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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가?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가?21711250 정준민1969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후 ‘아시아인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를 제창하며 닉슨 독트린을 실시하였고, 해빙기가 찾아오면서 미국과 중국 간 수교를 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한 마오쩌둥 사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주장하며 덩샤오핑이 집권하게 되었고,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시장 경제를 채택하여 중국은 일당 독재(party-state system)아래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며 연 10% 정도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고 17년이 지났지만 아직 중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며,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국방의 현대화를 추진하며 2016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군사력 순위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여러 방면에서 중국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적어도 21세기에는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지는 못 할 것이다.그 근거로는 첫째, 미국은 세계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지역의 특성에 따라 메뉴를 조금씩 변형하여 그 나라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고 있는 맥도날드나, icloud와 같은 차별화된 프로그램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애플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미국의 빌보드 차트(Billboard chart)에 등록된 노래들의 경우 미국 전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노래 차트 순위권에 등록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물론 중국 같은 경우에도 저렴한 가격과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샤오미나, 세계 최대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인 알리바바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 당국의 검열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으며(실제로 중국의 포털사이트인 baidu에 천안문 사건을 검색하면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이런 폐쇄적인 국가 안에서 중국 국민들 개개인의 창의력을 발현시키지 못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국 정부 당국이 규제를 좀 더 느슨하게 하지 않는 이상은 soft power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놓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둘째, 중국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인구 구성을 살펴보면, 한족의 비율이 90%를 차지하며, 나머지 10%는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까지도 ‘하나의 중국’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일 전쟁 이후 장제스가 대만으로 넘어가 중화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중국은 대만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고, 티베트 고원을 중심으로 그 근방에 퍼져 있는 티베트 족 같은 경우 아직까지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구슬리고 대화로 타협하기는커녕 무력으로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장-위구르 자치구 같은 경우에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풍부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독립을 인정하게 된다면 중국의 영토가 1/6이나 잃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위구르 민족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소수민족들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문제 때문에 대립하고 있으며 중국이 1억 명 남짓의 소수민족들을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다면 이미 여러 인종들이 협력하고 문화 차이를 이해하며 발전해나가고 있는 미국과 달리, 자국 인구 또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중국은 더 높은 차원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셋째. 아직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미국인들과 같은 선진화된 국민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나의 국가가 발전하려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국민성’이다. 미국과 같은 경우, 영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이며 “민족의 용광로”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다. 이러한 나라의 특성에 기반하여 미국은 많은 인종들을 표용하였으며 미국인들의 인종에 대한 인식도 선진화되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종 간의 화합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결국 다양한 인종들 안에서 미국을 이끌 창의적인 인재들이 배출된 것을 계기로 미국이라는 국가는 발전할 수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같은 경우, 자신들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중국인들은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 2020.06.04| 2페이지| 1,0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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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과 명군 참전을 통해 본 국제관계
    임진왜란과 명군 참전을 통해 본 국제관계정치외교학과 21711250 정준민Ⅰ. 개관1592년,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이 명을 치러 가는 길을 열라는 구실(정명향도)로 조선을 침략했다. 전쟁을 방어하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던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였고, 결국 평양성이 함락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와중에 조선은 명에 원군을 요청하게 된다.명은 그들을 받드는 국가인 조선을 구하겠다는 동아시아 종주국으로서의 명분과, 명의 심장인 베이징을 방어하는 요동 지역, 그리고 요동 지역을 또 방어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인 조선에 대한 왜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실리적 명분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명분들 때문에 명은 왜의 조선 침략에 대한 참전을 선언하게 된다.당시 왜는 포르투갈 선교사로부터 받은 조총이라는 신식 무기가 있었고, 100년에 걸친 전국(戰國)시대를 통해 실제 전쟁 경험도 풍부하였다. 이에 반해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아무런 의미 없는 당파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청탁과 뇌물 등으로 이루어지는 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정치적인 혼란과 지배 세력의 부패는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는 외부의 정세에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신식 무기와 풍부한 전쟁 경험을 앞세운 일본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평양을 함락시키게 되고, 조선이 믿었던 명나라의 육군마저 철저한 준비가 없이 온 탓에 평양성 전투에서 왜군에 패배하고 만다. 