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 1장’식품영양학과 202010513 김민선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달의 신 벤디스 여신에게 드리는 제례에 참여한 뒤 아테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케팔로스의 아들인 폴레마르코스가 소크라테스와 글라우톤을 발견하고는 승마 횃불경주와 제례를 구경하도록 더 머물다 갈 것을 종용받아 그의 집으로 향한다. 폴레마르코스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인 케팔로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소크라테스는 ‘정의’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폴레마르코스가 소크라테스의 말을 가로채며 그 둘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토론한다.폴레마르코스는 정의가 “친구에게는 이익을 주고 적은 해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듣고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친구니 적이니 하고 부르는 자는 실제로 친구나 적인 자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보이는 자를 말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 질문에 그는 선량해 보이는 동시에 실제로도 선량한 사람을 친구라고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폴레마르코스가 말하는 정의란 선량한 친구에게는 선을 베풀고 고약한 적에게는 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예를 하나 들어 “빌린 것을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은 적을 해치고 친구에게는 이익이 되도록 빚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자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 말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적어도 분명한 것은 적어도 사람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선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으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으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불량한 자의 행위이므로 적에게 해악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토론을 듣던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권을 잡은 지배자들이 스스로의 편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피지배자들에게 그것이 옳다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정의에 어긋난 범죄자로서 처단되니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은 강자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 곧 정의라는 결론이라고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지배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피지배자의 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으므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지혜와 덕이며, 불의는 무지한 것이라 말하며 불의가 정의보다 이롭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의라는 개념이 심오하게 느껴졌다. 국가론을 읽으면서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이다' 라는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주장과 반박, 질문을 통해 논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조금 낯설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폴레마르코스처럼 “정의란 언제나 선을 베풀며,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의로운 생각을 가졌다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없듯이 생각만으로는 정의로운 삶과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정의로운 삶은 불의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모습들은 불의가 원하는 바이며 그 틀 속에서 헤매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 불의를 위협하는 선을 넘지 않을테니까. 책을 읽으며 평소에는 그냥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정의’라는 말은 알되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국가론을 읽으면서 정의에 대해 스스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고 진정한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