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교과 논리 및 논술-5장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저자는 장의 도입부에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교육을 받으면 잘 사는가와 교육을 하는 사람은 더 잘 사는가. 이는 2장의 삶과 공부에서 잠시 나왔던 질문이며 이번 장에서 더욱 깊이 다룬다. 교육자에게 더 잘 사는가라는 대답에 대해서, 저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와 직결된다고 말한다.저자는 독자들에게 교사의 길을 걷는 사람의 삶은 ‘사범형 인간’이라 한다. 고리타분하고 어울릴 줄도 모르며 융통성마저 없는 이 ‘사범형 인간’으로 거듭나며, 더해서 이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사범형 인간’을 양성할 수 있는가? 저자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현상을 보는 ‘안목’이라고 한다. 이는 저자가 이번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적 관계란 그저 교과가 지닌, 학문이 지닌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성립된 관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학생은 그저 학문의 잠재적 전달체이다. 또한, 저자가 말하는 ‘정상적인 상태’ 속에서 교사의 제자가 자신과 같은 삶의 길에 들어간다는 학생을 보곤 쌍수를 들며 환영하며, 이 외의 학생은 사회의 유능한 ‘일꾼’으로 치부한다. 3장 중 한 문장, ‘학교에서 ··· 배워나가는 동안에, 사람들은 상식의 세계에 주저앉아 버리지만, 소수는 ··· 끝까지 올라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와 대면 ···.’이 떠오른다. 이는 너무나도 학문적인, 마치 학문의 유토피아와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에 따르면, 교사의 ‘안목’을 제대로 깨달은 소수의 학생만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이며, 이 외에는 교육받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외’는 무엇인가 의문이다. 다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지식의 전달은 교육이 아니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외’를 가르치는 학교와 다른 기관에서 행해지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교육에 대해서 편협하게 정의했다고 말하고 싶다.또한,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존경이 밀고 들어갈 틈마저 주지 않는, 지식으로 가득 찬 교육적 관계는 교육이 사이에 오가는 또 다른 가치 등을 도외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사와 학생 간에 지식의 전달이 일어날 때 그저 잘 가르치기만 하면 학생이 깨닫는 것도 아니다. 교사의 품성과 어떻게 가르치는가 또한 중요하다. 지식의 깨달음은 번쩍하고 오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함을 외면한 채 지식이 지닌 가치를 전달하는 것에 중요성만을 말한다고 느꼈다. 물론 저자가 서술한 글을 볼 때마다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자칫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질문에 추를 달아 무겁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큰 범위가 아닌, 그저 ‘지식의 전달’이나 ‘학문’에 너무 무겁게 추를 달아놓은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