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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현대사회와리더십] 유재석 리더십 평가
    0000-00000 OOO - 유재석 리더십 평가1. 들어가며직업은 개그맨, 당대 최고의 진행자, 별명은 메뚜기. 이 짧은 소개만으로도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정규 방송 3사를 넘나들며 친숙한 이미지와 깔끔한 진행으로 직업적 성공과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재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재석은 현재 정규 방송의 5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현재 그가 진행을 맡고 있는 KBS 2TV 「해피투게더 프렌즈」(2위, 15.7%), MBC 「무한도전」(3위, 15.2%), SBS 「일요일이 좋다」(9위, 13.8%) 3개의 프로그램이 예능프로그램 시청률 10위권 안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 기사는 많다.10~20대 종합엔터테이너 부문에서는 박경림(14.6%)이 1위, 호감의 새로운 정의를 내린 노홍철(13.5%)이 2위에 선정됐으며 30대에서는 유재석(48.9%)이 앞도적인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하며 막강한 파워를 증명했고 편안한 이미지의 김제동(7.8%)이 그 뒤를 이었다.물론 한국 방송사에서 훌륭한 진행능력과 빼어난 말솜씨를 지녀 유명해진 진행자는 굉장히 많다. 현재도 내로라하는 ‘간판 진행자’들이 각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양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별히 유재석만을 말로써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계의 리더로써 볼 수 없는 것인가? 한편, ‘즐거움’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진행자의 능력을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을까?여타 진행자들과 비교했을 때, 유재석만큼 빼어난 진행솜씨로 방송계에서 인정받으면서 가히 맹목적인 대중의 지지를 받은 진행자는 드물다. 그를 향한 대중적 지지는 앞서 보았던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인기’로만 취급하기에는 그 정도가 매우 크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재미와 오락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말속에 ‘힘’을 가진 진행자로서 시청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출연진에게는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며, 방송을 그만의 분위기로 이끌어 프로그램의 성공을 보장하는, 가히 진행자계의 리더라고 볼 수 있다.이런 유재석의 리더십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직업적 특성상 기본적으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현대 정치인들이 과연 진정한 리더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실제로 그들은 도리어 국론 분열을 조장하거나, 대중을 공동 목표로 이끄는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지금도 넘치게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대중에게 친밀하면서도 은근한 힘을 가진 ‘유재석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2. 리더십 평가(1) 유재석의 리더십 탄생유재석은 1972년 8월 14일 생으로 올해 나이 36살이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했으며, 1991년 제1회 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의 전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청년시절부터 방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개그’라는 장르에 특히 매혹된 것 같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어 정보가 대단히 미미하지만, 그의 이력으로 보면 유재석은 학생 때에도 개그제에 도전할 만큼 끼와 배짱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그는 지금까지의 연예생활 중 8~9년간을 무명으로 산 대표적인 ‘늦깎이 스타’이다. 그가 ‘마이너 코미디언’으로 지내던 무명시절을 회상하기를, “하루에도 포기하기를 몇 백번씩 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카메라 공포증’ 과 ‘마이크 울렁증’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서세원 쇼」의 인기 코너 ‘토크 박스’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활약하며 점차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2006년 제42회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TV 예능상 등에 이르기까지 진행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휩쓸며 진행자들 중 단연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그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력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유재석이 그만의 재치 있는 입담과 뛰어난 인간성으로 지금의 성공가도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교육이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인정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진행자, 그 진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송계의 리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리더십은 교육을 통해 그 자신으로부터 직접 파생되었다기보다는, 그의 ‘진행’과 이에 따른 ‘경력’을 밑바탕 삼아 부차적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가 방송을 이끄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를 방송 분야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성격과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택하고 실천한 리더십의 훈련방법은 그런 장점이 되는 성격과 그의 진행능력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키워나가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그의 성격적 특성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창출하여 성공의 씨앗이 되도록 했다.그는 자주 진지하고 진중한 자세를 보여주곤 한다. 이런 그의 행동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유재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그의 이런 이미지에 호감이 가는 이유는 그 이미지가 산출되는 배경이 ‘예능 방송’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진행은 시청자의 즐거움이나 재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의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빠르고, 단순하고,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반면 유재석이 보여주는 차별화 된 이미지는 흥분한 시청자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이런 진지한 면의 일부로 표준어를 사용하는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방송에 출연하는 많은 사람들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재미를 위해 줄임말이나 유행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유재석은 표준어를 사용하는 진행자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그는 가끔 유행어나 줄임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 빈도가 매우 낮고, 다른 연예인들의 비표준어를 표준어로 정리해 반복해서 말해 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는 표준어를 구사함으로써 내용의 균형을 이루고,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 왔다.