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구의 증명작가명 : 최진영출판사 : 은행나무발매일 : 2023.04.26.『구의 증명』 ― 가난한 사랑 노래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이해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싶고, ‘현상’을 이해하고 싶고,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확신해 읽지 않았던 『구의 증명』을 읽은 건 중학생인 조카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신작 소설도 아닌 이 책을 어떤 경로로 조카가 읽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몇 번이고 “구가 불쌍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조카는 왜 구가 불쌍하다고 느꼈을까.꽤 많은 수의 독자가 이 소설을 사회소설로 받아들인 것과 별개로 최진영 작가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연애소설이라고 강하게 항변하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실제 출판사에서도 이 소설을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상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中『구의 증명』에서는 신경림 작가의 「가난한 사랑 노래」의 냄새가 난다. 이 소설은 21세기에 쓰인 「가난한 사랑 노래」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사회소설로 받아들이는 것도, 연애소설로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옳은 감상이다. 1988년 신경림 작가의 시 속 인물은 가난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 수십 년 후 소설 속 담이는 가난함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삶이 더 행복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다.구는 왜 불쌍한가?조카가 불쌍하게 느낀 대상은 왜 구였을까? 실제 구의 상황이 담이보다 처참한 건 사실이다. 처참하다는 것은 순전히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는 부모를 모르는 담이보다 구의 상황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될 만큼 구의 경제적 상황은 악화됐다. 구의 부모는 계속 해서 빚을 만들었고, 그 빚은 족쇄가 되어 구가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했다.부모를 모른다는 것 외에는 담이의 상황이 더 나았다. 할아버지에 의해 길러진 담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비구니 이모에게 자신을 의탁하게 된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구에 비해서는 담이가 더 안정적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구가 아니었다면 담이는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꿔볼 희망이 있었다.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사채업자들이 쫓아다니지 않았으니까.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독자가 나의 조카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다. 지금의 40대는 경제적으로 부모 세대를 뛰어넘을 수 없는 최초의 세대라는 자조를 꽤 오랫동안 해왔다. 그 이후 세대의 상황은 더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30대 후반에 건강상의 이유로 정규직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왔을 때, 주변 어른들은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나를 대했다. 하지만 1년 반 동안의 요양을 끝내고 사회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기성세대의 선입견과 달랐다. 회사는 경력직을 원했고, 사회초년생의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현실을 직접 목도하니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너의 미래가 창창하다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게 됐다.또한 구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언정 젊은 세대의 부모, 조부모 세대가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할 수 없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노후 준비를 철저히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조카만 하더라도 조카가 태어나고 얼마지 않아 친가의 사업이 망했고, 그 뒤로 계속 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다거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구가 그랬던 것처럼 젊은 세대의 미래도 불행할지 모른다. 구가 불쌍하다는 건 곧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3. 담이 구를 먹는 이유이 책에 대한 거부감은 연인이 죽은 연인을 먹는다는 기본 플롯 때문이었다. 구와 담의 입장을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이 소설은 날 것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삭막하다. 담이 구를 먹는 장면 또한 결코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는다. 구와 담에게는 성스러운 의식이었을 행위지만 이를 상상하는 독자에게는 역겹고 곤욕스러운 간접경험이었다. 차라리 조리를 해서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런 장면은 작가의 의도를 꾹꾹 눌러 담아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구의 시신을 신선하게 보관해뒀다가 스테이크 따위의 고급요리를 만들어 우아한 칼질을 통해 시식하는 것은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전국을 떠돌며 살았던 구와 담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이다. 담이는 고무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구를 깨끗하게 씻기고 염을 하듯 알콜솜으로 구석구석 닦아낸 후 방에 눕혔다. 그리고 생전에 구가 말했던 것처럼 죽은 연인을 먹었다.담이 구를 먹는 장면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자 사랑의 가장 숭고한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만 범인(凡人)인 우리들 중 그 누군가가 죽는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게 자신의 속도에 맞춰 굴러간다. 최하층에 있는 구의 죽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구도 구의 존재를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담이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신의 연인인 구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구를 먹는 의식을 이행한 것이다.