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로 보는 인공지능의 진화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 mind Challenge match)인 알파고 대 이세돌의 대결이 하루 한 차례의 대국으로 총 5회에 걸쳐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최고의 인간 실력자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으며, 최종 결과는 4승 1패로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승리하였다. 예상을 빗나간 결과에 언론은 인공지능 발전의 결과물인 알파고에 폭발적인 관심을 기울였다.1946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발명된 이후 계산에서부터 시작해서 논리, 사고, 자각 등 실제 지능과 같은 인공적으로 만든 인공지능의 발전이 거듭됐다. 컴퓨터와 사람이 최초로 대결을 펼친 것은 1967년, 철학자 ‘드레퓌스’와 체스 프로그램 ‘맥핵’이며, 간의 대결에서 최초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게 되었다. 단순한 승리에 그치지 않고 1997년 IBM 슈퍼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체스 프로그램 ‘딥 블루’가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당당히 물리쳤다. 하지만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보다는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 용량이 커짐으로써 얻은 하드웨어의 승리였다.바둑은 두 명의 대국자가 361개의 교차점에서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 가며 놓는 전략 게임으로, 규칙은 간단하지만, 바둑 경기가 전개되는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체스는 한 경기에서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를 약{} ^{10 ^{120}}으로 계산하지만, 바둑의 경우{} ^{250 ^{150}}에 달한다. 즉, 어떤 경우든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더 많은 조합과 배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는 “바둑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기 위해선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보도했다.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기울였지만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했고, 마침내 알파고의 등장으로 드디어 그 진가를 보여주게 되었다. 구글 연구팀의 과학잡지 에 의하면 알파고의 가장 큰 특징은 딥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을 이용해 사람처럼 스스로 바둑을 학습하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려면 ‘인공신경망’을 가져야 하는데,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2개의 기본신경망을 가지고 있다. 정책망이 다음번 돌을 놓을 여러 가지 경우를 제시하면, 가치망은 그중 가장 적합할 하나의 예측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글 연구진들이 방대한 바둑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알파고의 정책망에 3천만 개의 위치 정보를 입력하고 그 가치망을 얻어내는 반복훈련을 함으로써 알파고는 57%의 확률로 사람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되었다. 이 같은 학습을 계속해서 거듭한 후, 이세돌과의 대결과 같은 실전 대결을 통해 습득한 데이터를 스스로 가다듬는 강화학습으로 정책망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과거 여성의 지위가 정치의 가부장적 속성에 미친 영향-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목차]1. 서론2. 과거 여성의 지위1)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여성 지위2) 여성들의 희망을 담은 여성 소설3. 여성들의 활약 ? 3.1 운동4. 정치 권력의 가부장적 속성1) 여성의 관점이 취약한 여성 정책 ? 저출산 정책5. 결론1. 서론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한 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양성평등의 발돋움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중 정치 권력의 영역은 남성의 영역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영향은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으로부터 계속되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옆에서 열심히 그들을 보좌하는 집 속 부녀자의 역할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여성들의 역할이 항상 유교가 말하는 것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과거 고려 시대 또한 여성의 지위가 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등했었다.따라서 과거 고려 시대의 여성의 지위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유교관의 투입으로 변화한 여성의 지위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역할과 다르게 정치적 영역, 나라를 생각하는 것에서의 마음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같다는 것을 여성들의 3.1운동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치 권력의 가부장적 속성이 사회에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저출산 정책을 사례로 설명할 것이다.2. 과거 여성의 지위1)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여성 지위많은 사람이 과거의 여성들은 항상 남성보다 아래에 존재했고, 여성의 동등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고려 시대의 여성들은 신체적 조건의 차이에서 여성의 역할이 규정되었을 뿐, 남성들에 뒤처지지 않았던 영역이 존재했다.고려의 여성들은 활동 면에서 더 자유로웠고 제사나 재산 상속 면에서도 남성과 차별이 없었다. 결혼 뒤에도 친정 부모를 모실 수 있었으며, 제사까지 지낼 수 있었다. 재혼도 가능했다. 남아선호 사상도 조선에 비해 약했으며, 남녀차별도 상대적으로 덜했다 할 수 있다. 고려 사회는 대를 잇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가외인으로 상속과 제사에서 배제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재혼을 못 하고, 나아가서는 따라 죽어 열녀가 되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성들보다 확실히 크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이후 조선 시대 전기의 여성들 생활은 자유로웠던 고려 시대의 유풍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가문 내 지위와 사회적 지위는 조선사회의 유교화와 더불어, 그리고 그런 경향이 한층 더 심화 되는 후기로 가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부계 남성 중심 사회로 변해갔다. 