이외에도 유재석이 인터뷰를 통해 무명시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의 겸손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거의 무명에 가깝게 방송국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은 했거든요. 그런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많은 분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날이 온다면 정말 이때를 잊지 말아야 겠다구요. (중략) 물론 보시는 분에 따라 지나치게 강박관념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저는 정말 그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보이는 그의 겸손함은 실제 삶과 프로그램 진행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일례로 그가 진행하는 KBS 2TV 「해피투게더 프렌즈」와 SBS 「진실게임」과 같은 프로그램은 일반인이 주요 출연자가 되므로 진행자의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다른 진행자들은 시청자들을 방청객 정도로만 생각해서 항상 자신들이 우위에 선 듯이 행동하지만, 유재석은 일반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조력자로서 행동한다. 이런 그의 태도로 일반인 출연자들도 연예인 못지않은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입담을 선보일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본래의 의도가 잘 살아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연예인 출연진으로만 이루어진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이런 리더십은 어떤 교육에 의해 키워졌다기보다는 그의 삶 자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다양한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이든 자신의 분위기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가 삶 전반에서 꾸준히 자신의 긍정적인 성격들을 부각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결과, 그런 성격이 그의 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밑바탕이 된 부드러운 진행으로 프로그램 전체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쥐락펴락하는 그만의 진행 리더십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2) 유재석의 장점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그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행자라는 직업은 물론 훌륭한 말솜씨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 한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말재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하는 능력’ 또한 그 나름의 힘을 갖게 되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리더의 자질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에서는 말을 하는 방식부터 말하는 특정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까지를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해석하고자 한다.그는 말하기에 앞서 잘 들어주는 리더이다. 잘 들어주는 능력은 아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일부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순간순간 재치 있는 말솜씨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의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도 잘 듣는 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재석은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와 같이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재주를 가진 진행자이다.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쇼에 출연한 사람들에게 “저는 당신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잘 들어주고, 그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태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유재석은 자신이 말하기보다 출연자들의 능력이 100%발휘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주의 깊게 잘 들어주고, 필요할 때 적절하게 반응하여 주는데, 이는 출연자들을 ‘웃음의 제물’로 삼는 다른 진행자들은 가지지 못한 그만의 능력이다. 유재석이 자신의 말을 아낀다고 해서 출연진이나 시청자들이 그를 무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의 편안한 이미지 때문에 방송 도중 그에게 장난을 치거나 그를 놀리는 출연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나온 행동이기 때문에 그를 얕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출연진들은 엇나가다가도 유재석의 타이름 한 번이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들 또한 그의 약간은 ‘빠진’듯한 모습에 야유를 보내기보다는,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이며 앞서 보았듯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고는 한다.
    인문/어학| 2020.09.21| 4페이지| 1,500원| 조회(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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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동서양의종교적지혜]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서평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싯다르타’에게 가지는 의미-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OOOOO과0000-00000 OOO1. 들어가며『싯다르타』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등을 쓰고 『유리알유희』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나 또한 유년시절, 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처음으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데미안』을 통해서 자아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개인의 성찰을 통한 자아 인식과 깨달음을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싯다르타』도 그 소설들과 흐름을 같이 한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싯다르타가 일생을 거쳐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또한 그 사건들과 맞물려 인식체계를 정립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소설을 읽으면서 독일인인 그가 이런 지극히 동양적인 종교 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소설로 재창조해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살펴보면, 그의 일생은 전반적으로 동양적인 것과 멀지 않았다. 