사는 창건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많은 왕조를 거쳐왔다. 오랜 세월 동안 낙산사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낙산사는 쇠퇴와 중창의 역사를 반복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의상이 낙산사를 창건한 시점으로부터 약 100년 이후에(786년) 화재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찰이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858년경에 범일대사가 이를 중창하였다. 이후 고려 초기에 화재로 인해서 일부가 소실되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을 봉안한 불전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직후에 사자를 보내어서 낙산사에서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까지 낙산사의 위상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려시대 유자량은 관음굴에서 기도하다 파랑새가 꽃을 물고 와 갓 위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되었으며, 불상에 담겨있던 보물도 몽골군에게 약탈당하였다. 이규보가 이 소식을 듣고 불상을 다시 세웠지만, 낙산사가 다시 중창된 것은 고려시대를 한참 지나서 조선시대 세조에 이르러서이다.1467년 세조는 낙산사가 소실된 채로 방치된 것을 발견하고 중창을 명령한다. 이때는 세조가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을 위해서 불교 정책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상균(2017)에 따르면 세조의 낙산사 중창은 세조의 이러한 불교정책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예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세조의 개인적인 불교적 신앙심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 인해 무리한 자원 조달과 백성 동원으로 지역의 피해가 크기도 했으며 백성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세조의 강력한 의지로 낙산사는 중창되었고, 중창 이후에도 조선왕실의 강력한 후원 아래에서 낙산사는 그 위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사찰이 피폐해지자 조선의 원당보호정책으로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산사는 끊임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1487년에는 낙산사가 화재로 인해서 불에 타버렸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에 다시 불에 타버렸다. 이후에도 많은 인물에 의해서 중창, 중건되었고, 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낙산사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소실과 복원의 역사앞서 설명했듯 낙산사는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의 역사를 거쳐왔다. 조선 왕조 이후에도 낙산사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전소되었고, 1953년에 다시 복원했으나 2005년 양양 대형 산불 화재로 인해서 다시 불타게 된다. 이후에는 문헌자료, 역사서, 경전을 분석하여 낙산사 복원이 진행되었다. 특히 임승남(2012)은 낙산사의 복원 불사를 지도, 감독 했던 인물로, 당시의 복원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는 일부 건축물의 배치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방대한 문헌자료 검토와 다른 지역의 건축물 구조를 참고하여 정밀한 복원 작업이 이뤄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낙산사가 또다시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우낙산사 7층 석탑은 저물어가는 고려시대 불교의 여운을 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낙산사의 원통보전 안에는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이 있으며, 표정이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외에도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이라는 사리탑이 존재한다. 본래 낙산사 범종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2005년 산불로 인해 불에 녹아내리면서 보물에서 지정 해제 되었다. 이는 조선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서 만든 것인데, 모양과 형태가 매우 아름다웠지만 화재로 녹아내리면서 옛 형태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3종의 보물 외에도 사적, 명승, 강원도 유형문화재들이 많이 지정되어 있다.이 중에서 낙산사의 의상대와 홍련암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낙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낙산사 창건과 가장 관련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관음굴로 들어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정자이다. 이곳에서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에 대한 참선을 하였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의상대라고 불렸다. 홍련암은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에게 낙산사의 위치를 점지받고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서 직접 세운 불전이다. 절벽에 세워진 홍련암은 그 위치로도 건축형식으로도 매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낙산사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한 의상기념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낙산사에서 의상대사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어떨까?마지막으로, 3대 관음성지로서 낙산사와 이와 관련된 문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에 따라 창건한 것으로 관세음보살이 낙산사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관음신앙의 성지이자, 관세음보살의 진신상주처로서 발전해왔다. 이에 따라서 낙산사는 강화 보문사, 남해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라고 불린다. 관음성지로서 낙산사를 소개하자면 3가지 중요한 문화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원통보전이다.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 법당으로서 의상대사가 관음의 계시로 흙으로 빚은 관음상을 원통보전에 봉안하면서 낙산간 소실과 중창, 복원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매우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고 그 문화재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깊은 역사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낙산사!