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저자:김민섭학교 다닐 때, 윤리 과목에서 ‘성선설’ 과 ‘성악설’을 배웠는데, 나와 친구들은 그 철학적 이론들이 마치 수학 과목에서 정답이냐 오답이냐를 논할 때처럼 일대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어떤 친구는 어린아이들이 벌레를 죽일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이고 웃는 것을 보아라,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하였고, 어떤 친구는 도움이 필요한 이를 보면 측은지심이 들며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둘 중 무엇이 맞을까. 나는 과연 원래 악한 사람인가 선한 사람인가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이 글을 읽고 문득 그때 친구들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원래 인간이 태어날 때 선하고, 악하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한쪽으로 기울어 선한 혹은 악한 행동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정답과 오답처럼 누가 맞는지를 가리고 싶어 했을까 싶었다. 우리가 선한 행동 혹은 악한 행동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을 상대적이니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나눠 판단할 수 없다. 저자가 아홉 살 시절, 옆집 여자아이보다 시험을 못 보아 여자아이가 기뻐했으니 자신은 착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소년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저 꾸중할 만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학교생활 내내 친구들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듣는 것이 좋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착한 일을 했지만 그것이 꼭 ‘원래 착하기 때문에’라고 만도 볼 수는 없어 보였다. 그저 아이가 칭찬받고 싶어 한 행동이며 자라면서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남을 이기려고도 하고, 특별히 도우려 하지 않았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에 했던 착한 행동들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어 가진 자신을 위한 생각들이 악하다고 볼 수는 더더욱 없다. 그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이뤄진 것일 뿐이다.물론, 세상에는 성인이라 부르는 정말 평생을 남을 위한 행동만을 하는 존경할 만한 분들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그림은 사람마다 다르듯 누군가는 1등이 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누군가를 이기는 것에 의미를 두지만 누군가는 소외되고, 가지지 못하고, 늘 뒤처진 이들을 보살피는 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고 불리는 ‘악한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람의 희생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다양한 것이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아홉 살 시절의 ‘나’부터 어른이 된 김민섭 씨가 정말 착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읽게 되었다. 그저 남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받고 싶고, 누군가가 자신의 주변에 모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착한 일을 찾으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남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진 사람이 더 많다면 그건 충분히 의심할 여지 없이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삶 아닐까.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너무나 흔하게,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런 작은 배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가져도 되고, 주인공이 되어도 된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그 말을 어렵고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루기가 어려운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작은 마음들이 하나의 실처럼 모여 좋은 일이 좋은 일을 불러오고, 선한 이가 선한 이를 모아 더 좋은 일을 만들어낸다. 저자의 글에서 나는 그런 선함의 힘만큼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언택트 시대로 다시 주목받는 실패하지 않는 요리 ‘밀키트’‘코로나 시대’ 202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선언 후,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변화하였다.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거리의 유동 인구였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최소한의 외출을 권고했고, 외부 출입을 자제하며 대부분의 사람은 집 안에서 업무와 식생활을 해결하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 시대가 시작된 것이었다.경제구조와 생활양식의 모든 영역이 비대면 언택트 문화로 바뀌어나갔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는 유동 인구, 대면 인력의 급감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에 반해 비대면이 활성화될수록 활성화되는 분야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유통산업이었다. 유통업계는 ‘언택트 서비스’가 떠오르기 시작하며 오히려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점유하던 비중까지 감당하며 온라인 시장과 함께 매출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특히 밀키트 상품 등 가정 간편식의 소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밀키트란 요리에 필요한 주재료와 부재료를 전처리한 후 조리 방법을 세트로 구성하여 서비스하는 상품이며, 이를 레시피 박스 또는 쿠킹 박스 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가정 간편식(HMR)과는 다르게 밀키트는 냉장 상태로 진공포장 되어 상품을 배송하고 함께 제공되는 레시피에 따라 구매자가 직접 조리하는 것으로 메뉴에 대한 고민, 조리 시간, 식재료 구매 시간에 대한 단축으로 소비자가 편리하게 요리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이미 코로나 이전, 신혼부부와 1인 가구를 겨냥해서 한동안 반짝인기를 끌다가 가격이 비싸고 메뉴가 한정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기가 오래 가지 못했던 품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시로 외출, 외식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재택이나 여러 이유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고, 끼니를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안전하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려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그렇게 간편 가정식(HMR:Home Meal Replacement)과 밀키트(meal kit) 시장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는 언택트 시대 이전보다 전체 밀키트 시장 규모로만 보아도 2배 이상 성장했다.