그의 외조부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포교에 종사하였다. 그가 남긴 수천 권의 장서 또한 헤르만 헤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 그는 동양적인 구도자를 자처했으며, 30살 무렵에는 동방여행과 불교연구에 힘을 쏟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해석을 할 만큼 싯다르타의 일생과 불교 사상에 대해 그처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물론 인도에 대한 관심이 깊었지만, 그가 살아온 환경은 온전히 기독교적이고 서구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지금부터 헤르만 헤세가 그려낸 싯다르타와 인도경전을 통해 내려오는 실제에 가까운 싯다르타를 비교해 보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2.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고타마 싯다르타의 비교소설 첫머리에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샤카 공화국의 통령인 슛도다나의 자식으로 그려진다. 샤카족은 무사가문으로 인도의 적부터 종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주인공을 나타내고자 했다. 역사 속, 고타마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안락한 청년기를 보내게 된다. 이것은 그가 ‘사문유관’을 경험하기 전까지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작가는 싯다르타에게 자연스러운 종교체험을 전제함으로써 그의 문제의식이 발현하는 것을 촉진시키고자 했다.소설 속 싯다르타는 이미 어린 나이에 성현들의 담론에 끼어들었으며, 음성을 쓰지 않고도 말 중의 말인 ‘옴’(완성의 뜻)을 말할 줄 아는 뛰어난 아이로 그려진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 속에서 아무런 기쁨도 누리지 못했으며,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영혼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은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역사 속 싯다르타가 성 밖으로 탈출하는 모티브를 차용한 것 같다.결국 소설 속 싯다르타는 집을 떠나 절친한 벗인 고빈다와 함께 사문에 몸담게 된다. 사문들에게서 싯다르타는 많은 것을 배우는데, 특히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여러 길을 터득하게 된다. 그는 때때로 짐승이 되고 썩은 고기가 되고 목석이 되고 물이 되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자아로부터 도망쳐도 결국 자아로 되돌아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것은 그가 사문 내에서 해온, 배우고자 하는 소망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지식인 ‘아트만’을 깨닫는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도 어린 싯다르타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물들의 고통을 느끼고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 자아가 사라진 영적인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또한 사문에 있었을 때도 이런 황홀경의 상태에 몇 번이고 들어섰다가도, 다시 깨어나 정열과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을 보고 고통스러워했다. 소설과 역사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이런 문제의식을 계기로 하여 싯다르타는 사문을 나와 다른 길을 택하게 된다.여기에서 소설은 역사와는 다른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바로 ‘고타마’라는 속세의 고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어왔고 둘은 이 분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그분은 두 사람이 단번에 불타임을 알아볼 정도로 시들지 않는 광채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고빈다는 그분의 가르침에 귀의하지만 싯다르타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타마에게 자신이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 말의 요지는 ‘해탈은 가르침에 의해 얻어지지 않는다, 세존(고타마)의 말 속에는 오직 세존께서만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의 그 비밀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역사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이런 싯다르타의 인식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스승인 알라라 칼라마에게 어떻게 이 교리들을 깨달았느냐고 물었다. 또 깨달은 후에도 늘 제자들에게, 들은 말을 근거로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가르침 역시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검증하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싯다르타의 인생 전반을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항상 가르침보다도 ‘깨달은 순간’과 ‘가르침의 직접 체험’ 즉, ‘깨달음의 직접 체험’을 강조했다.소설 속에서 세존, ‘고타마’가 등장 하는 부분은 역사 속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새로운 국면이다. 우리는 그동안의 배움을 통해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단 한명의 부처만을 보아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고타마 싯다르타 앞에는 다른 붓다들이 있었다고 한다. 불교 전통에서는 싯다르타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25명 있었으며, 미래에 새로운 붓다가 같은 과정을 반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작가가 그리는 고타마는 그의 전 시대 붓다들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붓다 한 사람일 수도 있고, 붓다 여러 사람의 집합체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은 현존하는 붓다로부터의 가르침 일수도 있고, 단지 책이나 구전되어 오는 말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가능성을 함축하는 고타마의 존재가 이 책 속에는 전제되어 있다.한편, 다른 해석도 가능한데,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역사 속 인물을 이분법적인 구조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설 속의 싯다르타는 실존 인물인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하는 싯다르타의 삶의 일부를 나타낸다. 소설 속의 싯다르타와 고타마라는 두 인물의 집합이 역사 속 고타마 싯다르타와 동일시된다. 두 인물의 합성이 완성된 붓다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소설 속의 싯다르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각성하여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역사와 다른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실천으로 터득한다는 깨우침에 따라, ‘카말라’라는 유명한 창녀를 찾아가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 또, 대상인 카마스와미의 아래로 들어가 사업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싯다르타는 사문일 때 터득했던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도 할 줄 아는’ 능력을 바탕으로 카말라의 사랑과 카마스와미의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세속적인 생활에 젖게 된다. 