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NEW NORMAL-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현실주의적 해석-1. 우크라이나 사태2014년 3월 18일 푸틴대통령이 크림반도 병합 안에 서명한 것은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러시아 군과 NATO 군은 수차례 충돌 직전의 긴장상태를 유발하였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이후의 유로 존 재정위기에서 각 국가들이 점차 경제적 회복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EU국가들의 경제 회복 모멘텀을 상당부분 불식시켰고, 연결된 금융망에 의해 전 세계적 성장저하 우려로 확장 되었다. 또한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의 대응 방향에서 러시아·EU·미국·아시아 국가들은 향후 전략적 관계재설정을 검토하게 되었다.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정치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후 크림반도 합병을 둘러싼 러시아의 행보는 ‘강대국의 자의’가 아직까지 국제관계에서 상당히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합의 당시 영구적인 핵 보유 포기를 대가로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영구적인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20년 후 러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약속을 파기하고 자의적인 국제법 해석을 통해 크림반도를 통합함으로서 강대국에 의한 힘의 논리의 유효성을 과시하였다. 또한 이러한 러시아의 국경 확장욕구는 배타적 영역으로서의 국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게 됨과 동시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발트 3국 등의 안보 문제를 환기시켜 제한적이지만 국제관계의 무정부성을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부활시켰다.둘째, 국제사회의 예상을 뛰어넘는 러시아의 신속하고 강력한 행보는 상호의존성의 심화가 그 자체로 국제 갈등의 예비 조정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관점에 큰 의구심을 던지도록 하였다. 이는 주요 당사국들인 EU와 미국 등을 포함한 서구 세력의 느리고, 신중한 대응방식에 대비되어 더욱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17일 크리미아 자치구 의원들이 러시아를 방문에 귀속의사를 밝힌 지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관계를 고려하여 조금 더 신중한 의사표명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방안 중 하나로서 ‘전쟁’이라는 전략적 대응을 배제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던 낙관주의자들은 긴급하게 ‘푸틴의 목표’에 대해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간단하게 우크라이나 상황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자. 2월 23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비밀리에 우크라이나에서 도주한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2월 28일 러시아 전투기의 작전비행과 함께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병력의 급격한 증가가 확인된다. 3월 6일 미국이 선제적으로 러시아 관료 개인에 대한 비자 발급 중지를 결의한다, 또한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연합함대 훈련을 발표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견제 역시 실행하게 된다. 3월 16일 예정했던 대로 크리미아 자치구 주민투표가 실시되고, 17일 96.6%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투표결과를 가지고 크리미아 의원들이 귀속의사를 밝히기 위해 러시아로 향한다. 그리고 18일 푸틴이 크리미아 반도 귀속에 합의하고 이어 20일 하원이 신속하게 크림합병 조약을 인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3월 18일 러시아 크림반도 병합 결정과 함께 대두된 것은 서방 재제의 무용론이다. 서방세력이 의결한 러시아 정치인들에 대한 자산동결 결정과 G8에서 러시아를 축출하는 등의 대응책이 푸틴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분석이 그것이었다.서방 재제의 무용론과 관련하여 살펴봐야 할 것은 상호의존성의 논의의 결함이다. 여기서 상호의존성의 논의는 시장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자유 경제체제의 확립과 무역의 의존성이 심화될수록 국가 간 분쟁의 발생은 이에 따라 발생할 경제적 손실에 대한 고려로 인해 극소화 된다는 논의로 규정하겠다. 그러나 러시아의 과감한 행보는 상호의존성의 논의를, 나아가 국제무역의 자유화가 기초하는 비교우위에 의한 제시된 표는 2012년을 기준으로 유럽 국가의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정리한 것이다.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상당수의 유럽국가가 일정부분 혹은 전량을(발트 해 국가들) 수입하고 있으며, 공급의 갑작스러운 중단 시 공급측면에서의` 경기충격을 피할 수 없는 구조로 의존도가 심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역재의 차이로 인한 취약성의 차등적 분포는 무역량의 절대량을 통한 상호 의존성의 논의가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주 이후 러시아의 신속한 군사파견과 이후 진행된 주민투표의 과정에서 유럽연합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다소 분열된 대응 양상을 보인 주요한 이유로 이러한 취약성이 지목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3.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준 EU Regime의 구조적 문제점우크라이나 사태는 2008년의 금융위기와 뒤이어 발생한 유로존 재정위기에 이어 EU regime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유로존 재정위기는 경제적 발전수준이 상이한 여러 국가의 단일화폐 설정이 상대적인 저개발국가의 화폐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유지시킴으로 인해 저 개발 국가의 재정악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또한 권역내의 저 개발 국가와 고도성장 국가 간 책임논쟁과 긴급 자금조달 과정에서 보여준 고도 성장국가의 소극성은 EU가 아직 경제적 단일체로서의 인식적 공유를 달성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우크라이나 사태는 EU내 특정국가에 가해지는 안보위협이 EU전체의 안보위협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EU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러시아에 대한 재제조치를 결의함에 있어 미국보다 소극적이고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이다. 