족보에서도 외손을 기재하지 않게 되고, 아들을 먼저 적는 방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이후 그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가 이르러서는 재가 금지 영역이 양반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평민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점차 수절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성의 정조 강조와 재가 금지는 법적인, 사회적인 제재를 넘어서 심리적인 제재까지 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법적으로는 갑오경장 때 사라졌다. 하지만 그 관성이 바로 사라질 수는 없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마저 그런 것처럼 규정하게 되었다.이처럼 조선 설립에서 유교, 성리학의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여성을 하나의 소유물, 가정을 지켜야 하는 존재, 단지 남성을 보필해야 하는 존재로만 한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유교는 여성에게 매우 억압적인 기능을 했다.2) 여성들의 희망을 담은 여성 소설조선 전기에는 여성 교육이 강조되었고, 상층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 교육서의 편찬과 보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을 우리는 가부장적 이념교육서나 여성을 가정 내적 존재로 규정하기 위한 성차별 교육서로 인식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규훈 문학에는 적지 않은 서사의 양상이 들어있고, 이러한 서사를 통해 여성의 능력이 드러나고,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선도하도록 의도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곧 규훈 문학이 여성의 정신과 활동을 규제하고 편파적인 이념을 주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들의 분출되지 못한 욕망과 그 서사 형식이 자리하고 있었다.이러한 영향으로 여성들의 불만을 표현하고 표출한 여러 영웅소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수용적 자세로 남성들의 정치적 역할을 바라보기만 했던 시절, 사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실패에 반감을 보이고 자신들만의 생각, 관점으로 여성들도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돌려서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기만족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여성들의 활약 ? 3.1 운동여성들은 수동적인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큰 반전을 가져다준 계기가 바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이다. 17세기 중엽의 임진왜란에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중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왜군을 격파하다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들은 특수층 여성을 제외하고는 왜군에게 몸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깊숙이 숨거나, 자결로서 저항하였다. 순결을 위해 몸을 사른 여성들을 우리는 열녀라고 하여 그 행위와 정신을 기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볼 때 열녀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적 열녀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여성 의지를 키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남자 중심의 지배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여성들에게 죽음을 강요하였던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남자들의 철저한 유린이고, 횡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성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유교적 여성관을 벗어나는 적극적 여성의식을 갖게 된 것이 바로 3.11운동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면을 볼 때 3.1운동은 한국 여성의 절대 해방을 스스로 가꾸어낸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또한, 3.1운동을 통하여 국내외의 한국인들에게는 민주 공화정 의식이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결과 4월에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할 수 있게 되었고, 일제의 억압을 받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었다. 최초의 민주 공화정부에서 발표한 임시헌장에는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평등함을 명분으로 밝히었다. 3.1 운동에서의 가장 큰 여성의 역할은 여성의 용기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3.1운동을 더욱 불붙게 하였고, 우리 사회가 민족적인 여성 지도자를 요구,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는 온 민족이 절대 평등한 민주 국민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의를 주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결국 여성들은 20세기 초 유교적인 여성관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고, 국민의식을 가진 여성상이 정립하기 시작하였다.4. 정치 권력의 가부장적 속성1) 여성의 관점이 취약한 여성 정책 ? 저출산 정책현재 대한민국의 남녀평등이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정치에서의 가부장적 속성은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실상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0~19%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가져오는 치명적인 단점을 저출산 정책을 비롯한 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이명박 정부 때 제시된 ?기본계획(보완판)?