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의 1984, 과연 우리는 사회주의로부터 안전할까?우리와 가장 가까히 있는 북한, 한 민족이긴 하지만 어찌보면 가장 적대적인 국가들 중 하나, 휴전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것은 아닌 국가이다. 그런 북한과 우리 남한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정치체제를 뽑을 수 있을것이다. 남한에서는 미국에 의해 자유민주주의를, 북한은 (구)소련에 의해 사회주의를 채택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하면 그냥 나쁜체제, 부정적인 체제라는 인식을 갖기가 쉽다. 그럼 대체 왜 사회주의를 이렇게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을까? 사회주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까? 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상상해보기 힘든 일이지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그 질문들의 대답을 확인할 수 있다.이야기에 앞서, 저자 조지오웰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초기 조지오웰은 사회주의 지지자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하였는데 스페인 공산주의의 자유롭고 평등한 모습에 매료되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 정권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 세력이 뜻을 같이했던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자를 제거하는 모습을 보고 전체주의를 경계하게 된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이렇게 서술한다. “1936년 이후 모든 진지한 저작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를 지지한다.”소설‘1984’는 1949년 저술된 작품으로, 1984년 사회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을 상상해 소설로 쓴 것이다. 세계는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인공 윈스턴이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에서 사회주의의 모순점을 홀로 인지하고,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오세아니아의 사람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독재를 하는 ‘내부당원’, 그 아랫단계인 ‘외부당원’, 그리고 일반 서민층인 ‘프롤(Prole)’이다. 윈스턴은 외부당원으로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에 환멸을 느끼던 그는 일기를 작성하면서 당의 체제에 모순점을 발견하고 같은 부서의 줄리아와 함께 반체제 지하조직에 가입하여 빅브라더 타도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함정에 빠져 당에 체포되고, 모진 고문과 세뇌교육을 통해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소설 속 오세아니아에서 체계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들은 여러 통제수단, 신어의 사용, 그리고 이중사고이다. 먼저 오세아니아의 통제수단들에 대해 알아보자.오세아니아와 같은 통제사회를 주축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개인화 및 고립이 필요하다. 쌍방향으로 음성과 영상이 전송되는 ‘텔레스크린’, 도청기능을 하는 ‘마이크로폰’을 통해 24시간 국민을 감시하고, 이에 의해 개인들의 조직화가 불가능해지면서 누구도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회를 가능케 만든다.두 번째는 신어의 사용이다. 신어는 소설 속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로 기존의 구어(영어)를 대체하는 어휘이다. 신어의 목적은 일반 서민층들의 사고의 폭을 좁히고, 당의 사상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free’라는 단어의 뜻은 ‘Sugar free’ 와 같이 ‘없다’라는 의미로만 쓰이고, 정치적으로 ‘자유‘를 의미하는 뜻을 없애서 그와 관련된 생각을 차단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이중사고이다. 소설 속 당의 슬로건‘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에서 강조하듯이 과거통제는 가장 핵심적인 통치 수단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이중사고인데, 이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두 개의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과거의 기억을 재정리하고, 과거의 기록을 고칠 필요가 있을 때 자신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 북한과 소설 속 ‘오세아니아’를 비교해보자. 먼저 빅브라더와 김정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모습이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 매우 유사하다. 통제수단은 어떠한가.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은 아니지만 반당, 반체제사범 검거 색출 및 주민 사상동향을 감시하는 정치사찰 기구‘국가안전보위부’와 주민 이동통제, 반혁명행위 감시 등을 하는 기관‘인민보안성’등을 통해 시민들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띈다. 또한 북한의 독재자 세력이 권력을 통해 언론을 장악, 역사 및 여러 자료들을 조작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세뇌시키는 것, 공공의 적(미국 및 한국)을 만들어 애국심을 통한 체제 유지 및 충성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소설 속 ‘오세아니아’와 소름끼칠 정도로 일치한다.그럼 과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움직임으로부터 안전지대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한 듯하다.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및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컴퓨터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미국은 프리즘이라는 비밀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즉, 소설 속 텔레스크린이나 마이크로폰 같은 직접적인 수단으로 시민들을 감시하지는 않아도, 인터넷 등을 통해 우리의 사생활을 엿보고 침해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볼 수 있다.1990년 11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사회주의 세력은 민주주의 세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었다. 즉, 민주주의가 당연한 체제로 여기어진 것은 불과 30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할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지배층들은 더 큰 권력을 위해 사회주의 및 독재주의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세계가 ‘1984’의‘오세아니아’가 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비판을 지녀야할 것이다. 누군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와 사회에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선동되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조지오웰의 명언으로 독후감을 마무리 짓겠다.‘그런 일(사회주의의 승리)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