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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고데모
    요약 [니고데모의 안경], IVP, 신국원, 2005서언 -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 니고데모의 안경니고데모는 안경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기 원했다면 말이다. 그것을 모른 채 그가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지식인 소리를 들었을 그가 그 다음 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보다 더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안목을 거듭나게 하는 복음의 안경이었다. 훗날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온 니고데모는 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나는 이 책에서 우리 주변에 있었던 니고데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의 니고데모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1970-80년대를 살았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 이후: 새로운 도전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하고 있는 이 시대에 기독교 세계관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는 시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다. 순종하는 방식이 변할 뿐이다. 그것은 당연히 변해야만 한다. 기독교 세계관 담론 역시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씨름하는 수고를 피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사리 세워진 세계관 운동의 귀한 전통이 죽은 전통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진정한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신앙이다. 굳은 전통은 산자의 죽은 신앙이 되고 만다.* 다시 기초로 돌아가자우리는 이런 상황일수록 비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이다. 즉 비전의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보았으나 실망한 이들이 많다. 생명력과 역동성을 잃은 운동은 늘 염증을 느끼게 하기 마련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진부한 상태에 빠졌다면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근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제1장 세계, 세계관 그리고 문화* 세상과 인생을 보는 창우리는 단계의 필요성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그 강좌의 주된 목표가 “칼빈주의가 전적으로 교리적인 교회 운동을 대표하고 있다는 그릇된 관념을 뿌리 뽑으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구속적 세계관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안목을 고쳐 주는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을 “자연인의 안목을 고치는 안경”이라 했다. 성경은 우리의 안력을 바로잡아 주는 삼중 렌즈로 된 특수 처방 안경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Look at) 책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보아야 할(Look though) 책, 즉 안경이다.기독교 세계관은 성경 계시의 초월적 눈높이에 따라 인간의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높은 안목이다. 성경이 펼쳐 보여주는 비전만이 인간 본성에 주어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망이다. 그것은 가장 높은 곳에서 세계와 역사를 조망한다. 그러므로 세계를 우리의 눈과 의식으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눈, 아니 마음이 죄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창조, 타락, 구속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쌍안경에 비유하곤 한다. 우선 둘 다 비전을 크게 향상시킨다는 점이 같다. 쌍안경이 볼록 렌즈와 프리즘과 오목 렌즈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비유하기 좋다. 기독교 세계관도 성경의 근본 진리인 창조, 타락, 구속의 세 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성경은 세계관 형성을 위한 질문들에 독특한 답을 제시한다. 세상과 인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그 첫 번째 주제다. 어떻게 죄와 악이 세상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그 뒤를 따른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구원하신 구속 사건과 그 의미를 말한다. 이 주제들을 통해 세계와 역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임을 보여 준다.* 다원주의 사회와 기독교 세계관우리는 다양한 세계관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문화생활 속에서 각종 토착 세계관과 외래 세계관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전통과 문화에서 주어지는 세계관을 반성 없이 수용하여 그 비전을 따라 살아서는 비성경적인 존재론에 빠지게 하는 영/육의 이원론이나 세속과 거룩한 영역으로 구분하는 일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한다. 즉, 모든 존재는 하나님 뜻의 산물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 세상은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우주는 늘 제자리를 지키며 사계절은 착오 없이 제철을 지킨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입각한 것이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창조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순종 체계라는 사실이 가진 가장 중요한 함축은 이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옳고 그름을 가릴 기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행사를 판단할 기준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행하는 것은 바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인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가정, 사회, 교육, 법, 정치, 경제 등 사회 제도나 질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존재의 원리와 삶의 질서 그리고 그것을 바로 유지할 규범을 주셨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법도는 하나님이 내신다.제4장 사람이 특별한 이유* 사람이 무엇이길래하나님은 시공간 내의 유무형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다. 그분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분의 ‘기쁘신 뜻’ 가운데 그렇게 하셨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문화 명령: 창조의 동역자신학자들은 사람이 창조와 역사의 동역자로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나무를 땅에서 솟아나게 하거나 자라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가꿀 수는 있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게 하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도록 돌볼 수는 있다.인간은 자연을 일구어 문화를 만드는 사명을 가진 일꾼이다. 우주 만물의 지휘자요, 창조의 비밀을 여는 열쇠다. 역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아래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특권과 책임: 다스림과 돌봄세상은 인간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만들어질 무대였다. 창조세계와 에덴동산은 완벽한 곳이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보존로 여기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과 직결된다. 아담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여인을 탓했다. 여인은 다시 뱀의 사악함을 핑계로 들었다. 이러한 변명이 곧 죄와 악을 구조화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여인과 뱀을 만드신 하나님을 지의 원인으로 만드는 태도다.* 자율과 깨어진 신뢰타락과 죄악에 대한 오해는 세상의 문제를 바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가장 흔한 오해는 인륜 또는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타락의 지표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술, 담배 문제나 도박 그리고 성적인 방탕을 죄악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특정한 행동이나 자세가 타락의 결과이며 표현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독감에 걸리면 열나고 기침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증상일 뿐이다. 그런 행위들이 인류의 질병인 죄, 그 자체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타락은 이런 행위보다 훨씬 폭 넓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킨다.성경이 말하는 타락은 본래 있던 악이 싹트는 것이 아니다. 타락은 인간이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취한 데서 비롯되었다. 타락의 핵심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지적으로 거부하고 인간의 주권을 내세우는 것이다.*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타락은 누구의 잘못인가?타락에 대해 가르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느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선악과는 에덴동산의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악과는 결코 인간을 악의로 시험하려는 유혹거리나 함정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실수로 만드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선악과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특수성과 관계가 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은 창조된 이후에도 계속 만들어져 가는 존재다. 선악과에 대한 금지로 표현된 종교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다.문제는 하나님의 명백한 금지와 경고에도 불고하고 그것을 어긴 인간에게 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그 열매에 무슨 신비한 효력이 있 곧장 파멸과 죽음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하나님의 결정은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죄악된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 은총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죄악된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제7장 세상의 소망* 소망의 근원오늘날 세상은 이전보다 더 어둡고 허무한 곳이 되었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연히 죄악 중에 잉태되고 고통 중에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구원에 관한 성경의 진리는 이런 질문들에 답을 준다. 그 진리는 죄악으로 고통 받는 세상에 소망이 있다고 말해준다. 히브리서에 열거된 신앙인들의 모습이 그 증거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에 소망을 두고 살았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소망이 있다.* 원복음죄에 빠진 인간은 두려워 숨었다.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이는 죄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으로의 초청이다. 하나님은 변명하는 이들을 인내하며 무화과나무 잎새를 대신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이러한 조처들은 하나님이 죄악에 빠진 인간을 향해 은혜를 베푸시는 증거다. 그러나 최대의 은총은 타락의 비참함과 죄악을 궁극적으로 극복할 구원자 메시아에 관한 약속이다.* 최악의 대안히엘레마는 인간의 타락에 대처하신 하나님의 방식은 정말 예상 밖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보자. “기회를 한 번 더 줄 테니 잘해 볼 수 있겠지?” 또는 “창조 실험은 실패했으니 다 집어치우자구.” 아니면 “처음 하는 일이라 잘못되었으니 모조리 걷어치우고 새로 시작해보자.”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상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힘든 선택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구속의 계획은 최악의 대안일 수 있다. 그분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기로 하셨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림예수 그리스도가 타락한 있다.
    독후감/창작| 2020.06.07| 19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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