에서 정부는 ‘여성 친화적’이거나 ‘성적으로 평등한’ 환경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양성 평등한 고용구조”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 홍보 부족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국민 인식 개선 분야의 과제로 노동계 · 경제계 · 종교계 ·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각 부문과의 정책공동체를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는 방안으로 출산 및 보육 수당 지급과 보육 바우처제도 도입, 정관수술에 대한 혜택 중단 등이 검토되기도 했다. 또 저출산 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언론, 시민사회, 노동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사회적 협력의 어느 부분에서도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은 호명되지 않았다.또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져 온 저출산 관련 논의의 대부분은 여성의 고학력화와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출산에 대한 여성의 책임과 모성 역할의 강조, 양육의 전담자는 여성이라는 관념, 경제 불황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남성의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사고 또한 뒤섞여 있다. 그리고 정부의 낙태 방지를 위한 규제 정책을 보면, 2010년 2월 정부는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인공임신중절을 막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처벌하고,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 본부” (2009년 6월 출범) 등을 통해 종교계를 중심으로 낙태 방지와 생명존중 운동, 육아 지원시설 확대, 결혼예비학교 운영 등 행복한 가정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개입을 통해 출산율 하락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계를 동원하여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고 낙태 반대를 위한 여론을 형성하게 하는데, 이 역시 당사자인 여성을 배제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여성이 부제한 정책 결정에는 반 여성성과 여성을 제외한 사회의 협력 유도, 여성의 성 역할을 더더욱 강화한다는 의견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한 저출산 대책이 여성의 관점에 근거하지 않음으로써 정책적 효과성도 제한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제출일 : 2020년 6월 26일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게 된 계기는 학교 교양수업을 통해서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발매되자마자 대한민국 사회에 큰 논란을 안겨주었다. 과거보다 책의 매출이 뛰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 소설 매출과 관련해 큰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 때문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혼란이 사그라지기 전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실사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주연 배우로 대한민국의 유명한 배우인 정유미와 공유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나는 교양수업을 통해서 이 책을 처음 읽긴 했지만, 유튜브에서나 인터넷 블로그 논평으로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공감한다는 내용을 밝히는 의견들을 접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대한민국의 남녀차별을 극대화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책을 집필하였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읽어본 후에는 그것이 나의 차별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전체적인 감정은 부정적이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긍정적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소설 속 김지영의 나이 또래의 여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경험들을 순차적으로 서술해 나간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읽어나가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소설 속 김지영 씨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반면 안타까운 마음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남동생과 그녀를 대놓고 차별하는 할머니의 모습, 고등학생 시절 스토킹을 당해 위험한 상황에 놓일뻔한 것, 여성으로서 취업을 준비할 때의 어려움과 면접에서 당했던 성희롱적인 발언,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경력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며, 나는 김지영의 세대와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의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것이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그녀를 돕기 위해 옆에서 연대하는 여성들이 존재했다. 급식 먹는 순서를 바꾸자고 건의한 친구, 남학생에게 스토킹을 당했을 때 도와준 여성, 직장 내 그녀의 상사였던 김은실 팀장 등이 그 예이다. 이 여성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불이익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또다시 자신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김지영 씨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 나오는 목소리를 통해서도 그녀가 하기 힘든 말을 시원하게 말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은 소설 속 김지영이 겪는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소리 내도 변함없는 악순환에 입을 닫는다. 나는 작가가 소설 속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독자들에게 현재 우리가 겪는 부당한 상황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여성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연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해석했다.책을 읽고 나서 좋았던 점은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소설들의 주인공은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이름을 특이하게 설정하거나, 소설의 기승전결을 극대화하고 흥미를 돋우기 위해 현재 주인공이 처해 있는 현실을 매우 부자이거나,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등 극단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우리나라의 한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익숙하지만, 평소에 접했던 소설들과는 차별점을 두었다. 