이번 장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원인과 더불어 EU국가들의 상이한 지정학적 위치 역시 러시아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3월 초 중반에 걸친 논의에서 EU는 매파(영국, 폴란드, 발트 3국 등)와 비둘기파(서 벌어진 총선 혹은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2014년 5월 22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럽의회선거에서 유럽의회 내 원내교섭단체가 될 최소 요건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유럽의회에서의 그들의 영향력도 점차 커질 전망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정당이 EU의 탈퇴와 유로화 사용중단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EU내부의 문제를 유럽의 개별국가화(Renationalization)로의 회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공론화는 EU 체제의 근본적인 해체를 목적한다는 점에서, 유럽 내의 만성적인 저성장 문제에 지친 국민들이 호응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현재 EU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낸다.4. 다시 나타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갈림길3월 20일 러시아 하원이 크림합병조약 인준을 신속하게 마무리 지은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러시아계가 다수 살고 있어 친러(親露) 성향으로 분류된 우크라이나 동부의 기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의 분리,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하였다. 국면의 조정을 위한 러시아와 미국의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는 듯 보이자 동유럽 국가의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토와 미군이 발트 해 3국과 폴란드 등에 전진 배치되었다. 이후 4월 15일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러 시위대 진압작전이 개시되자 흑해에서 미국 군함과 러시아 전투기의 충돌위기까지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5월 11일 도네츠크, 루간스크 주에서의 주민투표 강행이 실행되었고, 기존에 유예적 입장을 취하던 러시아가 주민투표 실행과 함께 투표독려의 제스처를 취한다. 5월 12일 도네츠크, 루간스크 2개 주는 주민투표 결과를 토대로 러시아에 합병 요청서를 제출하게 된다.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결정은 우려하던 대로 우크라이나 기타 동부지역의 분리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거주하는 다수의 러시아계 혹은 친 러시아계가 민족을 단위로 하는 국가주권의 재형성에 강렬한 열망을 보인 것이 할 수 있다. 국가적 단위에서의 행위가 아직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국제관계에서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주민투표 랠리와 같이 중요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민족이 법률적으로 규정된 국가를 대체할 만 큼 충분히 큰 단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기간 동안 형성된 역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특히 급격한 변화의 과정이나 생존에의 위협에서 민족을 행위를 위한 최소단위로 파악하는 경향을 야기한다. 민족은 개인의 생존을 담보할 만큼 충분히 크고 또한 역사적으로 그것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 귀속의사는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 가능하다. 러시아계 민족의 국가인 러시아가 생존에 적합한 더 강력한 국가라는 점과 옛 소련 령 크림반도의 역사적 기억이 강력한 귀속의사를 표출하도록 만들었다.5. Back to the new normal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서구세계와 러시아의 이익갈등이 전 세계적 관계 재설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4월 16일 러시아의 외무장관은 베트남에 방문하여 베트남 대통령과 외교관계의 격상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한다. 베트남은 소련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의 입장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의 우선순위로부터 제외되어 왔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세력의 제재조치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러시아 동방정책의 한 축으로서 베트남과의 관계를 재설정 시켰다. 베트남은 군사무기 구입에서의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했으며, 에너지 부분에서는 러시아 기업이 베트남의 첫 원자로 건설을 수주하게 되었다.5월 21일 푸틴과 시진핑은 중·러 천연가스 공급 계약 타결과 함께 일방적인 대(對)러시아 제재에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전까지 주변국들의 분쟁에 중립적 역할을 자처한 중국은 센카쿠제도를 둘러싼 일미공조 강화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러시아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성명은 “주권보호, 영토안전, 안전보장과 같은 견고한 상호 지지를 지속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 정치다.
윤치호 일기에서 나타난 지식인의 태도와 그의 사상1.서론2.윤치호 그리고 식민지1)윤치호 - 지식인의 시각2)현실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상3)잔혹한 식민지의 기억3.모순적 현실이 낳은 머리 두개달린 인간.1)애국자로서의 시각2)친일파로서로서의 시각3)윤치호의 사상4.역사 자료로서의 윤치호 일기1)일기의 역사자료 로서의 가치2)역사 자료로서의 윤치호 일기에 대한 평가5.맺음말1.서론윤치호란 이름은 국사책을 탐독하면서 한 번 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그의 화려한 집안이나 그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친일 윤치호 이냐, 반일 윤치호이냐 라는 정의하기 힘든 그의 일생이 늘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창시계명을 앞장서서 했으며 조선인의 일본군 징병을 환영하는 등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다분히 친일적인 행적을 많이 남겼고, 그 대가로 그의 가문은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윤치호가 그러하듯 당시의 지식인들 또한 일제 치하에서의 복종의 단 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제의 치하에 굴복했던 모든 지식인들을 친일파로 일반화 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윤치호가 살고 있던 식민지 시대의 억압적 상황과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의 현실인식이라는 다분히 고통스러운 인식 태도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을 시대의 불운아로 여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분명 이러한 상황 속 에서도 독립운동을 한 지식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는 그들의 변론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힘들다.