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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독후감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을 읽고이 책은 크게 이슬람 세계의 역사, 종교, 삶을 그리고 있다.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역사와 종교가 중요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희수 교수는 이 책에서 “모든 문화는 선악과 우열의 문제보다는 같고 다름의 문제로 바라보며, 문화는 그 문화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향기와 색깔이 있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일군 사람들의 입장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이슬람을 연구하고 기록하며, 우리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한 이희수 교수 덕분에 이슬람 세계의 긴 역사를 훑어보며 이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평소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소 선입견에 차 있다는 걸 느껴왔었다. 나 역시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IS의 위협적인 활동을 매체로 전해들으면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많아졌다. 이슬람은 지구촌의 1/4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 문화권이며,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다. 아라비아 반도에서부터 인도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이슬람 종교와 문화적 유산을 남겼고 대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 문명의 성숙에 공헌하였다. 이슬람은 종교를 포함한 보다 넓은 문화적 의미이다. 따라서 이슬람을 단순히 종교로만 인식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여 이슬람 세계를 인식해야 함을 알았다.무함마드는 알라로부터 첫 계시를 받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평등과 평화를 강조하는 범세계적인 이슬람 종교를 완성하였다. 무함마드와 그 추종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하였는데, 이것을 헤지라라고 한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굳건한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여 마침내 메카를 재정복하였다. 알라에게 절대 복종하여, 내면의 평화를 얻고자 한 이슬람 사상은 사람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신이 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된다. 나는 작년에 수능 제2외국어 영역으로 아랍어를 공부하였는데, “인샤알라”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인샤알라는 ‘신이 원하는 대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일상의 모든 일이나 비즈니스가 알라에 의해 움직임을 믿는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알함두 릴라”라고 하는, ‘신께 감사를’이란 뜻을 가지며 다행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주 쓰는 표현도 공부했었는데, 이처럼 가벼운 대화도 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슬람의 신명 사상이 언어에도 깃들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철저하게 알라를 믿고 임무를 수행하는 무슬림의 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아랍 민주화는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권을 찾고 과거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혁명이다. 나는 아랍 민주화를 위해 아랍 내부의 노력만큼이나 서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슬람의 가치를 바탕으로 서구와 협력하여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랍과 서구의 중간 합의 지점을 찾아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과 무슬림의 관계는 평탄치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은 무슬림들이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했다. 여기서 나는 911 테러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참담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에 원인으로서 내재하고 있는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911테러 전후에 있었던 서구의 일방적인 행동들과 보복전쟁 또한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있었던 북미정상회담의 진행과정을 보면서도 나라와 나라, 또는 문화와 문화 사이의 정치적인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서로 간의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독후감/창작| 2020.06.16| 2페이지| 1,0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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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화와 칼 독후감
    을 읽고일본은 한국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 나라일까? 역사적인 기록에만 의거하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분노해야 마땅하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국가적 문제에 대한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여행은 한국인에게 인기이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국인의 시선에서 본 일본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전달받을 수 있고, 그 중에는 우리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본 문화를 정확히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일본에 미국은 당황했고, 낯선 일본인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느꼈다. 또한 대일 전쟁 과정 전후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자 미국은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인에 대한 연구를 위촉했다. 그에 따라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문화와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문화 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2년간의 연구 끝에 을 출간하였다.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을 상징한다.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 이 제목은 일본인의 이중성을 암시하고 있다.