이 의식은 담이가 계속 해서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미 죽은 구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서 담이는 구의 시체가 썩어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는 방식, 즉 먹는 것을 택했다. 또한 같은 이유로 구의 죽음 앞에서 멈춰서는 것이 아니라 구와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이모를 잃고, 이제 구마저 잃어버린 담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를 자신의 안으로 품어야 했다. 자신의 몸이 구를 품었기 때문에 담이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하거나 홀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구를 먹은 담이는 어떻게 될까? 담이가 상상했던 것처럼 경찰에 붙들려 교도소에서 몇 년간 지내다가 나올 수도 있다. 구의 존재를 모르는 세상에 잊혀져 담이가 구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고,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하지만 왠지 담이라면 경찰에 자신이 구의 시체를 먹었다고 자수할 것만 같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젊은 남자가 결국 그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뉴스는 평범하지만, 그의 연인이 그 사체를 먹었다는 것은 세상에 오래 기억될 만한 이슈다. 세상이 구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한때 세상에 구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담이라면 할 법한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작가 또한 독자가 구와 담이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이 장치를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덫에 걸려 든 것이란 추측도 해본다.4. 당신은 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세속적인 나는 단호하게 구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대단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모와 그 형제자매가 나의 연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선호한다. 아무리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잘 맞고,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앞서 말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 사람에게 이성적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본인이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할 정도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족이 경제적으로 기대는 상황이라면 경제적으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기본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가깝게 두고 싶지 않다. 연인 때문에 내가 한심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으로 두고 싶지 않다. 우리 두 사람의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사람이 나의 연인이었으면 좋겠다. 연인이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연인의 가정환경이 위태로운 건 싫다. 그건 나의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다.그러므로 나는 구를 사랑할 수 없다. 생활고 때문이란 이유로 빚을 만들고 그 빚을 구가 감당하게 만들었고, 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구의 명의를 도용해 구 앞으로 빚을 만든 부모라는 이름의 덫.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구가 그 상황을 어떻게 모면한다고 해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 굴레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될 것이다. 구가 이 쳇바퀴를 벗어나 달아난 것도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직장동료 중에 동생이 도박을 하고 사채를 쓴 사람이 있었다. 사채업자가 회사 앞까지 찾아왔다. 동생이 진 빚을 가족에게 해결하라고 강요했다. 동생은 그가 부업으로 하던 사업체의 공금에도 손을 댔다. 조만간 해결될 거라던 그는 얼마 전 집안 일 때문이라며 저녁 약속을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그의 상황과 처지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여기에 엮이기 시작하면 정말 같이 지옥으로 가는 거다.
작품명 : 정신과는 몇 번이고 나를 죽음에서 꺼내주었다작가명 : 긍정약사출판사 : 얼룩소발매일 : 2024. 4. 11.“이제 운전이 무섭지 않죠?”새로운 직장에 다니면서 운전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롱면허에서 탈피하기 위해 연수를 받던 마지막 날,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사실 처음부터 무섭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때 내가 먹고 있는 약 때문에 감정의 동요가 줄어들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사거리를 건널 때면 내 머리 속에 갑자기 나타난 차에 부딪히는 영상이 재생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깨달았다. 나는 운전이 무섭지 않았던 게 아니라 죽는 게 무섭지 않았던 거였다.억지로 사고가 날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난다면, 괴롭지 않게 즉사했으면 좋겠다. 내가 없는 편이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에게 더 나을지 모른단 생각도 종종 한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미래를 계획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항불안제 복용 횟수와 양이 줄어들면서 항우울제를 격일로 복용하며 약을 끊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비하고 있었다. 내가 약을 줄이겠다고 했을 때 마지못해 동의하던 의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 같다. 항우울제를 격일로 복용하면서 몸 안에 누적된 세로토닌 농도가 서서히 낮아지는 걸 느꼈지만 모른 체했다. 그 결과 항불안제 복용 횟수와 복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항우울제를 매일 복용했고, 며칠 후 상태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놀라운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약을 줄이거나 끊어보겠다는 시도는 약 4년간 계속 되어 왔고, 늘 실패했다.