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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김동리에 대해(김동리 작가론, 김동리 작가 생애 보고서, A+ 레포트)
    작가 김동리 보고서김동리 작가 소개김동리는 1913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하여 1995년에 사망하였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로 소설, 시, 수필,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고 대학 교수 및 총장에 위임되거나 각종 협회에서 임원으로 피선되며 문학가로서 영예를 누렸다. 주로 토착적인 소재로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서정주와 함께 순수문학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역마」(1948), 「등신불)」(1961), 「까치소리」(1966) 등의 단편소설이 있고, 단편집으로 『무녀도』(1947), 『황토기』(1949), 『실존무』(1955), 『등신불』(1963), 『바위』(1973), 『밀다원시대』(1975) 등과,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소설작법』(공저, 1965), 『고독과 인생』(1977), 『문학이란 무엇인가』(1984), 시집으로 『바위』(1973)와 유고시집 『김동리가 남긴 시』(1988),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1977), 『사색과 인생』(1973)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겼다.김동리의 유년시절김동리의 본명은 김시종(金始鍾)이며 김동리는 필명이다. 5남매 가운데 셋째이며 당시 막내로 태어났다. 김동리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나이는 42세였고 생업에 바빠 김동리에게 손을 많이 내어주지 못했다. 먹을 것이 모자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정뱅이 아버지가 남긴 술찌기를 먹고 자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녔으며 기독교 계통 학교에서만 수학하였다. 김동리는 1920년 경주 제일교회 소속 계남학교를 다니며 교지에 내놓은 글을 시작으로 ‘글 잘 쓰는 아이’로 통했다.““열서너 살 때, 달을 보고 까닭 모르게 너무도 아득해서 자꾸자꾸 눈물을 쏟은 일이 많았다. 그것은 다 즐거움의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남보다 훨씬 크고 깊은 행복을 가졌는데, 그건 자연을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생리적 기능이다.” 김동리는 뒷날 푸른 풀밭을 보면 마구 뒹굴고 싶고 진달래가 저물도록 온 산을 헤매다니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김동리의 천부적인 문학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년시절의 자연 친화적인 삶은 이후 그의 향토 짙은 작품색으로 나타난다. 이후 대구 계성 중학교에 진학, 3학년일 당시 후배로 들어온 박목월과 친한 사이가 된다. 대구 계성중학을 거쳐 1929년 서울 경신중학교를 진학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면서 학교를 중퇴한다. 그의 나이 17세에 학업이 중단되고 그는 맏형 김범부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부산으로 내려간 직후에도 어려운 형편으로 학교 편입을 포기하고 맏형의 집에서 독서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문학생활에 기점을 나눈다면 그 첫번째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궁핍한 생활에도 온종일 독서를 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일상이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고 회상한다.맏형 김범부의 영향그의 문학인생에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은 맏형 김범부이다. 김동리에게 김범부는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존재였고 시인 서정주의 사상적 스승이기도 하다. 서정주는 김범부를 일컬어 “하늘 밑에서는 제일로 밝던 머리”(서정주, ?新羅의 祭主 가시나니?1)라고 했다. 서정주는 김동리와의 교류 이전부터 김범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김범부는 한학자이자 동양철학자이자 독립 운동가로 그야말로 비범한 인물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16세에 경주 남문에 일제에 항거하는 격문을 붙이거나 홀로 범굴에 찾아가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담력이 커서 늘 주목받는 존재였다. 1915년 일본 도요대학에 입학하여 동양 사상을 전공하는데 이맘때 김동리가 태어났다. 동경 외국어학교에서 영어와 독어를 수학하고 동경대학과 경도 대학 등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하다가 25세에 귀국한다. 이후 1934년 ‘다솔사’에서 승려들에게 현리사상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선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이때 서정주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경에게 집을 수색당하고 쫓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생활을 했는데 숙식제공을 해준다는 데가 줄을 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그를 당대의 위인이라고 여겼다.김동리는 김범부의 사상을 문학 장르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끌고 갔다고 볼 수 있다. 김범부는 김동리에게 화랑 이야기를 자주 해줬는데 이후 에서 이런 사상적 배경이 드러난다. 김범부는 한국문화의 본질을 풍류정신과 신라문화로 보았고 동방 사상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동양사상을 제창하였다. 서양문명의 문제점을 인간성의 상실로 보고 민족 국가를 추구함과 동시에 동방 사상과 화랑의 풍류 정신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김동리와 서정주의 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불교적 세계관과 민족 의식 추구는 김범부에게서 나온 것이다. 