이『윤치호 일기』란 책은 이러한 지식인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친일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고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가공되지 않은 개인의 생각의 흐름을 통해 외부에선 생각하지 못했던 애국과 친일이라는 모순된 인과관계를 조금 더 살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필자는 여기서 윤치호가 친일인지 반일인지에 대한 소모성 논쟁을 담론의 주제로 삼지 않고, 그보다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세에 관심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2.윤치호 그리고 식민지1)윤치호 - 지식인의 시각『윤치호 일기』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윤치호의 1916~1946년까지의 일기를 저자가 편역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 중국 등의 유학의 경험을 통해 국제관계에 더 일찍 눈뜬 윤치호의 생각이 이 일기에 엿 보인다. 이 일기는 일제치하 35년간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개인의 분노, 슬픔, 애정, 동경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식자우환을 한탄하며 목숨을 끊었던 황현과도 같은 심정이 글의 35년을 흐르고 있다. 윤치호는 고통 받는 조선인에 대한 애정과 일본인에 대한 동경이 공존하는 아픈 시대를 정면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은 때때로 민족의 독립이라는, 일제치하에서는 요원해 보였던 모든 활동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을 윤치호에게 심어 주는 듯 보인다. 필자가 충격을 받았던 것 중에 하나도 이것이다. "만약 안 씨가 이 비열한 행위와 관련이 있다면, 이로 말미암아 혹독한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그가 이런일을 저지를 만큼 몰지각한 사람이 아니라면 좋을텐데."라며 안창호 의사의 폭탄 투척사건을 평한다. 지성이 그를 회의론자로 만든 것이다.2)현실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상사람은 시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사람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대체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무리 지식인이라고 자부해도 사회라는 일정한 구조 속에 속한 존재로, 사회의 상황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냉철한 이성이라 생각되어지는 것들 또한 이미 사회적 잣대로 형성되어 진 것이기 때문에 시대 상황에 따라 사람의 관점은 변하게 된다. 윤치호 또한 급박한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던 듯 보인다. 그 또한 식민지 안에 살아온 식민지인이기 때문이다.3)잔혹한 식민지의 기억일제는 35년간 조선을 지배하면서 많은 잔혹한 일들을 해왔다. 특히 윤치호에게는 105인 사건이 인생에 변화를 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이른바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 기도 미수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평안도 지방에 주요 기독교 신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는 등 1910년 탄압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물론 조선 감리교의 대부로 칭해졌던 윤치호에게도 피할 수 없는 화살이 날아 왔고, 그는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3년 2개월간 복역하게 되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어찌나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던지 경찰이나 감옥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듯 얼굴빛이 홱 변했다고 한다." 윤치호에게 일본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 속에서의 괴로움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윤치호에게는 이 이후 일본에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3. 모순적 현실이 낳은 머리 두개달린 인간.1)애국자로서의 시각조선에 존재하던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던 윤치호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일기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파리강화 회의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화회의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잘 집어 내는 장면에서 그가 국제정세에 능통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확한 본질 판단력 하에 윤치호는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조선인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끼고 있다.그들은 분명 조선을 일본인들을 위한 아름다운 터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이 일본인들을 위한 조선을 만들려는 시책을 냉혹하게 차곡차곡 완성해 나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조선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는 대체 뭘까?그러나 윤치호의 일기에서의 애국심이라는 관점은 비단 민족의 독립만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만약에 인도가 반영투쟁을 시도했더라면, 지금쯤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라는 투의 시각이나 ,"나는 조선의 애국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만주정책이 성공하길 빈다." 라는 글들에서는 애국심을 ‘민족의 존속’으로 해석하는 윤치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은 모순된 애국심이었다. 윤치호의 이런 생각들은 ‘우리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모순된 결론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자가 당착에 빠졌다.2)친일파로서로서의 시각윤치호를 친일파로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나 여러 친일 행각들을 주제로 의도에 대해 파악해 보고자 한다. 우선 그의 친일적 생각 아래에는 조선인에 대한 민족 비하가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제치하의 우리 민족의 현실을 온전히 우리민족의 무능력을 탓하면서 해결하고 있다. "이웃들은 하늘을 날고 있는데 우리는 땅을 기어 다니면서 감히 독립을 운운할 수 있는 건가?"