처음 병원에 갔을 때를 떠올리면 많이 나아졌다. 평범하게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늘 더 나은 상태를 희망한다. 네 알의 약을 먹다가 한두 알만 복용하게 되었는데도 내 상태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은 ‘이 정도면 약을 안 먹어도 되지 않나?’로 왜곡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래를 계획하지도 못하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최근 입사한 회사는 전에 본 적 없이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먼저 나간 이 중에는 “어떻게 이렇게 못된 사람들만 모아놨을까?”란 생각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한 한두 명이 잘못된 물을 들인 건지, 나쁜 행동을 하는 선배나 외부 사람들의 행동을 접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게 된 건지,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은 알 수 없다. “우리와는 사고방식이 다릅니다.”라는 인터넷 밈에 딱 맞게 정말 기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늘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저 역대급이었을 뿐. 자꾸만 이들과 부딪히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란 생각에 의사와 상담했던 적이 있다.“도덕성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건 본인도 아시죠?”의사의 한마디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했다. “강박성 인격 성향”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포털에서는 “강박성 인경 장애”밖에 검색되지 않았던 걸 보면 의사 입장에선 장애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고, 그 정도는 아니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도덕적 강박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남들이 나만큼 열심히 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내가 비정상이고 남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그래서 남들이 나만큼 열심히 일하거나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강박성이 강하게 튀어나왔다. 의사는 내가 새로운 직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걸 그렇게 설명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다. 그러니 자신을 교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내가 그런 사람인 건 알아야 했다. 적절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가 특별했던 건 그때 느꼈던 깨달음 같은 걸 저자의 정신과 상담일지를 보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와 병명과 증상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공감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저자의 네 번째 의사는 저자에게 “억울한 것을 싫어한다.”라는 말과 함께 “상사들의 신뢰감이 지나친 나머지 이상한 방식까지 강요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은 시점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나를 자극하는 상사와 부딪혀 튕겨 나온 때였다.“억울한 것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누구나 싫어한다. 하지만 나처럼 억울한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보다 참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심지어 다른 사람이 억울한 꼴도 못 봐서 제3자의 오해도 내가 풀려고 난리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사는 무조건 자기 말이 맞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독 나에게 예민했다. 직전 상사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와 친한 내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선입견이 너무 강해서였던 것 같다. 나의 진심은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평범한 이들처럼 억울해도 참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약사였던 저자가 부딪혔던 “이상한 방식까지 강요하는 상황”은 가임기 여성이 접촉했을 시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는 약을 수백 알 절단하는 일을 약국장이 강요한 일이었다. 이 일로 저자는 약국을 그만두고 노동청에 신고했다. 이런 상황과 비교해 보면 내 상황은 외려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강요받은 상황은 국고 사업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을 사업비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거였다. 불가하다고 말하자 팀장은 불가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생각하라고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거라며 나의 업무를 비하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나에게 지시했다고 해서 내가 하지 않을 건 아니었다. 어차피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다만 내게는 위험요소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매번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팀장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중간에 끊고 지시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명확한데 어째서 매번 내게 묻는 건지 궁금했다.최후에 택한 방법은 웬만한 건은 가능하다고 답하는 거였다. 단, 거기에 위험요소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대화로는 늘 차단되기만 하던 이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건 우연히 메신저로 요약 보고하면서부터였다. 보고서도 읽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바로 위 상사가 메신저로 보고 받는 걸 선호했기 때문인지 이 방법이 꽤 유효했다. 또한 텍스트로 남은 기록이 팀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줬던 듯하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내 일이라며 나를 비아냥댔던 그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일들을 하나씩 놔주기 시작했다. 