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파괴된 현실-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고 -영어교육과 201211002 이민정작가 김영하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단막극으로 텔레비전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대중성이 있는 작가이다. 발표작마다 화두에 오르는 그의 소설 중에서도 『오빠가 돌아왔다』는 그간 그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치가 파괴된 현대 사회 속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통쾌한 야유를 보내고 있다. 또한, 독자들은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기존에 읽어오던 것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소설처럼 무겁고 심각하게 현실을 서술하지는 않지만,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무겁고 암울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지극히 담담하고 심지어는 가벼워 보이기까지 하는 문체나 서술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것은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혹시 내가 이렇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즉, 어떤 상황을 통해 현실에 대해 그저 담아낼 뿐인 소설 속에서 독자는 그러한 세태를 되돌아보는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김영하의 소설들은 ‘나르시시즘, 섹스, 죽음’등과 관련된 인간의 삶의 문제를 보여 준다. 『오빠가 돌아왔다』에 수록된 여덟편의 단편들 중에서도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과, 「그림자를 판 사나이」, 「너를 사랑하고도」, 「너의 의미」, 「크리스마스 캐럴」은 남녀의 사랑과 섹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과 ‘사랑’과 ‘성’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현재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와 보편적 가치가 상실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가치는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감정적·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 가치에는 기본적한시적인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지적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 현실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이다. 첫째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정의 해체와 집안에서 권위를 잃어버린 가장의 모습이다. 둘째는 불륜과 성 접대의 문제이다. 셋째는,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체가 아닌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가족의 해체와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린 가장의 모습은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오빠는 아빠의 폭력에 못 이겨 오래전에 집을 나갔고,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와 한집에서 같이 살지 않고 근처에서 함바집을 운영 하며 별거 중이다. ‘나’와 아빠만 한 집에서 둘이 살고 있다. 콩가루 집안처럼 가족 구성원 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다가 다시 합치게 되는 한 가정의 모습을 14세 사춘기 소녀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오래전 집을 나갔다가 못생긴 여자아이를 데리고 돌아와서는 앞으로 같이 살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오빠, 경찰에 자신의 아들을 ‘청소년 성매매 사범’이라고 신고하지만 경찰 조사를 받고 돌아온 아들에게 오히려 흠씬 두들겨 맞는 아빠의 모습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건장한 사내로 성장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훈계도 제대로 못한다. 가장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맞거나 자신의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금으로 아들의 폭력 앞에 방어의 자세만을 취할 뿐이고, 아들에게 힘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긴 무기력한 존재이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 할지라도 어떻게 자식이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반인륜적인 상황에서 ‘나’의 반응이다. ‘나’는 아빠를 보고 ‘구제불능’, ‘나쁜 아빠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간’, ‘똥개’라고 하며 오히려 오빠의 편을 든다. 물론 ‘나’는 아빠만큼이나 오빠도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오빠가 실질적 물주로서 집안의 기둥역할을 하기에 그의 편을 드는 것이다. 물질적인 기준을인 이유를 대면서 맞선다. 어느덧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 가정에 끼치는 경제 적인 기여도가 줄어들면서 집안 내에서 아버지들이 차지하게 되는 자리는 줄어들고 아내와 자식들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한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도 아버지는 결정권이 없으며 다달이 직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받아오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작품 속에서 줄넘기 줄에 온 몸이 꽁꽁 묶인 채로 아들을 저주하다 쓰러져 잠이 드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린 지금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이 느껴진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관점에서 서술되는데 그로 인해 가져오는 효과는 두 가지 이다. 첫째, 작품 속 상황이 심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는 자식의 패륜적인 행동은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경악할 수 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 임에도 이를 14세 소녀의 입장 에서 서술함으로 분위기가 보다 가벼워지고 오히려 별일 아닌 문제로 웃어넘기며 지나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둘째,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친근함과 생동감을 전달한다. 인물들을 묘사 하거나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것에 거침이 없고 중학생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나’가 바라본 관점에서 사건이 서술되다 보니 독자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그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나’가 자신의 가족 한명 한명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른 인물들의 속마음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이 작품 속에서 현재 사회의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두 번째 소재는 불륜과 성 접대 이다. 「너를 사랑하고도」에서 여대생 ‘인숙’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였다. 의원 회관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식사를 하게 되고 첫 만남에서 잠자리 까지 가지게 된다. 인숙은 잠자리를 가진 이후 생전 쓰지 않았던 일기장에다가 “사랑은 애써 치가 불안해지자 인숙에게 이별을 통보함으로 이들의 관계는 짧은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불륜’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격렬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불륜을 저지른 남녀는 자신들의 사랑도 사랑으로 인정해줄 것을 주장한다. 과연, 불륜도 사랑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너를 사랑하고도」에서 인숙과 국회의원 보좌관의 관계는 명백한 불륜관계이다. 불륜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불륜이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는 뜻이다. 