우리는 현재 개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준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체제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차별화되는 ‘나’로서의 삶을 찾기가 힘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소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재 시대에는 이러한 삶을 사는 여성들이 드물다고 말하며, 여성의 차별을 단편적으로 극대화해서 과장하고, 남성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저급 소설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김지영 씨의 삶이 극단적인 여성의 삶을 담은 모습이고, 여성들을 옹호하외하고는 그녀 어머니의 삶에서 발전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과연 그녀의 딸 정지원 양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그리고 나는 이 소설이 여성이 결혼한 후 한 가정을 이루고, 엄마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얼마나 희생하고 내린 결정인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소설은 대한민국 사회가 여성의 임신과 관련해 한 걸음도 진보적인 생각의 발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페이지 133쪽에 아이를 낳기를 재촉하는 가족들의 모습, 페이지 143쪽에 아이 계획을 세우면서 퇴사를 결정하는 모습,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 모습, 그리고 정신과 의사도 자신 아내의 모습을 김지영 씨의 사연을 통해 공감하면서도 결국 임신한 동료 상담사의 퇴사에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자신의 아내와 다른 여성을 분리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임신을 기점으로 정말 많은 변화를 겪는다. 한국에서는 어머니는 위대하다며 칭송하고, 모성애라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성의 모성애는 모든 여성의 마음에 탑재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육아하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심과 피로, 혼란스러움을 매일 겪는다. 또한, 아이를 출산한 이후부터 여성들은 자신이 직장을 다니고 학교에 다니면서 쌓아왔던 사회적 연결망이 끊어진 것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집 속에서만 갇혀 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맘충’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현실에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견고하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정신과 의사의 생각을 통해서도 우리나라의 일부 남성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수업 시간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의 처지에서 보면 어 이 의견을 듣고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사업장의 이익’이라는 근거로 여성의 임신 이후의 경력 단절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국, 나는 우리 사회의 고용주들이 대부분 출산을 ‘성의 다름에서 오는 성적 역할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여성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여긴다고 해석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1명이 채 안 되며, 이 수치마저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 수치를 보고도 여성의 임신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고 엄마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여성도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기는커녕, 결혼하고도 임신을 하지 않는 가정들을 이기적이라고 평가하는 논평들을 기사 마지막 줄에, 뉴스 보도 마지막 논평에 남기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고용률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고,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머니 세대에서부터 발생했던 여성의 고용문제가 자신의 세대에도 해결되지 않고 미래의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은데, 자신이 희생할 이유는 무엇이며 자식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 또한 없을 것이다.이 소설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선정해보자면, 김지영 씨가 고등학교 시절 스토킹을 당한 사건과 김지영 씨의 언니 김은영 씨가 자신의 꿈인 PD와 관련된 학과를 포기하고 교대 지원을 선택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두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내가 겪은 경험과 관련이 깊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남자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화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가 나를 나의 또래로 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매우 두려운 경험이었다. 그 남자가 으슥한 곳에서 나를 빠르게 뒤따라와 나를 추월해 멈추게 한 후 조용한 목소리로 나이를 물었을 때, 내가 그를 뿌리치고 빠르게 뛰어가서 다른 일을 겪지는 않았지으나, 부모님은 밤늦게 다닌 나의 탓을 하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나이에 맞는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꾸짖었다. 그때는 이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내가 늦게 다녔고, 그런 상황에 나 스스로 놓이게 자초한 나의 탓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그 사건을 회상했을 때 나의 잘못은 없고, 그 행위를 스스로 자발적으로 한 그 남성에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의 반응을 포함한 미디어와 주변의 반응을 통해서 아직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 여성에게 위로의 말과 제대로 된 대처의 도움을 주려고 하지는 않고 그 상황에 놓이게 자초한 여성에게서 원인을 찾고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반응에 놀랐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거나 으슥한 골목에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뻔한 상황을 겪어봤고, 이것을 겪는 것의 원인이 불분명한 것이 분명한데도 아직 사회에서 약자 즉, 피해자에 놓인 사람에게 보이는 반응은 매우 차갑다. 