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2」를 읽고 나서내가 「2020 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2」를 읽게 된 것은 과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한국교회의 현주소와 현 상황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책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2020 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2」를 읽고 나서 우리 한국교회와 지역교회가 떠올라 너무나 안타까웠고 이제 미래의 대다수의 한국교회의 미래가 이렇다는 것이 두 번째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해결방안이 있다는 것과 지금도 이러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한시름 놓였다.필자는 2~3년 후 한국의 미래를 3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교회의 가까운 미래도 밝지는 않다. 첫째는 ‘저성장’, 둘째는 ‘금융위기’, 셋째는 ‘제2의 외환위기’ 중 하나를 예측한다. 이렇듯 이러한 영향들이 우리 한국교회에도 끼칠 수 있다고 예상하는데 필자가 내다보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첫째, 선방하면 ‘정체’, 둘째,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 중 하나인 ‘심각한 재정 위기’, 셋째, 재정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재정 위기가 발발한 경우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파산’과 ‘교회 분열’ 등이 있고, 또 다른 하나의 시나리오는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간다면 한국교회는 2028년쯤에 본격적으로 침몰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데 그 때는 나와 내 동기들 또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목회교육현장에 있을 시기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필자가 2028년을 내다보는 이유는 그때면 한국교회 교인들의 주력 세대가 60~70대가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전체 교인의 60~70%가 55세 이상 은퇴자일 것으로 예측된다. 경기 외곽 지역이나 지방 대도시는 그들이 70~80%차지할 것이며, 중소형 도시는 교인이 80~90%가 은퇴자일 수 있다. 일명 ‘고령화된 한국교회’이다. 그런데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교회운영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해서이다. 그래도 꽤 큰 교회였는데, 주일헌금 몇 만원 걷히는 것으로 교회가 운영되는지 그런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 책에서 필자가 주장하기를 이제 미래의 한국교회는 이런 시골교회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초대형교회들에서 조차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이렇듯 자연스럽게 부도와 빚더미에 재정난에 허덕일 것을 예측 경고한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속한 우리 지역주변교회와 우리교회의 미래도 그렇게 밝고 활기차지는 않다. 이렇게 ‘고령화’와 재정난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많은 교회들은 문을 닫고, 십자가를 철거하며, 간판을 내리는 교회들이 점차 늘어나며,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교회 내에서 지속되어 재정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의 수를 줄여 나갈 것이다. 앞으로는 목회현장도 무한경쟁시대가 될 것 같다. 2028년을 필자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시작된다고 예측하는데, 그 때면 나와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들과 같이 목회를 하며 살아갈 시기인데, 그 시기에 교회에서 해고될까를 노심초사하면서 목회생활을 연명해 나갈 것 같아 걱정이 많다. 그리고 교육부서에 대한 지원과 다음세대와 미래를 위한 투자는 불을 보듯 뻔하며, 선교사들의 대한 지원도 끊어질 것이다. 당장에 국내에서도 목회가 어려운데 어느 교회가 얼마나 꾸준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인가도 미지수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한국교회에 ‘고령화’가 시작된 교회, ‘고령화’가 진행 중인 교회, ‘고령화’를 넘어선 교회가 생겨날 것이며, 이런 현상은 필자는 2050년을 예측한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교회와 지역교회만 봐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같아 남일 같이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교회는 충남 예산에서는 그래도 꽤 큰 교회 중 하나이다. 그래도 나름 예산에서는 중형교회인데 점점 갈수록 장년에서 노년층들의 수만 늘어만 가지 유아, 청소년, 청년, 중년 계층들은 점점 축소, 감소되어 지고 있다.유는 사회가 점차 고령화 될수록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50~55세가 넘은 은퇴자들은 생활비를 급격하게 줄일 것이며, 국내외 경제 연구소들의 공통된 분석에 의하면, 은퇴자들은 생활비를 평균 40~50% 줄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헌금, 십일조, 감사헌금을 40~50%를 줄일 것이며 선교사들에 대한 지원도 줄 것이다. 우리교회도 티베트, 브라질, 몽골 등에 선교사님들을 파송하였고, 다행이도 선교사님들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현재까지 들어서 이 글을 읽은 나로써 뿌듯하다. 앞으로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끊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진다.이렇듯 위에서는 한국교회의 많은 고난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들을 읽어 나갈 때 나의 모교회가 처한 상황도 머지않아 이렇게 될게 보여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필자는 암울하게 끝을 맺지 않았다. 그래도 미래를 내다본 해결 방안을 제시하여 주었다.한국교회의 위기는 외부적으로는 ‘상황의 변화’이며, 내부적으로는 ‘교회다움’의 상실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그래서 변화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잘 붙잡는 것이 변화시킬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 “교회답다!”