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작품 속 전통과 근대의 대립 분석-「화랑의 후예」,「무녀도」,「역마」를 중심으로 -국어국문학과Ⅰ. 서론Ⅱ. 본론ⅰ.「화랑의 후예」-‘조선의 심볼’ⅱ.「무녀도」-水神(수신)이 된 모화ⅲ.「역마」-콧노래를 부르며 떠나는 성기Ⅲ. 결론ⅰ. 결론 정리ⅱ. 나오며Ⅰ. 서론영국의 산업혁명이후 근대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이러한 근대사상은 서양을 중심으로 동양에도 전파됐다. 다시 말해 근대의 시작은 서양이었고 동양은 근대사상을 이식의 형식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조선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이러한 조선의 상황적 배경은 근대를 받아들이는데 아이러니를 불러일으켰다. 근대국가의 기준이라 함은 1.민족국가의 확립 2.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조선은 민족국가가 확립되기 이전 일제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온전한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에 근대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일본을 벗어나야 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근대를 배워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졌다. 이후 조선만의 힘으로 독립을 한 것이 아닌 전쟁의 결과로 독립을 취했기 때문에 이 또한 자주적 독립이라고 하기 힘들다. 해방기를 맞았지만 자주국가를 성립하기도 전에 분단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맞이해야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금까지 무구한 발전을 통해 놀랍도록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과 함께 늘 우리는 근대의 한계점을 느끼고 있었다.‘필환경’.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이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인 김난도 교수의 2019 메가트렌드 신조어이다. 필환경(=green survival)은 그간 친환경이라고 일컬어지는 단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 이면에는 늘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환경보다는 인류의 안녕과 평안을 우선으로 생각했고 환경은 뒷전이었다. 그래서 했던 다른 문인들과 달리 김동리는 특징적으로 한국 전통 사상에 집중했다. 때문에 김동리의 작품 속 근대와 전통의 대립과 배치 등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이로써 동리의 사상과 그의 생각을 탈근대의 주요 열쇠로 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것을 기대한다.본고의 세 작품은 사람들이 알법한 작품들이다. 는 김동리의 등단작이며 초기작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것을 얘기하는 동시에 당시 식민지 시대였던 조선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만 와 는 전통과 근대의 배치 속에서 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즉 는 전통과 근대의 배치에서 전통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는 작중 인물이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위 3개의 작품을 골라 분석하고자 한다.Ⅱ. 본론ⅰ. 「화랑의 후예」-‘조선의 심볼’이 작품은 동리의 초기작으로 당시 동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범부(동리의 맏형)곁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당시 범부는 예비 검속이니 하여 자주 경찰서에 불려가곤 했다. 작품「화랑의 후예」에 나오는 숙부님과 숙모님이 바로 사직동에 살던 형님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그때의 체험이 배경에 깔려있다. 뒤이어 「화랑의 후예」(1935.1)로 김동리는 소설가가 된다. 그러나 김동리는 박태원에게 「화랑의 후예」가 이태준의 ‘아류’라는 지적을 받고 재등단을 결행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을 심사한 작가는 이태준이 아니라 김동인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A) 일인칭 소설이 갖는 결점으로서 이 소설에서 황 진사의 언행에 대한 심리적 동향은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으나 작가의 상당히 세련된 펼치는 황 진사의 말과 행동으로써 황 진사의 심리를 추측할 만한 길을 터준 점.(B) 황 진사라는 조선의 희극적 인물을 단지 웃으면서 읽을 가벼운 소설로 만들지 않고 웃음 가운데서 눈물을 자아내는 무게를 주었다는 점.(C) 작중 화자인 가 황 진사를 보는 데 순전히 방관적 태도에 멈추지 않고 일종의 비판을 가했다는 점. 이는 독자의 영역을 침범한 것.약점이란 (C)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사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1인칭 서술자를 내세워 대상 인물에 대한 직접 평가를 드러내는 서술방식 역시 「화랑의 후예」가 갖는 색다른 점이다. 여기에서 ‘조선의 심볼들’이 모여든 관상소의 위치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곳은 ‘파고다공원’에서 ‘뒷문’으로 빠져나간곳, 도시의 심장 ‘속’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파고다공원’은 당대 조선에서 가장 근대화된 공간이다. 그런데 가장 근대화되어있는 공간에서 가장 전근대적이라 볼 수 있는 사주와 관상을 본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동시에 작품속 화자는 마치 그곳이 ‘아편굴’같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그리 세련된 공간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 가능하게 한다. 