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시인의 삶과 문학1. 활동 당시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특징조정래 시인은 1943년 전라남도 순천군의 선암사에서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아버지 조종현 씨는 대처승으로 1947년 선암 사이 부조 지인 아버지가 사답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 준 일로 주지와 충돌이 일어났다.이는 이듬해인 1948년 10월 일어난 여순사건 이후 모략에 휘말리고 가족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되었다.이후 1951년 1.4후퇴 때는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로 인해 아버지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그는 광주 서 중학교를 거쳐 1959년 서울로 상경해 고등학교 입학 1년 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1962년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 후 1967년 결혼하였다.동구 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1970년에 현대문학 6월 호에 ‘누명’이 첫 회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그 후 여러 문학을 내놓았다.하지만 전근 후 정부를 비판한 작품으로 보수주의자인 학교 교장과의 마찰로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악법인 유신헌법이 만들어져 민주주의가 억압받은 10월 유신 후 교직을 그만두었다.그 후 월간문학 편징장, 민예사 대표를 맡으며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다.그러다 1980년 5월 광주민중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운동인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 광주를 방문하게 되고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이후 그때까지 원칙을 바꾸며 이것은 후에 태백산맥의 집필로 이어이게 되었다.이러한 조정래 시인은 반 백 년간 글 감옥에 갇혀 살며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고 오만한 권력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작가이다.조정래 작가의 문학은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기쁜 역사이든 슬픈 역사이든 우리가 마주하는 경험적 역사에 픽션을 가미해 작품을 완성한다.현대의 젊은 작가들이 가질 수 없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필체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태백산맥과 아리랑이 그 예이다.두 작품 모두 작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여수 순천 사건과 한국전쟁을 바탕으로 쓴 문학으로 시대적 배경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조정래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반기, 그 이후를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전반기 작품들로는 토속적인 공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 청산댁(1972) >, 현실의 비리와 삶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 폭력교사 (1971) > 등이 있다.또한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삼은 그는 < 한, 그 그늘의 자리(1977) >, 현대문학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한 < 유형의 땅(1981) >등이 있다.이러한 소설들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된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쓴 것이었지만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 광주를 방문해 직접 살인 현장을 본 후 그 원칙을 바꾸게 되었다.2. 구체적 작품내용그의 작품 중 하나인 ‘아리랑’은 1995년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가 배경이다.동학농민 운동은 1884년 당시 가난과 불평등의 삶으로 피폐해진 하층민 계급의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로 동학농민운동을 소설의 시작점으로 잡은 이유는 평소 농민과 피지배층의 삶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성향이 반영되었다고 본다.이후 일본의 노골화된 조선 내정 간섭과 한일 합병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투정의 역사까지의 암울한 36년 식민지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저항 의식,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 주제이며해남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출판했으며 프랑스어로 편역되기도 했다.일제 강점기 당시 전라북도 김제시를 배경으로 일본의 수탈과 우민화 교육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일제에 협력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고발, 사회주의계와 비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역사소설로서 아리랑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이다.아리랑은 총 4부작으로 12권의 단행본으로 짜여있다.역사적, 사실적, 시대 고발적이며 민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민중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조정래 작가의 의도는 자긍심 회복으로 일제강점기에 치열하게 저항하며 수많은 고난을 끈질기게 버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게 함에 있었다.