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 사회 강의 시간에 영화 를 보게 되었지만, 나는 독감으로 인해 학교를 빠졌던 터라 앞부분을 보지 못했었다. 내가 본 영화의 장면은 고작 기로풍습을 행하는 모습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고, 영화에 대해 더 찾아보게끔 만들었다.일단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기 때문에 다소 혐오감을 주는 부분이 노골적으로 묘사된 것도 한몫하지만 인물들이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점에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하긴 하지만 예술적 방향으로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다른 장면들은 다 제쳐두고 중심 주제인 고려장 장면은 보기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식량부족으로 인해 고통 받는 그런 시대에 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인류애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먹을 입을 줄이고자 태어난 아이를 죽이거나 팔아치우고, 노부모를 버리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주인공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 당시 관습에 순응하고 아들을 설득하여 버려지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죽어 주려는 어머니의 노력을 첫째 아들인 주인공 이외의 가족들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 시어머니의 죽음은 딸이 아니라 아들로 잘못 태어나서 남의 논에 버려져 썩고 있는 갓난애와 별다른 느낌의 차이가 없이 와 닿을 것이다.어머니 ‘오린’. 그녀는 칠십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너무 건강하기 때문에 겨울을 넘어 한 해를 더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입을 덜어내야만 본인을 제외한 가족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기에 무리하게 나이 먹은 표시를 낸다. 돌로 때려도 끄덕도 하지 않는 앞니를 맷돌에 부딪쳐서 부러뜨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실제 아픈 것보다도 더 아프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연계되어 그러한 고통을 받는 것 같다.사실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나를 낳아준 사람과의 이별은 슬픈 법인데 자기 손으로 이별을 하게 하는 당시의 관습은 과연 어떤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을 위해서 인간성을 버리게 만드는 관습 속에서 주인공이 어머니를 놓지 않으려 보여주었던 저항은 결과적으로 그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나라야마에 어머니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유품들은 이미 남아있는 가족들이 나눠가져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도 똑같은 처지가 될 거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현실은 또 현실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환경이 가혹하면 인간의 마음도 가혹해진다. 그리고 가혹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어버렸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식구가 늘어나는 것은 살아있는 모두에게서 조금씩 양보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양보의 여지가 없을 때 가차 없이 약한 생명을 버려버린다. 여기서 약한 생명이란 어린 아이와 노인이다.
착한이웃, 불편한 이웃, 무서운 이웃강의 시간에 보게 된 영상은 요즘 뉴스에서 많이 거론 되고 있는 이웃 간의 층간소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윗집의 아이들은 뛰놀다 보니 아랫집은 전쟁이라도 난 듯 쿵쿵거리고, 어떤 집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잠자고 있는데 기계를 돌린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도 윗집과 해결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감정의 골이 깊어 질대로 깊어진 이웃들도 있다. 아래윗집으로 산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며, 피해의식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우리 집도 엄청 심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 윗집에서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쿵쿵 나기도 한다. 주말에 잠을 자다가 놀라서 짜증을 낼 때가 있고, 한번은 아빠가 올라가서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온 적도 있었다. 굳이 올라가서 주의까지 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내가 직접 들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던 것 같다. 