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yimgy99두 영화는 모두 인간의 미래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두 영화가 바라본 인간의 미래는 사뭇 다르다. 는 인간과 기계의 연결을, 는 인간의 생명 공학 기술 발전으로 인한 조작된 유전자라는 주제로 각각 영화를 풀어나갔다.영화 에는 캔트 박사가 개발한 ‘써로게이트’라는 인공의체가 등장한다. 써로게이트의 본래 목적은 장애인의 일생 생활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써로게이트의 남용으로 일반인들까지 써로게이트를 이용하며, 실제 본체는 집에만 있고 써로게이트로만 모든 생활을 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써로게이트가 아닌 인간만의 구역, 드레드를 만들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영화의 시작은 젊은 남자와 여자가 살인을 당하며 시작된다. 써로게이트는 보통의 물리적 충격에는 끄떡없고 만약 써로게이트가 파괴되어도 사용자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 도구로 100%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며 광고했던 의체였다. 하지만 써로게이트가 받은 공격으로 인한 사용자의 죽음으로 수사가 진행된다.영화의 도입부이자 사건의 발단인 젊은 여자와 남자의 살인 사건의 당사자를 수사관이 찾아간다. 젊은 여자의 유닛 사용자는 알고 보니 대머리 아저씨였다. 또 알고 보니 젊은 남자의 유닛은 써로게이트 창시자인 캔트가 쓰던 것으로 암살자는 이를 캔트라 생각해 암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유닛의 사용자는 캔트의 아들이었다. 영화 후반부에는 캔트가 써로게이트를 파괴하는 시스템을 손에 넣어 실행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인 제니퍼를 살해하여 제니퍼의 의체를 이용해 제니퍼의 파트너 수사관, 그리어에게서 시스템을 빼앗았다. 이 모습에서 익명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이 서로를 구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겉모습이다. 하지만 서로게이트와 같은 기계가 인간과 결합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다. 영화 속 세계에서는 인간은 서로게이트를 이용해 육체를 뺀 정신만을 이용해 살아간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은 서로의 모습이 인간으로서의 모습인지 기계로서의 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기계는 육체라는 관점에서는 인간과 다름없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보면 서로게이트 반대 세력의 주동자였던 프로펫이 사람이 아닌 서로게이트임이 드러난다. 프로펫이라는 인물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서로게이트라는 기계의 능력을 이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하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본다면 인간의 육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서로게이트와 같이 인간의 육체를 기계가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영화 속에 군사 훈련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에 묘사된 훈련 상황은 사람이 서로게이트에 접속해 실제 무기를 가지고 훈련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며, 죽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게이트라는 기계 덕에 사용자는 멀쩡하다. 훈련하고 나온 군인에게 상관은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또한, 서로게이트가 부서진 그리어가 서로게이트 쇼핑에 나서는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속 사회에서는 서로게이트가 인간의 육체를 대신하는 기계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서로 대하는 서로게이트를 마치 ‘인간’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게이트를 인간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기계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를 이용해서 군사 훈련을 한다. 총을 쏘는 서로게이트도, 폭탄을 던지는 서로게이트도 모두 인간의 유닛인데도 말이다. 영화에서 서로게이트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한 능력을 결합하여 발명한 대리 로봇’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써로게이트를 향해 총을 겨누는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모습으로 보이기만 한다. 또한, 도시에 써로게이트 매장이 있다는 모습을 보면서 기괴함을 느꼈다. 첫 장면에서 살해당한 젊은 여자가 알고 보니 아저씨였던 것처럼, 매장에서의 선택에 따라 남들이 보는 나의 나이, 성별, 인종, 키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이렇게 물건처럼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의족과 같이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기계를 넘어선다면 이는 곧 인간성을 위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 넘어서기 위해 인체에 함부로 기계를 융합한다면, 이는 곧바로 기계의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선 분명히 편리함은 지금까지 인간이 추구한 가치 중 하나다. 편리함을 더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쉽게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처럼 인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계의 시작은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게 되며 그보다 더 완벽함을 요구하게 될 것이며, 그런 기계들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럼 머지않아 영화 속처럼 기계만 남을 가능성이 생기며 결국 자연적인 인간의 육체는 세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기계라는 것은 결국 개발자가 있으며 기계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있게 된다. 어떤 기계가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면 그 기계와 연관된 이들은 사회의 권력자로 변모한다. 영화에서도 서로게이트와 관련된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려고 든다. 그 과정에서 서로게이트의 창시자이자 서로게이트 반대자인 캔트 박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런 상황은 그저 영화 속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일은 아니다. 언제나 어느 사회에서나 기득권층의 도덕성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히 기계가 인간과 완전히 융합된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에서 기계의 모습을 한 인간이 넘쳐난다면 기계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육체의 단점을 보완한 기계를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면, 기계를 반대하는 자들과 기계를 구매해 이용하기 힘든 형편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는 서로게이트 중심으로 흘러간다. 서로게이트를 통해 충분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굳이 사회의 발전 대상이 인간의 육체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을 알기에 서로게이트와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연스레 그런 논의에는 서로게이트를 반대하는 이들은 당연하고,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사회 취약계층이 빠지게 된다. 