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에 흘러온 동성애: 동서양에 따른 동성애와 사회적 현실< 목 차 >Ⅰ 서론 : 사회 속의 동성애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가?(1) 동성애의 정의Ⅱ 본론 : 사회적 현실과 동서양에 따른 동성애 역사(1) 국가를 아우르는 동성애의 현 주소(2) 한국의 동성애 역사- 삼국시대에 나타난 동성애- 실제 동성애자였던 왕들(3) 서양의 동성애 역사- 고대부족과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Ⅲ 결론 : 동성애를 향한 태도사회 속의 흘러온 동성애: 동서양에 따른 동성애와 사회적 태도Ⅰ 서론 : 사회 속의 동성애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가?(1) 동성애의 정의同性愛, homosexuality 이 단어를 본 적이 있는가?동성애란 동성의 상대에게 감정적·사회적·성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것으로, 동성애자는 이러한 감정을 받아들여 스스로 정체화한 사람을 뜻한다. 실질적으로 동성애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레즈비언(lesbian), 다이크(dyke), 부치(butch), 팜므(femme)는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대표적 용어인 레즈비언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4대 시인으로 알려진 사포와 관계가 있다. 사포는 자신이 여성이면서 여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노래하며 시로 표현했다. 사포가 살았던 섬 이름이 레스보스(Lesbos)였는데, 레즈비언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단어이다. 다이크, 부치, 팜므 또한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특정 유형의 여성 동성애자를 말한다. 보통 다이크나 부치는 남성적, 능동적인 레즈비언을 뜻하며 펨므는 그 반대의 경우에 사용된다. 이들에게도 상이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는 성역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게이(gay), TOP(탑), Bottom(버텀)이다. 이는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게이’의 어원은 ‘행복한(gai)’라는 프랑스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1960년대 이후 서구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결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전세계에 남성 동성애자의 의미로 확산된 것이다. 이 단어는 동성애자들이 그들의 성 정체성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남성 동성애자 또한 성역할에 의해 TOP과 Bottom으로 나뉜다. 세 번째 바이(Bi-Sexual)는 양성애자로 성 지향성이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경우에는 동성애, 이성애의 성지향성을 발견하기 전 거치는 일시적 단계로 간주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돈 시기에 편의적으로 Bi-Sexual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성애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범주로 정의된다.Ⅱ 본론 : 사회적 현실과 동서양에 따른 동성애 역사(1) 국가를 아우르는 동성애의 현 주소동성애는 현 사회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퀸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실제로 동성애자였으며, 영화에서 볼 수 있듯 과거 동성애는 숨겨야하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커밍아웃(Coming Out)은 단순히 자신의 애정지향을 드러낼 뿐 아니라 성별정체성을 수용하는 개인적인 과정이며 다른 사람들과 그 정보를 공유하는 대인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유명연예인들의 커밍아웃은 SNS나 미디어매체에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동성애를 옹호하는 법안에도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성소수자들을 위한 퀴어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실제로 2019년 서울광장 퀴어행사에는 60%가 넘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반대성명서가 있었고 대규모 반대집회도 동시에 열렸다. 미디어 매체에는 퀴어 축제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반대 운동, 장소대여의 문제, 경찰이 안전펜스를 치는 등 반발세력도 잇따른다. 다음은 국가적 측면이다. 동성결혼, 시민결합이 가능한 국가가 있는 반면, 동성애로 사형이 가능한 국가가 있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인권으로 보장하게 되었다. 실제로 2011년 UN 인권 이사회는 LGBT(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의미)권리를 인정하는 첫 번째 결의안을 통과했다. 동성애 불법, 차별에 관해 인권침해를 문서화 했으며 국가에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시행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동성애를 향한 시선을 국가별로 본다면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 북한 등 동성애를 중범죄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처벌 수위가 심할 경우에는 사형에 이르는 국가도 있다. 