그전엔 의식하지 못했던 그 소음이 한번 거슬리게 들리자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이웃 간의 층간소음은 하루이틀 사이에 벌어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뉴스에 종종 싸움이 살인으로 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와 닿는 듯 했다.SBS스페셜에서 보여준 우리이웃들의 모습 속에서 윗층에서는 매트도 깔고, 의자를 뺄 때도 조심조심, 까치발을 들고 다니지만 아랫층은 여전히 항의를 해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편하게 쉬어야 할 공간인 집이 고통을 주어 모두가 편히 쉴 수 없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서로 갈등을 겪던 이웃들이 조금씩 이해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쉽지 않을 것이다. 윗층이든 아래층이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 할 수 밖에 없고, 그저 이웃이 미울 거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내 이웃은 왜 이해를 안해주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아래층 사람들이 쫒아 올라오기까지, 아래에서 천장을 두드리고, 인터폰을 하며 항의하기 전에 그들도 참고, 참고, 참다가 항의를 한 것일 것이다.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우리 집은 과연 이웃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윗집에서 아이들이 뛴다고 불평만하며 정작 나는 방문을 쾅쾅 닫거나 부모님과의 다툼에서 말싸움을 심하게 하여 큰소리를 꽥꽥 질러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내가 불평할 때 그들은 참아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왠지 부끄러워졌다. 옆집에, 아래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사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혹시나 내가 나중에 이사를 가거나, 윗집의 이웃이 지금보다 더 심한 사람들이 오게 된다면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데 밖에 있을 때보다 집에서 더 긴장을 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다. 좀 더 이웃을 알아가고, 이웃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서로의 생활을 이해해주려 노력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코러스’ 감상문두 번째로 보게 된 영화인 코러스는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 노래하는 영화인가 그저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아이들이 합창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 그저 귀엽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는 참된 교육에 대한 교훈과 사랑이 담겨있었고,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영화에 관련해서 말해보자면 마티유 선생님은 기숙학교의 한 선생님이 떠나가고 그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그는 마티유에게 몇 명의 아이들을 찝어주며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 중 한명인 모항쥬는 아주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서 일을 벌인다고 하는데, 마티유는 문제가 있다고 하는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모항쥬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에게 자습을 하라고 하며 교실을 비운다. 그가 교실을 비우는 동안 당연히 교실은 난리가 났지만 교실로 다시 돌아온 마티유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처벌이 아닌 같이 맞장구를 쳐주며 오히려 아이들을 감싸준다. 그런 마티유의 모습에 아이들은 점점 변해가고 마티유는 아이들과 함께 합창단을 만들게 된다.나는 천사같이 노래하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어린 나이이기에 얇은 미성으로 귀가 행복하도록 노래하는 아이들이 즐거워보였다. 특히 모항쥬는 노래를 한번도 배워보지 못했지만 그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해 솔로를 맡아 노래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도 노래를 하며 점차 더 변해간 것이 아닐까?모항쥬가 자신의 어머니와 마티유가 함께 있는 모습을 질투할 때는 진짜 아이는 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질투를 하는 것 같아 너무 사랑스러웠다. 마지막에 모항쥬의 어머니가 결혼을 하지 않고 모항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는 결말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모항쥬에게는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 중 페피노는 귀여운 얼굴로 영화를 함께 보던 친구들의 사랑을 가득 받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많이 귀여웠다. 다른 아이들과 합창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조수 역할을 하면서 마티유에게 많이 의지하며 배우기도 하는 모습이 약간 대견스러웠다. 물론 마티유도 페피노에게 넘칠 듯한 애정을 주었기에 페피노가 마티유가 떠나는 날 그를 따라 나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간 뒤에도 사랑받으며 자라났을 페피노가 부러웠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올바른 교육 정신을 가지고 있는 마티유가 페피노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끼쳤으니 후에 페피노가 모항쥬를 찾아가 마티유의 일기장을 전해주며 함께 즐거워 한 것이라 생각한다.