그러면 사회의 계급화는 더 극심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서로게이트를 반대하는 사람은 나중에 서로게이트를 이용한다 해도 그동안의 빠른 기술 발전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노인층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디지털 세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인체의 한계가 없어진다면 그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서는 그 흐름을 반대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만약 뒤늦게 변한 시대에 적응하려고 하더라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의 발전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이 자연스레 빈곤층에 머물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 더 빨라지는 기술 속도만큼이나 그 갭이 견고해질 것으로 보인다.영화 를 보면서 유전자 조작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면 바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표현된 사회는 태어나자마자 검사를 통해 질병 가능성과 수명까지 알게 되어 버린 모습, 취업 시에는 피 한 방울을 통한 유전자 검사로 결정되는 사회를 보여줬다. 심지어 머리카락, 악수, 침 심지어 입맞춤과 같은 애정표현조차도 아주 쉽게 유전자 검사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평범한 회사 안에 유전자 판독하는 곳이 존재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변 매장들이 생각났다. 어느 순간부터 매장에 들어서면 키오스크라는 기계가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빠르고 주문 실수가 없어져서 편리하지만, 대신 대화가 사라졌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계 앞에서 주문하고 픽업하는 곳에서 번호가 불리면 받아 가는 식이다. 과거에는 당연히 사람이 있어야 했던 자리가 점점 기계로 바뀌고 있다. 그 이유에는 정확도, 비용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최상의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든다’라면 태어난 아이를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 대신 그 자리를 기계가 차지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정확도인데 모든 열성 인자를 지워 우수한 사람만이 태어난다면 기계와 사람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보다는 ‘유전자’라는 성능으로 판단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성범죄’가 공식적인 용어로 자리잡힌 지 고작 2년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온라인 플 랫폼이 확장되면서 등장했다. 본래 성범죄는 현실 공간에서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사건을 중 심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며 성범죄가 발생한다. 즉 디지털 성범죄는 현실 공간에서는 불법 촬영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온라인 게시 와 전송을 통한 불법 유포를 통해 가해진다. 그렇게 디지털 성범죄는 다수의 가해자가 실질적 인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고도 피해를 지속해나간다. 끊임없던 디지털 성범죄 논란은 작년 최종범 사건과 올해 초 정준영, 승리 그리고 최종훈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채팅방으로 인해 더 조명되고 있다. 특히 정준영 카톡방 사건은 많은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남자 아이돌들이기에 더 충격이 컸다. 문제는 이 사 건이 카톡방 멤버들이 누구인가와 그 죄를 묻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일부 언 론에서는 정준영 카톡방의 불법 영상 촬영 및 유포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구체적인 직업을 공 개하거나 동영상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등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이로 인해 정준영과 친분 이 있었던 연예인부터 시작해 언론에서 언급된 연예인들 모두 스스로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카톡방으로 인한 피해자의 아픔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정준영 동영상의 유무와 여자 연예인이 누굴까를 추측하며 피해자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이런 논란 속에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영화 <걸캅스>가 개봉했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사람 들이 다시 한번 더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영화란 매체 가 2시간 남짓 되는 상영 시간에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다 보니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서 소재를 진중하게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작년 4월 개봉한 <나를 기 억해>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이다.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일이 어느새 마약, 탈세, 성범죄 의혹에 이어 가수 정준 영의 불법 동영상 촬영과 유포로 이어지며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가수 승리와 정 준영 등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나눈 문란한 대화들이 밝혀지면서 이와 함께 그들이 과거 예 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했던 발언들이 조명되고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은 <라디오스타>에서의 ‘황금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다. 가수 지코는 정준영에게 ‘황금폰’이라고 있다며 그 안에 포켓몬 도감처럼 많은 사람들 번 호가 저장되어있다고 했다.
생리대 파동이 일어나기 전에도 여성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생리대의 안전성을 우려 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생리대는 여성이 10대부터 40년 동안 1만 개 이상 써야 하는 물건이 기 때문이다.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 면 생리대가 다시 팔리고 생리컵 수입허가를 재촉 하는 등의 움직임까지 있었다. 이에 한 의원이 2016년 8월 생리대도 전 성분 표시를 의무화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의약외품의 전 성분을 표시하도록 하는 개정 약사 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 생리대는 빠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16년 10월, 시민단체인 여성환경연대는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 연구팀에 국내 유통 생리대 10종에 대한 유해 물질 조사를 의뢰했다.
많은 도서 리스트 가운데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라는 책을 골라 서평을 쓰 게 된 계기는 ‘아브라함 종교들의 갈등’에 대한 수업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 해 그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EBS에서 방영했던 ‘장벽 너머 부는 바람, 이스라 엘 팔레스타인’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바뀌었다. 영상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분리 장벽과 그 장벽을 경계로 펼쳐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왔다. 19세기 이후 대부분 나라 분쟁 속에는 선진국이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도 마찬가지이다.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의 “벨푸어 선언”으로 본격적인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UN으로 팔레스타인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