국내 밀키트 시장을 처음 개척한 것은 2016년, ‘프레시랩’, ‘닥터키친’ 등의 스타트업 기업이었다. 이후 밀키트 시장의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하며 ‘cj 제일제당’과 ‘한국야쿠르트’ 등 식품업계와 ‘GS리테일’과 ‘이마트’ 등 유통업계까지 모두 뛰어들어 시장 선점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밀키트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각 기업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전략이 다양해지고 개발 규모가 커질수록 밀키트 시장 자체의 규모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2년여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언택트 시대는 밀키트 시장이 성장할 충분한 동력과 시간을 제공한 셈이다.그중에서도 ‘CJ제일제당’은 특급호텔 출신 셰프들을 스카우트하여 신 메뉴를 개발하여 밀키트 고급화를 시키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밀키트 ‘쿡잇’은 고급화를 시도하여 부챗살 찹스테이크 등의 인기 메뉴는 품절사태를 빚기도 했다. 그 밖에도 미슐랭 맛집도 밀키트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마트는 미슐랭 1스타 맛집 8곳을 추가해 약 20여 종의 미슐랭 맛집 음식을 밀키트 상품으로 출시 계획을 세우고 있다. CJ 측은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쿡잇 메뉴를 선보여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최적화된 밀키트 브랜드가 될 것”이라며 “집에서 간단한 조리만으로 미슐랭 1스타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밀키트 상품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밀키트 생산 기업들은 서로 경쟁전략을 가지고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급격한 밀키트 시장의 확대는 여전히 수요 예측의 어려움, 유통기한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와 손봐야 하는 부분도 많다. 특히 밀키트 제품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대부분의 제품이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최대한 정식 조리 음식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유통기한이 일주일 이내로 짧게 설정된다는 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유통기한이 짧으면 식품의 변질 위험성으로 인해 품질 이슈 발생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고, 유통기한 내에 일정 수량이 판매되지 않았을 경우 재고 폐기에 따른 손실 부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제품 특성상 생산 자동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보완이 필요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밀키트 제품을 하나 만드는 데에도 식자재들을 소분, 소포장하여 생산 공급하는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 공급업체가 따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대부분의 밀키트 생산 업체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점들이 현재 밀키트 시장 성장의 한계점이다.그렇다면 이러한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첫째는 다품종소량생산을 통한 개인별 맞춤 조리 가능성과 신선도에 초점을 맞추어 재고량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두 번째, 재료 포장과 포장재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는 등 비용 절감에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 번째, 최근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 무인화 시스템이 각광을 받는 만큼 밀키트 무인 매장을 만들어 가장 큰 고정비 지출인 인건비 절약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창업자와 종업원이 매장에 상주할 필요가 없고, 24시간 운영하면서 별도의 노동력 없이 부담 없고 손쉬운 운영을 할 수 있다. 네 번째, 더 장기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여행을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외국 음식의 맛을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게 밀키트로 손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례로 이국적인 에스닉 푸드(이국적 느낌이 나는 제3세계의 고유한 전통 음식)을 맛과 향을 가진 제품을 출시하여 에스닉 푸드 제품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어떤 것을 하염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저것(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30년 동안 아픈 나무를 돌보며, 자신의 모든 생이 나무와 함께하며 배우는 삶이었노라 말하는 나무 의사 우종영,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다시 물어보았다. ‘나는 나무를 어떻게 생각해왔었지?’ 하고 말이다. 생각해본즉슨, 나에게 나무는 한번 뿌리 내린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생을 다하는 올곧고, 변함없으며, 그 수명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수백 년을 살아내기도 하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 있었기에 나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아갈 수 있었다.‘나무 의사’ 그러나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픈 나무들을 보살피며, 그는 오히려 나무를 치료하겠다는 마음을 앞세워 무언가 억지로 옮기고, 자르고, 치료하는 것이 오히려 나무의 생육을 방해하고,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서서히 배워갔다고 하였다. 