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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존주의
    장 폴 사르트르의 탈존하는(ec-sistant) 주체로서의 자아실존주의는 니체의 영향을 받은 문파로 인간 존재와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시 파악하고자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본질보다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즉 본질보다 실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으로 철학의 보편적, 본질적 관념을 거부한다. 이에 실존주의의 대표 격인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탈존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의 확립과정을 논증하겠다.실존주의에서 핵심은 실존이다. 실존은 본질essentia이라는 말과 대비된다. 본질이라는 것은 무언가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의미가 말 속에 포함된 것으로 오랫동안 주류의 철학을 이뤄왔다. 본질은 ‘어떤 것이 어떤 것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무엇’ 혹은 ‘그것이 없이는 어떤 것을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실존은 오직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받아들일 뿐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인지 확정하지 않은 그러한 존재자이다. 예를 들어 X is라는 문장이 있을 때, X의 특징들에 대해 추리해 볼 수 있다. X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X is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일단 X는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것을 나타내는 말이 existentia이다. 그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실존이다.이러한 실존에 대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보다 먼저 있었고 자연물 또한 개념의 정의가 정해지고 나서 ?라고 불려 왔다. 이런 면에서 인공물, 자연물 모든 존재자는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인 사르트르는 인간에 한해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정의는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고, 정의된 것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질료와 같은 수준이며 정의 할 수 없기 때문에 본질 또한 규정할 없다. 따라서 2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①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내 본질은 규정되지 않았지만 본질은 미래에 규정될 수 있는 것으로서 늘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②본질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해왔던 전통적 관점들에 대한 비판한다. 전통적 관점은 본질을 통해 인간을 규정하여 본질에 맞지 않은 사람에게 공식적인 폭력을 행사해도 무관하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즉 인간은 본질이 아닌 실존으로 존재할 수 있다.그렇다면 인간은 실존으로서 어떻게 존재할까?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분석한 대표적인 사람이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이다. 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독일어 Dasei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현존재, 1차적 실존이라고 한다. 이는 여기에(da) 있다(sein)는 것만 말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Dasein은 existentia를 독일어로 표현해낸 말로 인간에 대해서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규정도 갖지 않은 존재라는 의미로 인간을 보고자했다.따라서 본질보다 앞선 실존으로서의 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미래와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려운 미래가 그려진다고 했을 때,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 1차적 실존은 자유로운 존재이긴 하지만 이것의 성향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다. 즉 1차적 실존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그렇다면 실존주의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그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서 Dasein이 아닌 Existenz라는 말을 사용한다. Existenz는 자기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존재(자기 존재)로 이행할 수도 또 자기모순으로 이행할 수도 있다. 실존은 자기모순을 견딜 수 없는 방식으로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 즉 자기 존재는 주체로서의 자기의 의미를 갖는다. 그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유 자체를 실제로도 실현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삶의 전형으로 ‘진정한 자기’이다. eigentlich라 말한다.샤르트르는 eigentlich를 authentique라는 번역어로 사용한다. 이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나 자신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의미로 진정한 자기로 살기 위해서는 1차적 실존으로서의 자유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말로 탈존이라는 말을 사용한다.실존 철학의 방법론인 현상학으로 보았을 때, 의식에 나타난 것은 다른 어떤 것(외부의 실재)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타난 그것이 전부다. 즉자존재이다. 외부의 실재가 우리 이미지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타난 그것이 전부라는 것. being in itself. 존재 근거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으로 ‘무엇이다’라고 규정될 수 있는 것, 정의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것을 그냥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즉자 존재는 사물의 특징이다. 사물을 즉자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나 또한 사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물은 불변적인 것인데 의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식은 사물화 될 수 없다.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의 존재 근거는 뭘까. 의식은 나타난 것이 있을 때 작동하고 의식이 작동할 때에는 내가 자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행동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의식적이지 않은 것이다. 의식에 어떤 이미지가 나타났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을 때 의식은 비로소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의식이 작동하는 것을 내가 안다는 표현에서 의식은 작동하고 있는 의식과 그것을 알고 있는 나의 의식으로 나누어져서 대립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대자이다.문제는 대자 존재로서의 의식은 다른 말로도 부를 수 있다. 사물을 존재라고 한다면 사물과 나누어지는 비존재 즉 무. 무라는 말은 없다는 의미도 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실제로 의식은 무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무화는 ‘없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없다. 이때 친구가 없다는 것이 다른 것들의 무화를 통해서 나에게 의식된다. 의식은 무화라는 방식으로 뭔가를 분별해서 인지한다. 이것을 사르트르는 그것이 아닌 것으로 무화하는 것 이라고 표현한다. 실제 세계에서는 없음이라는 것이 없고 의식의 작동 방식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없음의 원천은 의식이다.
