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백 년 전의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현재의 평균수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생아 6~7명중 한명은 세 살이 되기도 전에 죽기도 했다. 운 좋게 성인이 된다고 해도 결핵 등의 질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등의 전문가들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수명이 열다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은 역사 속에서 비타민C, 퀴닌, 모르핀, 마취약, 소독약, 살바르산 , 설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에이즈 치료제가 만들어진 계기와 당시 취약했던 질병,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소에 약에 관심이 많았고, 약학전문대학 입학을 준비 할 만큼 약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서점 베스트셀러 구역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계산을 했다. 비타민C, 모르핀, 마취약, 소독약, 아스피린 등은 약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도 대부분 알 만큼 현대에 널리 이용되는 약이다. 이 책은 이렇게 특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약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 주며 단순한 질병조차 치료될 수 없는 상황에서 약들이 어떤 작용을 했나 이야기 해 준다. 그 중 특별히 인상 깊게 읽은 두 가지 부분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한다.먼저, 비타민 C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비타민 C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수많은 사례가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비타민 C는 그저 여러 필수 의약품 중 하나가 아니라 때때로 세계사의 큰 흐름을 뒤바꾸어놓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만하다. 대항해 시대에 선원들이 해적보다 더 두려워 한 괴혈병을 치료한 치료제는 비타민 C였다. 당시만 해도 괴혈병은 선원들만 걸리는 희한한 질병이었다. 실제로 배 위에서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난파나 전투 중 사망한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많았다고 한다. 괴혈병은 오늘날에 상당히 희귀한 질병에 속한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며 차츰 쇠약해진다. 손가락으로 살갗을 누르면 쑥 들어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탄력을 상실한다. 그뿐만 아니라, 입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흐르기도 하고,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천천히 죽어가기도 한다. 괴혈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항해 시대에 느닷없이 발생한 신종 질병이 아니다. 이 질병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매우 오래된 질병이다. 그밖에도 역사적 기록이 수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AD9세기 무렵 바이킹들이 괴혈병에 걸렸다는 기록과, 13세기 십자군 사이에서도 괴혈병이 만연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콜라겐은 일반적인 단백질과 달리 세 줄의 펩타이드 사슬이 얽힌 섬유 구조를 이룬다. 이 콜라겐 사슬에는 삼중나선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있는데, 프롤린 이라는 아미노산에 산소 하나가 붙은 특수한 아미노산이 바로 콜라겐이다. 이 산소는 수소결합으로 사슬끼리 연결되고 단단하게 맞물려 쉽게 풀어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프롤린에 산소를 덧붙이는 과정은 화학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비타민 C는 그 반응을 돕고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타민 C를 식품으로 얻지 못한다면 산소 결합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약한 콜라겐 섬유가 만들어진다. 콜라겐 결합이 느슨해지면 혈관과 잇몸 조직이 약해져서 잇몸이 헐고, 출혈이 생기며, 심해지면 치아 결손 등의 더욱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진다.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당대의 학자와 지식인들은 괴혈병을 막을 효과적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당대에 비타민 C가 발명되지는 않았지만, 비타민 C가 함유된 식품은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D 5세기 무렵, 중국인들은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된 생강이 괴혈병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당대 중국인들이 장시간 항해할 때면 배에 생강 화분을 싣고 배 위에서 생강을 길러 먹으며 항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601년 동인도회사의 함대는 레몬 과즙을 가득 싣고 출항했다. 이 배의 선장은 괴혈병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레몬 과즙을 세 숟가락씩 처방했다고 한다. 덕분에 선원들은 죽지 않았다. 