김동리의 작품에 드러난 서구 사상과의 대결의식은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1957), 『무녀도』(1947)에서 소설로 형상화된다. 어두고 쓸쓸한 세계에 잠겨 있던 김동리의 소년시절을 밝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바꿔준 사람이 맏형 김범부이다.김동리 문예활동과 사상김동리는 1934년 조선일보에 시 「백로」가 당선된 바 있다. 이후 상금을 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궁핍한 환경도 그를 작가의 길로 인도하는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당시 그가 주로 습작하던 장소는 볏가마가 쌓인 아랫방이었다. 이듬해인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로 당선, 1936년 동아일보에서 「산화」로 또 한 번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1935년은 전후로 유능한 신인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던 때이다.1936년에 운명론과 샤머니즘 제재를 다룬 와 를 발표한다. 토속적인 분위기가 짙게 나타나고 인간의 허무적인 운명을 노래한 작품이다. 1937년 「이태준론」(《풍림》, 1937.3.)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비평 활동을 시작하고 서정주, 함형수 등 동인들과 교류하며 4편의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맘때쯤 맏형 김범부가 있는 다솔사로 가서 광명학원을 개설하고 아내 김월계를 만나 결혼하여 맏아들 김진홍을 낳는다. 그러나 1943년에 아들을 병으로 잃고 광명학원을 폐쇄한다. 이 이야기8년 을 발표했다. 다솔사에서 1940년까지 발표한 작품은 「황토기」, 「잉여설」, 「찔레꽃」이 있다.1930년대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간 탐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이다. 이는 1930년대 후반의 세대론, 순수 문학 논쟁에 영향을 미쳤고 1940년대까지 이어진다. 김동리는 순수 문학 논쟁의 기수로서 앞장섰다. 김동리는 인간의 운명적 삶과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실천하고 작품으로서 실현하였다. 김동리의 인간관은 비극성에서 기인한다. 인간에게 비극은 운명론적이고 필연인 것이며 이러한 비극적 사유 안에서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운명론과 결합하여 작품에서 ‘구경적 생의 형식’으로 형상화되었으며 김동리 초기소설의 중점으로 기능한다. 김동리는 1941년부터 해방까지 절필한다. 이때까지 작품을 초기 작품으로 본다. 「찔레꽃」(1939), 「혼구」(1940)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자본주의화 정책에 의해서 발생하는 분리 의식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에서 암울한 시대의 고통을 다루면서도 외부 세계를 탓하거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식으로 전망하지 않고 대자연 속의 존재인 인간을 그대로 그려낸다. 이 운명성이 허무주의와 비현실적인 세계로의 도피를 야기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김동리는 또한 가장 민족적인 작가로 불린다. 근대 서구 사상과의 대결의지 속에서 민족적인 것을 지키려는 치열한 노력을 이어갔다. 해방 이후 ‘인간주의 민족주의’ 문학론 진영에 가담하여 우익 민족 문학론, 순수 문학론을 제창한 대표적 인물이다. 이때 본격문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형제」, 「해방」등의 반공적 작품을 발표하였다. 같은 시기 발표한 평론으로는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문학론》(1948) 등이 있다. 6.25전쟁 이후에는 삶의 근원적 의미를 탐구하고 이념의 갈등에 주안을 두었다.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이 강화되고 종교적 소재를 바탕으로 심화된 인간의 본질 탐구를 추구하였다. 6.25전쟁의 시을 담은 「밀다원시대」(1955)는 보다 확장된 실존적 휴머니즘을 노래한 주요 작품으로 같은 시기 「흥남 철수」(1955), 「사반의 십자가」(1957)를 발표하였다. 신화적 세계관, 비극적, 운명론적 인간관에서 보다 전체적인 인간과 이념을 탐구하는 것으로 확장된다.김동리 작품에 대해김동리 단편 「팥죽」(1936)과 「찔레꽃」(1939)은 해방 전 김동리의 초기소설에 해당한다. 이 시기 김동리는 인간으로의 탐구에 몰두하며 작품으로서 인간 탐구를 실현하였다. 김동리의 인간관은 비극성에서 기인하고 여기 두 작품 모두 보다 인간적인 비극을 노래하지만 결코 어둠으로 점철되는 ‘비극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관찰을 하려면 대상과 가까워야 한다. 여기 두 편의 이야기는 그가 가난하던 시절에 보고 듣던 주변부의 삶을 회상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김동리는 작품을 둘러싼 그 누구와도 가깝다. 「찔레꽃」에서는 그 시절 시집보낸 딸을 만주로 보내는 어미의 마음에 공감하는 남자이고 「팥죽」에서는 맹랑이를 보는 독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어른이다. 그래서 그의 끊임없는 인간성 탐구는 이름하야 거창하나 인간으로의 끊임없는 애정 혹은 연민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찔레꽃은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쯤 산지철에 피는 흔하디 흔한 꽃인데 순녀를 보내는 해에 유달리 야단스럽게 폈다. 어머니는 순녀를 보낸 이후로 찔레꽃이 필때마다 순녀 생각이 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와 순녀의 운명론적 비극은 모녀라는 점이다. ‘아내가 지아비를 좇는 것은 곧 천측이 아닌가. 천측을 어기면 천벌을 받는다. 어느 누가 감히 천측을 거역하랴’에서 시집가면 더 이상 누구의 딸이 아닌 누구의 아내였던 그 때 그 시절의 문화는 천측으로 변모하여 운명론적 당위성이 부여된다. 순녀를 보내는 순녀의 어머니도 지금의 순녀처럼 지어미를 떠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운명의 차원으로 전락하여 초월의 의지를 기대할 수 없는 장치가 된다. 일찍이 문명개화를 외친 이인직의 신소설과 비교되는.