이에 따라 그의 마음속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그의 건전한 인식작용 또한 타성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세속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데 시작점이 되었던 강 속에 빠져 죽으려고 한다. 그 때, 그는 영혼의 한 구석에서 퍼져 나온 ‘옴’의 울림에 의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역사 속의 죄?탐욕?죽음의 신, ‘마라’의 투영처럼 보인다. 마라는 싯다르타의 평생에 걸쳐 그의 진보를 방해하려고 한다. 그는 싯다르타가 약해지는 순간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림자처럼 그를 쫓는다. 옛 경전에서 나타나는 마라를 실제로 사람들이 신적인 존재로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싯다르타 내부의 방해요소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신으로 표현되는 방해물을 그의 소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남직 한 사건으로 대체함으로써 전체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이 시점에서 소설 속 싯다르타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강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싯다르타와 뱃사공 바스데바의 만남이다. 바스데바는 강을 닮은월을 통해 싯다르타는 ‘강에는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의 그림자나 미래는 없다’는 진리를 깨우쳤고 점점 바스데바를 닮아갔으며, 동시에 강을 닮아 갔다. 마지막 중요한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과의 만남이었다. 싯다르타와 카말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얼마동안 뱃사공의 오두막에 머물게 된다. 싯다르타는 부인의 죽음에도 의연한 자세를 보였지만 유독 자식에게만은 그 끈을 놓지 못해 괴로워했다. 이 사건은 역사 속에서 싯다르타가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사문이 되는 과정과 미묘하게 겹쳐지지만, 실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역사 속에서 싯다르타가 그의 자식을 떠난 것을 사랑에 대한 부정이라고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붓다에게 인간의 가장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랑’에 대한 싯다르타의 생각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가 깨달은 뒤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던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이 기초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경전들은 싯다르타가 떠나기 전 부인과 아들을 보고 가지 않은 것은 그들을 보면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한편 싯다르타의 아들은 인자한 아버지 밑에 있으면서도 결코 아버지를 사랑하고 따르지 않았다. 결국 아들은 그 생활을 참지 못하고 도망치게 된다. 여기서 역사적인 사건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속의 싯다르타가 자식과 부인을 두고 집을 떠난 것과는 반대로, 소설 속에서는 노년에 나타난 아들이 그를 떠난다. 다른 관점에서, 이것은 소설 속의 싯다르타의 아버지의 입장과 겹쳐져서 나타난다. 그의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사제가 되길 바랐지만, 그는 이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택했다. 다시 한 번 싯다르타의 아들을 통해 이 일이 반복됨으로써 앞서 언급했던 ‘스스로에 의한 해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즉, 싯다르타의 아버지도, 또 그 자신도 그이다.
    독후감/창작| 2020.09.21| 6페이지| 3,500원| 조회(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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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디자인과생활] 디터람스 전시회 감상문 (Less and More, The Older The Better) 평가B괜찮아요
    Less and More, The Older The BetterOOOO과0000-00000 OOO전시회와 나의 명상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아담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흰색 건물 하나가 들어온다. 독일의 유명한 가전제품 회사인 브라운(Braun)사의 핵심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전시회가 열리는 대림미술관이다. 작품 활동 내내 미니멀리즘의 전통을 추구했던 그와 잘 어우러지는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과 가까이에 위치한 곳이라 동네 안에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은은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미술관은 꽤 현대적인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이런 주변의 분위기와도 잘 조화되고 있었다. 미술관 안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디터 람스의 여러 작품들과 작품의 스케치들을 감상하면서 먼저 든 생각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었다.아름다운 것에 대한 원초적 관심평소 아름다운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지녀왔다. 아름다운 옷, 그림, 사진, 사람, 건물 등 나를 시각적으로 잡아 끄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상하고 감동을 느꼈다. 심지어 그것들 중 아름다운 의류나 장신구를 다루는 패션사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미지의 운동역학’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이미지에 끌려 나의 꿈과 미래까지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사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지만, 그것의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고, 고민했다 하더라도 어떤 훌륭한 귀결점에 다다른 적은 더욱 없다. 지금까지 내가 아름다움에 끌렸던 방식은 단지 시각적인 즐거움에 오는 일차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본능적인 반응이 더 정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에게 ‘운동역학’으로서 작용해왔던 이러한 아름다움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아름다운 디자인=좋은 디자인?하지만 이것을 말하기 전에 어떤 것이 아름답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과연 그것의 디자인이 좋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가리키는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좋은 디자인의 충분조건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앙드레김 특유의 무늬로 가득 채워진 세탁기를 처음 보았을 때 아름답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결국 그 제품을 직접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이유가 이것이 좋은 디자인일 수 없는 이유를 듣다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 디자인의 위화감에 스스로 질려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어쨌든 간에 디자인은 시각적인 상징들을 다루는 것이고, 최소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지만 이 상징이 내포하는 의미를 전달할 기회를 갖게 된다. 따라서 디자인에는 아름다움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한다. 