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을 읽고 리뷰하고 비평하기1932년 미국 대공황의 시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에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은 뉴욕의 삶을 마무리 짓고 버몬트의 시골로 이사해갔다. 사람들 하나하나를 점점 거대 해져가는 기계와 빽빽한 공장속의 부속품처럼 여기고, 빠른 속도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평화와 자연속에서 채집하여 영양소를 섭취하는 채식을 할 수 있고, 니어링 부부 자신들이 대화를 통해서 정한 규칙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평온하면서도 잔잔한 속도로 살고자 했다. 꼼꼼하게 대화를 통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기위해 최선과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감히 조화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뉴욕 도시를 떠날 때 지키고자 마음속에 품고있던 세가지 목표 중 첫번째는 스스로 자급자족 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경제를 만드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속담처럼 좋은 땅을 만들고 이를 열심히 일구어 본인들이 노동한 만큼만 얻는 정당한 삶을 꿈꾸고, 과한 잉여소득을 남기기 보다는 먹고 살만큼만 얻고 그 이상의 것은 나누는 삶을 지향했다. 탐욕에 대해서 억제하는 이러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삶들은 부부를 느리지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두번째 목표는 인간의 자연치유능력을 믿으며 건강해지고, 그 건강을 지키는 것이었고 의학을 멀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목표는 공동체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본인들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의 삶으로 옮겨 실천한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닌데 부부는 이를 하나씩 차근차근 실천해갔고, 부부의 삶을 읽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을 매우 위대하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부부는 삶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정한 최소한의 기본가치로, 단순함, 고요한 생활, 가치 있는 일, 조화로움을 뽑았다. 그 후 그들은 버몬트에 정착한 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사탕 단풍나무를 통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그들만의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 그 뒤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정해서 살아갔다. 목표를 정하고 작은 일에도 관심을 쏟으며 계획에 따라 일을 서슴없이 해 나가는 모습이 가히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규칙들을 지켰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삶의 의지도 약해진다고 생각하였으며 본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오전에는 일을 했다면 오후에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 자신들만의 여가를 보냈다. 일을 잘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고, 일을 해야한다는 강박보다는 자유로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유롭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그들은 자연과 좀 더 조화롭기 위해 그들이 세웠던 원칙을 지키며 집을 지었다. 맨처음에는 나무로 집을 지어봤고, 그 이후로는 주로 돌집을 지었다. 돌집을 짓는 재료는 자연속에서 구했으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이용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집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자연을 개척할 대상이 아닌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더불어 버몬트에 사는 여러사람들과 집을 짓는 작업과 사탕 단풍나무 시럽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하면서 하나의 공동체임을 잊지 않았다. 그 뒤 살아갈 양식을 마련하기위해 버몬트의 기후를 관찰 및 분석을 하였고 직접 식물 등을 이용한 퇴비도 만들며 자연 친화적인 농사를 지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밭에서 생산된 신선한 제철식물을 이용한 음식을 먹으며 건강도 챙겼다. 부부는 되도록이면 채식주의의 생활을 하면서 음식을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주로 섭취했다. 달마다 재배하는 채소들이 다르기 때문에 먹는데 질리는 일은 없었으며, 오래 저장하기위해서는 과일을 잼으로 만들어서 저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정제하고 가공된 식품들 때문에 불완전한 영양을 섭취하게 되고, 이는 몸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 정신의 능력에 영향을 주어 살기 힘들게 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처럼 현대인들과 과도한 경쟁심리 때문에 질투하고 남을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의 삶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앞만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어있지는 않는가? 이렇게 경주하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니어링 부부가 살아간 그들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후에는 내가 니어링 부부처럼 타인의 자유에 간섭하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며, 자연을 다음 세대가 누릴 하나의 대상이라고 여기며 살 수 있을까? 그러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이제부터 라도 부단히 노력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삶들 여러가지 중에서 ‘규칙과 자유’라는 하나의 관점을 고르게 되었다. 이 관점을 고르게 된 이유는 내가 이 두 요소 중 하나에만 치우쳐져 있기에, 이 두개가 균형을 이룬 니어링 부부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이다.