다음으로 ‘태백산맥’은 1989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부터 한국전쟁을 관통하며 민족의 이올로기적 분열과 물리적 아픔을 다루고 있다.1986년 제1부 3권, 1987년 제2부 2권, 1988년 제3부 2권, 1989년 제4부 3권이 한길사에서 출간되었다.책의 줄거리로 일제의 식민 정치에서 해방된 후 한반도에서는 좌파와 우파 간의 사상 대립이 심각해지는데 이는 전라남도 보성군의 벌교읍에서도 마찬가지였다.숯장수 염 서방의 아들인 염상진과 동조자들에 의해 점령되어 민중들을 착취하던 지역 유지들이 민중들의 증오 속 처형되는 일이 벌어지고 주로 염상진의 동생이자 건달패인 염상구와 청년단원들이 되돌아오기도 한다.하지만 좌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상을 갖고 공산주의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초등학교 교사 출신 이지숙은 야학 교사로 일하며 계급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남로당 보성군당 위원장 염상진과 그의 동조자 하대치, 안창민 등은 계엄군 사령관 심재모 중위와 대립하면서 명석한 머리와 냉정한 성격으로 빨치산 운동을 지도한다.얼마 후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염상진은 해방구 주민들의 몰이해와 추위, 빨치산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면서도 협조하지 않는 일부 인민군 부대의 이기주의 등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빨치산 투쟁을 시도하지만 토벌대에서 포위당하게 되고 동지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그의 무덤 앞에서 동지들은 염상진의 공산주의 혁명 의지를 계승할 것을 다짐한다.광복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쁨도 잠시 한때 세계의 반을 뒤덮은 사상의 대립 앞에 우리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었다.누적 판매 부수 33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태백산맥은 3부가 나온 1988년 하반기에는 새벽마다 공갈협박 전화에 시달렸고 4부를 쓰던 1989년 모든 수사관이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으며 출판사 사무실로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1989년 10월 단행본이 나오는 것으로 완성되었다.마지막으로 ‘한강’은 2007년 한국 전쟁을 지나 60~80년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총 10권으로 1부 격랑 시대(1~3권), 2부 유형 시대(4~6권), 3부 불신 시대(7~10권)로 구성되어있다.끝나지 않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산업화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국가가 원했던 한강의 기적과 국민들이 원했던 민주주의 사이의 줄다리기를 현실적으로 집필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왕의 남자(영화감상문)한국의 전통문화Ⅰ. 서론왕의 남자는 2005년 12월 29일 개봉하여 천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달성한 대흥행 작품 중 하나이다. 조선 최초의 궁중 광대극으로 연산군의 마음에 든 광대 장생과 공길이 궁중에서 광대놀음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약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지며 이후 여러 수상내역들이 줄을 잇는다.이 작품의 감독인 이준익 감독은 1959년생으로 세종대학교 동양화를 전공하였고 1993년 영화 ‘키드캅’으로 데뷔하였다.그는 현재 씨네월드 대표를 맡고 있으며 왕의 남자 이후로도 소원, 타짜, 사도, 동주 등 여러 인기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영화 왕의 남자 주역배우들은 광대인 장생(감우성),공길(이준기),육갑(유해진),칠득(정석용),팔복(이승훈)이 있고 폭군인 연산군(정진영)과 그의 후궁인 장녹수(강성연), 환관인 김처선(장항선)이 있다.그 중 왕의 남자하면 ‘이준기’ 배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첫 주연작 왕의남자에서 공길역으로 활약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승승장구 중인 배우이다.영화의 줄거리는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은 힘있는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동료인 공길(이준기)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간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에 끌려간다. 의금부에서 문초를 시달리던 장생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해 왕을 웃겨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왕 앞에서 공연을 시작하자 모든 광대들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장생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 왕을 웃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왕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바로 그때 공길이 기지를 발휘해 특유의 앙칼진 연기를 선보이자 왕은 못 참겠다는 듯 웃는다. 이들의 공연에 흡족한 왕은 궁 내에 광대들의 거처, 희락원을 마련해주고 궁에 들어온 광대들은 신바람이 나서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왕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중신들의 분위기가 싸늘하자 왕은 중신 중 한명을 웃지 않는다며 형벌을 내리고 연회장은 긴장감이 감돈다. 연이은 연회에 광대들은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이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을 연기하고 연산은 같은 이유로 왕에게 사약을 받았던 폐비 윤씨를 상기해 분노하며 그 자리에서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베어 죽게한다. 공연을 할때마다 궁이 피바다로 변하자 흥을 잃은 장생은 궁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공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겠다고 한다. 