    인문/어학| 2020.07.25| 4페이지| 4,0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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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전기와 후기의 시가문학 차이점
    조선전기와 후기의 시가문학 차이점조선 후기 문학은 중세 후기 문학이자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이다. 조선 전기 문학과 달리 사대부 중심이었던 문학 담당층이 평민으로 확장되고 여러 차례 전란을 거치고 이념이 변화하면서 그 내용과 형식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이 시기는 소설이 융성하고 본격적인 소설 시대가 전개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행기’ 설정에 대한 타당성의 논의가 있긴 하나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조선 후기 문학은 시대에서 시대로의 이행에 걸친다는 특이점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행기를 설정해야 한다는 논의에 따르기로 한다.조선 전기에서 후기로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임진왜란(1592)을 기점으로 한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등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며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기록, 증언, 술회, 상상 등 전쟁 체험의 기록 문학을 만들어냈다. 전쟁은 계층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가혹하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문학은 민족 수난의 대응 문학이기도 하다. 반면 사대부 중심이었던 신분제의 동요는 평민들이 문학에 참여하게 되는 기회의 창구가 된다. 이는 조선 후기 문학과 전기 문학의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특징이다. 조선 후기는 양반 계층이 증가하고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부농이 대거 출현하는 등 귀족 중심의 신분제가 서서히 변화하던 시기이다. 이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총체적인 변모를 야기하고 전반적인 문학 요소의 유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국민들은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물질적, 정신적 폐해를 겪으면서 귀족계층의 무력함을 실감하고 그들을 향한 불만을 키우기 시작한다. 동시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현상에 대한 비판의식이 고조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실학과 천주교, 동학이 퍼지는 시기와 맞물려 평민들에게도 평등과 사회 개혁 의식이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던 귀족중심의 관념 문학이 지기 시작하고, 실학을 바탕으로 하는 평민중심의 실천 문학이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조선 전기의 국문시가 형태로는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가 있었다. 악장은 음악과 춤이 동반되어 국가 공식 행사에서 불리던 노래로 새로운 왕조와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고 통치 이념을 알리기 위해 불리었고, 경기체가 역시 건국을 찬양하고 질서 확립 도모를 위해 쓰였는데 내용과 형식에서 이미 사대부 계층의 문학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향유층이 일부 귀족계층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곧 소멸하고 가사가 성행한다. 시조 또한 주로 유교적 이념과 충의, 시대적 과제로서의 정치적 항거를 주창하거나 도학의 정신, 풍류 정신을 노래하고 자연을 예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3장 6구 4음보 45자의 정형성을 갖췄던 전기의 짧은 평시조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설시조와 엇시조로 변모한다. 중간층과 평민들이 본격적인 창작을 하면서 유교적 이념과 관념성에서 벗어나 생활 밀착형 주제를 채택하며 길이가 길어진 것이다. 특히 사설시조는 당시의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세태에 대한 비판의식과 풍자가 잘 드러난다. 이러한 현실의 삶이 작품의 주제가 되면서 주제는 보다 다양화되고, 현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유로운 문장 형태로 표현하려는 산문정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존 4음보의 형식은 파괴되고 3장 6구 평시조의 6구 중에 어느 두 구 이상이 10조 이상으로 길어지는 등 장형화와 정형성의 파괴가 일어난다. 이 시기 대표 시조 작가로 , 의 윤선도를 꼽고, 등 70여 시조 작품을 남긴 박인로를 꼽기도 한다. 이렇게 시조 작품과 시조 작가가 증가하면서 평민들 사이에 시조를 편찬하여 만든 시조집이 성행하기도 한다.고려 후기 승려들의 노래였던 가사는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도 성행한 문학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식이 중요한 장르에서 내용이 중요한 장르로 변모한다. 조선 후기의 가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그 향유계층이 사대부 중심에서 평민과 부녀자까지 확대되고 장르의 대중화가 이뤄진다. 전기의 가사는 3.4조, 4.4조의 정격을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의 문학이다. 정철의 과 같은 연군가사, 정극인의 과 같은 은일가사, 허난설헌의 와 같은 규방가사, 조위의 와 같은 유배가사, 정철의 과 같은 기행가사는 이 시기 주요 가사 갈래로서 일종의 교술 문학의 기능을 한다. 