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간 유지현 시험대비 최종‘무아(anatman)’는 신분제,제사의식을 중시하던 ‘브라만교(brahman)’가 인도를 지배하던 시대에 세계와 인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붓다’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붓다’가 창시한 불교는 브라만교와 대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세계관/인간관의 차이점을 통해 ‘무아’를 알아보자.‘브라만교’의 세계관과 인간관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먼저 세계관에서 세계를 ‘브라만’에 비유하며 우주의 근본 원리로부터 만물이 발생하고, 세계에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브라만교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만’이 ‘atman’의 형태로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 몸과 마음을 주재하는 영원한 실체로서의 자아인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바탕으로 ‘해탈’을 ‘아트만’과 ‘브라만’이 합일하여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불교는 ‘브라만교’과 대립되는 주장을 가진다. 불교에서의 세계관과 인간관은 인간적이며 경험적이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는 ‘인간이 경험하는 것, 인간에게 인식되는 것’이라고 하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세계는 12처(인식을 가능케 하는 문)로 이루어지며 12처는 인식의 조건이 되는 여섯 가지 육체/정신적 감각기관과 각 감각기관의 대상이 되는 여섯 가지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적 감각기관인 안(눈), 이(귀), 비(코), 설(혀), 신(몸)은 각각 색(빛,형태), 성(소리), 향(냄새), 미(맛), 촉(감촉)을 경험하고, 정신적 감각기관 의(뇌)는 법(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산을 모르는 상태로 등산을 갔을 때, 흙,꽃,풀을 보고(안) 새소리,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이), 꽃과 풀내음을 맡으며(비) 산딸기를 맛보거나(설) 흙이나 나무를 만진 후에(신) ‘산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다(의).즉, 불교는 연기형식(불교의 기본 사유 방식; 모든 현상은 서로 원인과 조건이 되어 상호 연관한다.)으로 인간에게 신체,정신적 감각기관이 있고, 이들은 각각 경험하는 대상이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가 인식된다고 설명한다.또한 불교의 인간관에서는, 인간에게는 브라만교가 주장하는 ‘아트만(atman)’이 없다는 ‘anatman’, ‘no-self’, ‘무아’가 등장한다. 세계관과 유사하게 불교의 인간관에서도 인간은 한 가지 물질적 요소와 네 가지 정신적 요소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역동적으로 계속 변화한다고 믿으며, 인간의 구성 요소를 5온이라고 한다. 이 5온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사람이 ‘꽃’을 마주하였을 때, 물질적 요소인 1. ‘색(감각기관)’으로 꽃을 두 눈으로 보며, 네 가지 정신적 요소 2. 수(감수작용)로 눈에서 뇌로 전달, 3. 상(표상작용)이 본 것을 ‘꽃’의 이미지로 인식하며, 4. 행(형성작용)으로 ‘이게 꽃이구나’라는 의사를 형성한 뒤, 5. 식(판단/인식 작용)으로 ‘꽃은 다른 것보다 화려하다’는 등의 개인적 식별, 사유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5온에서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자아’ 혹은 ‘몸과 마음을 주재하는 영혼’은 없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행위/경험하는 경험적 자아만 있을 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인간은 경험의 순간적인 흐름들의 집합인 것이다. 뒷받침하자면, 인간은 항상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지만 그것을 조종할 수 없는 것 자체가 인간은 주재하는 아트만이 없는 ‘무아(anatman)’인 것이다. 이를 토대로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은 ‘무아’를 체험하는 ‘깨달음’을 얻고, 탐욕이 없이 맑고 청량한 상태인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세계관과 인간관에 대한 브라만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통해 ‘무아’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리하자면, ‘무아’는 브라만교에 대립하는 대표적인 불교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불교, 종교가 아닌 삶의 스승으로-나의 경험과 붓다의 주된 가르침을 중심으로-Ⅰ. 서론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와서까지도 떼어낼 수 없는 불교. 어떤 이유에서일까? 학창시절에는 역사를 배우며 ‘절’, ‘석굴암’ 등 역사적 의미로의 불교를, 대학교에 와서는 우리 ‘동국대학교’가 불교 기반 학문기관이기에 필수교양으로 있는 학문적 불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저 불교는 종교(국가의 문화재), 학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정말 개인적인 입장으로,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면 예쁜 학용품을 준다는 말에 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국수를 먹으러 몇 년간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특히 교회는, 동네에 2-3개 이상이 있을 정도로 접하기 쉬울 뿐 아니라 모두에게 전도하려하기 때문에 포용력이 넓은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를 다닐 때에는 복음을 전도 받고, 천국을 강요받으며 종교적 인식이 강하게 박혔다. 