그에게 나는 독이 든 성배였다. 필요하지만 싫은 존재. 그는 나를 짓밟으면서 동시에 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퇴사했다.그는 나를 신뢰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나를 신뢰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상사들의 신뢰감이 지나친 나머지 이상한 방식까지 강요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라는 문장을 책에서 본 순간 모순적인 상황이 모두 납득됐다. 직장에서 제대로 일하는 몇 안 되는 직장인들이 겪는 모든 불합리한 상황이 이 한 줄로 설명된다. 왜 나에게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넘기려고 하는지, 왜 내가 두 명분의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타부서의 업무를 내가 맡는 게 어째서 당연한 일인지, 내 담당이 아닌 일에 대한 설명을 왜 내게 요구하는지 등. 일 좀 한다는 직장인들이 겪는 억울한 상황은 모두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을 적당히 할 것인가?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사의 성향에 맞춰 살아남는 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가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을 계속해서 영위해 나가려면 이런 노력들이 필요하다.
작품명 : 저주토끼작가명 : 정보라출판사 : 래빗홀발매일 : 2023. 4. 13.1. 들어가며《저주토끼》는 정보라 작가의 환상호러 단편소설집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20개국에 번역 출판된 베스트셀러다. 장르 특성상 동화 같은 면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포물의 성격도 갖고 있지만 결코 아동용으로는 볼 수 없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르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아무래도 부커상 후보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실제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이야기의 흡입력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불쾌함과 역겨움이 느껴졌다는 감상평을 남긴 이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독자들 중 한 사람이다. 아마 나는 정보라 작가의 작품을 앞으로 더는 굳이 찾아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쓴다면 이런 느낌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아이러니한 욕망을 느끼기도 했다.총 열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동명의 단편인 로 시작된다. 이 소설을 포함해 , , 는 동화적 색채가 비교적 강한 편이다. 물론 현대적 동화라기보다는 안데르센 원작과 비슷한 느낌의 동화다. 공통적으로 권선징악형 결말로 마무리된다.2. 저주토끼 - 저주 사업이 호황을 누리는 세상는 저주 용품 만드는 일이 가업인 집안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저주 용품은 개인적인 목적으로는 절대 만들어서는 안 되지만, 할아버지는 딱 한 번 대기업의 횡포로 파산하고 자살한 친구의 복수를 위해 아름다운 토끼 전등을 만들었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느 날 사라졌고 언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달도 별도 뜨지 않는 밤이면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손녀에게 토끼 전등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라도 할아버지를 보고 싶은 손녀는 진실을 감춘 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다.이 소설을 읽는데 어째서인지 삼양라면 사건이 떠올랐다. 라면업계 1위였던 삼양라면은 우지파동으로 명예가 실추됐고,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우지 파동은 5년 8개월 만에 무죄로 마무리됐지만, 1989년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삼양라면은 현재까지도 1위를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한 할아버지의 친구는 대기업의 비방으로 공업용 알코올을 섞은 술을 제조하고 있으며, 그 술을 마시면 눈이 멀고 불구가 되고, 많이 마시면 죽는다는 유언비어에 휘둘리게 된다. 이 소문은 좋은 가치관으로 사업을 하던 한 가장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지파동 역시 당시 경쟁사였던 농심이 의도적으로 비방한 사건이라는 추측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일은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소설 말미에서 ‘나’는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 나”라면서 저주 사업이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라고 밝혔다.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나에게 했던 만큼 불행하길 바라는 누군가들이 생겼다는 점에서 속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여럿이 모여 한 사람쯤 담그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구는 것도 눈앞에서 지켜봤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된 이야기를 주변에 뿌리고 다니는 이들도 만났다. 권선징악이라는 게, 인과응보라는 게 꼭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3. 머리 ? 쓰레기처럼 버려진 아이들의 복수소설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 , , 였다. 그리고 , 는 좀 역겨웠다. 이 두 작품 때문에 정보라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떨어졌다. 는 하수구를 통해 버려진 나의 오물들이 뭉쳐져 생명력을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이 되고, ‘그녀’의 옷을 뺏어 입고는 늙은 나를 변기 속에 처박고 젊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작가가 더럽기만 한 소재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의문스러웠다. 아마 이 이야기의 핵심은 ‘머리’라고 불리던 생명체가 ‘그녀’와 다투며 했던 말에 압축되어 있는 듯하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말에 ‘그녀’가 배은망덕함을 말하자 ‘머리’는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라며 분노를 표출한다.