후기에 이르러 이러한 정격 가사는 내용이 파격적으로 길어지고 형식이 산문화 되면서 변격가사와 장편가사로 변모한다. 전기의 관념적인 서정성, 교훈성을 벗어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체험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서사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실학의 영향으로 김인겸의 와 같은 보다 장편화 된 기행가사가 등장하고, 정학유의 같은 월령체 가사 혹은 권농가사, 그리고 이세보의 과 같은 애정가사가 등장한다. 부녀자들의 생활상과 감정을 노래한 내방가사가 다수 창작되기도 한다. 이 시기 대표 작가로는 박인로가 있다. 전쟁의 배경을 노래한 , 와 같은 전쟁가사, 은일가사인 는 오늘날까지 가치있는 작품으로 꼽힌다.반면 조선 후기는 한문학이 쇠퇴하고 한글이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인 소설시대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 전기의 소설은 구성과 사건이 평면적이고 인물의 형상화가 비교적 뚜렷하지 않고, 명혼소설, 몽유소설 등 대부분의 작품이 전기성과 비현실성을 띤다. 김시습의 는 최초의 한문소설로 이후 소설이 발전 단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는 작품으로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반면 조선 후기 소설은 최초의 국문소설인 허균의 을 그 시작으로 한다. 은 계급 사상 비판과 사회 개혁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여전히 전기 소설의 전기성을 띠면서도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 참여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드러난다. 같은 맥락에서 박지원의 작품도 그 표기는 한문이지만 근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이 시기 소설은 한문과 국문이 모두 사용되어 향유된다. 시문학과 마찬가지로 평민과 여성으로 작가층이 확대되고 한글을 익힌 평민들이 늘어나면서 상층과 하층, 남성과 여성의 경쟁적인 합작이 이뤄진다. 기록문학 형태뿐만 아니라 구비로도 연행되고, 중국 소설이 유입되기도 하면서 소설은 평민들의 대중문화로 자리잡는다. 또 전기 작품에 비해 인물의 형상화가 뚜렷해지고 구성과 사건이 복잡해지는데 김만중의 와 에서 이러한 소설의 변모양상이 잘 드러난다. 특히 이 작품들은 전대 작품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의 성격과 심리의 탁월한 묘사로 소설 독자층 확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시기의 소설은 교술을 서사로, 사실을 허구로, 교훈을 흥미로, 지배이념에 대한 옹호를 비판으로 바꾸며 근대성을 확보한다.반면 이러한 서사문학의 득세로 구전설화가 다시금 활발해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야담이 설화집으로 편찬되기도 하고 판소리가 크게 대두되면서 , , 등의 판소리 문학으로 성장한다. 일상적인 정황을 노래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판소리의 특성이 특기할 만한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평민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조동일(2005), 『한국문학통사3』, 지식산업사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조선 후기의 한문소설
    인문/어학| 2020.07.25| 3페이지| 3,000원| 조회(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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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A+ 레포트> 품새, 발차기, 겨루기 체급에 대해
    레포트- 태권도 ‘품새’와 ‘발차기’, ‘겨루기 체급’의 종류에 대해이름/학과/학번1. 태권도 품새의 종류품새는 상대방을 가상해 놓고 공격과 방어 기술을 수련자 스스로 연마할 수 있도록 일정한 틀로 짜여진 기술체계이다. 특히 태권도의 품새는 그 진행 선이 한민족의 전래 사상에서 기초되었으며 각 품새의 외형적 모양새의 총화가 품새 이름이 뜻하는 사상적 형상에 맞추도록 짜여져 있다. 품새의 체계는 단순하고 쉬운 것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점진적으로 배우게 된다. 각 동작들을 연결하여 수련함으로써 겨루기에서의 기술향상과 응용동작 배양, 특수기술의 연마를 가능케 하고 그 종류로는 태극 1~8장,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가 있다.태극 품새는 음양의 아름다운 조화에 따라 만들어진 자세로, 자세가 바뀔 때를 양, 바뀌지 않고 제자리에서 움직일 때를 음이라고 보고, ‘유급자’ 품새로서 1장에서 8장으로 올라갈수록 급수가 올라간다.태극 1장은 팔괘의 건(乾)을 의미하며 건은 하늘과 양(陽)을 뜻한다. 건은 만물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과 같이 태권도의 맨 처음 품새에 해당한다. 태권도 8급의 품새에 해당하며 서기에서 가장 쉬운 걷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동작으로는 아래막기, 몸통막기, 몸통 지르기, 앞차기로 구성되어 있다.태극 2장은 팔괘의 태(兌)를 의미하며 태는 속으로 단단하고 겉으로는 부드러운 외유내강의 의미를 지닌다. 기초적인 얼굴막기와 앞차기 동작을 많이 넣어 몸에 익히게 하였고 태권도 7급 품새에 해당한다. 태극 3장은 팔괘의 이(離)를 의하는데 이는 불이 상징하는 뜨겁고 밝음을 나타낸다. 태권도 품새 수련을 통해 파란띠로 승급할 수 있는 과정이며 6급이 되어야 수련할 수 있다. 새로운 동작은 손날목 치기, 손날 막기이고 새로운 서기는 뒷굽이이며 기술은 연속 막고 치기와 차고 연속 지르기가 있다. 빠른 속도로 상대로부터의 치기를 막고 되치는 기술의 힘을 필요로 한다. 태극 4장은 팔괘의 진(震)을 의미하고 진이란 ‘우뢰’로서등주먹 얼굴앞에치기이고 특수한 미끄럼발이 있다. 겨루기에 대비한 각종 동작과 뒷굽이 서기가 많다. 