그밖에도 레몬 과즙을 통해 괴혈병을 예방한 몇 가지 사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미 예방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책이 효과적으로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가 주장한 체액설이 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설에 따르면, 해로운 물질을 섭취해 병에 걸릴 수는 있어도 필요한 물질이 부족해 건강을 잃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괴혈병은 매독 등의 질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서 구별도 쉽지 않았다. 당시 열악한 항해 환경이 병을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나쁜 공기가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깊은 믿음도 있었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 하여서 사혈, 수은, 바닷물, 식초, 유황 등을 이용한 온갖 민간 치료법이 난무했고 그 중 괴혈병은 선원이 게을러서 생기는 병이라며 강제 노동을 추가로 시키기도 하였다. 아마 당대에는 병인과 치료법, 그 결과와의 관련성에 대한 정리와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괴혈병이 만들어낸 비극이 쉽게 막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괴혈병의 시대는 끝이 보이게 된다. 제임스 린드는 영국 해군 소속의 군의관으로 효과적인 괴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먼저, 열두 명의 괴혈병 환자를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매일 같은 식단을 제공한다. 환자를 두 명씩 여섯 조로 나누어, 각각의 조에 사과 과즙을 황산염 용액, 식초, 바닷물, 마늘 등으로 만든 반죽과 오렌지 두 개, 레몬 한 개를 먹인다. 6일 후 오렌지와 레몬을 먹은 병사는 괴혈병이 거의 완치되었으며, 사과 과즙을 마신 사람들은 미비하게 회복 조짐을 보였다.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린드는 실험을 통해 감귤류가 괴혈병 치료에 특효약이라는 가설을 입증했다. 18세기 후반의 한 선장은 선원들에게 사우어크라우트를 활용해 단 한사람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처음에 실험 대상이 되었던 선원들은 사우어크라우트를 거부했다고 한다. 생소한 음식이기도 하고 과거에 먹어본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식감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장은 선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을 비롯한 고위 간부의 식단에만 사우어크라우트를 포함했다고 한다. 그라고 선원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자 선원들이 먼저 나서서 사우어크라우트를 제공해 줄 것을 항의했다. 비타민 C의 속성이 밝혀지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에게 원활하게 보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비타민 C가 괴혈병을 예방하는 물질이기도 하면서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다음으로 매독과 살바르산의 발견이 인상 깊었다. 매독은 인류 역사를 뒤흔들 만큼 상당히 위중한 감염성 질환 중 하나다. 매독이라는 질병은 ‘매독 트레포네마’라고 불리는 나선 모양의 세균에서 비롯된다. 이 세균은 주로 성매개 감염이고, 상처부위를 통하여 감염된다. 매독의 증상은 4기로 나뉜다. 제일 먼저 음부와 구강 주위에 딱딱한 멍울이 잡힌다. 이어서 온몸의 림프샘이 부어오르고 전신에 울긋불긋한 발진이 나타나는 2기로 넘어간다. 매독에 걸린 후 3년이 지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제3기에는 얼굴과 뼈, 근육, 내장 등에 고무처럼 물컹물컹한 혹이 생기고 코가 떨어져나가는 등의 신체 결손 현상과 같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10년 이상 지난 제 4기에는 뇌와 신경에 매독균이 침범하여 진행성 마비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매독이라는 질병은 15세기 말 구체적으로 인류 역사에 등장한다. 가설 중에서 본래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질병을 콜럼버스 일행이 유럽으로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15세기 이전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매독과 유사한 질병이 유행했다는 확실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독에 걸렸거나, 그들이 유럽까지 강제 이송한 노예 중에 보균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독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04년 프랑스 샤를 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당시 유행했다는 기록이다. 군인들을 상대했던 매춘부들을 매개로 하여 감염이 확대되고, 군대와 윤락가 양쪽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매독은 왕도 피해가지 못하는 질병이었다. 매독의 확산 계기를 마련한 샤를 8세를 비롯하여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 잉글랜드 왕 헨리 8세 등 쟁쟁한 왕들은 하나같이 매독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매독은 신분을 가리지 않아 왕, 군인, 귀족, 일반시민, 노예에게 두루 퍼졌다. 한때는 파리 시민의 3분의 1이 매독에 걸렸다고 한다. 매독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유럽에서 유행한 가발의 경우 흥미롭게도 매독으로 머리카락이 빠진 모습을 감추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매독이 극성이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문란한 성생활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금욕을 강조하는 청교도 사상이 퍼져나가 청교도 혁명까지 이어졌고, 미국의 건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