그 스스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한 사람을 키워가는 것도 나무를 보살피는 것도 그렇게 매한가지로 지켜보고, 본래 가진 성향과 습성을 이해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너무 춥거나, 덥거나, 너무 위험한 상황이 오면 나무든, 자식이든 살펴 보듬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이 타고 난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진리를 그는 그 긴 시간 동안 깨달아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전 세계에 나무가 없는 곳이 없고, 수많은 나무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나무를 그처럼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르고 다듬어 자신의 정원에 원하는 모양대로 세워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법이야 사람마다 그렇게 다른 것이지만, 그가 나무 의사로서 보면 30년의 세월 동안 깨달은 것은 ‘결국 나무는 나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라는 것이었던 것이었다.언젠가,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깎아지는 절벽에 멋들어지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생각난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절벽에 어떻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저런 절벽의 거센 바람만이 저런 멋진 가지모양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들은 후, 나는 한참을 소나무 가지를 쳐다본 적이 있었다. 산이 아닌 평지에서 내가 보아오던 곧고 굵은 가지를 일자로 뻗은 소나무, 그리고 흙 한 줌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가지를 휘어 뻗어나간 소나무, 나무는 마냥 씨앗이 바람에 날리다가 자리 잡은 곳에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을 깨어냈던 말이었기에 매우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순응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곳에 적응하되 누구보다 강한 집념과 강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빚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과 당사국총회(COP)1. 서론‘2015 유엔 기후 변화 회의’ 이른바 ‘파리 협정’이라고 불리는 이 회의에서 체결된 조약은 그 기후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로 해결법을 모색해 당장 실현해야 한다는 여러 나라들의 합의가 담긴 협정이었다. 이 협정의 주요 안은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 폭을 2℃ 이하로 유지하며, 더 나아가서는 1.5℃로 낮춰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 이뤄지는 다수의 개발, 운영 중인 공장과 기타 이윤과 편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당초 195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음에도 2017년 미국이 탈퇴 선언을 하고, 2000년 공식 탈퇴를 하는 등 협정을 이행 중인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에 이견 대립이 컸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또 다른 이견 국가도 미국의 탈퇴에 덩달아 탈퇴하겠다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협정 자체가 유명무실화될 것이 예견되었기에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이를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국제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기후 협정으로서 최초로 포괄적 구속력이 적용되는 국제 법으로서 효력이 발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 탈퇴 당시 “파리 협정이 미국에 불공평하며 미국민들에게 손해를 준다.”라는 탈퇴 이유를 밝힌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해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성을 가져야 할 미국의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 이전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기, 그리고 현재 바이든 정부에 들어서 또 다시 파리 협정 재가입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고 그때마다 이유가 경제적 이윤이냐 공공의 책임성이냐 하는 것이 논쟁이 되는 것만 보아도 이 협정이 국가의 경제개발, 산업발달과 어떤 반비례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 쉽게 알 수 있었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떨까? 당초 정부는 는 2030년 BAU* 대비 37%인 315백만 톤 감축 목표를 UNFCCC**에 제출했다.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을 확정하고, 2030년 목표 달성을 위한 업종별 감축량 및 분담방안을 발표하였고, 국내 감축분만 보아도 전환 부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인 64.5백만 톤 감축(19.4% 감축률), 산업부문에서 두 번째로 많은 56.4백만 톤(11.7% 감축률) 목표를 계획했다. 주요 부문으로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전기 전자, 반도체 부문에 가장 큰 변화가 요구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업계에서는 향후 감축 주체를 정확하게 정하고 감축 관련해 국제 사회가 좀 더 합의를 거쳐 글로벌 배출권 거래시장을 확대하는가 하면 재원 조달 방법 마련 등의 전제조건 충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세부 주정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에는 거의 동조하지만 그런 인도주의적 입장을 벗어나 보면 모두 경제적 이윤과 각자 분야별 이해관계에 따른 다른 입장과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정확한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협약의 영향력에 대해 정확히 알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2. 본론(1) 국내 감축목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첫째,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의 비중이 특히 높고,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국내 감축목표 달성만을 고려한다면 전체적 산업 분야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물론 정부는 국내 산업 구조의 특성을 감안해 온실가스 감축 영향을 최소화할만한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하였지만, 이는 업계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 부문이었다.두 번째,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비용 감축 수단이 제한적이기에 감축량 중 상당 부분을 배출권 시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 부분도 손실로 고려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생산량을 축소하는 것이나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생산량 자체는 유지하면서 저렴한 감축 수단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철강, 석유화학 부문에서 에너지효율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축량의 상당 부분을 배출권 시장에서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가 이미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 달성으로 저비용 감축 수단이 실질적으로 극히 적기 때문이다.