그 사이 왕에 반발한 중신들은 광대를 쫓기위한 음모를 꾸미고 왕의 관심을 광대에게 뺐겼다는 질투심에 휩싸인 녹수 역시 은밀한 계락을 꾸민다. 이후 영화 마지막에는 장생과 공길이 행복하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Ⅱ. 본론왕의 남자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아주 많은 부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극의 흥행이 어렵다는 속설을 깨뜨렸고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의 변화를 주었다.그리고 사람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영화에서 ‘광대’라는 전통문화적 요소가 등장하였다.‘광대’란 전통사회에서 전문적인 악기 연주, 연회, 기예 등을 했던 신분 집단인 ‘광대 집단’의 사람들을 일컫던 명칭으로 신분사회였던 전통사회에는 음악 등의 예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신분 집단이 있었다.관청과 민간에서 두루 음악을 연주하던 악공 집단이 바로 그들이다.이와 비슷하게 ‘남사당패’라는 집단이 있다.앞서 소개했던 서론의 줄거리에서 남사당패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남사당패란 본래 남자만으로 구성된 유랑 예인 집단이었고 이들은 꼭두쇠(우두머리)를 정점으로 풍물(농악), 보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가면극),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이) 등을 공연하였다.이들은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과 다소의 노자만 제공받게 되면 마을의 큰 마당이나 장터에서 밤새워 놀이 판을 벌였다. 현재 남사당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위의 여섯 가지 연희를 전승하고 있다.다음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줄타기’가 전통문화의 한 요소로 등장한다.줄타기는 널리 알려져 있는 놀음의 하나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단지 곡예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인 줄타기는 음악 반주에 맞추어 줄타기 곡예사와 바닥에 있는 어릿광대가 서로 재담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줄타기 연행은 야외에서 하며 줄타기 곡예사가 재담과 동작을 하며 노래와 춤을 곁들이는데 곡예사가 줄 위에서 다양한 묘기를 부리는 동안 어릿광대는 줄타기 곡예사와 재담을 주고받고 약사들은 그 놀음에 반주를 한다. 줄타기 곡예사는 간단한 동작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어려운 묘기를 부리는데 무려 40가지나 되는 줄타기 기술을 몇 시간 동안이나 공연한다.이번엔 민속적인 요소 중 하나로 ‘토시’가 눈에 띄었다.공연이 펼쳐지는 와중에 양반 영감은 공길에게 관심을 보이고 밀회를 요청한다.이 장면에서 여름 소품으로 토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토시란 팔목에 기우는 것으로 여름용과 겨울용이 잇는데 영화에서는 여름용 토시가 등장한다. 주로 등나무 껍질의 줄기를 엮어 만든 것이 일반적이고 외에 대나무와 말총 등을 엮어 만들어 입기도 했다. 저고리 소매 안에 착용해 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 땀이 옷에 배는 것을 막아주고 공간을 확보해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다음으로 영화 속에서 장마철 용품을 볼 수 있었는데 중신들의 계략으로 광대들이 사냥에 나가고 불의의 사고로 육갑(유해진)이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 육갑이 실려 나가는 장면에서 비가 내리며 ‘도롱이’를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한다.도롱이는 짚이나 풀을 엮어 만든 과거의 비옷이라 보면 되는데 띠를 이용해 어깨나 허리에 묶어 외출할 때 착용해 비를 피했다고 한다. 실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 전시실에도 도롱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Ⅲ. 결론왕의 남자라는 영화 특성상 장르가 사극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영상을 찾아보면서 나도 몰랐던 전통적인 요소, 민속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보니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다.특히 영화 속 광대들은 비주류의 집단으로 비주류 집단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로 받아들이고 폭넓게 반응한 점은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또한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은 사회의 비주류가 주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라고 풀이하였다 하는데 다수의 관객은 비주류인 광대가 왕 연산을 마음껏 조롱하는 데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윤선도의 오우가에 대한 설명으로 조선시대 윤선도가 지은 연시조로서, 해남에서 은거할 무렵에 지은 작품이다. 산중신곡에 들어 있는 시조로서 수,석,송,죽,월 을 다섯 벗으로 삼아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면서 사물에 대한 짙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말의 어휘와 어미,문장 등을 잘 다듬는 시인의 언어적 감각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이 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이 잘 응축되어 있다. 특히,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물아일체의 경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소나무에 대한 시 부분이다.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나는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다.그리고 소나무를 생각하면 굳은 절개와 변치않는 듬직함이 떠오른다.