중국도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과 산아제한정책의 영향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동성애에 관해 관대해졌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후 수백 쌍이 혼인신고를 하며 이를 기념했다. 캐나다와 미국, 가톨릭의 영향이 강했던 남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또한 동성애의 성적지향을 지지하며 동성결혼을 합법화 가결했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성소수자의 권리에 관한 목소리는 점차 커져가는 추세로 변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동성애는 과거부터 어떤 양상을 띠며 나타났을까?(2) 한국의 동성애 역사삼국시대에서 나타난 동성애시대를 거슬러 우리나라의 동성애는 삼국유사부터 역사적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동성애 역사를 거론할 때 화두에 오르는 것은 삼국시대의 화랑일 것이다. 실제로 화랑에 동성애가 존재했는지 확답을 내릴 수 없지만 몇몇 향가의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 화랑도에서 동성애적 행위와 사랑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음을 주장한다. 또한 삼국시대의 유랑예인 집단인 남사당패가 있다. 남사당패는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며 풍물, 꼭두각시, 탈놀이 등 6종류의 놀이를 연출했다. 이들은 철저한 남색조직으로 몸을 팔기도 했는데 연행만으로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허가를 받으며 길놀이를 했고, 밤에 횃불을 밝히고서야 남사당 놀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살펴봐야할 것은 이 시대의 동성애에 관한 시각인데, 당시 사회에서 동성애를 금기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눈여겨 볼 점이다.동성애자였던 왕들의 예시첫 번째 기록상 동성애자는 신라 제 36대 임금인 혜공왕을 들 수 있다. 그는 8세에 왕위에 올라 여자같이 행동하고 옷입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신하들이 의논하기를 원래 왕은 여자였는데 남자의 몸을 빌어 왕이 됐으니 나라에 불길하다하여 죽였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고려시대에는 31대 임금인 공민왕이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몽고 노국공주가 병사하자 슬픔에 빠졌고 동성애자 신돈을 신임해 가까이 두게 되었다.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나 신돈이 역모로 제거된 후 ‘자제위’라는 궁정 청년 근위대를 만들고 그들과 동성애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동성애자였음에도 조정 안팎에서는 어떠한 비난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이전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동성애에 관해 특별한 처벌이나 제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사상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유교사상이 팽배해진 조선시대에는 동성애를 죄악시 여기며 동성애를 한 궁녀가 발각되는 경우에는 사형이라는 엄격한 형벌을 적용했다.(3) 서양의 동성애 역사고대 부족사회에서 발현된 동성애서양에서는 고대 부족사회에서 성역할의 전환으로서 동성애가 나타났다. 북아메리카 버다치족에서는 남성들이 간혹 여성의 옷을 입거나 때때로 남성 배우자들을 반려의 대상으로 취하기도 했다. 이들 북부 인디언들에게는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보다 중요한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사회적 성(social)이었다. 남성이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감정, 자신의 여성성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남성들. 이것은 인디언 특유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사물은 정신적 본성에 대한 것이며 영혼의 반영물로 간주했다. 즉, 성이 어떤 생물학적 성을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변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허용되었을 뿐 아니라 존경을 받기까지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남자 동성애가 고상하고 고결한 목적에 부합된다고 인식할 정도였다. 또한 군사적 지식보다 철학적 지식을 전수하는데 힘쓴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의 동성애를 변용시킨 것은 고대 그리스 특유 문명이었다. 하지만 중세에 카톨릭과 유대교 이슬람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가 동성애를 금기시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엄격한 처벌을 가했다. 서구 문명의 정신적 기초를 이룬 초기 기독교의 등장에 따라 당시 동성애를 향한 태도는 더욱 굳어졌다. 간음과 매춘은 물론,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부부의 성관계도 죄악시했다.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도시 소돔은 동성애를 비롯하여 더렵혀졌고, 결국 신의 분노로 불타게 된다. 이렇듯 동성애를 향한 적대적인 태도는 근대까지 이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