라는 말처럼, 민족 비하가 일본에 대한 비교적 우위를 생각하게 되는 원천으로 작용하게 됨으로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합리적 정당화를 하게 되는 결론에 이른다. 조선인들에겐 기념비적인 법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조선 청년들이 영예로운 일본 해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인정해준 제국정부에 감사해야 한다." 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조선인을 일본의 민족성에 끼워 맞추려는 일본에 행동에 찬성하기 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3)윤치호의 사상앞선 두 가지의 시각에서 윤치호의 모순점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생각에는 "‘저항의 민족주의’만이 아니라, ‘협력’이야말로 ‘민족을 위함’이라는 식민지권력에 협력해서 민족의 생존과 이익을 도모하려 한 ‘민족운동’이 존재했다는 전제가 자리하고 있다." 윤치호의 모순, 그리고 제국주의의 모순 또한 된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는 수탈과 저항이라는 단순 도식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제국주의의 지배와 그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근대화라는 단순도식 속에 감추어둘 수는 더울 없는 일이다. 우리의 제국주의 인식에는 너무나 폭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터인데", 윤치호가 바로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중일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이성적, 감성적 분노로 인해 ‘확실한’친일파가 될 수도 없었고, 조선인들에게는 독립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믿을 때문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던 ‘회색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립보다는 자강을 중시하였고", 급진적인 면보다는 중도적인 면을 내세웠다. 또한 만주사변부터 시작한 일본의 대 동아 전쟁을 유색인종과 백인들의 대결구도로 격상 시켜버리고,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치자 진정한인종간의 전쟁, 즉 "황인종 대 백인종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라며 반긴다. 그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일과 애국의 경계는 허물어 진 듯 보인다.4.역사 자료로서의 윤치호 일기1)일기의 역사자료 로서의 가치역사자료란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이나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사료를 의미한다. 그래서 역사적 자료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그 전제로 한다. 랑케사학이 “역사가는 자신을 숨기고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연구에 있어서 중요시되는 역사 자료 또한 역사의 특성상 객관성을 추구하는 이 당연하다. 여기서 일기라는 장르가 가진 주관성은 역사자료의 객관성을 해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서술이라는 것이 흔히 강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쓴 것이라는 것에서 볼 때 개인의 주관성은 역사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대비 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담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작은 논점들이 역사를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가꿀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폭력적이다.’1. 서론우리는 과연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폭력’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일면 야만적이고 광신적인 종교의 시대, 혹은 집단적 광기에 의한 인종 차별, 그것이 절정에 다란 민족말살의 과정에서 우리가 벗어났다고 하더라고 ‘폭력’이라는 개념은 항상 우리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 중세유럽의 마녀사냥 장면을 보고는 극단적인 폭력의 발현이었다고 현재의 세계를 안도하는 한편 왕따, 테러리즘, 조직폭력, 유사폭력과 같은 신조어는 미디어를 통해 항상 상기되어 지면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포의 한계선을 끝없이 뒤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야만과 극단의 폭력이 혼재된 카오스의 세계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오히려 잔인해진 현실의 폭력성에 대해 두려워하는 복합한 감각을 가지게 되며, 폭력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려는 시도를 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폭력’은 늘 ‘악’이며 폭력은 완전히 사라져야 할 절대적 타자로 보는 이분법적인 시각과 ‘폭력은 안 된다.’라는 책임회피적인 구호들이 인간의 이성을 지배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외면과는 달리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폭력적이다.’라는 명제는 항상 참이다. 폭력의 어휘 자체에서부터 파편적으로 인식되는 사실들, 그리고 개인의 본능적 폭력을 ‘불필요한 폭력’으로 정의 하고자 하는 사회의 노력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폭력의 총체이면서 원생적인 인간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2. 폭력의 정의(定義)앞서 제기했던 질문 ‘모든 인간은 폭력적이다’라는 명제가 항상 참이다. 라는 주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이란 말의 정의가 선행되어야한 한다. 폭력이란 사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력·위력·기력·권력과 같은 연관된 모든 것을 -미묘한 차이를 열거할 필요도 없이-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폭력의 개념은 지극히 좁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차이를 알기위해 ‘폭력’이라는 단어와 흔히 동의어로 판단하는 ‘폭행’, 유래된다. 그래서 ‘violentia’는 힘의 사용이라는 광범위한 측면에서 해석되어 지며 관행상 이러한 힘의 사용 중에서도 비이성적인 힘의 사용을 말한다.반면 일상적으로 이러한 폭력과 대응 언어로 판단하는 ‘폭행’이라는 단어는 이보다는 훨씬 좁은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폭행’은 주로 물리적인, 크거나 과도한 파괴적 힘의 사용을 지시한다. 즉, 주로 타자에 대한 물리적인 가해 행위로 범주화 시켜야 한다. 또한 하나의 행위가 강제행위인가는 그것이 자연적 사물의 본질과 경향성에 반하거나 인간의 자율적 행위에 반하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강제의 행위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반대하여 외적인 요인에 의해 행동되어 지는 것이다.