아름다움이 좋은 디자인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아름답지 못한 디자인은 절대로 좋은 디자인일 수 없다. 이는 디터람스의 ‘Good design is aesthetic’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추하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때 이것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소박한 아름다움다시 전시회로 돌아와서, 나의 그의 작품을 보는 내내 행복하고 놀라운 기분에 젖어 들었다. 단순하지만 그 안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 그것이 내가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결국 그가 그의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이 아주 성공적으로 나에게 전해져 왔다. 전시장 안에는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사랑방’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디터 람스의 이러한 정신을 잘 표현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그의 디자인은 가장 서구적인 형태이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미덕으로 여겨져 왔던 ‘선비 정신’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말은 없을수록 좋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었는데, 디터람스의 디자인도 이런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디자인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말이 많지는 않지만 할 말을 제때 하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패션 산업에 투영된 디자인 철학평소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패션 디자인에도 디터 람스의 이런 철학이 그대로 투영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요즘 스웨덴 태생의 SPA 브랜드인 ‘H&M’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 옷들이 추구하는 바는 오히려 이런 철학과는 정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SPA의 브랜드의 공통적인 특징은 빠르게 순환하는 데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다른 스타일의 옷이 아주 짧은 주기로 나와야만 한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옷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조금은 장식적이어야만 하고, 변화도 이런 가장 디테일 한 부분에서부터 발생해야 한다. 이미 정해진 브랜드 만의 스타일이 있고, 이 안에서만 옷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변화에 불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브랜드들이 전세계적으로 열풍인 것으로 보아,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역동성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이런 브랜드들의 옷은 쉽사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지난 겨울에 샀던 옷은 이미 이번 겨울이 되면 약간은 구식처럼 느껴져 옷장 한 구석으로 물러나게 된다. 즉흥적으로 소비한 만큼 빠른 속도로 잊혀진다. 이런 SPA 브랜드들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것이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만큼 그들만의 디자인 철학이 켜켜이 쌓여있고,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가미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제품의 ‘질’만으로 책정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싼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면서까지 이 브랜드들을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런 브랜드들이 가지는 전통에 대해 은연 중에 매료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패션에도 명품이 있듯이, 디터 람스의 디자인은 가히 ‘생활가전’ 계의 명품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른 모든 명품들처럼 자신만의 아주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시간이 흘러도 전혀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다는 점이 이 디자인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하지만 디자인이 기본적이고 단순하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의미가 만들어 지지도 않고, 그것을 특별하게 해 주지도 않는다. 그 단순함은 디터 람스가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이라고 이야기 했듯이 제품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단순함이 되어야 한다. 제품을 보거나 만지자마자 제품의 용도가 아주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문손잡이의 경우, 사람들의 집게 손가락이 착 들어맞을 수 있게 그 부분이 약간 파인 형태로 되어 있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사물의 기능을 철저하게 연구한 끝에 나온 통찰력 있는 디자인, 그리고 이 통찰력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보여주는 디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전시회를 나오며디터 람스의 전시회에는 1960년경에 나온 작품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 점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인 자체에서는 그런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디자인에서는 미래적이거나 우주적인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을 극단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먼 미래가 되어도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은 이런 기능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고, 이는 그의 디자인이 시간을 초월해 미래에도 여전히 사랑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되려 시간의 흐름이 주는 그 아련함 때문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디자인은 ‘Less and More’이자 ‘The Older, The Better’이라는 명품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예체능| 2020.09.21| 3페이지| 1,5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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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한국현대사의이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대중독재론의 해석과 그 한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대중독재론의 해석과 그 한계OOO과0000-00000 OOO1.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논의2009년 10월 22일 자 ‘매일신문’에는 “국민 75%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 발전 일등공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김재경, 2009.10.22). 