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낙산사는 웅장한 해안절벽, 아름다운 바다 전경 이면에 깊고 오래된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낙산사를 둘러싼 창건 설화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기타 설화들, 여러 왕조를 거친 낙산사의 역사, 소실과 복원을 반복한 낙산사의 현재, 그리고 오랜 시간 보존되어 유지된 문화재까지 낙산사의 오랜 역사를 되새겨보았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는 그 이후로도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신 사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고, 오늘날의 노력까지 더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래에는 낙산사가 또다시 화재에 의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낙산사에서 이런 오랜 역사를 직접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 현재, 미래라는 오랜 시간이 교차하는 낙산사에서 오랜 세월을 견딘 석탑, 불상, 그리고 새롭게 복원된 법당의 의미는 그 어느 절보다도 유서 깊고 위대하다. 그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작은 나를 발견할 때 그 깊은 역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문헌이상균. (2017). 조선왕실의 낙산사(洛山寺) 중창과 후원. 문화재, 50(2), 116-139.이한길. (2006). 양양 불교설화 속에 보이는 원효와 의상의 역학관계. 구비문학연구, 23, 391-420.임승남. (2012). 관음성지 양양 낙산사 복원불사에 관한 고찰.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17, 65-114.장정룡. (2012). 낙산사 관음신앙의 설화적 표출.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17, 115-148.황금순. (2007). 낙산(洛山)설화와 고려수월관음도, 보타산 관음도량. 불교학연구, 18, 93-118.국가문화유산포털, , https://url.kr/dig9wh, 최종검색일: 2023.5.6.우
    인문/어학| 2023.10.03| 5페이지| 2,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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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답사 보고서
    한국의 문화유산 “창경궁” 답사 보고서***창경궁에서 무료 야간개장 행사를 진행해서 관람하게 되었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성종 때 건축된 건물이다. 본래 창경궁 터에 수강궁이 있었으나 새로운 건물을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궁궐들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건축되고 이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궁들은 남향으로 배치된 것에 반해 창경궁은 동향으로 배치된 것이 그 특징이다. 창경궁에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홍화문’을 볼 때도 입구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야간개장이였기 때문에 창경궁의 평온하고 조화로운 그런 분위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창경궁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그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낮은 층고에 그리 화려하지 않은 건물들과 건물들 사이의 넓은 거리,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수목들은 그 공간을 조화롭게 이루고 있었다. 당시 그곳을 자유롭게 거닐며 산책을 즐겼을 공주들, 왕들을 생각하면 그곳이 더욱 잘 이해가 되었다. 특히 창경궁을 들어서면 가장 큰 건물이 명정전이다. 명정전에는 일월오봉도가 있고 천장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임금이 앉아있을 단이 놓여 있었고 명정전 밖에는 정승들이 자리했을 장소가 보였다. 야간개장이라 그런지 빈 궁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당시에 임금과 다른 신하들이 자리를 메웠을 상황을 생각하니 역동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야간개장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춘당지였다. 아름다운 연못 주위로는 청사초롱이 걸려있고 연못 가운데에 있는 나무에 조명이 더해져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특히 다양한 빛깔들이 연못 수면에 반사되어 더 다채로운 느낌이 들면서도 연못의 느낌과 더해져 고요한 느낌도 들었다. 연못 주위로는 또 나무가 굉장히 많았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궁궐 안에 연못과 이를 둘러싼 나무는 그러한 건축 자체가 자연 친화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당시의 건축과 현재는 일부 변형된 측면이 있겠지만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 한가운데의 정자는 당시 왕과 신하가 그곳에서 자연의 정취를 즐겼을 것 같은 상상이 들게 했다.그 다음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창경궁 대온실이었다. 다양한 나무들과 서양식 건축구조는 조선의 궁궐 속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야간개장이라서 더 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러나 관람 이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창경궁 대온실은 당시 순종이 창경궁으로 처소를 옮긴 후에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일제는 창경궁에 대온실을 세우고 식물원, 동물원을 지은 후에 창경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에 창경원으로 계속 기능하다가 6.25 전쟁으로 창경원이 폐원했고,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대온실만 남겨두고 창경궁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런 맥락을 알고 나니, 창경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창경궁이 가지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역동적이고 활발하던 과거의 기억과 괴로운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독후감/창작| 2023.10.03| 1페이지| 2,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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