‘머리’가 내내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머물렀고, 그녀에게서 발생한 부산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머리’는 버려진 아이들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끔찍하게 여겼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머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머리’는 끈덕지게 살아남았고, 마침내 그녀를 하수구에 처박고 자신은 세상으로 나간다. 원치 않는 생명을 갖게 됐고 그러한 과거 때문에 불안해하고,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존재에 무뎌졌고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생명체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가 지금까지 일구어놓은 작은 행복은 그녀와 함께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부정하려고 했던 과거,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대한 비인간적인 태도들이 업보가 되어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니었을까?4. 차가운 손가락 ? 악플러에 현혹되는 것 또한 악플러앞서 언급한 두 소설에서 보듯이 장보라 작가의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어렵지 않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꼬집는다. 은 인터넷 문화를 다루고 있다. 본인들은 큰 의미를 담지 않고 배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러한 비난을 받는 대상은 큰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소설은 한 발 더 나가서 온라인상의 믿을 수 없는 화자가 하는 말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을 타깃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소설 속 그녀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둠에 놓여 있다. 이때 그녀에게 목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그녀는 차가 가라앉고 있다는 말에 목소리의 재촉에 따라 차 밖으로 나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내민 손가락에 의지해 사라진 기억의 조각을 붙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하는 말은 참 기이하다. 처음에는 최 선생님의 신혼집 집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가, 최 선생님이 결혼 일 년 만에 이혼당했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짝사랑하던 남자 때문에 자살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고 말을 바꾼다.목소리가 내뱉는 말들은 온통 불쾌한 말들뿐이다. 최 선생님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조롱하는 속내가 뻔히 들어나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이 진실인지 즉석에서 목소리가 지어낸 말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 최 선생님을 조롱하던 목소리는 점차 대상을 확대해 사람 전체로 옮겨진다.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 이 말은 목소리에 의지해 온 ‘그녀’를 대상으로 한 말이지만, 인터넷 떠도는 소문에 흔들려 본 모든 이들의 심장을 뜨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말이다.
작품명 : 좋아하는 것을 돈으로 바꾸는 법작가명 : 멘탈리스트 다이고출판사 : 동양북스발매일 : 2017. 9. 15.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모든 직장인의 꿈이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직업이다. 하지만 그 형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책을 읽고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강연을 하고 컨설팅을 함으로써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걸어왔다. 포장을 걷어내면 사실 특별할 거 없는 이야기다. 독서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내 입장에서 이 책은 나와 결이 맞는 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완독했다. 이 책에서 딱 하나 건진 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계획 세우는 게 취미라고 할 정도로 계획 세우기를 좋아했다. 그걸 멈춘 게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봤다. 아마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에 들어간 시점부터 나에게는 인생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사라졌던 것 같다. 나는 오늘 다니는 회사를 당장 내일 그만둘지도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돈을 버는 일보다 나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 고향으로 내려와 삼여 년을 보내는 중 일 년 반은 요양을 했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에는 ‘안 되면 그만두지 뭐!’라는 마음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이 년 동안 세 곳의 회사를 다녔다.정규직이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으므로 정규직과 사학연금을 버리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정적인 수익원이 있다는 게 비로소 소중해 보인다. 여전히 정규직 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회사를 다니든 프리랜서가 되든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한 수익성을 갖출 필요는 있다. 장기계획을 세워야지만 내게 필요한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도 판단할 수 있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목표도 수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바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건 이런 계획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저자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보다 목표를 가지고 돈을 모으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이고의 구분에 따르면 나는 전자에 가깝다. 애초에 최저생계비 기준이 남들에 비해 많이 낮은 삶을 살고 있었고, 물욕도 없다. 내 유일한 낙은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17년 동안 살았던 서울을 떠나왔을 때 부모님은 나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했다. 