이러한 정의를 토대로 생각해 본다면 폭력과 폭행, 그리고 강제행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겠다. 힘은 물리적이거나 혹은 비 물리적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힘의 사용 자체를 폭행으로 볼 수 없고, 강제 행위라는 것은 내면적 요인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폭력을 포괄할 수 없는, 폭력을 범주화 하는 반쪽짜리 단어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모든 강제의 행위가 폭력은 아니고 동시에 폭행이면서 폭력은 아닌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 단어에 대한 분별을 통해 정확한 ‘폭력’의 정의가 필요하겠다. 폭력과 폭행, 강제행위의 기준점을 이어나가면 폭력은 ‘힘의 사용’이면서 폭행과 강제행위를 포괄하는 가장 큰 개념으로 정의내릴 수 있겠다.이러한 ‘힘의 사용’의 측면에서 폭력을 해석한다면 ‘모든 인간은 폭력적이다.’라는 주장은 ‘모든’ 이라는 명제를 항상 변박해 오고 있는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의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절대적인 명제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욕구 실현에 있어서 ‘힘의 사용’을 통해 다른 존재들에 대해 영향을 주게 된다. 물리적인 힘의 행사를 기반으로 하는 폭행이나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하지 않은 강제행위를 포함하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의 행사는 모두 폭력의 한 구성 성분인 것이다. 또한 욕구 충족과 폭력의 행사가 교육이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의 계량화 된 증명이 불가능한 논제이기 때문에 폭력의 여러 형상들을 토대로 귀납적 추론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우선 여러 문헌에서 인간의 폭력적 본성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장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창세기’이다. 여기서 의미심장하게 보아야 할 대목은 인류가 카인과 아벨 중 인류 최초의 적대적 살인을 저지른 카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쓰였든지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기독교가 사실상 인류의 조상은 살인자라고 말하는 부분은 대단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또한 그러한 원시의 폭력이 절정에 다다른 ‘노아의 방주’나 ‘바벨탑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창세기는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부인하거나, 외면 시 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과 동일한 형상으로 인간을 만든 신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대 홍수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의 도구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신의 행동을 통해 인간은 폭력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증명하려 한 시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인간의 삶의 각 측면에서도 인간이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는데, 우리는 특히 인생의 초반기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선 인간은 탄생의 과정에서 이미 평생 각인되는 폭력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사실에서도 ‘인간은 폭력적이다’ 라는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다. 탄생의 순간 산모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와 자신을 편안하고 안전한 자궁에서 세상으로 내보내려는 근육의 격렬한 움직임은 태아의 정신에 큰 각인을 남긴다. 마침내 고통의 절정에 단계에서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부터 다시 신생아는 기도가 열림과 동시에 호흡을 강요하는 신체기관과 시끌벅적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신생아는 ‘고통과 불안의 가면’을 쓰게 되는데 생에 최초로 겪는 경험이 고통과 불안이라는 사실은 생의초기 6년간의인 성향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데, 특히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멜 라니 클라인은 유년기에 대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논지를 수용해 주장을 펼쳤다. 그녀는이라는 저작에서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 된 유아가 자신의 이·손톱· 배설물 심지어 온몸으로, 이를테면 가학적 경향을 맘껏 발휘하고 상상력으로 위험한 무기를 만들어 내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려고 애쓰는 장면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믿을 수 없다기 보다는 소름끼치게 한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라는 주장을 통해 유아의 감정에서 폭발하는 폭력적 욕구를 서술한 바 있다.이러한 연구들은 인간의 근원적 폭력성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며, ‘어린아이= 순수’ 라는 기본적 관점을 송두리째 흔드는 과격한 발언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의미심장한 논문에서 프로이트 또한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매를 맞는다.”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낼 정도로 실상 신생아나 유아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낼 순 없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창세기나 기타 문헌들에 담긴 함의 또한 주관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하겠다. 앞으로 계속 연구해 보아야할 주제인 것이다.3. 폭력적 인간과 비폭력적 사회우리는 이상의 논의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탐구해 보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폭력적 본성이 인간은 선하다. 혹은 악하다. 라는 주장과 어떻게 결부지어 질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곧, 폭력의 정당성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의 문제로 다시 환원되는데, 이러한 문제는 항상 사회와의 관계에 의해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폭력이 어떻게 인식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폭력성과 정당성의 사이에 사회가 개입한다는 입장을 뒷받침 하는 가장 설득적인 이론은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서 사회과학적으로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홉스의 ‘사회계약설’이다. 