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비평문영화 ‘#살아있다’의 시나리오는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맷 네이럴의 각본 ‘Alone'을 기반으로 한다. 조일형 감독은 ’Alone'의 각색에 참여했다가, ‘#살아있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한국적인 설정으로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제목은 ‘살아있다’로 변경되었고, SNS상에서 포스팅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이른바 태그(#)를 제목 ‘살아있다’ 앞에 붙임으로써 SNS상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했다.최근 영화 ‘부산행’을 필두로 하여, 넷플릭스의 ‘킹덤’, 네이버 웹툰 ‘좀비 딸’, 영화 ‘창궐’, ‘반도’와 ‘#살아있다’에 이르기까지 좀비 컨텐츠가 꾸준히 제작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바, 이하에서는 좀비 장르 영화로서의 영화 ‘#살아있다’를 해당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1. 좀비 영화로서의 영화 ‘#살아있다’게임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오준우(유아인)는 ‘밖에 나가지 말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이어 아파트 밖을 내다본 순간, 사람들이 갑자기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서로 물어뜯는 모습을 목격한다. 놀란 준우가 TV를 켜자 뉴스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이러스가 수분에서 수십 분의 잠복기를 거쳐 뇌로 이동해 신경을 자극한다”는 앵커의 설명이 나온다.영화 ‘#살아있다’는 전반부 유아인의 1인극으로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 속 혼자 집에 남겨진 오준우가 느끼는 고립감과 절망, 다소간의 좀비와의 액션극을 보여주며, 후반부 또 다른 인물인 김유빈(박신혜)의 등장으로 두 인물의 연대를 통한 좀비 세계에 대한 저항과 극복을 그려낸다.2. 영화 속 좀비1)좀비(zombie)의 의의 및 영화 속 좀비좀비란 본래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주술을 통해부활시킨 시체들을 가리킨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으나 시체이기 때문에 썩어 있기도 한다.좀비들은 완전히 마술사의 지배하에 놓여 있어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좀비는 노예로서 농장 등의 노역에 무보수로 동원된다.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밤에 일할 때는 좀비가 되며, 암흑 속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빛이 필요하지 않다. 큰 죄를 지은 인간이 벌을 받아 좀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출처: 환상동물사전그러나 대중문화 속의 좀비는 그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 발생은 종교적인 의미를 띄지 않고, 주로 바이러스나 방사선 등의 생물학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좀비는 다른 공포물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 예컨대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는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서 인간에게 없는 강한 힘과 특별한 능력을 가지나, 인간과 비슷한 욕망 및 생존의지를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좀비는 자유의지가 없고, 사고가 불가능하며, 좀비의 인간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에는 특별한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이, 다만 인간을 물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본능이자, 행동이다.또한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특별한 힘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심한 충격에는 죽기도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좀비의 이런 나약한 면모는 영화에서 일종의 메타포(metaphor)로 활용되기도 한다. 좀비라는 존재 자체로부터 관객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려한다기보다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겪는 감정들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서 좀비 그 자체는 인간에게 닥친 불가항력적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다.2)좀비 영화의 등장1932년 개봉한 ‘화이트 좀비’라는 흑백영화가 세계 최초의 좀비 영화이다. 해당 영화에서의 좀비는 부두교 주술사가 주술을 통해 부활시킨 시체들을 의미하였기에, 사람을 잡아먹지 않았으며, 악당들에게 조종당하며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일종의 세뇌된 사람과 같은 존재였다. 이 영화에서 좀비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기에, 일단 좀비영화로 인정받는다.1947년 개봉한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또한 현대적인 의미의 좀비영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 영화는 소설 ‘제인 에어’의 배경을 서인도 제도로 옮기고, 부두교라는 몽환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암울하고 음산하며 신비로운 분위기의 영화이다. 해당 영화에서 좀비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그려진다.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는 1968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다만 해당 영화에서는 ‘좀비’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으며, 감독도 인터뷰로 "좀비라는 명칭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좀비는 부두교 주술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구울(Ghoul)이라고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비라고 부르면서 어느 새 부두교의 좀비보다 그 시체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 영화 ‘#살아있다’ 속 좀비가 대변하는 불안의 요소“관객들은 분명 영화의 내용이 픽션임을 감지하면서도 이미지를 즐기며 영화의 내용을 따라간다. 관객들은 영화 속 주인공을 '나'라고 생각하며 스크린 속 괴물 때문에 극장을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그 괴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이미지를 인지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닮음'에 기초하여 이미지를 인식하고 내가 평소 보았던 어떠한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특징을 영화적 이미지와 연관시키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 (중략) ……………… 관객은 능동적인 주체이자, 한 시대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는 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감각과 지각, 그리고 지식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송아름, "1990년대의 불안과 '여고괴담'의 공포", 한국극예술연구 34집, p. 296)이하에서는 좀비라고 하는 혐오스러운 괴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지는 '닮음'이란 이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박성수(2014)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영화 ‘#살아있다’ 속 ‘좀비’로 대변되는 인간의 불안에 대해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죽음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의 본능이며, 모든 종류의 공포영화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여타의 공포 장르물과 좀비 영화의 차이가 있다면, 좀비 영화에서의 죽음은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라는 것이다. 좀비는 병에 걸려 죽는 것도, 악당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것도 아닌, 죽어서 인간을 물어뜯는 괴물로 변모하게 되는 죽음은 그 자체로서 절망적이다.영화에서 오준우는 극단의 고립상황에서, 먹을 것이 모두 떨어지고 가족들도 모두 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의 자살시도는 좀비가 될 바에야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낫다는 그의 독백에서 그 의중이 분명히 드러난다.또 다른 좀비 영화 ‘부산행’의 주인공 석우 또한 자신이 좀비가 되어버린 상황을 지각한 순간, 스스로 기차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가족들을 위협하는 좀비로서의 삶은 그에게도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하고자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들의 선택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좀비 영화에서는 도망치다가 좀비에게 물려 인간에서 좀비로 변하고, 이내 모든 인간성을 상실한 채 괴물이 된 인간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2)비 유기체적 사회의 소통의 단절, 대화 상대자의 부재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흡혈귀, 귀신 등의 존재와는 달리 좀비와는 대화조차 불가능하다. 좀비들에게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물어볼 수 없으며, 따라서 좀비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어떤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기에, 먹을 것이 충분하고, 아무런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살아있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선택을 하곤 한다.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는 공포는 물리적 공포 그 자체보다도 우리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영화의 오준우 역시 “도대체 저것들은 왜 그러는거야”라고 울부짖으며, 철저한 고립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다만 그에게는 ‘SNS'라는 희망이 존재하였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앞 동의 김유빈을 만나게 되었을 때 짓는 환한 미소와 들뜸은 좀비의 세계 속에서 인간을 간신히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