그렇게 낮은 기대 속에서는 풀타임 잡을 갖는 것만으로 가족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고가의 선물도 부담 없이 받던 가족들이 퇴사한 이후에는 나의 호의를 거절했다. 예전처럼 하기 위해서는 비슷하게라도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번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의 경제 상황이 나쁘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왜 이렇게 욕망하는 게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겠다.최근 나의 관심사를 굳이 찾아보자면 반려로봇이다. 정확히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우울증 환자의 정서에 좋다는 말에 꽂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고양이와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는 조카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얻을 수 있는 장점만 취하고 그에 동반되는 책임과 의무는 지고 싶지 않다. 그렇게 알게 된 게 일본 노인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의 정서에 도움을 준다는 반려로봇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의 정서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이 상태다보니 열심히 알아보기만 하다가 결국은 늘 그렇듯이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욕망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따지는 게 너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억지로 쥐어짜서라도 무언가를 욕망해보려고 한다. 그게 나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에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아홉 가지 질문’이라든가 ‘몰입의 여덟 가지 구성 요소’라는 체크리스트가 있다. 이 리스트를 훑으면서 내가 직전 회사에서 했던 일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책 읽는 것에만 집착해서 관련 직업을 창조해낼 필요는 없다. 직전에 내가 했던 일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활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책자 형태의 자료집을, 대부분은 공문서를 읽고 정리하는 일은 책읽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회사는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회사들에 비해 업무 환경도 좋은 편이었다. 문제라면 기존에 있던 직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기 위해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사무실이라는 점이었다. 다행히 팀장님과 잘 맞았고, 업무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기에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인사이동으로 들어온 새 팀장님은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과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오해했고, 나를 누르기 위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내 상황을 이용했다. 괴로우니 대화를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차례 했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을 멈추기 위해 나는 퇴사했다. 퇴사하기 전에 수첩에 쓴 나의 새해 계획이 ‘회사 오래 다니기’였다는 건 비극이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내가 너무나 가엽고, 가엽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사람 때문에 퇴사하게 된 건 정말 슬픈 일이다.그러나 이 책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괴로운 환경에서도 버텨야 했을까? 몇 번을 반복해 생각해 봐도 내 대답은 똑같다. 나는 절대 그 사무실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나는 똑같은 회사에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사업단에 지원했다. 며칠 뒤는 면접이고, 지방의 인력풀이 워낙 좁다보니 이변이 없다면 나는 퇴사 2주 만에 다시 같은 회사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번에는 잘 적응하며 다닐 수 있길 바란다.물론 할 수 있다면 내가 좀 더 진심으로 좋아할 만한 일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회사에서 인간관계 관련 문제를 겪다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둬야만 될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는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다이고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바로 도전하게 되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해볼 동력, 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도전하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를 요구함에도 다들 그렇게 말한다.백수로 살아본 경험에 빌어 말하자면 이 말은 정설로 보인다. 백수가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장을 찾는 데 급급하게 된다. 시간은 많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마음의 여유는 줄어든다. 몸이 힘들더라도 직장에 다니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게 낫다. 다음에 일하는 곳에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조직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을 듯하다. 하지만 계속 다니기는 할 것이다. 조직이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체념은 있겠지만, 다음 스텝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그래서 2주간의 공백기가 소중하다. 이 기간 동안 작은 성과라도 내고 싶었다. 앞서 읽었던 도 한몫했다. 뿌듯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내가 했던 사소한 일들조차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이불 정리, 책상 정리 같은 정말 사소한 일이다. 이 일들이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줬냐고? 침대에서만 뒹굴 때보다 잠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됐고, 의미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 시간도 줄었다. 