관상소의 위치는 가장 근대적인 것(=파고다공원=도시의심장)과 가장 전근대적인 것 (관상소=거기에 모여든 인물들)의 중첩, 근대적 체제와 전근대적 질서의 공존을 보여주는데, 근대/전근대가 중첩된 이 풍경이야 말로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작가가 파고다 공원(근대)과 관상소(전근대)를 서로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파고다 공원 뒷골목에 관상소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서구 근대가 조선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음을, 동시에 그 (식민지적) 근대의 내부에 전근대적인 것이 자리잡고 있는 역설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심볼’이란 좁게보면 황진사를 넓게보면 황진사를 포함하며 근대적인 것들이 들어오기전의 전근대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동시에 소설의 결말부분에 황진사가 연행당하는 것으로 ‘조선의 심볼’이 몰락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 옛 명성과 명분만 남긴 채 피폐해져 가고 쇠잔해 가는 민족정신과 조국의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작중 ‘나’의 태도를 통해 동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김동인이 지적했던 (C)를 보면 ‘나’가 황진사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곱지않다. 물론 다방면으로지풀,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가지 잡풀들이 사람의 키도 묻힐 만큼 거멓게 엉키어 있었다. 그 아래로 뱀같이 길게 늘어진 지렁이와 두꺼비같이 늙은 개구리들이 구물거리며 움칠거리며, 항시 밤이 들기만 기다릴 뿐으로, 이미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벌써 사람의 자취와는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굴 같기만 했다.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연을 그대로 냅두고 그들을 제거하면서 살아가지 않는 모화에게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화는 무당이며, 무당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즉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모화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만물이 ‘귀신’으로 보인다.그녀의 눈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귀신으로만 비친다는 것이었다.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 이러한 모든 것이 그녀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같이 보여지곤 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님’이라 불렀다.‘이웃 사람같이’와 같은 표현등을 통해 모화가 자연과 인간을 구분짓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 알 수 있다. 모화의 딸 낭이는 ‘가는 귀가 먹은’인물이지만 모화는 그를 딸로 대하기보다는 본인이 모시는 ‘신’으로 생각한다. 작중에서 낭이는 ‘수국 꽃님의 화신’이며 모화는 그런 따님을 잠시 맡아둘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성껏 섬기지 않으면 큰어머님 되시는 용신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렵다 한다. 이렇게 샤먼(=전통)과 배치되는 작품 속 근대를 나타내는 인물은 모화의 아들 욱이이다. 절에 간줄로만 알았던 욱이가 어느날 갑자기 성경을 공부하고 오더니 모화는 ‘사당귀신’이 쓰이고 낭이는 ‘벙어리 귀신’이 쓰인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바라본다. 동시에 모화 또한 욱이가 귀신에 쓰였다며 굿을 한다. 서로를 ‘귀신’이 쓰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같지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모화는 굿을 통해 욱이는 기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물론 모화는 샤먼(=전통)을 나타내는 인물이 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두고 보지.”라고 장담한다. 모화는 ‘죽은 김씨의 혼신’을 부르는 초혼을 하다가 죽은 김씨가 초혼에 응하질 않자 본인이 직접 넋대를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간다. 모화는 노래를 부르다 완전히 물 속에 잠겨버렸다. 물리적으로 죽음을 맞았다는 것에서 욱이와 모화 두 인물 다 해당되지만 모화는 마지막 굿을 통해 신이 됐다는 점에서 욱이와 차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작가의 의식, 주변 상황을 배제하고 소설의 텍스트상으로만 볼 때 욱이와 모화의 배치에서 모화가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보기에는 약간 어려운 감이 있다. 결론적으로 수신이 된것과 별개로 샤먼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텍스트상으로의 승리를 찾기 어렵다고 해도 김동리 평전을 참고하면 그의 의도가 무속의 승리에 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무녀도」는 원작과 개작 간의 변화가 가장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47년에는 기독교적으로 (낭이의 성경책) 나갔던 것을 1963년(제 5창작집인 『등신불』)에는 샤머니즘 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 점을 통해 작가의 변모 과정을 알 수 있다. 왜 「무녀도」가 개작과정에서 샤머니즘 쪽으로 기울게 되었냐는 필자의 물음에 대해서 동리는 죽음을 통해서 영원성, 즉 신과 연결되었고 이것을 민족적인 울분과 연결하자니 자연 샤머니즘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고 대답했다.(물론) 그때와 같이 그렇게 절실하게 모든 사람에게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이란 것은 거기다 뿌리를 박고 자란나무와 같은 것인데, 그 나무에 곷을 피울 수밖에 없듯이, 하다가 내버리고 다른 것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나의 문학은) 자연과 민족과 신에 얽힌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나무에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ⅲ. 「역마」-콧노래를 부르며 떠나는 성기「역마」는 앞의 두 작품과 달리 결말 부분을 통해 근대와 전통의 대립되는 시기에서 주인공이 본인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동시에 위 두 작품과 달리 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