    인문/어학| 2021.04.01| 3페이지| 1,000원| 조회(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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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아연구의 윤리적 논의
    배아연구의 윤리적 논의서론불치병, 난치병 언제 치료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세포를 말한다. 분화되지 않은 세포는 스스로 계속 분열하면서 혈액, 근육, 신경세포와 같은 적절한 환경에서 몸을 구성하는 세포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세포는 태아 기형의 원인과 다양한 질병의 연구, 표적약물 개발과 임상시험의 효능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하며 신체 기관들의 발생에 관하여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의학적 치료와 생명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목표 가지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많은 생명과학자, 의학자들은 유전적 질환들에 대한 질병특화 줄기세포를 개발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의학의 혁신적 진보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러한 효능만큼 처음에는 실용성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집중하였다. 설사 우려되는 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더라도 적극적인 제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윤리적 시각도 성장고, 그 이면에서 엄청난 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발견하게 된다. 현재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배아의 오남용 등 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의 문제를 살펴보고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쟁점을 살펴보겠다.배아의 윤리적 논의먼저, 배아줄기세포는 인간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아를 이용하여 연구를 시도함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을 살펴보자면 배아를 이용하여 연구할 때에는 배아의 파괴가 선행된다. 배아의 파괴는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함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문제가 엮이기 때문인데, 첫째, 연구를 위해 인간의 생명체인 배아를 의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둘째, 배아의 파괴가 동반되는 배아연구가 과연 인간에게 이익을 줄 수 있 는지에 대한 판단, 셋째, 배아파괴가 선행되는 배아연구를 위해서 연구를 위한 배아의 생성을 허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 넷째,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배아를 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먼저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아를 개별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먼저 배아를 개별 인간으로 보는 입장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수정란은 인간의 모든 권리와 도덕적이고 법적인 지위를 가지는 새로운 인간 내지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다. 즉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배아를 완전한 인간존재로 생각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착상 전의 배아도 살아 있는 사람과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연구과정에서 착상 전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살인과 동일하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또한,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두 번째 핵심적인 쟁점은 배아가 나중에 인간이 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의에서 잠재성은 네 가지로 사용된다. 첫째, 인간으로서의 종적 동일성이다. 종적 동일성은 이러한 수정 시점부터 배아, 태아, 출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 성체의 모습을 한 인간 존재자에 이르기까지 이들 생명체들 사이에 유전적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인간 종의 유전적 형질이 수립된다. 즉,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나’라는 인간은 태어난 지금까지 나의 유전자가 동일하며 또한 수정란은 다른 생명체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둘째, 연속적 발전성이다. 연속성 논거에 의하면, 배아를 단지 현 상태에 의거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수정 시점부터 배아, 태아, 출생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연속적 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구분선을 그어 나누는 것은 자의적이다. 따라서 생명과 존엄성의 보호는 배아발달의 시작과 더불어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유전적 동일성이다. 초기배아가 성장한 후에 인간은 초기배아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개체 상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체성이 이미 내재되어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넷째, 내재적 잠재성이다. 초기배아는 인간존엄과 생명권을 가지는 인간으로 성장할 잠재성이 내재돼있다. 이는 배아를 완전한 인간 존재로 만든다, 즉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배아에 적용되는 ‘잠재적 인간’의 적절한 의미는 4일에서 6일까지의 배아는 일상적인 상황 하에서 그 자체로 내부 조직과 그러한 의미로 발달할 수 있는 생물학적 프로그램을 가지는 통합적인 생물학적 독립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즉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모든 착상 전의 배아들은 인간 존재가 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아의 잠재성을 파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주장한다.