중세 이후 확립된 쇼군-다이묘-무사-농민-상인-천민에 이르는 사회 계층제도 속에서 스스로 ‘각자 알맞은 위치에서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을 행하는 것’을 일본인은 하나의 질서로 확립하였다. 이 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곧 전체적인 조화가 무너지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절대적인 관습으로 숭상되었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는 그런 관습이 없었고, 그것은 일본만의 산물이었다. 다른 나라, 특히 서양은 자유와 평등 개념이 우세했기 때문에 일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베네딕트는 계층제도 내부의 도덕체계를 이해함으로써 그 질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계층제도의 분석에 따라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 다양한 덕을 통찰하여 일본인의 가치관을 설명한 그의 노력은 의의가 있다. 또한 그의 연구는 더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문화인류학 분야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베네딕트는 제5장에서부터 제8장에 이르기까지 온(은혜), 기리(의리), 기무(의무), 하지(수치), 충, 효 등 일본인의 독자적인 관념 체계를 세부적으로 연구하여 개념화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 경제 거래에 비유하거나 모세의 십계명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이 일본에 전래된 계기에 대한 설명 또한 빠지지 않았다. 한국과 같은 한자를 쓰더라도,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특히, 기리는 한국에서 쓰는 ‘의리’와 한자는 같지만, 받았던 친절에 대한 답례에서부터 모욕에 대한 복수의 의무까지, 계산적으로도 보이는 일본인의 모습을 통칭한다. 세상에 대한 기리는 타인에게 받은 온을 갚는 것이고,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예에 오점이 없도록 해야 하는 의무이다. 베네딕트는 기리를 입출금이 딱 맞아떨어져야하는 채무관계처럼 이해하면 쉽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 베네딕트는 다양한 관념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무게를 두는 것에 따라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흥미롭게 제시한다.9장 ‘인정(human feeling)의 세계’ 에서는 엄격한 기리에 따라 개인적 욕망을 억제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이고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에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추구되어야만 한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일부러 함양한 후에, 엄숙한 생활양식의 의무에 따라 쾌락을 희생한다. 이는 타국인이 보기에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다. 게이샤나 동성애, 술에 취하는 것 모두 ‘인정’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적당한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일본인의 인정관은 육체와 정신을 구도적인 위치에서 대립시키는 서양의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일본의 육아법은 서양과 큰 차이가 있다. 엄한 교육을 받으며 욕구를 절제당하는 서양의 갓난아기와 달리, 일본의 갓난아이는 비교적 자유롭다. 이후 성장하며 점점 구속을 받게 된다. 이 훈육 방식은 자녀의 양면적 성격을 강화한다. 철저히 순종하다가도 쉽게 따르지 않고, 쾌락에 빠져들다가도 극단적인 의무를 다한다.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성장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며 일본인의 이원적인 성격의 모태를 통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아이의 훈육과 행동 철학을 통해 일본인의 마음에 심어진 덕은 전통적인 것으로 평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작가는 군국주의에서 비롯되는 억압과 부담으로부터 탈피하여,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일본이 되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의 변화를 원한다.상세한 연구를 통해 일본인과 심리와 행동 및 문화를 규명하였지만, 베네딕트의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먼저, 불완전한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려 노력한 것은 보이나 책의 집필 시기는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고, 집필 의도는 적국으로서 일본을 파악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연구가 어려웠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에 한번도 가본 적 없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는 미국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의 문화적 주관성을 배제하기 힘들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곧 주관적인 연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일본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현지 조사가 있었다면 더 정확한 연구가 가능했을 것이다.제3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도의 고유한 제도인 ‘카스트’의 명칭을 일본의 계층제도에 사용하고, 일본의 수행 방법을 인도의 요가와 유사하게 보며 일본과 인도의 연관성을 내포한다. 또한 일본의 역사적 변천에 있어 고대 한국의 문화적 영향도 인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 쇼와 시대에서 어떤 가치관과 규범들은 공통적으로 통용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세대와 신분을 막론하고 일본인에 대해 다소 획일적인 일반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서술은 실증성과 객관성을 잃게 되어 신뢰도 하락의 요인이 된다.그러나 저자가 서양인임에다가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고, 몇몇 미시적인 오류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이다. 1장에서 언급했던 연구방향대로, 충실하게 내용이 짜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국화와 칼’의 중층적인 의미 변화도 절묘하다. 전반부에서는 국화가 심미주의를, 칼이 무력 숭배를 나타내지만 후반부에서는 국화가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 작위적인 의지를, 칼이 자기 행위를 책임질 줄 아는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일본인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못했더라도, 은 국내외적으로 일본 관련 인류학 연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책이자 일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고전이라고 평가받는다.