인생을 살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묵묵히 그 사람 곁을 지켜주고 믿어주며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또한 소나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잠깐 향기가 좋고 아름다운 꽃과 같은 사람보다도 뿌리가 곧아 강직하게 옆을 지켜주는 사람, 편한 친구와 같은 사람이 좋다. 흔히들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 진국이라고들 한다. 이 시를 보며 ‘사계절 푸르른 향긋한 소나무가 되어야지’ 하며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주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였는지, 내 곁의 사람들이 소나무와 같이 늘 푸름을 잃지 않는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며 작은 깨달음을 느끼게 해준 소나무에 대한 시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성서, 동양신화, 그리스신화에서 천지창조그리스 신화-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가이아이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으로 신들 중 혼돈 상태에 가장 가까운 신이다. 아직 차이들의 체계가 정연하게 자리 잡기 전의 원시적 여신이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홀로 우라노스를 낳고 그는 천신으로 이후 높고 낮음,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생긴다.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합으로 지상에 가장 먼저 등장한 존재들은 거인족 티탄으로 그들은 과도기적 신들로서 질서잡힌 구조 속 안착하지 못한 형상을 보인다.그들의 불균형한 형태와 성향이 올림포스 신들에게 저항하다가 추방당하고 마는 존재들이라는 점이 그렇다. 티탄족으로는 헤카톤케이르 삼형제 등 각각 관장하고 있는 영역과 임무로 미루어볼 때 이들 출현으로 혼돈은 사라지고 세계에 일종의 질서가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지는 대양과 강과 대지로, 천체는 태양과 당과 별로 그리고 공간은 시간과 구별되기 시작한다. 우라노스가 티탄들을 추방한데 양심을 품은 가이아는 자신의 또 다른 아들 크로노스와 연합해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이것이 최초의 부친 살해 의식이다. 그러나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하기 두려워한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을 먹어치운다. 제우스만이 가이아의 도움으로 집어삼겨지지 않았고 그것이 막내임에도 올림푸스의 최고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의 힘으로 크로노스는 구토약을 먹게 되고 토해낸 순서는 역순으로 서열과 나이가 반대 순으로 정해진다. 제우스는 하늘,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지하를 나눠 통치하게 되고 다른 신들도 역할을 나눠받게 된다. 세계는 차이들의 체계에 편입된다. 이후 대략 12종류의 변별적 자질로 이루어진 구조로 의미화되고 더불어 세부적 차이들이 더해진다. 가이아는 두 차례 복수를 시도한다. 1차 복수는 ‘기간토마키아’라고 불리우는 신들 간 전쟁으로 가이아는 제우스에게 도전하기 위해 자연과 관계하여 ‘기가스’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은 거인족이고 폭력적이다. 헤라클레스와 헤라,아테네의 도움으로 제우스가 승리하였다. 2차 복수로는 가이아가 티폰으로 시도된다.티폰은 지옥 타르타로스와 가이아와의 결합으로 태어나는데 100개에 이르는 뱀의 머리와 100개의 혓바닥에서 거대한 바람소리를 낸다. 지금은 타이푼, 곧 태풍의 의인화 된 형태로 티폰이 제우스의 힘줄을 강탈하지만 헤르메스와 아테네의 도움으로 구출되고 결국 시칠리아 섬을 던져 티폰을 그 밑에 영원히 잠재운다. 자연에 대한 질서의 승리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상징화한 신화는 찾기 힘들며 이런 방식으로 구조는 여러 차례 구조화 이전의 자연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인류는 티탄족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가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창조하지만 다른 창조물들에 모든 재능을 나눠준 탓에 인간에게 나눠 줄 재능이 없다. 그러자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가 그들에게 불을 가져다 주고 불을 다스릴 줄 알게 된 인간이 문명의 창조자이자 욕구의 통제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지만 인간은 날로 오만해져 이를 처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인간에게 여성 판도라를 선물했다, 판도라는 알다시피 호기심이 강했고 결국 에피메테우스의 집에 있던 상자를 염으로써 들어있던 온갖 재능들은 달아나고 오로지 남은 것은 희망 뿐이였다. 인류가 어떤 고난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여기서 비롯되었다.성서-기독교 문화권에서 천지 창조는 유일신에 의해 이뤄진다. 첫째날은 신은 빛과 어둠을 나누고 낮과 밤의 이름을 정한다. 빛과 어둠, 낮과 밤 이라는 최초의 이분대립적 구조가 탄생한다. 세계는 이제 원초적인 형태로나마 인식 할 수 있는 무엇이 된다. 흥미로운것은 신의 창조의 수단으로 말씀을 사용한다. 말은 곧 언어로 언어의 방식에 따라 세계에 구조를 부여한다. 곧 차이들의 체계를 형성한다. 태초에 구조가 있었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명제는 전혀 비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은 곧 구조주의자였다. 둘째 날 신은 물과 물 사이 창공을 가르고 하늘을 명명한다. 높고낮은, 물과창공의 이분대립적 구조가 발생한다. 셋째날은 물을 한곳으로 모으고 물은 드러나게 한다. 땅에서 푸른 움을 돋게 하고 식물과 과실수를 나게 한다. 그리고 땅과 바다를 명명한다. 땅과 물과 바다, 무용하거나 유용한 식물이 구분되는 등 차이들의 체계가 확대된다. 넷째 날 신은 태양과 달과 별이 있게 한다. 천체가 차이들이 체계 속으로 편입된다. 다섯째 날 신은 바다짐승들과 새들을 나게 하고 어류와 조류들도 구조화 된다. 여섯째 날 어류,조류,육지동물,인간이라는 구조적 체계가 완성된다.