또한, 자신의 진정한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교대 지원을 하는 김은영 씨의 모습을 통해 현재 대입의 현황에서도 똑같이 보이는 여학생들의 교대 지원 입결의 상승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머니가 대학을 지원했을 당시 교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결혼 이후의 미래에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보다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교대의 등록금이 매우 저렴하기도 하고, 현재처럼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가 되는 제도가 아닌 교대를 입학해 졸업하기만 하면 바로 초등교사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여학생들이 더욱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의도적으로 교대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교대의 입결은 SKY 대학을 웃돌고 있는 수준이다. SKY 대학을 포기하고 교대를 진학하고 있는 학생들 또한 매우 많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로 교사가 되고 싶어서 지원하는 학생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를 서로 더 가깝게 만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추진력 있게 불어 넣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부상과 민주주의의 놀라운 침식을 연구하거나 관찰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인종과 종교를 둘러싼 폭력적 민주주의, 권위주의적 정치지도자의 부상, 중요 이슈에 관한 방해 및 기관과 전문가에 대한 신뢰 약화 등 일종의 불협화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페이스북은 이러한 문제를 내부에서 다스리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졌고, 세계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국수주의적, 반계몽주의적 운동에 맞닥뜨리게 되어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있다.페이스북의 구조적 지배는 여러 위험성을 띤다. 첫 번째는 오보나 거짓 정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매우 쉽게 확산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페이스북이 기쁨이건 분노건 간에, 감정을 강타하는 콘텐츠를 키워 준다는 점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 항목을 대놓고 띄워 주도록 만들어졌다. 셋째로 ‘필터 버블’이다. 이것은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말하면 이 회사들이 사용자에게 그런 것들을 더 많이 제공하는 식으로 보상을 내려 준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시야를 좁게 한다. 그리고 결국 진실의 공유에 서로 관여할 수 없게 한다.페이스북은 유도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숙의에는 끔찍하다. 페이스북은 다른 미디어 기업, 미디어 산업, 미디어 기관들에 대해 파괴적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대중의 건전한 숙의를 지원하는 그들의 능력까지도 악화시킨다. 결국, 민주공화국이 의존하는 뉴스와 정보의 원천을 왜곡한다. 점점 악화되는 상황들로 인해 2016년 말부터 페이스북은 선동, 오보, 일반적인 쓰레기 정보의 확산을 제한하는 다양한 시도와 개입 방안을 제시하고 기사의 출처와 내용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올바르게 처신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미국의 45대 대통령의 취임 며칠 후, 조지 오웰의 1984의 판매가 갑자기 크게 늘었다. 관심의 촉발은 백악관 대변인의 취임 선서를 할 때 환호한 군중의 규모에 대해서 엄청나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인들은 그 순간에 오웰이 그린 전체주의 국가를 즉각 떠올렸다. 진실과 신뢰의 침식은 점점 극심해지고 권위주의 정부가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궤변은 현재의 지배적인 문화적 관행이 됐다. 오래된 기관들에 대한 신뢰가 침식돼 가는데도 불구하고,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힘들의 내부에서 커 가는 신뢰의 근원은 두 가지가 있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체들이 제공하는 뉴스에 비해 구글 검색 결과의 링크를 훨씬 믿는다. 그리고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자신의 뉴스 피드를 통해 올라오는 정보의 진실성을 내용의 출처보다는 누가 글을 올렸느냐에 따라 판단한다.페이스북이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나쁜 것도 아니다. 사실 그것은 개개인에게는 이득을 준다. 페이스북은 친구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 지리적으로 고립된 사람이라도 공동체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행복한 공동체의 사진, 아기들과 강아지들이 인종주의와 테러리즘의 호소, 개인적인 재정지원과 의료지원 호소,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찬반 광고들과 함께 똑같은 칸에 나오게 한다.이 책의 저자는 마크 저커버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저커버그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미묘한 차이나 복잡성, 비상상황, 심지어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강렬한 도덕적 열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 상호 간, 그리고 지구에서 벌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일에 대한 역사적 감각이 떨어져 있다. 저커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미디어 기술 현상을 구축하는 데 평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나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저자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 안에 있는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을 하는 것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이러한 결론에 다다른다. 