기사의 내용은 ‘영남대학교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가운데 75%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새마을운동’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61.7%는 새마을운동이 ‘잘살기 운동’이었으며, 92.3%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새마을운동 추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김희정, 2010.4.28). 이런 여론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시대는 오늘날까지도 ‘긍정적인 이미지’로 지속적으로 회상, 회자되고 있다.박정희 정권에 대한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는 정규교육과정에서도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일정부분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정권의 한계점 또한 지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규교육을 통해 박정희 시대의 양면을 배워온 필자로서는, 물론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이나 질문의 모호성에 의해 다소 영향 받은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 같은 긍정적 평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학생의 부당한 이유 없는 출석·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관계자 지도·감독하의 정당한 수업·연구 활동을 제외한 학교 내외의 집회·시위·성토·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이 조항을)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974년 4월3일 시행 대통령 긴급조치 4호 5항)박정희 정권 당시는 수업을 빠지면 학생을 사형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되는 이 같은 조문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금태섭, 2010.5.7). 이외에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해 72년 10월 만들어진 유신헌법과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한 일련한다 (조희연, 2010, pp. 403-404). 이러한 논리는 앞선 대중독재에 대한 정의가 담고 있는 약 네 가지 정도의 요소에 의해 뒷받침된다.첫째, 대중독재는 ‘전시 혹은 준 전시적’ 상황 아래서 형성된다. 조희연 (2010, pp. 227-249)이 지적하듯, 1960년대는 1950년대 휴전 직후의 체제의 긴박성과 대결성이 일상성으로 전환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는 1950년대의 준 전시 체제와 비교하여 “의사(擬似)”전시 체제의 성격을 갖는다.둘째, 대중독재는 ‘동원’을 전제한다. 동원은 지배의 동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목적의식적 실천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새마을운동과 같은 정치사회적 대중 동원, 반공 교육 등 교육을 통한 동원, 반공주의와 개발주의라는 핵심적인 기제들을 이용한 이데올로기적 동원 등, 다양한 동원 양상들이 나타났다 (조희연, 2010, pp. 242-243). 임지현 (2009, p. 27)이 지적하듯, 이때의 동원은 지배 블록의 헤게모니에 기초한 자발적 동원 체제로, ‘합의의 독재(Consensus dictatorship)’의 외양을 띤다.셋째, 대중독재는 정권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민중의 자발적 동의 체제는 그 배후에 국가 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여, 그것이 강압에서 촉발되었든 자기 기만적 확신의 메커니즘을 전제로 하든, 권력과 민중의 타협과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임지현, 2009, p. 36). 또한 파시즘에 보낸 민중의 이 같은 갈채는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가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이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임지현, 2009, p. 44).넷째, 대중독재는 ‘주권독재’ 개념에 의해 지지된다. “주권독재”란 ‘국민’의 이름으로 정권이 주권을 위임 받아 행사함을 뜻하는데, 이는 유신체제에서의 동의 형성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임지현이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고 제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상록, 2006, p. 224).앞서 살 또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 사전적인 의미로 ‘자발’은 남이 시키거나 요청하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기 스스로 나아가 행함을 뜻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대중독재론에서 민중은 지배권력의 헤게모니에 의해 완전히 설득 당해 강압이나 일체의 물리적 폭력 없이도 스스로 나아가 체제에 동원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미 ‘자발’이라는 말 속에서 지배 계급의 강압적인 모습은 흐려지고, 이 정도의 자발적인 동원을 가능케 한, 잘 짜인 헤게모니를 만들어낸 성공적인 정권의 모습만이 남게 된다. 이 같은 시각은 임지현 (2009, p. 44).의 “파시즘에 보낸 민중의 이 같은 갈채는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가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이 침투했음을 의미한다”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동의’의 개념 사용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드러난다. 임지현 (2009, p. 36)은 동의에 대해 “민중의 자발적 동의 체제는 그 배후에 국가 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여, 그것이 강압에서 촉발되었든 자기 기만적 확신의 메커니즘을 전제로 하든, 권력과 민중의 타협과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고 언급한다. ‘합의’는 일반적으로 더 강한 정도의 동의를 의미한다. 사전적으로도 ‘동의’는 의사나 의견을 같이함, ‘합의’는 서로 의견이 일치함을 뜻한다. 이에 따르면, 대중독재는 독재 권력과 민중의 의견이 서로 ‘일치함’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중독재’의 개념이 “통치자≒피치자”의 상황을 지칭하고, 박정희 정권을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의 특수한 사례로 포착한다는 기존의 대중독재에 대한 비판과도 관련된다 (김보현, 2006, pp. 388-389). 이에 대해 임지현이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고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상록, 2006, p. 224).국가 권력의 헤게모니의 작동에 대해서도, 임지현 (2009, p. 36)은 “강압”이나 “자기 기만적 확신의 메커니즘”이 그 전제가 된다고 밝히는데, 이는 헤게모니가 작동하는데 있어서 내부의 복잡성을 간과한 단편적인 시각이다사회문화적 기반이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결국 임지현은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특집/민중, 희생자인가 공범자인가 - 파시즘의 진지전과 '합의 독재’〉라는 그의 글 속에서 “정권의 억압에 분노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공범자적 측면을 인정해야 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반민중적 우파나 기계적 좌파가 오해하듯이, 전체주의 국가 권력에 갈채를 보낸 민중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거나 그들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하겠다는 식의 엘리트주의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히는데, 이는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민중을 이미 ‘공범자’로 규정한 이상, 독재 정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스스로 동원된’ 민중에 대한 책임 묻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4. 