최초의 인류는 국가나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지키려는를 국가가 가지게 됨으로써, 개인적인 ‘자기보존’의 형태로써의 폭력은 철저하게 ‘불법’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즉, 국가의 탄생과정에서 모든 폭력적 수단이 가공할 존재인 ‘리바이어던’에게 집중되고 집중된 수단에 의한 폭력만이 ‘정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폭력의 정당성 문제가 ‘리바이어던’에 의해 항상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사회에 의해 폭력의 정당성이 정의 된다는 점은 홉스가 주장하듯이 근대국가의 출발에서부터 필연적인 것이다. 절대적이며 정당성을 판단하는 존재인 ‘리바이어던’은 사실 전제군주를 상징할 수도, 현대 사회에 들어서 권력분립에 의해 나누어진 거대한 통치계급 전반을 상징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폭력적 수단을 흡수한 국가는 인간의 본성인 폭력성을 잠재움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가는 ‘개인적인’폭력을 없애고자하는 대의(大義)아래에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존립에 관한 지상과제는 이 문단의 소주제처럼 폭력을 불법으로 범주화함으로써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일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유명해져 더 이상 실험조차 불가능한 아이히만 실험과 영화화도 되어 큰 반향을 남겼던 소설 ‘배틀로얄’에서의 폭력의 장면은 모두 국가가 금기시 했던 폭력적 인간본성의 발현이 사회로부터 주입 된 ‘자기책임’의 의무를 벗어버렸을 때, 국가가 없애려고 노력했던 폭력성이 극단적인 성향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폭력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과 비폭력을 지향하는 국가의 모토사이에는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적 간극만이 있을 뿐이며, 멀리서 보았을 때 커다랗게 보이는 사회의 외침에 의해 폭력성을 지향하는 한줄기의 선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4. 희생 제의로써의 스포츠그렇다면 사회는 개인의 폭력의 발현을 막기 위해 ‘불법’의 영역에서만 사람들을 제어하려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폭력성의 발현을 막기 위해 여러 다.
시장의 기원 -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다면적 관찰 -1. 서론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실험이 실행됐던 시기이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반기를 든 공산주의자들이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는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세계는 전례 없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분법적 경제 체제의 대립으로 양분됐고, 각자의 경제체제를 옹호했다. 역사적으로 다른 경제학적 시도는 A에서 B로 넘어가는 직선상의 과도기의 역할을 했던 것에 반해, 20세기 냉전 체제하에서의 두 경제구조의 대립은 누가 더 우월한지를 겨루는 병렬 경쟁 시뮬레이션이었다. 20세기 말 소련의 해체로 역사는 자본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효율성에 관한 거대한 역사적 시험무대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같이 달리던 병약한 사회주의의 말이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20세기 지속되었던 세계화의 추세는 홀로 달리는 자본주의를 채찍질하며, 자본주의를 경제구조의 ‘독점’적 지위로 올려놓았다.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로 재임한 바 있는 ‘시장의 탄생’의 저자 존 맥밀런은 이러한 시장의 구조를 살피면서 왜 시장이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또한 이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기반으로 시장의 면모를 살펴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논의는 저자의 관점에서 본 시장의 구조를 논하게 될 것이다.2. 시장은 수요와 공급곡선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매우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시장의 구조에 관한 틀은 추상적이다. 경제학 교과서가 상정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그래프로는 시장의 구조를 명확히 구체화하기 힘들다. 또한 시장을 추상적으로 묘사할 뿐, 판매자와 구매자의 메커니즘에는 소홀해 왔다. 지금에서야 꽃을 피운 게임이론이 이러한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이러한 문제 때문이었다.저자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상당부분 구체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현대사회에서 시장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요 공급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만큼 현대경제는 복잡하고, 가격이라는 한 가지 충족요건으로는 소급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구조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시장을 위해서는 각 경제 주체간의 합의를 통해 올바른 ‘시장설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큰 범위에서의 몇 가지 시장설계의 기본구조를 들고 있다.먼저 생각해 볼 것은 현대에 와서 중요성이 커진 정보의 흐름이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의 교환이 원활 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 잉여에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구매자는 자신이 설정한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에 상응하는 판매자를 찾기 위해 시장에서의 정보를 취합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의 탐색비용이 너무 클 경우 구매자는 가격 탐색의 유인을 잃게 된다. 더 찾아봐야 손해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 잉여의 일부가 탐색비용으로 소비되거나 정보의 불균형을 눈치 챈 판매자의 고가전략에 굴복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은 적어지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 현상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상당부분 해소되었다고 말한다. 