페이스북은 우리를 깊숙하고 오랜 시간 동안 페이스북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의 대가로 우리 주목을 붙잡아 둔다. 우리는 기꺼이, 상당히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페이스북은 우리를 조종한다. 페이스북 설계의 모든 측면은, 페이스북 뉴스 피드를 채우는 이미지와 감정의 흐름으로 우리를 다시 끌어가도록 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행복 또는 만족도 측정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복’연구는 헛된 일이라는 점이다. 행복의 개념이 측정할 수 있고 유용하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계량화 및 공리주의 이념에 지배하에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해 인간의 기분을 계량화하려고 노력한다. 페이스북은 심지어 우리의 뉴스 피드에 나타나는 선택들을 통해 우리의 기분을 다소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학술 연구를 지원했다.페이스북은 한 봉지의 칩처럼 우리를 끌어들인다. 낮은 수준의 기쁨을 빈번히 제공한다. 우리는 그때 페이스북에 피드백을 제공하게 된다. 우리는 매번 상호작용을 통해 페이스북을 아주 조금씩 바꾼다. 식품 생산업자들은 우리가 다시 돌아오도록, 심지어는 그 식품 맛이 썩 대단치 않은 경우에도 돌아오도록, 소금, 설탕, 지방의 비율을 연구하고 통달해서 잘 다듬어 놓고 있다. 페이스북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를 습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카지노와 슬롯머신, 포테이토칩처럼, 페이스북은 사람이 계속 몰두하게 하고, 몰두한 시간과 강도를 잊어버리도록, 또 혼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카지노와 도박 기계의 강압적 전술과 치명적 효과를 휴대폰과 페이스북의 그것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물론 완전히 공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카지노와 도박 기계를 불러내는 것은 적절하다. 왜냐하면, 비디오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동되는 도박 기계와 함께 카지노의 세계적인 확산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바로 또 다른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들이 우리의 손과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시간, 우리의 돈을 점령하기 위해 찾아온다.페이스북 뉴스 피드가 사진 롤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콘텐츠가 피드 위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가 있는 이미지와 설명에 끌려 가사를 클릭한다면, 우리는 통찰력, 지식, 감상,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우리가 뉴스 피드에서 제공하는 어떤 아이템도 클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이미지의 흐름만 경험할 뿐이다. 그 이미지들은 긍정적,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그것들은 댓글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자신의 페이지에 그 콘텐츠를 공유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페이스북이 선정한 일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그 콘텐츠를 방송해 주는 셈이다. 이미지들 속에서 스크롤을 하다 보면 콘텐츠와 깊은 상호작용을 하는 길이 막힌다. 이것의 예시는 노르웨이 신문 아프텐포스텐의 포스팅을 통해 알 수 있다. 네이팜탄 세례를 받은 베트남 소녀가 벌거벗은 채 고통 속에 울면서 뛰어가는 장면은 단순히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에서 삭제당했다.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모두가 감시 요원의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일단 올라가 버리면 동료 감시 사진 하나하나가 거대한 공동 감시망의 일부가 된다. 사진에는 촬영 시간과 장소를 보여 주는 메타데이터 정보가 붙어 있다. 그래서 사진 찍힌 사람들의 이름을 사진에 집어넣어 그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과 뭘 원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카메라는 가만히 앉아서 지속적인 공동 감시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부분 핸드폰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에 연결돼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한다. 휴대폰에 있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앱들은 폰 소지자와 정보를 함께 모은다. 이것이 감시체계이다. 그 힘의 핵심은 연관성이다. 만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거기서 나오는 세 친구를 태그하면, 페이스북은 그들에 관해 긁어모으는 정보들을 연결한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그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어떤 사이인지, 상호 인식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심지어는 상대적인 소득과 소비 습관까지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추정해 낸다. 이 모든 것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하려 하지 않거나, 억압적인 국가권력이 이런 정보의 지배권을 얻지 않는 한에는 유해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황이 모두 벌어지고 있다. 동료 감시는 공동 감시망, 국가 감시망과 연결된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모으고 퍼뜨리는 것을 쉽게 해 준다. 페이스북은 글보다는 사진을 선호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취향에 따라 분류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타락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페이스북 그룹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것이 비밀 사회조직 노릇을 한다.