허삼관의 평등작가는 이 이야기가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도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스무 살 성인이 되면 다를 줄 알았던 나는 대학에 와서도 남들이 하는 것들을 쫓아가느라 바쁘다. 고등학생 때는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가면 꼭 단편집 하나는 손에 쥐어들고 왔는데, 지금은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지조차 모른다. 보통 사람인 나는 장미의 아름다움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박학다식함보다는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만을 다급하게 쫓아간다. 미래를 위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안달 나 있는 나와 허삼관이 다른 것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본다.가정을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피’까지 팔아 살아가는 그는 평등을 추구한다. 허삼관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자기가 사는 작은 성 밖을 벗어나지 않아야 길을 잃지 않는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정이 있고, 아내와 아들이 있다. 남들 앞에서는 조금 비굴해 보일 때도 있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말한다.이런 그가 추구하는 평등이란 어떤 것일까.‘그는 생활 그 자체로 마냥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추구하는 평등이란 그의 이웃들이 그렇듯이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에 그가 아주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그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는 생활상의 편리함이나 불편 따위엔 개의치 않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인내력을 상실하고 만다.’작가가 말한 것처럼 허삼관은 이웃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꾸려나간다. 남들보다 특별히 무엇인가 뛰어나길, 아니면 못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처럼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에게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평등인 것이다.허삼관은 자신의 가치관이 굉장히 뚜렷하면서도 모순적인 인물이다. 일락이가 남의 자식이라고 밝혀지자 허삼관은 인내력을 잃고, 자식으로서 받아야할 ‘평등’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자식이란 오로지 자신의 핏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형태는 충분한 부가 축적된 사회 속에서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진 구성원들에 의해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부족한 재정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회에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무지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평등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모두가 ‘잘’사는 것이 아닌 모두가 ‘못’사는 평등을 이루어냈다. 작가는 ‘허삼관’이라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근현대 중국에서 공산주의 아래 이루어진 평등에 대한 강요가 결과적으로 불평등과 평등이 뒤섞인 부조리하고 기형적인 사회를 만들었음을 깨닫게 한다.
도시화는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2011년, 사상 처음으로 중국 인구 13억 5000만 명 중 도시 인구가 절반을 넘어섰다. 세계 각국의 기업은 중국의 도시화가 새로운 수요 및 소비 시장이 되리라는 꿈에 부풀었으나 한편으로는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과도한 투자, 대도시에서의 부동산 가격 폭락, 여기에 더해 이른바 ‘유령도시’의 존재 등을 들어 중국의 도시화는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라기보다 반드시 꺼지고야 말 거품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중국의 도시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극명히 갈리는 데에는 본질적인 경제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주요 부분에서의 개혁 실행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것이야말로 중국 도시화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 요소다.중국의 정치·경제 제도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호구제’라는 가구 등록 제도다. 도농 간 인구 이동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나 실질적으로는 ‘제한’에 더 가깝다. 공산당은 1950년대 초에 농촌 거주자의 도시 이주를 막기 위해 호구제를 시행했다. 호구제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 불안이나 사회 갈등 등 도시화에 따른 각종 병리 현상을 막아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도시 이주자의 인적 비용 발생은 물론이고, 부적절한 노동력 배분, 비정상으로 높은 저축률, 도시 지역의 소비 둔화 등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냈다.중국의 재정·금융 제도 또한 지방 정부의 토지 및 도시 개발 투자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켰다. 도시 지역 지방 정부는 공공 사회복지 비용과 기타 물리적 비용을 지출해야할 책임이 있으나 기본적인 지출마저 중앙 정부의 지원금과 토지 수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이처럼 중국의 독특한 제도가 독특한 형태의 자본 흐름을 만들어냈다. 중국의 도시화에서 나타난 급진적이고 모순적인 현상도 이러한 배경에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다른 개발도상국의 도시를 보면 임시 거주지나 가건물이 들어서 있기도 한데 중국 도시에서는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 또 주요 대도시 주변에 형성된 위성도시는 거주민 하나 없이 텅 빈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도 도시화를 좀처럼 늦추려 하지 않는다.중국공산당도 인정하듯 중국의 도시화는 원치 않은 결과와 심각한 왜곡으로 가득한 기이한 형태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사회안정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화는 중국공산당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렸다.지속 가능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중앙 정부가 2012년부터 2014년 사이에 수립한 이른바 ‘신도시화’ 계획을 중심으로 한 개혁 정책을 얼마나 실현하느냐이다. 중국 최대 경제 기획 기구인 국가개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신도시화’는 단순히 농촌 거주민의 도시 이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환경·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도록 농촌과 도시 경제의 체질 개선에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도시 이주 정책은 현재 평균 1헥타르 정도인 농지 규모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고, 농촌에는 ‘전문 농업인’만 남아 노동 시장의 왜곡이 교정되고 더 나아가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