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너와 듀이의 교육과정 관점에 대한 고찰목 차Ⅰ. 서론Ⅱ. 본론1. 보수적 교육과정과 브루너의 교과의 구조2. 진보적 교육과정과 듀이의 경험과 교육3. 브루너와 듀이의 비교 논점Ⅲ. 결론(나의 견해)Ⅳ, 참고문헌Ⅰ. 서론교육과정은‘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학문 또는 실천 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반화하여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의 교과, 학문 중심의 교육과정인 보수적 교육과정, 생활에 필요한 교과를 학생 개개인의 필요와 관심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의 경험, 인간 중심의 교육과정인 진보적 교육과정, 재건, 변혁 중심의 교육과정인 급진적 교육과정이다. 각 교육과정에서는 여러 학자가 제시한 이론과 운동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보수적 교육과정에서‘교과의 구조’라는 개념을 제안한 브루너의 교육사상과‘경험과 교육’이라는 책을 집필한 듀이의 교육사상에 대해 고찰하고 두 학자의 교육사상이 어떻게 비교가 되고 논의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Ⅱ. 본론1. 보수적 교육과정과 브루너의 교과의 구조학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식 중심 교육을 해왔는데 아동의 특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조하고 실용적인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진보주의 교육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진보주의 교육은 1957년 10월 4일, 가난한 농업국가로 평가되던 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스푸트니크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새로운 보수교육의 흐름이 등장하였다. 미국에서는 소련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학교에서 진행되었던 생활중심교육이라는 진보적인 교육운동을 비판했고 미국 국방부는 초, 중등학교 학생들이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였다. 이때 개발된 교육과정을‘학문중심 교육과정’이라고 부른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워크숍에서‘교과의 구조’라는 개념이 제안되었으며 브루너라는 학자가 워크숍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교육의 과정’이다.브루너는 교육내용이 교과의 구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과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은 한 가지 현상을 여러 가지 현상과의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는 어떠한 법칙이나 규칙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면 새로운 방정식은 결국 자기가 알고 있던 방정식의 한 가지 변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교과의 구조는 사실이나 정보를 서로 관련짓고 체계화하는 주요 개념이나 원리들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브루너는 교과의 구조를 학습하면 학습한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고 학습 이외의 사태에 적용할 수 있고 고등지식과 초보지식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고등지식과 초보지식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학자가 학습하는 내용과 어린이가 처음 접하는 내용에는 연속적인 관계가 있다. 즉, 일의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일의 수준의 차이인 것이다. 브루너는 이를 통해 “어떤 교과든지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아동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라는 대담한 가설을 주장하였다. 이 가설에 따르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든 수준의 학교에서 같은 교과의 구조를 가르쳐야 하고 학생 수준에 따라 폭과 깊이를 달리하여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나선형 교육과정’이다. 학생의 나이와 학년에 따라 같은 교과의 구조를 폭과 깊이를 달리하여 가르칠 수 있도록 조직한 교육과정이 나선형 교육과정이다.브루너가 제시한 학습방법은‘발견학습’으로 알려져 있다. 발견학습은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학자들의 일과 저학년 학생들이 하는 일이나 모든 지적 활동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에 근거한다. 교과를 학습할 때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 획득한 지식을 변형하는 과정, 그 지식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획득, 변형, 평가라는 세 가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발견학습이 필요하다. 발견학습이 최소 필수의 사실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에 거기서 가장 풍부한 시사를 뽑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발견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만들고 그 지식을 다시 원래의 지식에 비추어 점검, 평가하고 새로운 지식을 더 얻게 되는 효과를 가진다. 브루너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나선형 교육과정과 발견학습을 통해 교과의 구조를 가르치는 것에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브루너는‘교육의 과정’을 출판하고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켜 교육과정 개발의 중심인물이 되었지만 이러한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교사는 가르치기 힘들고 학생은 배우기 힘들어서 외면당했고 미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정치, 경제, 사회 문제 등으로 관심을 더 받기 힘들었고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의 교육 현실을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에 시행된 제 3차 교육과정이 이러한 브루너의 대담한 가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물론 제 3차 교육과정이 실패했지만 이러한‘교과의 구조’를 가르치려는 관심은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2. 진보적 교육과정과 듀이의 경험과 교육듀이는 아동과 교과 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을 비판하였다. 듀이의 교육이론은‘경험’에서 출발한다. 교육은 경험에 의한, 경험을 위한, 경험의 과정이다. 듀이에 의하면 경험은 능동적인 측면(해보는 것)과 수동적인 측면(당하는 것)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또‘사고’라는 것은 경험의 두 측면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결국 듀이에게 가치 있는 경험은 경험 속에서 사고가 작동하는 경험이다. 듀이는 경험과 이성을 통합하고자 하였고 경험의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원리로 경험 이론을 말한다. 상호작용의 원리는 인간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이 영위되고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문제 사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평형상태를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경험과 이성의 관계에 적용하면 이성은 경험에 내재하며 경험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된다. 계속성의 원리는 경험이 시작, 발전, 종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활동이고 하나의 경험이 시작되고 종결되고 그 경험이 다른 경험으로 시작되어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교육은 경험의 계속적인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듀이는‘교육자의 교과’와‘학습자의 교과’를 구분한다. 교육자의 교과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의 형식이고 학습자의 교과는 구체적인 활동으로 존재하다가 점차 체계화된 교과로 발달해간다. 듀이는 아동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과를 진보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교과를 진보적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교과든지 처음엔 학습자의 경험 범위에서 자료를 설정하고 그 자료를 점차 확대하여 전문가의 자료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즉 지식의 조직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에서 추상적이고 이론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뜻한다.교육은 경험의 계속적인 성장을 돕는 활동이고 학교는 학생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다. 이러한 경험의 성장을 위해 교과 발달의 세 단계를 나누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의 교과는‘놀이나 일’의 형태이고 성장 초기 단계의 경험이 갖는 특성이다. 교육과정의 초기 단계는 직접 움직여 실제로 일을 해 사물에 익숙해지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의 교과는‘지리와 역사’의 형태를 취한다. 아동이 활동할 때 익숙해지고 의사소통활동을 통해 경험의 의미를 확장한다. 의사소통해서 인류 전체의 경험 속의 결과와 개인의 경험을 연결해주어 점차 그 의미가 풍부해지고 깊어진다. 세 번째 단계의 교과는‘과학과 논리’의 형태를 취한다. 과학적 지식이 하나의 생각과 진술이 앞의 것에서 논리적으로 나오고 또 다음 것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과정을 확인시켜준다. 결국 익숙해진 것의 의미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조직되어 교과 전문가가 지니는 지식이 되어 학습자의 교과가 교과의 발달을 통해 교육자의 교과로 이어진다. 듀이에 의하면‘행함을 통한 학습’이 세 단계에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체적인 행함,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의사소통의 행함,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합리적인 사고 행함인 것이다. 이러한 행함을 통한 학습이 가장 많이 비판을 받았는데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행함을 통한 학습을 신체적인 활동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여 듀이를 오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