과학적 주장반면, 배아줄기세포를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보는 사람들은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배아는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여 개별 인간으로 규정하기 위한 적절한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아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배아는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익 내지 권리를 가질 수 없으므로 합법적이고 중요한 과학 연구에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줄기세포 연구의 현 상황하지만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기 이전에 현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배아줄기세포로 희귀 난치성 질환의 극복이 과학적,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의 문제이다. 첫째, 1998년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수립 이후 20여년 동안 희귀 난치성 질환 극복을 위한 수많은 과학적 도전이 있어왔으나, 미국 제론사의 막대한 투자비에 불구하고 인간배아줄기세포사업은 완전 중지되었으며 현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둘째,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세포치료제로서의 기대감은 초반의 기대와 다르게 안질환 등으로 그 영역이 현저히 축소되었다. 셋째, 현재 줄기세포 시술이 필요한 환자에겐 관심이 적고 부유층의 미용 목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권력을 가진 부유층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으며, 희귀병을 가진 유아 및 환자를 가진 빈곤층에 대한 제도와 연구는 미미할 것으로 예측된다. 마지막으로 배아를 하나의 완전한 개체가 된 인간과 동일한 법적지위와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배아를 인간과 동일하게 포괄적으로 보호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후 인간이 될 가능성을 포함하는 잠재적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어 존엄한 존재로서의 가치는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자연과학| 2020.12.05| 3페이지| 1,0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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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지식의 객관성(과학전쟁 중심으로)
    과학전쟁으로 보는 과학지식의 객관성목 차Ⅰ. 들어가는 말 1Ⅱ. 과학지식의 객관성1. 자연과학의 객관성1~22. 앨런 소칼의 속임수2~33. 사회과학의 과학지식34. 자연과학과 사회과학3~4Ⅲ. 결론4참고문헌 5Ⅰ. 들어가는 말현 시대의 과학은 우리의 생활을 이전보다 더 편리하고 간편하게 만듦으로써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편리함을 제공한 과학은, 우리 세상의 절대적인 진리로 만들었고 과학에 대해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열광하는 사람이나 이 세상 모든 일이 과학기술 문명 때문인 것처럼 과학만능주의자가 생겼다. 여하튼 과학이 우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든 나쁜 영향을 미치든지 간에, 이러한 기술공학은 과학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쟁기, 바퀴, 붕대나 칼과 같은 것들을 개발하는 것은 그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이 없더라도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주로 최근의 수백 년 동안에 새로이 나타난 과학이론들과 방법이 아니었다면, 전자 기기들, 우주 왕복선, 초정밀 수술, 대량 살상 무기들의 출현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즉 과학과 기술공학의 산물들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환경을 구성하는 방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문화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것 또한 우리나라의 과학 문화라는 말이다. 문화가 된 과학은 여러 지식인들에 논의해야할 대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학 지식인 계층의 함의를 논의하게 되었다. 사업에서 여러 전공이 모여 학술대회 하는 것과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 인공지능이 인간에 끼치는 영향, 발전, 사회정책 등 모두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학술 분야에서 논쟁을 야기 할 수밖에 없고 ‘과학의 바벨탑 현상’이 극심해지는 지금 우리는 다른 분야와 대화를 하여야 한다. 이러한 대화는 과거에서부터 논의 되었고 이를 ‘과학 전쟁’이라고 불리고 있다.1996년 5월 뉴욕 대학의 수리물리학자 앨런 소칼은 어느 학술지를 상대로, 보는 시각에 따라 괘씸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혹은 통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감쪽같은 속임수를 성공시켰다. ‘소칼의 속임수(Sokal’s Hoax)는 그 후 일파만파로 이에 대한 수많은 대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이 후일 ‘과학 전쟁(Science War)’으로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소칼의 속임수로 촉발된 ‘과학 전쟁’은 과학 연구의 본질을 놓고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과학철학자 등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벌인 일종의 국제적 학술토론이었다. 이 토론은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및 인문학자들을 축으로 대결 구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를 ‘과학 전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과학 전쟁이 이루어졌던 자연과학의 객관성과 소칼의 주장, 사회과학의 과학지식 객관성을 살펴보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어떻게 합쳐질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Ⅱ. 과학지식의 객관성1. 자연과학의 객관성과학이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분명 인문사회과학과 차별성을 갖는다. 지구는 타원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돈다. 누구라도 망원경으로 면밀히 관측하고 분석하면 (쉽지는 않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즉 과학의 객관성을 갖는다. 