대중독재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논의들 - 박정희 개발동원체제의 정치사회적 이중성앞선 논의에서 대중독재론의 개념의 모호성과 다소 정제되지 못한 논의의 피상적인 측면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중독재론이 가지는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논의는 가능한가?앞서 언급했듯이 대중독재론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기존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평가를 뛰어넘어 조금 더 발전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용되는 개념이 모호하고 논의가 다소 투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역사 서사의 이분법적 문제설정에 함몰되었다는 평가 또한 받고 있다 (이상록, 2006, p. 228).이런 대중독재론이 지니는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조희연이 제시한 다층적인 의미의 지배가 유용한 도구가 된다. 조희연 (2010, p.186)은 지배를 “강압과 동의의 복합물”로 보았다. 여기서 핵심은 강압과 동의는 “제로섬”적인 개념이 아니며, 강압에 대한 동의의 정도는 상이하다는 점이다. 즉, 현실에는 “완전한 동의”와 “완전한 강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동의적 강압(consentient coercion)”과 “강압적 동의(coercive consent) 모습은 지배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요소들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고 결합되어 있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나타나는 양상은 지배와 저항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그 내용과 경계가 수시로 변화할 것이다.하지만 이 같은 조희연의 지적은 대체로 요소들의 범위와 정도가 작위적으로 정해진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그는 지배를 “강압과 동의의 복합물”로 보았지만, 각각의 역사적 사건에서 요소들이 어느 정도 비중으로 나타났는지를 보여주는 데는 미흡했다. 예를 들어, 초기의 농촌 새마을운동은 능동적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 후기의 새마을운동은 능동적 동의 기반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가 어느 정도로 일어났는지, 과연 초기의 새마을 운동에서 얼마만큼의 능동적 동의를 전제할 수 있는지, 후기의 능동적 동의의 상실은 어느 정도로 일어 났는지 등의 ‘정도 정하기’에 있어서는 굉장히 작위적이다.결국 조희연 (2010, p. 307)이 지적하듯이, 박정희 독재의 성격을 둘러싼 각축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에 따라 역사의 해석은 변화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의해 경제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명박식의 ‘신개발주의’가 지지를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따라서 대중독재론에 대한 인식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어느 정도’로 결합되어 있는지는 사회적으로 정해진다고 보인다. 박정희 시대의 독재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 해석에서 궁극적으로 지양해야 하는 바는 ‘극단성’이다. 즉 박정희 시대를 ‘경제 발전과 근대화를 이룩한 성공적인 시대’로만 평가하거나 ‘무자비한 탄압으로 민중들이 억압된 시대’로만 평가하는 두 극단적인 주장은 현실에도 맞지 않으며, 지양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인정한 후에 역사 재조명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역동성은, 그 나름의 논리를 가진다면 인정되어야 한다. 이 또한 먼 미래에서 되돌아 보았을 때 역사 6
    사회과학| 2020.09.21| 6페이지| 3,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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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국제정치학입문] 케네스 월츠의 '국제정치이론'과 알렉산더 웬트의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 비교 서평
    현실주의와 구성주의 국제정치 이론에서 나타난 무정부 상태의 비교-케네스 월츠의 『국제정치이론』과 알렉산더 웬트의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을 읽고-OOOO과0000-00000 OOO1. 서론케네스 월츠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국제 정치 이론과 알렉산더 웬트의 구성주의 국제 정치 이론은 현대 국제 정치 체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핵심적인 이론들 중 하나이다. 두 이론은 같은 국제 정치 현상에 대해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이론의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이 둘의 관계는 심지어 아이러니하다. 두 이론 모두 서로 다른 체계에 바탕을 두면서도 각자 나름대로의 논리력과 설명력을 지닌다. 결국 이는 두 이론 모두 내적인 이론 체계가 탄탄함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만큼 국제 정치 영역이 복잡하기 때문에 어떠한 설명도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임을 뜻할 수도 있다.필자의 의견은 전자와 후자 모두를 포함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복잡한 국제 정치 구조는 그 양상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설명들을 필요로 한다. 그 이론 가운데에서도 유독 이 두 이론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이론에 비해 두 이론의 논리 구조와 설명력이 뛰어남을 뜻하는 것일 수 있겠다.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국제 정치 상황에 맞는 여러 분석틀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 이론이 채우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다른 이론이 대신 채워줄 수 있다. 결국 두 이론은 상보적인 관계이다.앞으로 글을 통해 두 이론의 이론적 기틀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론의 강점과 약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두 이론의 내적 특성을 가지고 상보적인 접근이 가능한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케네스 월츠의 현실주의 이론2.1.1. 현실주의 이론의 논리 형성 과정케네스 월츠는 국제 정치를 하나의 ‘체계’로서 파악하면서, 국내 정치와의 비교를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를 구분하는 세 가지 범주에는 배열의 원리, 단위들의 특성, 단위 사이의 능력의 분포도가 있다.첫째, 국제 정치는 중앙 정부가 부재하는 체계로서 서로 간의 ‘조정’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에 비해 국내 정치를 이루는 부분들은 정부를 중심으로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둘째, 국내 정치의 단위들이 그 기능에 따라 고도로 분화되어 있는 것에 비해 국제 정치의 단위는 ‘국가’로서, 각 국가들은 수행하는 기능이 비슷하여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셋째, 결국 국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능의 차이가 아니라 능력의 차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능력’ 그 자체보다 능력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능력의 ‘분포도’가 더 중요하다.