태극 5장은 팔괘의 손에 해당하여 ‘바람’을 의미하고 바람의 강약에 따라 위세와 고요의 뜻을 지닌다. 힘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수련단계라 할 수 있고 태권도 4급에 해당하는 품새이다. 새로운 동작은 메주먹 내려치기, 팔굽 돌려치기, 옆차며 옆지르기, 팔굽 표적치기가 있고, 서기는 꼬아서기와 왼서기, 오른서기가 나온다. 특징으로는 차기 뒤에 아래막고 몸통막기만 연속되는 동작과 뛰어 구르면서 치는 동작이 많고, 표적치기 시에는 표적이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태극 6장은 팔괘 중 감(坎)으로 ‘물’로써 끊임없는 흐름과 유연함을 뜻한다. 태권도 3급의 과정으로 기술이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동작은 한손날 얼굴바깥막기, 돌려차기, 얼굴바깥막기, 바탕손 몸통막기가 있고 품새의 중간에 편히 서기가 나온다. 태극 7장은 팔괘 중 ‘간(艮)’으로서 산을 나타내며 육중함과 굳건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동작이 많이 나오는 품새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태권도 2급 과정에 해당한다. 새로운 동작은 손날 아래막기, 바탕손 거들어막기, 보주먹 가위막기, 무릎치기, 몸통 헤쳐막기, 제친 뒤 주먹몸통지르기, 엇걸어 아래막기, 표적치기, 옆지르기가 있고 서기에서는 범서기와 주춤서기가 나온다. 동작이 다양하므로 연결성에 중점을 두어 수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태극 8장은 곤(坤)을 의미한다. 곤은 음(陰)과 땅으로 뿌리와 안정, 그리고 시작과 끝의 의미를 지닌다. 태권도 1급의 과정이자 유급자의 마지막 품새로서 1장에서 8장까지의 연습을 거쳐 심사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단계이다. 새로운 동작은 두발당성 바깥팔목 몸통 거들어 바깥막기, 외산틀막기, 턱지르기, 거들 어아래막기, 뛰어 차기, 팔굽 돌려치기가 있다.반면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는 ‘유품자’의 품새이다. 고려는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선배’를 의미하 옆차기, 메주먹 아래표적치기 등이다. 준비서기는 통밀기로 손의 위치는 상단전과 중단전 사이에 두어 정신통일을 중시하며 품새선은 사(士)자로 고려 품새의 선배의 표상이다. 금강은 더할 수 없는 강함을 의미하고 남성을 상징한다. 품새선은 산(山)자이고 힘있고 강하게 중심을 안정시켜야 한다. 새로운 동작은 바탕손턱치기, 한손날 몸통안막기, 금강막기, 산틀막기, 큰돌쩌귀 등이고 서기로는 학다리서기가 있다. 태백은 백두산을 상징하고 단군의 높은 이상을 바탕으로 한 품새이다. 품새선은 공(工)자로 하늘과 땅 사이에 바로 선 사람을 나타냈다. 새로운 동작은 손날아래헤쳐막기, 손날엎어잡기, 잡힌손목빼기, 금강몸통막기, 등주먹 얼굴바깥치기, 돌쩌귀 등이다. 평원은 아득히 넓게 펼쳐진 큰 땅을 의미하고 새로운 동작은 팔굽올려치기, 거들어 얼굴옆막기, 당겨턱지르기, 멍에치기, 헤쳐산틀막기 등이다. 품새선은 일(一)자이다. 십진은 십장생을 상징하고 그 의미에 따라 변화하는 품새로써 새로운 동작은 십장생의 수에 따른 열가지로 황소막기, 손바닥 거들어막기, 엎은손날찌르기, 손날아래 막기, 바위밀기, 손날등 몸통헤쳐막기, 걷어올리기, 쳇다리 지르기, 손날 엇걸어 아래막기, 손날등몸통막기이며 품새선은 역시 십(十)자이다. 지태는 땅위의 사람이 하늘을 향해 두 발을 딛고 있는 지상인(地上人)을 의미하고, 새로운 동작으로는 한손날 얼굴막기, 금강몸통지르기, 메주먹 옆표적치기로 비교적 그 수가 적은 편이다. 품새선은 한글의 ‘ㅗ’자로 땅 위에 선 사람과 땅위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사람의 모양을 의미한다. 천권은 만물의 근본이자 우주 그 자체인 하늘을 의미한다. 새로운 동작으로 날개펴기, 밤주먹솟음치기, 휘둘러 막기, 휘둘러 잡아당기기, 금강 옆지르기, 태산밀기 등이고 보법으로는 자진발이 있으며 움직임이 크고 팔동작이 완만한 곡선을 이룬다. 품새선은 한글 모음인 ‘ㅜ’이다. 한수는 만물의 생명을 키워주는 근원인 ‘한물’을 의미한다. 새로운 동작은 손날등몸통헤쳐막기, 메주먹양옆구리치기, 거들 담고 있다. 새로운 동작은 손날(얼굴)막기, 외산틀옆차기, 두손펴 비틀어 잡아당기기, 뛰어 옆차기가 있고 서기로써 오금 학다리서기가 처음 나타난다. 준비서기는 보주먹 모아서기이며 턱 앞에 준비손을 두어 기(氣)가 인체와 두 손으로 막힘없이 흐르게 하는 서기이다. 품새선은 불교의 상징인 만(卍)자이다.2. 태권도 발차기의 종류태권도 발차기는 ‘공격’을 행하는 기본에 해당한다. 발을 사용하여 목표를 가격하고 제압하는 것을 차기라고 한다. 다리를 접었다가 펴는 힘으로 공격하거나, 다리를 편 상태로 무릎을 굽히는 힘으로 차기도 하고, 다리를 돌리거나 몸을 돌려 회전력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등 다리와 발의 운동 방법에 따라 기술이 나뉜다. 태권도에서 ‘공격(지르기, 찌르기, 치기, 차기)’의 큰 범주 하에 발차기는 ‘차기’와 ‘특수차기’로 나뉜다. ‘차기’는 또 기본기술과 변화기술로 나뉘는데 기본기술에는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몸돌려차기’가 있고, 변화기술에는 ‘반달차기’, ‘비틀어차기’, ‘뒤차기, ‘뻗어차기’, ‘밀어차기’, ‘낚아차기’, ‘후려차기’, ‘내려차기’, ‘안차기’, ‘바깥차기’, ‘뛰어차기’, ‘두발당성차기’, ‘모둠차기’, ‘가위차기’, ‘거듭차기’, ‘섞어차기’, ‘이어차기’, ‘넘어차기’, ‘일자차기’, ‘다방향차기’가 있다. 반면 ‘특수차기’에는 ‘외산틀 옆차기’와 ‘표적차기(안차기)’ 두가지가 있다. 본고에서는 ‘차기’에 대한 자세한 기술(記述)을 우리 수업에서 여러 번 다루었던 기본기술(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몸돌려차기)에 한정한다.‘앞차기’는 발차기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차기로, 차는 다리의 무릎을 접어 가슴에 가까이 올 때 목표를 향하여 무릎을 일직선으로 뻗는 동작이다. 앞축을 주로 사용하지만 발끝을 사용할 때도 있고, 목표는 낭심, 단전, 명치, 턱 등이다. 뻗었던 발을 먼저 자리에 놓고, 딛고 있는 다리는 차기 전후로 무릎을 쫙 펴면 중심이 흐트러져 부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딛고 있는 다리의 발목을 약간 펴고 축으로 목표를 가격하는 차기이다. 