신화 속 공포스러운 여성캐릭터 조사 보고서메두사-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이름의 뜻은 지배하는 자 또는 여왕이다.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케토의 딸로 고르고 세 자매 중 한명이다. 보통 흔히 알려져 있는 메두사가 왠래 아름다운 인간이였다는 전승은 후대 로마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고대의 전승에서는 처음부터 무서운 괴물로 묘사된다. 고르고 세 자매 중 막내인 메두사는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진 두 언니와는 달리 매우 아름다운 외모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가졌는데 자신의 미모 특히 아테나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다가 흉측한 외모의 괴물로 변하는 벌을 받았다고 하는 내용이 가장 유명하다. 이는 후대의 작가들이 첨가한 이야기로 초창기 그리스 시인들은 단순 강대한 존재 내지는 괴물로 묘사한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메두사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관능적인 미녀였으며 아테나 여신을 섬기는 신전의 무녀였다. 그런데 그녀의 아름다움과 색기에 취한 포세이돈이 그녀를 강간했다고 한다. 이것이 처녀신인 아테나에게는 엄청난 신성모독이였지만 강대한 힘을 가진 포세이돈에겐 반기를 들 수 없어 아테나는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렸는데 결국 그녀는 마주치는 순간 돌이 되어버리는 눈,뱀 머리칼을 가진 괴물이 된다. 저주를 받은 후 아무도 못 오는 곳으로 은둔하지만 결국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려 죽는다. 메두사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다에 떨어지자, 거품이 일고 그 거품에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나와KT다고 한다. 이는 포세이돈이 본래 지진과 말의 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메두사와 포세이돈간의 성관계가 있었다는 전승과 함께 페가수스가 포세이돈의 지배하에 있는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퇴치하러갈 때 신들이 자신의 물건을 빌려줬는데 헤르메스와 아테나 그리고 님프들이 검과 방패, 가방, 모자 , 신발 등을 제공했다. 이후 잘린 목은 아테나에게 바쳐져 아이기스에 장식된다. 이 전승에 따라 고대 그리스의 방패 유물 중 메두사의 머리가 부조로 새겨진 것이 많이 있다.히드라-히드라는 머리가 여러 개인 뱀으로 머리의 숫자는 전승마다 달라서 평범하게 1개에서 3개나 5개나 9개로 묘사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론 9개인 경우가 유명하다. 머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며 마지막 머리 혹은 가운데 쪽의 머리는 불사의 머리다. 재생되는 머리는 뱀의 머리 모습을, 불사의 머리는 인간의 머리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전승도 있다. 히드라의 독은 옷 위로 맞은 것도 중독당하니 옷이건 신발이건 막을 수 없으니 아예 그 피와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 중 히드라의 재생가능한 목 부분을 모조리 불로 지져버리는데 정확히는 사촌인 이올라오스가 지진다. 헤라클레스는 이때 나온 히드라의 피를 적셔 독화살을 만들었고 이 화살로 죽은 사람과 괴물이 한둘이 아니고 끝내는 헤라클레스 본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한 일화로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에게 당장 잠잠해지지 않으면 이걸로 쏘겠다고 하자 기겁하며 멈췄다고 한다.헤라클레스 자신 역시 히드라의 독에 중독되면서 전신의 피부가 모조리 타들어갔으며 옷을 벗어버리자 주독된 살이 마구 뜯겨져 나가 처참한 몰골이 되고 결국 헤라클레스 자신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불에 타 죽는 최후를 맞았다.히드라는 범람하는 강들을 상징하며 자르면 두 개의 머리가 나오는 것은 치수를 하면 강이 둘로 나뉘어져 늘어나는 것을 상징한다는 얘기가 있다.머리를 잘라 지져버리고 돌로 눌러버리는 것은 벽돌과 암석들로 치수를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근거로 이름에 그리스어에서 물을 의미하는 어간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사실 물이 아닌 물뱀의 여성형에서 비롯된 말이다.세이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들이다. 세이렌은 이탈리아 반도 서부 해안의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사이레눔 스코폴리라는 섬에 사는 바다의 님프들이다. 세이렌은 여성의 유혹 내지는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질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특히 암초와 여울목이 많은 곳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노래로 유인한 선박들이 난파당하기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노래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수많은 남성들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세이렌은 두 차례에 걸쳐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부하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결박을 풀지 말라고 했다.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디세우스는 결박을 풀려고 몸부림 쳤다. 그러나 귀마개를 쓴 부하들은 명령에 순종하여 그를 더욱 단단히 결박했다. 결국 선박의 항해는 계속되었고 노랫소리는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섬을 지나갈 수 있었다. 이에 세이렌들은 모욕감을 느껴 단체로 자살했다고 한다. 또한 뛰어난 음악가이자 신인인 오르페우스가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라는 선박을 타고 항해하던 도중 세이렌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오르페우스가 세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맞대응하자 이에 모욕감을 느낀 세이렌이 바다에 몸을 던져 바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