이를 토대로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어떠한 사람인지 살펴보자. 그는 여대생 인숙과 몇 번의 만남과 성적인 관계를 가짐으로 자신의 아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그가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그와 인숙과의 관계는 질타 받을 필요가 없지만, 엄연히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기에 그들의 관계는 정상적이지 못하며 그들의 사랑 또한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보좌관은 일시적인 육체적 쾌락에 이끌려 보편적 가치인 ‘신뢰’를 깨뜨렸고, 그의 아내에 대하여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 「너를 사랑하고도」에서 결국에는 인숙과 보좌관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고 깨지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신뢰’를 깨뜨렸음에도 자신들은 감정에 충실했을 뿐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 달라며 불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랑은 사회로부터 인정 받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너의 의미」에서는 여러 여자들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말과 행동이 허세로 가득 찼지만 실제로 별 볼일 없는 충무로 주위를 떠도는 감독이다. 그는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 줄 ‘아이템’을 찾아 나서다가 문예지에 실린 신인 소설가 조윤숙의 당선작을 읽게 된다. 그는 적당히 작품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그가 원하는 본론인 시나리오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다가 감추고 있었던쓰레기’라고 말하며 존재를 낮추고, 이를 핑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것을 정당화 하려 한다. 문란한 생활은 자신에게 향락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근거이므로 이에 대해서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개선할 생각도 없기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조윤숙의 사랑을 한사코 마다한다. 이 작품에서 ‘나’의 문제는 자신이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행동을 개선시킬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는 여러 여자들을 자신의 향락을 채워주는 하나의 대상으로만 보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며 아무런 부담 없이 일시적인 성적인 관계만 맺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며 나타난 조윤숙은 그에게 있어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향락의 생활을 빼앗아가는 타자이며 방해꾼과 같이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즉, ‘나’는 여자들과의 만남에서 어떠한 책임도 지고 싶지 않고, 여성과의 관계를 단순한 유희로 보는 개인의 일시적인 쾌락적 욕구에만 집중하는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인물이다.「너의 의미」에서 ‘나’와 신인작가 조윤숙과의 관계는 현재 우리나라 연예계의 어두운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하루에도 많은 신인 가수들과 배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이미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 연예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아직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여배우들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유명한 감독의 영화나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서라면 정치인들에게 성 접대를 하거나 스폰서와의 은밀히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대중들까지도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이다. 2009년에 소속사의 성 접대 강요를 견디다 못해 결국 자살을 택했던 장자연 사건을 통해서 그동안 행해져왔던 연예계의 성 접대 현실들이 낱낱이 뉴스를 통해서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나 여자 연예인들은 하나의 다.
-학교 폭력 사안 발생시 대응절차와 학교폭력 자치위원회 -영어교육과 201211002 이민정이번 수업의 내용은 학교 폭력 사안 발생시에 학교와 교사는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 대응해야 하는지와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대해서 자세히 배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도 위원회’라는 것이 열려서 주로 학년부장과 선도부를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주로 사건을 처리하시고 그 안에서 가해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학교 이미지의 실추를 우려하여 왠만하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부모들끼리의 합의를 보는 것으로 해결을 많이 했고, 가해 학생들의 처벌정도도 사회봉사를 일정시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해학생 들은 선도위원회가 끝나고 징계를 받은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반성하는 듯 보였으나, 금방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서 교내에서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일탈행위를 반복적으로 했다.요즘에는 학교 폭력 문제가 사안이 심각한 만큼 학교 내에서도 폭력 사건이 일단 접수되면 학교 자치위원회가 열리는데 구성원이 학교 교장, 교감, 학부모 대표와 경찰서 소속 경찰 공무원이나 법률전문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 부당하다거나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되면 피해학생측과 가해학생측에서 결과에 대해서 분쟁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분쟁조정을 무조건 신청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학생 측에서 동의를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발표조에서 자치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그 역할과 자치위원회가 열리면 어떤 단계로 이뤄지고 그 후 결과에 대해서 분쟁조정 신청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해줘서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발표를 들으면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첫 번째는, 학교폭력 사건으로 자치위원회를 소집해야할 때 교사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그 예로, 가해학생이 즉시 잘못을 인정하여 피해학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이에 대해 피해 학생이 화해에 응하는 경우에는 자치위원회를 열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혀도 사과만 한다면 해결되는 것인가?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화해한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는지가 의문이었다. 또한, 자치위원회를 열지 않고 교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에 대한 조치 수위는 오직 자치위원회에서만 결정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자치위원회에서 처벌이나 조치 수위를 결정하는데 때로는 그 결정이 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학생측의 부모가 학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피해학생의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극단적으로 예를 들었을 때, 자치 위원회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수위를 약하게 내린다면 피해학생측에서는 그 결정을 그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지도 문제였다. 분쟁조정이라는 부분이 있지만 다 수용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학생측에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