쌍방향 통신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의 유통가능성과 유통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두 번째로는 재산권의 유무이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가장 단순한 이유는 바로 국가의 재산권 독점이다. 철저한 이타성을 근거로 한 이상적인 인간모델이 아닌 보통의 인간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에 분명한 차이를 느낀다. 중국의 경우 국가의 농업의 소유권을 가졌던 인민공사가 해체 되면서 1978-1984년까지의 농업생산성은 60퍼센트 이상 늘었다고 한다. 즉, 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생산과 교환의 측면에서 소유권의 확립은 중요하다는 것이다.세 번째는 경제 주체 간의 신뢰이다. 기본적인 시장에서 경제 주체들은 상호 믿음을 기반으로 교환 행위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식품을 구입할 때 먹고 병에 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판매자는 신용거래에 있어서 구매자를 믿는다. 그렇지만 경제 주체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상대방의 정보를 일일이 취합하는 과정에서 거래비용 이외에 또 다시 소모적인 비용이 발생하게 되어 시장은 효율적이지 못하게 된다.네 번째는 경쟁의 유무이다. 일반적으로 독점기업이나 국유기업 같은 경우의 생산성이 일반 사기업보다 떨어지는 이유는 경쟁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이 있는 분야에서의 산업의 혁신과 사회적 부의 증가 속도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경쟁자들 간의 대립 구조는 시장을 효율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든다.3. 시장경제인 세계는 왜 가난에서 못 벗어나는 가앞에서 말했듯이, 성공적인 시장경제는 시장가격만으로는 형성될 수 없다. 정부의 개입 즉 인프라 시설 구축과 소유권 또는 그에 상응하는 재산권, 제도적 만족 그리고 정보유통의 자유로움, 정보의 신뢰성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장설계의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경제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즉, 시장의 효율성에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에 대해 좀 더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현대 사회에서 시장체제가 가장 문제가 되는 국가들 중 대부분은 과거 공산주의에서 선회한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완전 개방을 모토로 완전한 시장경제의 도입과 국유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 이루어 졌던 독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성장률이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도 시장경제를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부패와 정보의 불균형으로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저자는 이러한 시장경제 선회 모델의 모범으로 중국, 대만, 싱가포르를 꼽는다. 중국의 경우 비교적 성공적인 재산권의 부여로 생산성 향상의 인센티브가 부여됐고 이는 곧바로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싱가포르와 대만의 경우 또한 성공적인 시장의 자생요건을 마련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즉, 개발도상국가의 문제는 시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또한 저자는 세계화에 대한 반대에도 마찬가지의 논리적인 비판을 가한다. 일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화 반대투쟁은 사실상 그 타깃을 잘못 정한 것이다. 세계화가 성장에 방해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시장은 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시장경제 체제가 주는 효율성은 세계화 논의의 틀 안에서 축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깃은 개도국들의 시장설계가 되어야 옳다.4. 시장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본 이 책의 가치현대의 시장은 단순한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상의 만남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컬어진 자율적 가격 형성으로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양한 요소와 그 요소들이 맺는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얽혀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것들을 서술한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딱딱한 경제학 기본서 들과는 다르게 색다름으로 다가왔다. 또한 이 책은 세계의 많은 예시사항을 들면서 그 메커니즘을 수식이나 애매모호한 문장이 아닌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이 책의 저자는 시장 예찬론자가 아니다. 시장의 효율성을 지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시장의 한계성 또한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시장의 기능과 한계성을 균형 있게 서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시장 구조를 파악하는데 좋은 기본서가 될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신화적 금기와 성장의 모티프 -1. 미성년과 성장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사건을 통한 성장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지브리 특유의 유연한 그림체와 따듯한 색감, 풍부한 상상력으로 녹여낸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 애니메이션이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상업화 한 다수의 작품에서 성년이 되기 전의 주인공을 둘러 싼 이벤트와 성장의 과정에 주목해왔다. 이는 지브리스튜디오가 작품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요괴설화, 일본 신화 등의 판타지적 대상과 왜곡 없이 상호작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나이가 유년기~청소년기이기 때문으로 보인다.해당 작품에서는 스토리의 배경이 온천장이라는 신화적 공간으로 전환되는 계기와 그곳에서 성장하는 내러티브 전반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함, 어른의 탐욕이 계속해서 배치되어 대비를 이룬다.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치히로의 아빠, 엄마가 신에게 바쳐질 음식을 먹어 온천장의 돼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탐욕은 어른의 시야를 가리고, 신의 음식을 먹지 않은 아이는 홀로 남아 신화적 모험을 하게 된다. 본격적인 무대인 온천장에서는 치히로가 외관상 더러운 오물의 신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가오나시를 편견없이 대하는 모습이나, 사금(砂金)을 탐하는 않는 등 상당히 낮은 수준의 물욕을 보이는 점에서 이러한 특성이 극대화 된다. 