또한 뉴턴이 살던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다. 며칠 후에 다른 이가 해 봐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재현이 가능하다. 타원 궤도를 내놓는 이론은 옳고, 그렇지 못한 이론은 틀리다. 이처럼 이론의 옳고 그름을 물질적 증거에 입각하여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힘이다.과학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면 “모른다”고 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여타 학문과 비교할 때 꽤나 특별한 태도다. 하지만 반대로 많은 종교와 철학은 자신들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든 정합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다.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른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진화했지만, 최초의 생명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구 이외의 장소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하지만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과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태도는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안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뒷받침할 물질적 증거가 있다는 말이다.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빅뱅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138억 년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빅뱅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단지 우주가 팽창해 왔다는 물질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면 결국 우주가 한 점에 모이게 될 거다. 이게 전부다. 우주 팽창도 매우 기술적인 증거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만약 이런 증거들 가운데 일부가 오류라고 밝혀지면 빅뱅의 존재 자체가 의심받게 된다.즉 과학자는 모를 때 아는 체 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또한 내가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다.2. 앨런 소칼의 속임수앨런 소칼은 자연과학의 물질적 증거의 객관성과 사회과학을 비교하며 실험을 시행한다. 소칼은 여러 해 전부터 급증하고 있는 저술 양식을 패러디한 논문을 미국의 인기 있는 문화 연구지인 에 투고한 뒤 과연 편집자가 그 글을 게재할 것인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경계의 침범: 양자 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논문은 억지와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가득 차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은 극단적 형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내걸고 있다. “그 어떤 개인으로부터도, 아니 인간 전체로부터도 독립된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구태의연한 ‘도그마’를 비웃고 나서 이 논문은 “사회적 ‘실재’는 물론이고 물리적 ‘실재’라는 것도 기껏해야 사회적?언어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못 박는다. 잇따른 논리의 비약을 통해 이 논문은 “과거에는 보편적인 것, 불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유클리드의 ?나 뉴턴의 G도 지금에 와서는 불가피하게 자신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주장과 대동소이한 내용이 논문의 나머지를 비판을 채운다. 그렇지만 소칼의 논문은 채택되어 잡지에 실리고, 뛰어난 과학자들이 가한 집중적으로 논박한 특별 호에 실리기도 한다. 즉 앨런 소칼의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소칼은 이러한 점을 들어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포스트모더니즘 학문이 명백한 진실을 흐리려하는 시도이자,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한다.하지만 소칼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소칼은 이들이 과학의 객관성을 무시하였다고 말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포퍼와 쿤과 같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방법과 그 연구 활동을 분석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과학 내용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어떠한 사실적, 개념적 오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자들(포퍼, 쿤)이 말한 과학 지식의 객관성에 대해 보겠다.3. 사회과학의 과학지식과학적 방법에 관한 설명을 추구하는 이유는 최선의 과학이론들이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만약에 우리들이 과학적 방법에 관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설명을 이용하여 어떤 하나의 이론이나 분야가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가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에게 있어서 더 큰 오류에 빠지는 실수를 방지하며 나쁜 교조나 교로에 빠지는 것 또한 방지할 수 있다. 즉, 포퍼는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았으며 과학의 방법과 그 연구 활동을 분석하려 하였으며 그의 ‘반증주의’에 입각한 과학철학은 다양한 논란의 와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폭넓게 수긍할 수 있는 과학관을 제시하며, 동시에 비록 상대적인 의미로라도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 그리고 지식의 성장에 관한 매우 설득력 있는 이론 체계를 제시한다.과학철학자인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과학의 방법론과 지식에 관해서 기존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유방식을 제안하였고, 과학사의 실제 전개과정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바라보도록 시간 자체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쿤의 과학철학은 문학이론 뿐만 아니라 경영과학에 이르기까지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도록 만들었다.