결국 이 세 가지 범주를 정리하면 국제 정치에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비슷한 기능을 가진 국가들이 기본 단위로서 존재한다. 월츠는 이러한 국제 정치 체계를 ‘무정부 상태’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각 국가들의 최고의 목표는 자국의 생존, 즉 안보이다. 한편 국가들은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 등을 통해 다른 나라에 종속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정부 상태의 국제 정치 체계는 각 국가들로 하여금 상호의존이 아닌 ‘자조’하는 전략을 갖도록 한다.2.1.2. 월츠 이론의 한계점월츠가 책에서 밝히듯 그의 국제 정치 체계에 대한 논리는 어디까지나 상세한 기술이 아닌 전반적인 설명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설명력을 획득하기 위해 그의 이론은 다양하고 역동적인 국제 정치 체계의 많은 요소들을 임의적으로 생략하고 있다. 국제 정치 체계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단위는 오직 ‘국가’ 뿐이며, 각 단위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체계와는 다른 차원으로, 이는 단위들의 속성에 포함된다. 그의 논조는 전반적으로 ‘과정’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듯이 보인다.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구조는 구성단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하며, 구성단위들의 역동성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가 유일한 국제적 행위자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하며 국제 정치 구조 안에 국가 외에 다른 행위자가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국제 정치에 있어서 국가 중심적인 인식이 쓸모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결국 그는 국제 정치 체계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인지하면서도 설명의 편의를 위해, 그리고 이론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를 생략하는 듯하다. 또한 구조가 ‘규칙’ 도입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구조적 제약 안에서는 이러한 규칙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결국 그의 논리는 변화에 대한 현실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이 이미 전제된 구조 안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동시에 폄으로써 굉장히 폐쇄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2.2. 알렉산더 웬트의 무정부 상태 이론2.2.1. 구성주의 이론의 논리 형성 과정알렉산더 웬트는 국제 정치에서 구성주의 이론가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 스스로는 “구성주의는 국제 정치 이론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그의 이론은 국제 정치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어떠한 사회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이론이다.그런 이론의 출발점 때문인지 웬트의 구성주의 이론은 국제 정치 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국가는 개인 행위자와 구분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자체로 유기적 행위자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국가 단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국가 체계 또한 형성된다.하지만 그는 이렇게 형성된 국가 체계는 국내 정치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에게 무정부 상태는 ‘현존하는 어떠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부재하는’ 상태이다.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 비롯된 관념들이다.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무정부 상태는 홉스, 로크, 루소적 문화를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국가들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 그의 국제 정치 체계에 관한 논리이다.또한 국가 행위자와 그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구조는 그 자체가 ‘과정’이다. 결국 국가 행위자들의 역동적인 변화는 구조 자체를 생산, 재생산하며 변형시키기도 한다.2.2.2. 웬트 이론의 한계점월츠의 이론과는 반대로 웬트의 구성주의 이론은 너무 많은 것을 포함함으로써 설명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이론 내에 너무 많은 요소들을 전제하고 있다. 그 스스로 “국제관계라는 부제 안에 무수한 개체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다보니 이론이 적용되는 대상도 국제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그가 무정부 상태의 문화라고 지칭하는 적, 경쟁자, 친구를 전제한 세 가지의 문화는 서로 간에 상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다. 즉 로크의 문화는 홉스의 문화보다 진보한 것이며, 루소의 문화는 로크의 문화보다 더 진보한 것으로 인지된다. 하지만 그는 “진보는 있어왔다”고 말하면서도, “진보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진보가 있어왔던 것은 엄연한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이 과정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부재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진보한 체제가 후퇴할 일은 없다고 주장하며 선거권의 예시를 든 것과는 비교된다. 다양한 가능성들을 모두 인정하다 보니 이론이 포괄하는 범위가 점점 커지는데 반해, 이론을 하나로 엮어내는 설명의 핵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해 보인다.2.3. 두 이론의 비교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케네스 월츠와 구성주의의 알렉산더 웬트는 몇 가지 가정들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는 몇 가지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국가가 국제 정치 체계 내에 유기적 행위자로서 인정된다는 점이다. 둘째, 국가는 국제 체계에 앞서며, 국가 단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국가 체계가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 정치 체계는 무정부 상태이다. 구조 내의 행위자와 구조의 형성 원리와 같이 큰 틀에서는 두 이론 간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이런 몇 가지의 공통된 전제에도 불구하고 두 이론이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방향성의 문제이다. 웬트가 밝히듯이 “현실주의 이론은 규범적”이다. 즉 월츠의 현실주의 국제 정치 이론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방향성을 가진다. ‘국제 정치 영역은 무정부 상태’라는 처음의 전제가 이론의 모든 전개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내적인 변화의 동태와 이를 위한 규칙 또한 무정부 상태라는 환경에서 비롯된 국가들의 생존 추구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국제 정치 체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양상을 띠어야 하는지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20.09.21| 5페이지| 2,500원| 조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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