이래서인지 나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몇 년간 생기지 않아, 매주 맛있는 국수를 포기했었다. 그 후 전도사님의 잦은 연락과 방문은 내가 ‘기독교’에 거부감이 생기게까지 했고, 지금까지도 나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불교는 어떠한가? 기독교의 교회에 상응하는 불교의 절. 대부분이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변두리 혹은 시골에 지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보다는 접하기 굉장히 힘들고, 가족이 믿지 않는 이상 믿기가 힘든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었다. 불교는 그렇다면 신도들을 어떻게 모집하는 걸까? 기독교가 이렇게 많은 신도들을 모을 때 불교는? 그리고 다른 종교는? 이러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학교에 입학하여 스님을 기숙사 룸메이트로 맞은 적이 있다. 이 때 나는, ‘학문적 불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Ⅱ. 본론우선 룸메이트 스님 분을 통해 ‘불교’라는 것이 ‘부처님을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깨졌다 쳐도, 불교가 무엇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쯤, ‘불교와 인간’을 들으며 불교는 ‘다양한 전통의 복합체’라는 정의를 접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사실 ‘하느님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는데 무엇이 다를까? 불교의 특징을 알아보자.①. 불교는 인간의 후생에 대해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 ‘해탈’을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늙음, 병, 죽음을 부정하고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람이 공포심을 느끼고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건 쉽지만 사람이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불교가 그것을 계속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얻는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괴롭지 않게 하는 역할. 나는 실제로 자아와 명상을 들으면서 잠깐이나마 명상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②. 불교는 ‘절대적인 존재’를 부정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불교가 탄생할 당시 지배적인 종교였던 ‘브라만교’에 대립하는데, 절대적인 존재인 brahman의 존재를 신격화하고 그것에 가까워지는 것을 강조하는 브라만교와 달리 불교는 누구나 대단할 수 있고, 누구나 동등한 위치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③. 또 불교는 인간의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현상적인 존재로만 인식한다. 특히 인간에게 ‘신체적, 정신적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 의‘가 있고, 이를 조건으로 경험되는 대상인 ’색, 성, 향, 미, 촉, 법‘이 있으며, 이를 조건으로 인식되는 세계가 있다는 연기 형식의 세계관이 인상적인데, 여러 가지의 원인과 결과가 서로 상호 연관한다는 사유방식이다.④. 또한 불교의 인간관은 ‘무아사상’이다. 브라만교에서 인간에게 ‘아트만’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불교는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들 ‘색, 수, 상, 행, 식’이 세계관에서도 언급하는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계속 ‘변화’한다고 한다.⑤. 나의 삶에 가장 크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 중 ‘사성제’이다. 고통을 의미하는 고성제, 고통의 원인을 의미하는 집성제, 고통의 소멸을 의미하는 멸성제, 고통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논하는 도성제가 있다는 주장.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누구나 겪는 고통에 대해 굉장히 공감가고 극복 가능케 설명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서 얻는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갈애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고통을 소멸시킨다는 사상.⑥.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갈애하지 않는 방법 8개인 ‘팔정도’ 역시 가르친다. 인간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정견’, 어떤 행위를 행하기 전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정사유’, 어리석은 말을 삼가고 남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정어’,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업’, 정당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정명’, 자신이 열심히 하면 도움이 따른다는 ‘정정진’, 마음이 바르게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항상 순간들을 그대로 인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념’,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명경지수에 도달해야만 ‘정견’을 얻을 수 있다는 ‘정정’. 어느 하나 독립적인 것 없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으며 인간의 생각을 바뀌는 사상이다. 인간의 정신적 수행과 도덕적 행위가 서로 연계되어 심리가 바뀐다는 것.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간중심적’인 사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