세 번째, 만약 산업 부문에서 2030년 국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감축량 전량의 배출권을 구매하게 된다면 연간 우리는 약 1.7조 원 상당의 탄소 비용(감축비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64.5백만 톤 감축(19.4% 감축률), 산업 부분에서 두 번째로 많은 56.4백만 톤(11.7% 감축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뒤로도 시멘트(4.5%), 섬유(3.2%), 석유화학(2.6%), 전기 전자(2.1%), 디스플레이 등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전환(발전) 부문에서 저탄소 발전원 확대가 산업부문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요인이 됨은 물론 추가적인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질 것으로 예견된다.(2) 당사국총회의(COP)의 의미2021년, 올해는 교토의정서가 만료되고 새 기후 체제가 출범하는 첫 해이다. 이 시점에서 누가 글로벌 경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새 기후 체제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판가름 날 것이다. 그리고 여수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하며 남해안 남중권의 중심으로 서 낙후되어가는 지방 경제를 일으키는 핵심 도시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바 있었다. 2007년에 이미 여수 엑스포 유치 성공 이후 박람회장 사후 활용에 대해 논의하면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유치를 거론했고, 전남 동부 5개, 경남 서부 5개 시군의 민관산학정이 함께 참여하여 ‘COP18 광역여수엑스포권유치위원회’를 구성하는 적극성도 내비쳤다. 더군다나 여수 남해안 남중권에는 여수산단, 광양제철소, 삼천포화력발전소, 하동 열병합발전소 등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가득 찬 전국 최고의 오염지대가 남아있어 이를 개선할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오염원을 해결하고, 도시를 개발해 장기적인 경제이윤 창출이 가능할 만한 산업발달이 이뤄진 다음에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여수는 이 문제에 그만큼 간절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이번 유치가 가능해진다면 여수 지역을 중심으로 남중권 개발 문제를 해결할 좋은 계기가 됨은 물론, 대한민국이 이 문제에 있어 중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 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3. 결론물론, 위와 같은 여러 비용적인 부담과 우려를 감안하고서라도 지구를 위하자는 전 국가적 분위기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신기후체제를 지켜나가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이를 어떻게 더 적은 비용부담과 손실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대책을 강구하고 하루바삐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주력산업 중에서 저탄소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더 커질 것인 바,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편 시, 신 기후체제에 대한 대응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범용설비를 합리적으로 구비하고, 기능성 제품이나 초경량화 제품을 좀 더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제품의 생산,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고 친환경 공정으로 전환할 방법이 있을지 좀 더 다각적인 대응도 모색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신기후체제를 에너지 가격의 불안정성, 기존 주력산업의 부진을 극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새로 바라볼 수 있다면 오히려 이 체제가 신 성장 동력 창출의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마니카르니카_잔시의 여왕 』2019년 개봉, 인도라다 크리슈나 자갈라무디 감독‘항쟁과 독립의 역사, 인도 근현대’우리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배울 때 어떤 용어와 지명의 사용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5, 18 민주화 운동’ 의 경우 꽤 오랫동안,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5, 18 민주화 ‘운동’은 체제에 반항하여 일으킨 지방의 반란 혹은 ‘항쟁’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운동, 항쟁, 반란 이 세 가지는 다수의 사람이 무력까지 동원해가며 어떤 세력이나 거대한 힘에 맞선다는 정치적 용어인 것은 유사하다. 하지만 분명 반란은 정당한 정권과 정치적 흐름에 반항한 일부의 잘못된 움직임 같은 성격의 단어이며, 항쟁이나 운동은 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위해 일어섰던 일이라는 뜻이니 이를 제대로 쓰는 것이 어떤 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인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내게 너무 생소한 인도의 근현대 항쟁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용어 사용의 중요성이 함께 떠올랐다. 그 이유는 내가 ‘잔시 왕국’ 이나 ‘라니 락슈미 바이’, ‘인도의 독립’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세포이 반란, 항쟁’이라는 단어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세포이 반란이나 세포이 항쟁이라는 단어는 인도인들은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가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포이 항쟁, 반란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침략국이었던 영국이 인도 내에서 일어났던 대규모의 무력 항쟁을 축소하고, 근대화의 바른 개혁에 반발하는 반란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인도의 입장에서 독립전쟁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이 생소한 역사를 나는 영화와 함께 알아가기 시작했다.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군사적, 정치적 사건이 벌어지면서 점차 경제적 침략으로 이어졌으나, 인도의 경우에는 영국이 처음 인도의 지리적 이점을 두고 건너와 무역을 권하며 ‘동인도 회사’를 세우면서 시작하였다. 이후 1760년대 초반부터 무굴제국과 영국은 조금씩 무력적 충돌을 하며 서서히 벵골, 비하르, 오디샤 등에 대한 징세권을 영국이 가져가게 되었고 그렇게 아주 작은 소국들, 다양한 종교에 의해 독자적으로 지배되던 인도의 왕국들은 동인도회사에 굴복되어 나갔다. 