그리고 정리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사소한 행동들이 이끌어 준다.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건 건강이다. 퇴사 후 활활 타오르던 의욕을 꺾은 건 퇴사 전부터 시작된 배앓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스트레스성 위염이었던 것 같다. 아프다는 건 행동하지 않으려는 핑계라는 마음가짐은 하루만에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반성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냥 뭐라도 하고, 뭐라도 되고 싶었다. 열심히 약과 영양제를 먹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 같았으면 일주일 이상은 누워 있었을 텐데 이틀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심지어 아픈 중에도 조금씩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을 리뷰하거나 일상 포스팅을 남기기도 했다. 내 자신의 하루가 뿌듯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한 사소한 일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애썼다.
작품명 :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작가명 : 김은덕, 백종민출판사 : 어떤책발매일 : 2021. 11. 30.월급 생활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 벌써 N번째 입사를 하고, N번째 퇴사를 했다. 왜 자기개발을 하지 않느냐고, 왜 도전하지 않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백수일 때의 내 생활이 그리 바람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처음에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이후에는 복용중인 약 탓이었는지 잠을 아주 많이 잤다. 특이한 것이 이 잠이라는 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회사에서는 싹 달아났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보니 나는 일이 아니면 내 시간을 알차게 경영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꾸준히 퇴사를 하면서도 꾸역꾸역 입사했다.는 제목에 이끌린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내가 하루를 단단하게 경영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이 사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하루를 단단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단하게 살아가는 법은 아주 심플하다. 계획을 잘 세우고,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참 쉽죠잉?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은 시점은 나의 N번째 퇴사와 맞물렸다. 퇴사 후 맞이한 첫날, 난생 처음 이불을 정리했다! (물론 금방 또 엉망이 됐지만) 그리고 중학생이 된 조카에게 (내가 사주고 내가) 물려받은 초등학생용 책상을 정리하고 그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늘 침대에 기대 테이블 위에 얹어 쓰던 생활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첫날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아침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하나 마치기도 했고, 지금 이 글도 책상 앞에서 쓰고 있다.또 다른 나의 약점은 앞서 말했듯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이다. 늘 먹고 있는 약 탓을 하며 잠이 오는 걸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침대에 눕곤 했다. 일상을 침대에서 보내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 도서관에 가도, 카페에 가도 잠은 왔고 심지어 늘어지게 자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 무엇도 나의 잠을 막지 못했다. 잠을 덜 자기 위해 회사를 다녀야 하는 불쌍한 중생이 나다. 하지만 오늘은 문득, 잠을 이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샤워를 했다. 외출까지 몇 시간이 남았지만, 단지 졸리다는 이유만으로 샤워를 했다. 덕분에 외출 준비가 한결 여유로워진 건 덤이고, 잠도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하다보면 잠을 이겨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출발이 좋은 첫날이다.하지만 곧 이어 배앓이가 찾아왔다. 며칠 전에 배탈이 났고, 어제 저녁에 잠이 들면서도 배가 살짝 아프기는 했다. 슬픈 건 진짜 배가 아픈 건지 신경성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놈의 배앓이 때문에 하루를 알차게 경영하려던 내 의지가 약간 꺾였다. 예정에 있던 외출도 취소할까 했으나, 워낙 중요한 일이서 배앓이가 괜찮아지길 바라며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어이가 없는 것은 외출하고부터 돌아와서까지 배앓이는 그 전처럼 심해지지 않았다. 약 효과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였다면 내가 이 정도 배앓이에 침대에 누워야 될 만큼 몰입(?)했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불편해야지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카페도, 도서관도 쉽게 집으로 돌아올 마음을 먹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는 게 나에게는 바람직한 방법일지도 모른다.퇴사 후 첫 날은 이렇게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것들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는 데 쓰고 있다. 기왕이면 매일 매일 생산적인 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작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지 않은가? N년째 미루고 있는 일들을 시도할 때가 바로 지금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기다. 그래서 (공부는 안하면서) 지방직 공무원 원서도 접수했고, 퇴사한 회사의 다른 부서에 지원서도 냈다. 그리고 집에서는 프리랜서를 꿈꾸고 있다.아, 단단한 하루를 보내면 출근하지 않아도 생활이 되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본인들이 조기은퇴했다고 주장하지만 풀타임 직장인에서 조금만 일하는 프리랜서가 된 것뿐이다. 본인들에게 필요한 최저생계비 정도만 벌 정도로 일하고 그 외 시간은 여행이나 외국어 공부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낸다. 명백히 말하자면 이건 절대 은퇴가 아니다. 블로그 이웃님 중에 하던 일을 절반으로 줄인 프리랜서 번역가가 있다. 그분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반퇴’라는 표현을 썼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들은 조기은퇴보다 반퇴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다.