라는 평가를 받아야하며, “교회가 세상을 이끈다!”라는 평가를 받아야 다시금 한국교회가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제시하는 한국교회 미래 해법의 핵심이다.필자의 말을 나는 적극 동의한다. 나는 기독교인 자신의 행동거지를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못하면 세상과 사람들은 “예수가 그렇게 하니?” 이런 비꼬는 말로 손가락질하며 비판한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 앞에서 더욱 올바르게 본지를 훼손하지 않고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단과 사이비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러한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려울수록 지켜나가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며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으로 살아가그리고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변증에 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많은 것들을 놓고 진리 전쟁의 시대가 올 것이다. 현재에도 크게 이슈가 되는 이단, 사이비들이 마치 자기들이 진리인 것처럼 외치는데, 몇몇 교회들은 그것들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해내지 못해서 이단, 사이비 신자들에게 교회를 빼앗기는 등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거짓에 대해 명쾌하게 말할 수 있을뿐더러 진리를 굳게 외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타협해서는 안 되며, 보다 더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하며, 어떠한 공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교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지금은 나왔지만 한 때, 내 친구도 이단에 빠진 친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 친구도 부끄러웠지만 나에게 용기를 내어서 말해준 이야기이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사례가 떠올라 적어보았다. 이 친구의 신앙은 교회 성도들이 다 인정해줄 만큼 신실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빠질 정도면 이단들은 되게 교묘하다고 생각된다. 친구는 기차를 타고 천안까지 학교를 통학하는 친구이다. 그래서 늘 기차를 타고 통학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특징이 기차를 타고 갈 때 성경을 읽던지, 책을 읽든지 둘 중에 하나를 읽는데, 그런데 그날은 친구가 성경을 읽으면서 갈 때의 일이다. 친구는 늘 해왔던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성경을 읽으면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한 중년여성이 앉아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00교회 다니는 집사이고, 000청년과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000청년은 내 친구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 내 친구는 의심하지 않고 그 중년 여성과 신앙의 얘기를 했다. 내 친구가 말하기를 그 때 한참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던 때여서 그런 마음이 더 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중년의 여성이 그럼 같이 성경공부를 제안했는데, 내 친구는 “성경공부를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자 그 여성이 당연한거 아니냐면서 추천하. 내 친구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 동안은 신앙의 슬럼프가 왔지만 그래도 지금은 잘 이겨내어서 열심히 성실하게 봉사하는 성도로 다시 회복되게 되었다. 이처럼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이 너무나도 교묘하게 신실한 내 친구를 비롯한 성도들을 속임수에 넘어가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을 과연 “넘어진 자들의 잘못, 내 친구의 잘못으로만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앞으로 한국교회의 사역자로써 이런 문제들을 내 친구의 문제, 성도들의 문제라고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아니 그렇지 않다. 이러한 책임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생각되어지며 거북하지만 각성하는 글을 어렵게 써본다. 솔직히 나조차 ‘기독교교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단순히 딱딱하고 지루한 것 이라고만 생각되어 알려고 하지 않았고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역자들도 “성도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해?”, “교리를 말하면 지루해해~”식의 생각을 가지고 교리교육을 확실히 하지 안 해 와서 신천지의 허술한 교리에서 우리 성도들이 넘어져서 다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자의 입자에 서있는 나조차도 이런 면에서 진리를 외치기보다는 피하는 면이 더 크다. 나도 주일날에 소년부 교사로 섬기지만 아이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설명할 때에 “아이들이 이런 것 까지 알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임할 때가 많다. 나부터 회개하며, 하나님께 올바로 서야한다고 생각된다. 많은 교육자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성도의 교육을 담당하는 자들이 더 앞서서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흔들리지 않는 교리를 갖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를 알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언젠가부터 회중과 성도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해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듣기 거북한 말을 강단에서 선포할 때 들고 일어나는 성도들이 많아서 복음의 진리를 외치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많은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렇게 입으로 벌어먹고 산다고, 흔히 말하는 ‘립서비스(?)’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