영화 속에서 라니 락슈미 바이가 전사했던 괄리어 전투가 일어난 1858년이 일종의 절정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부터 영국의 인도 지배는 가속도를 붙이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대로 인도를 영국력 인도 제국으로 출범시켜 정부 직할로 편재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군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기점이 되었다.애초에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함께 하는, 힌두교 등의 아주 독특한 종교적 문화와 신앙을 가진 나라였다. 그런데 영국은 그런 그들의 고유문화를 인정하지 않은 체, 자신들의 공리주의와 기독교 전교를 앞세운 사회개혁을 시도한 것이 항쟁을 일으키게 만든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힌두교의 풍습을 금지하고, 전통적 지식체계를 붕괴시키는 영국인들을 인도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게다가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나는 수많은 재화와 향신료 등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면서도 인도에 과중한 토지세를 부과해 토지 소유자들을 빚더미로 몰아갔다. 그렇게 서서히 경제적인 압박을 느끼며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인도인들의 영국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고 있었고, 영화에서처럼 급기야 인도 왕국이 인정한 왕위마저 인정하지 않은 체, 왕국 자체를 없애고 모두 영국령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영국의 잔 다르크, 인도의 락슈미 바이’이 영화 속에는 그 1차 독립전쟁이 일어났던 1857년 무렵의 인도를 보여준다. 인도 중부의 작은 왕국이었던 잔시 왕국의 왕비 ‘라니 락슈미 바이’ 그녀는 왕비의 몸으로 후계자를 낳았으나 왕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영국으로 인해 왕국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잔시 왕도 서거하고, 그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왕비로서 선봉장에서 영국에 대항해 세운 위인이었다. 일찍이 검술이나 승마, 궁술 등을 익혔고, 부대까지 창설한 경험이 있었기에 용병과 의용군을 모았고, 여성이라고 하여 무시하는 반란군 지도자들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영국을 상대하였다. 그리고 1858년에 괄리어에서 전사할 때까지, 영국군에게조차 ‘가장 훌륭한, 가장 용감한 지도자’라고 평가받는 인도의 ‘잔 다르크’ 였던 것이다.영화의 시작은 이런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 영화답게, 그녀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그리고 14살이 되자,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31살 연상이었던 잔시의 마하라자 왕과 결혼하게 되고, 이후 락슈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22살에 아들 다모다르 라오를 낳앗으나 4개월 후 아이는 죽게 되고, 이후 사촌 격인 아난드 라오라는 아이를 입양해 그 아이를 후계자로 정했으며, 마하라자 왕 역시 죽은 이후 유서에서도 아이에 대한 존경과 왕으로서 대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외였던 것은 이전에 내가 알던 ‘여성의 인격존중이 현격히 낮은’ 인도에 대한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승마나 궁술, 각종 고급 지식을 교육받으며 어릴 때부터 문무에 출중하게 키워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성장해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어떻게 왕비가 되고, 아이를 낳고, 왕이 죽은 후 귀족 부인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참모와 함께 영국군에 맞섰는지 그녀의 행보를 연대기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처음 왕비가 되었던 10대 시절부터 과거 시점에 벌어졌던 일들을 보여주며 인도가 당시에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배경설명을 잘해준다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친일파 세력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촉발시키는 한몫을 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영국과 결탁해 자신의 안전과 영리만을 바랐던 배신자가 있었다는 점에 ‘어느 곳에나 역사적인 공통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창궐하던 혼란스러운 궁정과 인도에 그녀 곁에 ‘잘키리바이’ 같은 훌륭한 아군, 동지가 있었다는 점도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비록 전투에서 전사했으나 그녀가 죽은 이후에 영국군은 포기하고 물러나게 되니, 주인공이 죽는 결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마치 살아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해피엔딩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왕이 지키고자 했던 왕국과 신념을 지켜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영국은 인도를 이후로도 꽤 오래 점령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역사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념과 종교, 문화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 아닐까? 더군다나 여성의 몸으로, 어쩌면 아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겠노라 하며 영국군과 협상을 하고 지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29살이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전사하는 결말을 맞으면서도, 아들을 지키고자 하고, 왕국에 대한 책임감을 관철시켰던 그녀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국보이다,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를 보자.’남편, 아버지를 따라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그녀가 영국군과 협상을 해야 했을 때에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왕위계승자로서 자신의 양자를 인정하지 않는 영국군에게 맞선다. 머리도 깎지 않았고, 어린 아들을 등에 업은 포스터처럼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모두에게 보이기 시작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그런 왕비의 결단에 감동했던 1만여 명이 넘는 백성들이 결집하기에 이른다.영화 자체는 일대기인데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는 구성이었다. 인도 영화를 보며 늘 등장하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왕비 앞에서 공연하는 이들의 모습처럼 언제나 즐겁게 살고자 하는 정신을 잃지 않는 인도인 특유의 문화적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비교적 같은 아시아권인데도 생소한 인도의 복식이나 화장, 여성들의 모습은 매우 신비스럽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