이는 마찬가지로 오물의 신을 거부하거나, 가오나시의 사금만을 탐해 먹히고 마는 어른의 시선과 배치된다. 주인공은 일상적이지 않은 이벤트에 던져진 상태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대상과 다르게 상호작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보편적 성장담론이 온천장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공간 배경과 보편적이면서도 일본적인 신화적 금기와 만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800만 종류의 신이 존재하고, 그들이 일반인과 같이 온천욕을 통해 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처럼 인격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일본의 신화관은 작화의 한계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플랫폼과 만나 다양한 신의 모습을 등장시키며 감상자가 작품의 공간을 이질적인 신화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2. 종교적 금기먼저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영화의 전반에 걸쳐 금기에 관한 모티프가 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기는 사회의 존속을 위한 행동지침에 종교적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금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역사적인 경험을 근거로 사회 존속에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삶의 양식을 금지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에서 돼지, 힌두교에서 소 섭취를 금하는 것이 이것이다. 건조한 기후인 중동지역에서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먹이와 물이 사회에 존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농업에 핵심 요소인 소를 먹게 되면 다음 해 농사와 사회의 존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금기의 두 번째 양상은 불가해(不可解)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금기의 기능이다. 전통 사회는 천둥, 번개, 홍수 등의 해석 불가능한 영역을 금기의 불이행에 대한 벌로 정의하고 설명한다. 이는 불가해의 영역을 밝혀줌으로써 무명(無明)에서 오는 근원적인 공포를 차단한다. 이러한 금기는 일면 부당하거나 비이성적이기까지 한데, 금기를 지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로 무조건적인 신앙고백이면서, 사회를 결속시키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일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금기는 사회에서 구성하는 내러티브와 만나 신화나 설화로 발전하여 전승된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종교적 금기가 신화의 세계로의 편입과 탈출에 모두 작용한다. 전술하였듯이 치히로가 신화적 공간에 편입되는 주된 이유는 치히로의 부모가 신의 음식에 손을 대어 돼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신의 음식으로 규정한 것을 의례가 끝날 때까지 먹지 않는 것은 신화가 구속력을 가지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기본적인 금기이다. 치히로는 돼지가 된 부모를 두고 갈 수 없었고,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좀 더 흥미로운 것은 신화적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의 치히로가 수행하는 종교적 금기이다. 치히로는 이름과 부모를 되찾고 나갈 때,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쿠의 당부를 듣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온천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는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이별하게 되는 주제로 서술된 일본 ‘기기신화’에서 그 모티프를 따온 것인데, 사실 동일한 모티프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 한국의 장자못 이야기 등에서 널리 차용되었다. 위의 모든 신화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게 되어 패널티를 받게 된다. 누군가를 뒤에 두거나 함께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를 보지 말라는 명령은 이성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당한 명령이고, 이러한 금기의 불이행으로 인한 패널티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금기의 무조건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내러티브적 구속력을 가지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3. 종교적 시련과 성장신화적 금기의 ‘비이성적 속성’과 연계하여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성장에 관한 모티프이다. 신화적 사건은 대게 주인공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발전을 결과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과거로부터 신화적 존재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들은 신에 의한 의도된 매개물이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이유 있는 고통’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애초부터 이러한 의도된 시련을 보여준다. 치히로의 가족이 금기를 어기고 신화적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에서의 치히로의 잘못은 사실상 없다. 애초부터 타인의 호기심과 무절제로 말미암은 시련을 치히로는 대리희생자적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즉, 인과관계에 의한 고통이 아닌 성장을 위한 의도된 고통의 측면을 영화는 처음부터 강조한다.온천탕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롭게 받게 되는 ‘센’이라는 이름 역시 성장의 관점에서 설정된 장치로 볼 수 있다. 치히로는 센이라는 일시적이고 시험적인 페르소나 안에서, 부모의 품으로부터 벗어난 독립된 자아로서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온천탕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과, 이러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차 독립적인 자아를 찾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 또 다른 성장의 주체인 유바바의 아들 ‘보’ 역시 제니바의 마법으로 조그마한 쥐로 변해, 일시적으로 페르소나가 변경된 시점에서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이외에, 한정적이면서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여 성장을 매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