이 ‘규칙과 자유’라는 한 관점 속의 ‘규칙’과 ‘자유’라는 두 요소를 바탕으로 다시 바라본 부부의 삶은 절제로우면서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이었고 정말 숭고로웠다. 책을 다 읽은 뒤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인데,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로 이사간 것은 충동이 아니었었다. 스코트 니어링이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을 통해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배우고 깨달은 뒤, 어른이 되어 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강연을 다녔고, 강연을 통해서 미국인들을 노동 등에 대해서 깨우치게 했다. 또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다가 교수 자리에서 해직이 되었다. 그 뒤 또 다른 대학에서 강연을 하다가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했고, 그 결과로 해직되었다. 이러한 여러 핍박들이 계속되었고, 이에 대해 회의를 느끼다 뉴욕 도시를 떠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도 어찌 보면 네 가지 삶의 규칙을 정했다고 보았다.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추구한 단순함, 고요한 생활, 가치 있는 일, 조화로움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규칙으로 세워 이곳저곳을 비교하고 분석해서 버몬트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러한 규칙을 선택하여 실천으로 옮기면서듭 반대했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더 이상은 인형을 수집하지는 않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추억속엔 저 인형들이 있을 텐데 왜 굳이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렸나 생각이 든다. 그때 바자회에 보냈더라면 지금처럼 먼지 쌓여 구석에 박혀 있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깨끗하게 빤 뒤에 보육원에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이제부터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줄이고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면 나눠주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의 자유를 침범하거나 자유에 크게 영향을 주지않는다면, 남을 위해서 베풀어야겠다는, 이러한 반성을 계기로 니어링 부부가 세운 네 가지 삶의 규칙인 삶의 요소 중 가치 있는 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나도 나만의 규칙을 하나 하나씩 채워 나갈 때 공동을 위한 가치 있는 일에 관한 것을 하나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욕심없이 살고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엄격히 지키며 꼼꼼하게 기록하는 모습이 융통성 없고 꽉 막혀 보이기는 하지만, 하루를 오전과 오후 둘로 나누어 식사를 얻을 수 있는 노동은 오전에 하고 나머지시간은 온전히 자신들에게 투자하기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따라하고 싶었다. 무엇인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가지고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데 시간을 투자하지않았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10년 후의 나의 모습이 어떨지 수업시간에 생각해보라고 하면 하나의 특정 직업을 적어서 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각자 되고 싶은 직업을 적어서 제출했다. 과연 그 직업을 이루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허무하지는 않았을까? 중고등학생때는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없이 바쁘게 되고 싶은 직업만을 항해 나아갔던 것 같다. 추구하는 삶이나 행복한 삶이 아니라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이러한 반성을 할 수가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가 없었고직업군에서 온 대표자들의 강연을 듣거나, 꿈 발표대회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점이 바뀌었다. 또한 모든 학생들이 자율동아리를 하면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서로 경쟁관계이기보다는 격려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자기에 대해 알아가는 걸 도와주는 교육은 학생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하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이것이 학교차원에서 시작되었으니 더 나아가 사회에서도 근로기준법이나 여러 복지차원에서 여가시간이 보장이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이렇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니어링 부부가 추구한 삶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 두가지 있었다. 첫번째는 의학이나 의사를 불신하는 점이었다. 자연 친화적인 삶과 건강한 운동, 자연 치유되는 우리의 신체는 감기나 배탈 등의 약한 병에 걸렸을 때는 괜찮을 수 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늙으면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 등을 자연으로는 거스를 수 없다. 물론 부부는 거스르는 삶을 살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했을 경우에는 적절한 치료가 없을 시 잘못 붙을 수도 있고, 더 잘못된다면 못 걷거나 못 움직일 수도 있다. 또한 약을 먹으면 간단히 나을 수 있는 질병인데 계속 자연치유를 믿으며 방치한다면, 역으로 건강히 오래 살 수 있는 내 삶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의학의 힘을 빌리면 빠르게 극복할 수 있고 좀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에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고 불신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자연속으로 들어가서 평온하고 잔잔한 삶을 살면서 자가치유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부 기술의 발전과 의학 같은 문명들을 배척할 것만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첫번째와 비슷한 맥락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