차는 순간 몸은 비틀리고, 시선은 목표를 바라보는데 상대의 ‘서기’에 따라 정면일 때 목표는 명치나 얼굴이 되고, 측면일 때는 옆구리나 얼굴이 된다. 차는 다리를 끌어올릴 때 딛는 다리의 앞축만 땅에 딛어 회전을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차는 순간 상체가 차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눕혀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돌려차기’는 앞의 축이 되는 발에 체중이 실리고, 차는 다리의 무릎을 몸을 돌릴 때 펴면서 발을 수평으로 돌려 상대의 목표를 가격하는 차기이다. 사용부위는 앞축이나 발등이 될 수도 있다. 축이 되는 다리는 무릎과 발목을 펴서 앞축을 축으로 하여 몸의 회전을 돕는다. 또한 차는 다리는 앞차기나 옆차기와 달리 발을 몸 뒤에서 먼저 올리고 회전하며 정한 목표에서 멈추어야 한다. ‘몸돌려차기’는 변화된 차기 기술로 돌려차기보다 더 큰 시선과 몸통의 회전을 필요로 한다. 왼 앞서기를 기준으로 몸통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시선은 360°, 몸은 180° 돌려선다. 몸이 도는 힘을 이용하며 몸과 찬다리를 360° 완전 회전시켜 발을 제자리에 내려디딘다.3. 태권도 겨루기 체급의 종류겨루기는 품새를 통해 익힌 공격, 방어의 기술을 응용하여 실제로 상대방과 대결하는 기술이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일정한 틀에 맞추어 연습하는 겨루기와 기술의 제한이 없이 연습하는 겨루기가 있다. 태권도 경기는 겨루기의 기술을 충분히 습득한 청·홍 두 선수가 일정한 경기 규칙을 지키면서 승패를 가리는 방법이다. 경기는 태권도의 공격 기술 중에서 주먹 지르기와 발차기만을 사용하고 몸의 전면만을 공격하되 얼굴 공격은 발만 사용하며, 아래 공격은 금지되어 있다. 더욱이 인체의 급소는 모두 보호구로 막아진다.겨루기 체급은 크게 남자부, 여자부 성별 체급으로 구분되고 단위는 kg으로 한다. 초등부, 중등부와 고등부, 대학부와 일반부로 각각 분리되고 올림픽경기 성별 체급 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유스 올림픽, 세계 유소년(12~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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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작가론 - 나도향 작가 생애 보고서 (A+ 레포트)
    나도향 작가 생애 보고서나도향 개괄나도향은 1920년대 낭만주의와 결을 함께 하며 10여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창작기간을 뒤로하고 요절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 수는 손에 꼽을 수 있으나 그 문학정신은 처음과 끝이 다르다. 그는 현대소설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문장의 미완과 미숙의 논의가 있다. 미완으로 끝나버린 그의 인생이 그렇게 일찍 끝나지 않았더라면, 여느 작가들처럼 익어가는 인생을 한 땀 한 땀 작품으로 녹여 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지금쯤 사뭇 다른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우울한 유년시절나도향은 1902년 5남 2녀 중 맏아들이자 둘째로 태어난다. 본명은 ‘나경손’이고 필명은 ‘빈’, ‘도향’은 그의 호이다. 이 호는 같은 백조 동인이던 박종화가 지어준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의사, 할아버지가 한의사인 대대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그의 유년시절이 우울로 점철되는 원인이 된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나도향은 1914년 공옥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제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재치와 성품이 뛰어나 스승과 친구들이 그를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유한 환경은 이후 그의 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시기 같은 동문이었던 김소월과 훗날 문단의 벗이 되기도 한다.그는 학교에서 상급반이었고 교우지 편집을 맡아 문예활동을 한다. 이처럼 나도향은 일찍이 문학이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집안의 권유에 따라 1918년 현재 서울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문학의 길을 걷고자 중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의사 가문을 잇길 바라던 아버지 역시 문학을 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조부의 권유로 경성의전에 입학하여 동경제대 의학부를 마치지만 의사 생활을 거부하고 독서에 열중하곤 하였는데 이런 일로 조부와 갈등이 잦았다. 부친의 고뇌, 조부간의 갈등은 어린 나도향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는 훗날 그의 작품에서 갈등하는 아버지와 아들로 표상화 된다로서 생을 마감했으니 결과적으로 뜻을 이룬 셈이기도 하다.나도향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어떤 뚜렷한 계기는 밝혀진 바 없으나 조부와 갈등하던 문학소년 아버지와 누나 ‘나정옥’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나정옥 역시 문학소녀였지만 음악을 전공하여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작품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에서 소설이 시작하기 전 ‘누님에게 한 구절 애닯은 울음의 노래를 들여볼가 하나이다’라는 구절이 부기된 바 있고, 같은 동인 박종화도 ‘나도향이 글을 쓰는 데 취미를 붙인 것은 육당의 과 지의 영향을 받아서이지만 또 한 가지 문학의 길로 발을 들여 놓 게 한 가까운 동기는 그의 누님 ’나정옥‘ 때문’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의업에 발을 놓긴 했 으나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조부와 갈등을 빚었던 부친을 생각해볼 때, 나도 향이 문학에 들어서는 길이 왜 그리 험난했는지 의문이 드는 바이다. 