영화 슈퍼맨 각성제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및 영화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속 각성제 애더럴과 같은 각종 약에 의존하는 것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애더럴이라는 약을 먹으면 40분 뒤면 그 효과가 나타난다. 그것을 복용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심장 박동 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하고 그 속에서 행복이 밀려 들어오며, 집중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이 영화 속에서는 애더럴을 복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화가 담겨있다.애더럴을 복용하고 있는 한 학생은 자신이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님께서 금고를 하나 구매해주겠다고 권유했다. 애더럴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은 애더럴이 학생들 사이에서 금덩이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애더럴은 정신과 의사와의 오랜 면담 후 처방전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약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그것을 정가의 몇 배의 돈을 주고 거래를 하기도 한다. 학생은 미국의 대학생들은 애더럴과 인스타그램이 완벽한 학생을 위한 도구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한 미식축구 선수는 다리의 추간판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몸이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합에 나가서 뛸 수 있냐가 문제였다.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우울함에 빠져있던 그때, 팀원 한 명이 애더럴을 권했고, 그걸 먹어봤더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온몸에서 에너지가 솟구쳤고 몸과 정신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또한, 경기를 뛸 때가 아니더라도 회의와 경기 분석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도대체 애더럴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이 이것에 열광하는 것일까?각성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이다(첫 번째 사진 : 암페타민의 구조식, 두 번째 사진 : 메틸페니데이트의 구조식). 메틸페니데이트는 리탈린의 주성분이다. 암페타민은 애더럴의 주성분이다. 즉, 애더럴은 각성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각성제는 모두 뇌의 카테콜아민 시스템에 영향을 끼친다. 카테콜아민 시스템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르에피네프린인데 주로 아드레날린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도파민이다. 이런 약물을 복용하면 카테콜아민 분비량이 늘어나거나 재흡수가 억제된다.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육체적으로 혹독한 환경에서 고통을 더 잘 견딜 수도 있다.애더럴은 ADHD 치료제이다. ADHD가 있는 사람은 집중하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 자신의 일과에 명백한 구분 선이 없기 때문이다. ADHD 치료제는 결국 소량의 메스암페타민이다. 흔히 필로폰으로 알고 있는 메스암페타민과 애더럴의 주원료인 암페타민을 화학적으로 비교해보면 두 약물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메스암페타민에 메틸이 추가됐다는 것뿐이다. 메스암페타민은 미국에서 합법적인 처방용 약물이다. 이것은 애더럴과 마찬가지로 2급 규제 약물이다. 필로폰 제조실을 생각하면 미국 교외의 온갖 나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을 떠올린다. 비슷한 부작용을 가진 암페타민과 대조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다큐멘터리 영화 속에서는 부작용과 관련된 문제는 짧게 다루어졌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더 조사해보았다. 애더럴의 부작용은 불안장애, 편집증 등의 정신적 이상,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 증가, 식욕 감퇴, 혈압상승, 구강 건조, 안구 건조, 잦은 소변, 혈관수축, 불면증, 피로, 그리고 발기부전과 성욕감퇴, 지속발기증 등이 있다. 이 중 안구건조증, 입안이 마름(구강 상태 악화), 피부 건조, 잦은 소변 등의 부작용은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사용자에게 찾아오며 발기부전, 성욕감퇴와 같은 성적 부작용의 완벽한 치료 기간은 개인마다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부작용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부작용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집중력을 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약을 찾게 되는 것을 비판했다.약물 복용에 관한 문제는 과거 1900년대부터 계속되었다. 대학가의 암페타민 남용에 관한 첫 기사가 1937년 ‘타임’지에 실렸다. 초기엔 이것은 하나의 ‘활력제’라고 불렸다. 생산적이고 근면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이것을 그들에게로 인도했다. 암페타민의 시작은 고든 앨리스라는 젊은 생화학자가 알레르기약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다가 1929년에 오늘날 암페타민이라고 하는 약물을 합성해낸다. 그리고 소금 50mg과 함께 직접 주사해봤다. 연구 일지 내용이 참 흥미롭다. 몇 분 내에 아주 행복한 기분이 느껴졌고, 1시간 후에는 행복감과 두근거림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처음에 이것은 의료용으로 생산될 필요가 있는 화학 합성물이었다. 코막힘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암페타민은 곧 처방용 약물로 등록되었다. 그리고 1930년에 중반, 제약 회사에서 벤제드린이란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가루를 들이마시면 부비강이 깨끗해졌다. 문제는 약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누구나 재즈 공연을 할 만큼 신이 나게 했다. 어찌 보면 마약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 많은 영화에서 이것과 관련된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세계대전 종전 후 벤제드린은 일반적인 항우울제로 쓰였다. 체중 조절용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또한, 월경 전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생리통 완화 효과도 실험했다. 여성들만 직원으로 있는 공장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여성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에 생리통과 관련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약을 요구했다고 한다. 비틀스의 ‘닥터 로버트’ 라는 곡은 록스타나 유명인이 원하는 대로 암페타민을 처방해준 뉴욕의 의사에 관한 노래이다. 1960년대가 호황기라고 불린 이유가 있다. 1960년대 초반 앤디 워홀은 거의 항상 암페타민을 먹었고 그 주변 사람이 모두 그랬다. 많은 예술가가 암페타민에 의존해 창작을 해왔다는 사실을 여기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