몇 년 전의 나라면 이들의 삶의 방식에 혹 했을 것이다. 애초에 나는 최저생계비 자체가 매우 낮은 사람이라서 조기은퇴를 꿈꿀 때도 필요금액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퇴사하고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보내면서 가능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데 퇴사한 이후 이전과 달리 가족들이 나의 호의를 거절하는 경험을 했다. 가족들이 나의 호의를 마음 편하게 받을 수 있게 만들려면 어쩔 수 없이(?) 이전 수준에 가까운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회사를 다니든 프리랜서가 되든 나는 최저생계비 이상의 돈을 벌어야 한다.이 책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와 지금 내 마음이 달라졌다고 해도, 어쨌든 하루를 단단하게 보내는 걸 배워둬서 나쁠 건 없다. 회사를 다니든 말든 나에게 오롯이 주어지는 하루를 이제 더 이상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관심도 흥미도 없는 휴대폰 게임을 습관적으로 하고, 아이패드에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영상을 온종일 틀어놓고 쓸데없는 스크린 타임을 늘리는 데 쓰고 싶지 않다. 나는 휴식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되고 싶다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너무 행동을 안 하는 바람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똑똑한 인간’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머리는 엄청 좋은데 그 머리를 제대로 쓰지 않는 인간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기도 했다. 능력은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유흥을 즐기는 데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데 집중해서 그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일 수 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하려고 했던 것들을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이런 걸 다 알면서도 왜 시도하지 않을까? 귀찮아서? 내 경우는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선 하나를 긋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수십 장의 그림이 하루아침에 뚝딱 그려지길 바란다. 책을 쓸려면 개요부터 잡아야 하는데 이 역시 하루 만에 책 한 권이 완성되기를 바란다. 누가 내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그대로 완성본을 제작해주길 바란다. 그런 식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선수를 뺏기는 일이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다. 세상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실행한 사람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고, 결국은 만들어 내는 자만이 빛을 볼 수 있다.습관을 만드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내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들처럼 책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고, 강단에 서고,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원하는 일을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출근하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켜 사무실로, 현장으로 나서는 것이다.성공적으로 면접을 보고 다시 일하게 된다면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2주뿐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 마음 같아서는 너무나 좋아하는 제주도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오고 싶지만, 지금이야말로 단단한 하루를 경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든다. 거창한 습관들이 아닌 사소하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습관들을 발굴하고 연습하려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다보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정말 사소한 것뿐인데도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내가 한 거라곤 이불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아주 자그마한 책상을 정리한 것뿐인데.예정에 있던 재판도 다녀왔다. 5분 남짓이면 끝나는 짧은 재판이었지만, 원고인 내가 재판정에 모습을 비추는 것이 판사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판결이 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에 재판정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재판에 임하는 자세와 좋은 습관을 만드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작은 행동, 변화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곤 한다. ‘에이~ 그런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으로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내 삶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지금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깝다. 십 년 뒤의 내가 과거를 아쉬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작은 변화를 소중히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내 하루가 판사님에게 평가 받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매일 매일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반성문을 쓰는 일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내 하루는 그만큼 소중하고 값어치 있다. 사소한 습관들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절대 하루를 게을리 보낼 수 없다. 하루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야 반성해 본다. 오늘도 운동을 건너뛰어 내 건강을 등한시한 것을. 이런 저런 핑계로 벌써 3주 이상 운동을 가지 않고 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아무 계획도 없다) 꼭 운동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