    독후감/창작| 2020.06.16| 3페이지| 1,000원| 조회(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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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중무용과 민속무용
    서론: 한국무용에 대해서궁중 무용과 민속 무용에 대해 탐구하기 전에, 우선 한국무용의 개념과 분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무용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든 종류의 무용으로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춤이나 소멸되어 이름만 남아 있는 춤, 혹은 새롭게 창조된 춤 양식을 총칭한다. 한국무용은 크게 궁중무용, 민속무용, 가면무용, 의식무용, 창작무용 등으로 분류한다.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고려·조선시대의 윤리와 사상의 근저를 이루었던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은 육체 노출을 금기하였다. 이러한 영향 아래 한국무용의 특성이 변형·정형화되어, 궁중에서 공연의 성격을 띠고 이루어지는 것이 궁중무용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속무용은 한국무용의 고유의 원형을 살리고, 중국의 무용을 흡수·소화한 것이며, 민가에서 참여의 성격이 짙다.1.궁중무용의 특징과 종류궁중을 중심으로 발전된 춤이며, 정재라고도 하는 궁중무용의 특징은 춤의 내용을 노래로써 설명하는 것이다. 궁중무용은 춤의 시작과 끝에 노래로 춤의 내용을 설명한다. 우리 나라의 궁중무용은 동작으로 춤의 내용을 설명한다기보단 노래로 내용을 전하며, 움직임은 밀접한 관련을 지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용수들이 ‘만수무강’이나 ‘태평성대’와 같은 글을 바닥에 도열해 서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움직임에서 어떤 구체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경우는 없다.춤의 주제가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에 있지 않고, 조종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군왕의 장수 등을 기원하는 데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표현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억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주되는 음악과 장단이 일률적이며 느리고 길기 때문에 춤가락 역시 우아하고 선이 부드러워 현실과는 초연한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와 동양화의 여백미와 같은 느낌은 공간상에서 느낄 수 있다. 대신 의상은 화려하며 의상의 색과 춤의 공간 구성에는 유교의 배경 사상이 되는 음양오행설이 기초하고 있어 동양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놓고 있다. 따라서 장식성이 강하고 활동성이 적은 의상이나 느리고 장중한 음악으로 인해서, 또 노래가 들어오는 춤의 구조로 인해 궁중무용은 움직임이 많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이며, 격렬하거나 본격적인 움직임이 행해질 수 없는 성격을 지녔다. 그러한 이유로 전체적으로 궁중무용은 절제된 동작의 미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신체 부분이 진행하는 선(線)을 중시하고 그 흐름이 너무나 유장하므로 어느 순간 멈추어 선 듯한 정(靜)의 순간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는 동(動)의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절묘하게 움직이는 중에 단절의 정을 살리는 정중동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궁중무용은 고려시대 때 중국 송나라의 궁중무용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본래 우리 나라에서 추어지던 궁중무용을 지칭하는 향악정재와 중국에서 들어온 궁중무용을 지칭하는 당악정재로 명칭이 나뉘게 되었다. 음악 부문에서 통일 신라 이후 고려시대에 걸쳐 당나라 음악이 수입됨으로써 우리 음악과 중국의 음악이 양립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고유한 곡조, 악기, 춤을 향악이라고 하고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계 곡조, 악기, 춤을 당악이라고 하게 되었다.1.1 향악정재향악정재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고유한 춤으로 신라 시대부터 내려오는 궁중에서 추었던 고유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향악 반주에 맞추어 추는 것으로, 당악 정재에서 볼 수 있는 죽간자가 없고 춤의 앞과 뒤에 구호나 치어가 없으며 무원이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불렀고, 춤의 시작과 끝에 절을 하고 물러나는 소박한 형식을 지닌다.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향악무로는 무고, 동동, 무애무, 학무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의 향악무로는 가인전목단, 무산향, 처용무, 검무, 광수무, 고구려무, 선유락, 사선무, 봉래의, 문덕곡 등이 있다. 