내 자식만큼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게 해주겠노라,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겠노라 응원해줄 법도 한데 조부의 입 김이 거역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인지, 혹은 당신은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조부의 바람을 아들에게 전담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반면 다독하던 부친과 누나의 영향으로 집안 에 서적이 많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런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부친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나 도향에게 천부적인 예술성을 부여하고 작가의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조부 와 부친의 사례로 나도향의 다른 남매들은 의업을 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피아니스 트 나정옥에 이어 동생 ‘나조화’는 영화제작과 연극에 몰두했고, 또 다른 동생 ‘나준영’은 영 화배우로 활동했다. 특히 나도향의 대표작 , , 세 편이 훗날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는데 여기서 나조화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 다.본격적인 문학 활동1918년 나도향은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고자 조부의 장롱에서 돈을 훔쳐 몰래 일본으로 떠난다. 그는 와세다 대학교 영친 역시 독립 애국단 사건의 영향으로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집안의 강요가 아니었다면 도일이 아니더라도 일찍이 문학을 전공해볼 수 있었겠으나 여러 차례 꿈이 좌절되면서 한동안 방랑생활을 하기도 한다.나도향은 배제고보 당시 박영희, 김기진, 박팔양, 박용철, 최승일 등의 문인을 동창으로 두었 다. 나도향이 타의에 의해 강제 귀국한 후 그들은 다시금 모여 독서와 토론을 하는 모임을 가 지는데 주로 『청춘』에 게재된 작품에 대해 논하였다. 1920년 나도향은 박영희와 함께 박종화 의 시에 대해 논하면서 박종화와도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는 훗날 백조가 출간되는 첫걸음이 된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환경적 요소가 무색하게 그는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문학가의 길을 닦아나간다. 1921년 나도향은 잡지 4호에 ‘은하’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나의 과거(其一)』를 처음 발표하는데 혹자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나’의 과거를 회고하는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같은 시기 조선일보에 『계영의 우름』과 4호에 『나는 참으로 몰랏다』 등 2편의 소설을 발표한다. 『계영의 우름』은 1인칭 소설로 사랑과 종교 사이 갈등을 겪는 여성을 그리고, 『나는 참으로 몰랏다』 역시 1인칭 시점으로 한 여인에 대한 회고를 담는다. 여기서 박영희는 『나의 과거(其一)』에서 나도향의 소설은 주관적 감정에 치우쳐 인물의 성격이 과민하고 유치하게 그렸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나도향 소설에 대한 비판은 주로 미성숙하고 무절제, 세련되지 못한 문장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나도향의 초기소설은 대부분 같은 맥락의 비판을 받는다.1921년 나도향은 박종화, 홍사용, 박영희, 현진건, 이상화 등과 함께 백조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고 1922년 백조 창간호에 을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당시의 ‘은하’라는 필명이 아닌 ‘도향’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백조파의 문학 경향을 흔히 낭만주의 로 정의하나 이는 시 분야에 국한된 일이고 소설에 있어서는 당시 유행하던 사조인 자연주의 적 성격이 짙었다고 이때 을 썼으나 1926년에야 간행된다. 1920년 안동에서 잠시 교 사생활을 했을 때 박종화에게 형편이 어려워 문학 활동이 어렵다는 편지를 보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듬해에 문학잡지 동인이 되고 그 이듬해엔 여러 잡지와 신문에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주변 문인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920년대 한국문학의 주요 담론은 낭만주의였으며 나도향의 작품은 이러한 낭만주의적 성격이 짙게 나타나며 “소설로써 낭만주의의 문학을 이 땅 위에 성공시킨 유일한 작가”로 평가 되기도 한다. 