일본의 강함을 인식한 명은 5개월 동안 휴전하자는 강화 협상에 들어가게 되며, 이 기간 동안 서양식 화포 등을 조선에 배치하게 된다.결국 철저한 준비를 한 명의 군대는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전세가 역전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지나친 자만 탓일까, 화포 없이 오직 기마병만으로 벽제관에서 일본군을 맞이하다 참패에 이르게 된다. 벽제관 전투에서의 참패 이후로 명의 군대는 일본과의 전투를 거부하게 된다.사실, 명은 그들 자신의 실리를 모두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조선을 도와주었고, 승리까지 했으니 그들을 구하겠다는 종주국으로서의 명분을 이루어냈다. 또한 평양성 전투 승리 후 일본을 서울 그 이남 지역으로 몰아내기도 하였다. 전략적 요충지인 요동을 지켜낸 것이다. 이로써 실리적인 명분도 달성하게 된 것이다. 두 가지의 명분을 달성한 명나라는 더 이상의 인적·물적 피해를 감당하기 싫었다.따라서 당시 가장 중요했던 육군을 가지지 못해 자기 방어 능력이 없었던 조선을 배제한 일본과의 강화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6년간에 걸친 이 전쟁은 결국 조선에 대한 일본군의 철수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Ⅱ. 동아시아 종주국으로서의 명, 중화질서의 유지라는 명목적 명분은 그들 자신의 실리의 추구보다 큰 영향을 끼쳤는가?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여러 소국들이 중국을 섬기고, 중국은 그 반대로 소국들을 보살핀다는 중국중심주의, 즉 중화질서에 기반하여 흘러가게 된다. 왜에 의한 조선의 침략, 그리고 조선 국왕에 대한 명 황제의 측은지심과 그들의 속국을 돕겠다는 의지는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도 잘 드러난다.성지(聖旨)에 ‘왜적이 조선을 함몰시킴에 국왕이 도피하였으니, 나의 마음이 민망스럽고 애처롭다. 원병(援兵)을 벌써 파견하였고 또 사람을 차출하여 그 나라의 대신(大臣)에게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수호하고 각청의 병마(兵馬)를 힘껏 모아 성지(城池)를 굳게 지키고 험한 곳을 막아서 힘써 회복을 도모하도록 선유(宣諭)하였다. 어찌 앉아서 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명이 파병을 결정한 이 내용만 보게 된다면, 어느 대목에서도 “조선이 멸망하게 된다면 자국에 큰 피해가 올 것”이라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선에 원군을 요청한다는 실리적 명분 자체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실제로 명나라는 왜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요동으로 북진하기 전까지 3000명이라는 적은 숫자의 병력만 조선에 보냈다. 중화질서의 유지로 병력을 파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밖에 담지 못하는 병력의 숫자이다. 왜가 실제로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제서야 15만 명이라는 대군을 조선으로 파견하였다.앞에 개관에서 말했듯, 명나라에게 있어서 조선은 전략적인 완충지이기 때문이었다. 명도 이것을 알고 있었으며, 실리적 이유에서 조선의 청병 요청을 받아들였다.중원(中原)은 요동(遼東)이 견고한 것을 믿고 요동은 귀국이 번폐(藩蔽)임을 믿고 있으니, 순망치한(唇亡齒寒)의 형세인데 어찌 왜구가 날뛰어도 토벌하지 않겠으며, 귀국의 위급함을 보고 구하지 않겠습니까."“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에 빗대어, 조선은 입술이고 요동지방은 이빨이다. 따라서 조선이 왜에 넘어가게 된다면 요동마저도 함락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명나라도 ‘왜적이 명을 공격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였고, 명나라 입장에서도 조선에서 방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고 추측이 되었기 때문에 파병을 결정하였다.결국 중화질서의 유지라는 명목적 명분은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졌고, 실제로 중국 중심주의 사상으로 주변 약소국들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패권국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왜의 침략이 벌어졌을 때, “동아시아의 질서를 유지한다.” 는 실리가 없는, 허울뿐인 명분은 그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왜가 명의 영토 가까이까지 진격을 하자 자국의 영토 보호를 위해 대군 파병을 결정하였다. 결국 명나라도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Ⅲ. 임진왜란과 투키디데스의 함정필자는 임진왜란의 국제관계에 대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국이 기존 강대국에 대한 위협이 될 때, 두 국가 간 무력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이다.왜나라는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통일함으로써 국가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또한 조총으로 대표되는 선진화된 문물을 가지고 있던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와 교류함으로써 동아시아 3국 사이에서 신흥 강국으로 빠르게 발전해나가고 있었다.명나라의 경우, 오래 전부터 여러 약소국들과 황제-신하 관계를 맺는 기존의 패권국이었다. 중국 중심의 질서를 추구했고, 실제로 그 권위에 도전하는 국가가 없었던 사례를 통하여 자신이 동아시아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계속 지켜낼 수 있었다.이 질서는 1500년대 후반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왜나라는 명나라를 정벌한다는 이른바 “정명향도”라는 말로 기존 패권국인 명나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신흥 강국이 기존 패권국에 대한 도전 의지를 내비쳤고, 이는 두 나라 간의 무력 충돌을 암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Ⅳ. 임진왜란을 통해 본 후기 조선, 대한민국에게 주는 외교·정책적 교훈한국사에서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구분할 때는 양 난을 중심으로 나누곤 한다. 필자는 양 난 이후의 조선과 현재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동아시아 내에서의 지정학적인 상황이 유사하다고 본다.후기 조선의 경우,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던 중국과 빠르게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었던 일본 사이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나라였다. 현재 대한민국도 조선보다는 그 위상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중국과 일본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표출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변국들의 견제는 있어 왔다.그렇다면 임진왜란이 현재의 대한민국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자주적인 국방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는 왜나라가 침략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조선을 방어할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던 조선은 결국 명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이르렀다. 육군의 경우에는 명나라에 의존할 정도로 병력의 수가 적었다. 그로 인해 전시작전통제권은 쉽게 명나라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을 아예 배제하고 왜와 협상을 진행할 지경까지 이르렀다.현재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국방’의 자주성에 관해서는 많이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만 하더라도 미국에게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해야 하는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지금은 평시작전통제권은 반환받은 상태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전시작전통제권까지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을 정도의 자주적인 국방력을 강화하지 못하게 된다면 강대국들의 입김에 휘말리기 쉽다는 것을 임진왜란이라는 과거의 사례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2020.06.04| 4페이지| 1,000원| 조회(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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