그러나 조선 순조에 이르러 향악정재도 한문으로 된 창사를 쓰게 되고 죽간자도 들어오는 등 향악과 당악 무용 간의 차이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1.2.당악정재중국의 궁중에서 사용하던 무용을 도입하여 우리 궁중의 향연에 쓰인 무용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 당악정재가 상연의 최초의 기록은 고려 문종 27년의 일이며, 문종 이후 당악정재가 본격적으로 고려에 전래되었다. 당악 반주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향악정재에 비해 거창한 절차를 지닌다. 정재가 시작되기 전, 무용수가 입장할 때 두 명의 죽간자를 든 이가 인도하여 무대를 연다. 즉 정재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개장하고 이를 알리는 치어를 죽간자가 하고, 무용을 끝낼 때도 죽간자가 치어와 함께 무용수들의 퇴장을 인도한다. 춤의 시작과 끝에 한문으로 된 구호와 치어의 격식을 갖춘 점, 그리고 따로 한문으로 된 창사가 있었다는 점이 향악정재와 다르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당악무로는 포구락, 수연장, 구장기별기, 왕모대가무, 연화대, 오양선, 헌선도 등이 있고, 조선 시대의 당악무로는 몽금척, 수보록, 하황은, 근청정, 수명명, 하성명, 성택, 곡파 등이 있다.2. 민속무용의 특징과 종류민속무용이란, 민족의 문화를 이루는 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민족의 사고 방식과 생활에서 만들어지는 민속에서 우러나온 춤이다. 서민과 같은 대중이 민속무용을 향유하였기 때문에 춤의 내용은 주로 평민계급의 소박한 생활 감정을 묘사했다. 이들의 향유 방식은 춤을 감상하는 것보다 직접 참여하여 함께 추는 것이고, 따라서 민속무용은 춤의 구성에 있어 집단 개념을 가진다. 민속무용은 개인적 창의성의 결과라기보다는 한 민족이 오랫동안 추는 가운데 공동의 미의식에서 나오는 공동 창작춤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 소멸되지 않고 민중들에게 공감을 주는 형태로 다듬어져 전수되어왔기 때문에 민속무용을 통해 민족 문화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현재 남아있는 민속무용에는 농악무, 승무, 강강수월래, 한량무, 태평무, 남무, 탈춤, 살풀이춤, 무당춤, 무동춤, 장고춤, 소고춤이 있다.2.1. 무속무용 계열무당은 무속의 ‘굿’ 의식을 통해 인간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신에게 아룀으로써 미래의 행운을 축원하였고, 이와 같은 굿에는 반드시 가무가 수반되었다. 종교적, 오락적, 예술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승무, 농악무, 태평무, 살풀이춤, 무당춤 등의 민속 무용에 영향을 미쳤다.2.2. 민속놀이 계열세시풍속의 행위에서 발생된 것 가운데 특정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그 지방에 뿌리를 박고 토착화되어 현재까지 전해진 춤이며, 농악무, 강강수월래, 탈춤 등이 있다.2.3 교방 및 기방무용 계열고려 초 궁중이나 관청에 설치되었던 교방에서 출발하여 근대 이후 무대무용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여기서 승무와 살풀이춤, 한량무, 남무 등이 갈고 닦여 세련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2.4 양식화된 민속무용근대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여파로 전통춤들이 소멸위기에 처했을 때, 전문적인 교육체계와 전수체계를 고안하여 전통춤이 독자적인 춤분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에 기초하여 발전한 전통춤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정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이 있다.3. 궁중무용과 민속무용 간의 차이점제약을 많이 받아 단조로운 가락으로 고정된 궁중무용과는 달리, 민속무용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원초의 자연스러운 가락이 잘 보전되었다. 즉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의 가장 대조적인 점은, 민속무용이 춤을 전개하는 데 있어 기본되는 가락은 있으나 세부적으로는 개인의 창의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과 달리 궁중무용은 국가 기관에 예속되었다는 속성 때문에 틀에 박혔다고 할 수 있는 점이다.궁중무용은 왕궁에서 연회나 의식 때 조종의 공덕이나 군왕의 장수를 주제로 하여 절차적으로 행해졌으며, 동작이 우아하고 품위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민속무용은 특정인에 의해 안무되는 춤이 아니며, 궁중 무용과 달리 특정한 무용수들이 특정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하지 않는다. 지역적 차별성이 두드러지고,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참고 문헌김말복 - 무용 예술의 이해장사훈 - 한국전통무용연구임현선 - 민속무용의 분류에 관한 연구
    예체능| 2020.06.12| 6페이지| 1,000원| 조회(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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