그의 초기소설 , , 에서는 부조리한 현실과 세속적인 인습을 거부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반대선상에 놓인 ‘참사랑’ 혹은 ‘참사람’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인물로 하여금 비극을 겪게 하여 비극이 내면을 성찰하는 장치로서 작용케 하는 지점은 참사랑, 참사랑으로 가는 조건이 실패와 상실임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작품이 오로지 치기어린 낭만성으로만 점철되지 않고 상실이라는 필연적인 장치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성장소설의 면모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불륜, 신분을 초월하는 애정 문제, 근친상간적 행동, 금기 위반 등 다분히 사회적 윤리를 위반하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낭만성을 배제하고 논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유년 시절 좌절경험과 내면의 억압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문학이 일종의 정화의 창구로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한편 내면으로의 침잠은 외적으로 우울과 불안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문장을 쓰게 하 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별개로, 그리고 내용적인 면과는 별개로 나도향 의 문장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된다. 이런 문장은 주로 그의 초기소설에 집중되기는 하나 후기소설에서도 ‘좋지 않은’ 문장들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과잉수식, 이중부정, 문맥이 통하지 않는 시제 사용, 관념어의 무분별한 나열, 지나친 영탄의 사용 등이 같은 시기 활약했던 염상섭이나 현진건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한 기술을 상쇄하는 장치가 되어 그의 문학적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문학정신의 전환나도향은 1923년 (개벽 1월호), (백조 3호) (개벽 40호) 등을 발표한다. 나도향 초기 소설은 낭만성과 감상성이 강조되어 사실성과 현실성이 부족하 다는 비판점이 있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현실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편협된 경향성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 발표한 작품들부터 주관적 감상성을 벗어나 객관성을 배양하 여 한층 성숙된 글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24년 (개벽 3월호) 를 비롯하여 1925년 (개벽 12월호), (조선문단 8월호), 계급 문학 시비론 (개벽 2월호)등을 발표, 1926년 (조선문단 3,4,5월호), (신민 7,8호), (현대평론 8월호)가 발표된다. 특히 와 , 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데 에 이르러 그의 문장은 비로소 일장 세련되어진다. 문학사적 관점으로 이 시기를 여지없이 그의 문학사적 변 곡점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당시 이미 결핵이 겉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사실상 변곡 이 아닌 단절이 이루어지고 있던 셈이다. 이때 나도향이 그리는 현실적인 주제의식은 주로 가난, 돈에 의한 인간성 상실, 신분의 차이로 인한 비극이다. 는 돈에 의해 타락하여 불륜과 배신을 일삼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은 가난으로 인해 매춘이 일상화되는 여성과 그의 남편, 옆집 하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는 하인 삼룡이가 집에 새로 들어온 아씨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부당한 억압에 대한 하층민의 비애를 그려내는데 이들 작품의 결말에는 모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성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나도향의 소설을 초기 낭만주의와 후기 사실주의로 이분하여 평가하는 관점을 넘어 여전히 작가 특유의 낭만성이 유지되는 지점인 것으로 짐작하는 바이다. 당시 일제 식민 치하라는 현실은 문학가들로 하여금 고개를 들어 현실을 보게 하였고 나도향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향은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작품 속
    인문/어학| 2020.07.25| 4페이지| 3,000원| 조회(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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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미술사 수업 A+받은 PPT(발표문 포함)
    감상이란예술 작품을 감각적 형식과 표현 내용의 전체에 걸쳐서 음미하고 즐기는 것 , 단순한 지적, 분석적 이해나 개인적인 좋고 싫음이 반응되는 정서적 태도와는 구별된다. 또한 미적 관조와는 달리 작품을 적극적으로 음미하는 평가활동이 포함되나, 그 평가가 비평의 경우처럼 언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감상력은 기본적으로 기능이며 훈련에 의해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도 특정분야에 한정될 뿐 예술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감상력을 키우는 것은 드물다” - 영국의 미학자 오스본(Harold Osborne), <감상의 기술 The Art of Appreciation>(1970)이 점에 있어서는 감정과 통하는 점이 없지 않으나, 감상은 작품의 식별이나 유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감상적 표현 구조의 미묘한 차이를 향수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미술은 언어로 알고 있는 것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교과와 통합하기 유리한 과목이다.
    예체능| 2020.07.24| 18페이지| 5,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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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3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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