    자연과학| 2020.11.20| 7페이지| 1,5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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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사회는 건강한가(학벌불평등)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hwp우리 사회는 건강한가?-학벌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와 원인, 대안-필자는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대학생이 알아야할 인성, 교양, 윤리의 문제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 교육현장에서 여전히 고비노의 인종주의가 사멸한 것이 아니라, 잔존 내지 어떤 측면에서는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고비노의 인종주의가 우리나라의 학벌사회로 남아있는 점에 대한 문제와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지 말하고 싶다.먼저 필자 고비노가 말하는 인종불평등을 거슬러 한국사회에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학벌불평등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말하겠다. 이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 학벌불평등을 말하기 위해 학벌의 의미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를 쓴 이정규 학장은 이 책에서 학벌을 ‘제도 교육에 의한 출신학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연고적 동류집단’이라고 말한다. 즉 같은 학교 출신인 동문이다. 왜 한국에서는 이러한 학벌불평등이 일어나는지 이제 한국에 만연하게 나타나는 학벌불평등의 문제를 보겠다. 이러한 문제는 3장의 맺는말에 잘 나와 있어 이를 인용하겠다.첫째, ‘모든 가치를 파괴하려는 시도’이다. 학벌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이념으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통용될 수 있는 여러 가치 기준들을 오직 단 하나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의 학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을 겪으며 최빈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한국은 전쟁으로 황폐화되었고 자원도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최빈국에서 현재 2017년 GDP가 1000조에 이르게까지 성장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는 교육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에서도 녹아있다. 70-90년대에는 ‘사’가 붙은 직업이 유행하였다. 예컨대 검사, 의사, 판사가 있다. 또한 당시인종 찬미가 평등주의 이념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했듯이, 한국에서의 학벌은 각종 차별과 불평등의 기원이 되고 있다. 즉 ‘출신’학벌에 따른 ‘차이’가 생겨난다. 이러한 차이는 ‘차별’과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에 나타난다. 대기업에서는 지방대의 이력서는 거르고 시작한다고 말한다. 즉 이력서 넣을 기회는 있지만 공정한 기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셋째, ‘사회적 신분계급의 질서를 형성하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는 학벌이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기준이며, 계급적 불평등의 재생산 장치로 작동한다. 즉 ‘서울대’, ‘in 서울’, ‘지잡대’와 같이 급을 나누는 것이 형성 되었다. 계층의 형성은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는데 그 중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낙인이란 능동적인 개념이 아니라 타인에게 찍히는 수동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지방대를 나오게 된 사람은 ‘지잡대’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 이러한 낙인 효과는 사회적 일탈감을 주게 될 것이다.넷째, ‘염세주의적 가치관의 형성’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각 분야는 서울대를 주임으로 하는 극소수의 학벌이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학벌은 양적인 면에서 폐쇄성을, 질적인 면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학벌 구성원들 사이에 강력한 유대감과 결속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결국 학벌은 기득권을 나타내는 징표이다.한국에서의 학벌주의는 채용시장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즉, 학벌 사회는 청년들의 자존감 문제와 취업 문제 등에서 보이지 않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벽은 좌절로 이어지며 대학생의 많은 수가 공무원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해 4~5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7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시민들을 학력?학벌 차별이 모두 심각한 수준이라고 인식했다. 기업의 직원 채용 시 학력차별에 대해서는 86.1%가 심각하다 말하였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논문 에 따르면, 최상위 13개 대학출신 취업자들이 14~50위 대학계가 있다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인과관계가 존재 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이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중등교육까지 무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교육까지 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 평등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내면을 바라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학벌불평등이 일어나는 원인을 생각해 보겠다.교육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에서의 큰 차이는, 평등한 기회라는 조건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만 갖추어 준다면 우리는 평등한 기회를 보장 해준 것으로 본다. 사회는 누구에게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 갈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벌사회에 뒤쳐진 많은 사람들은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노력과 경쟁의 룰에 뒤쳐져 기회를 놓친 낙오된 사람들이라고 말해야 할까?한 개인들은 사회에서 가정, 부모, 학습과 같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서로 다른 환경적 차이는 사람마다 개인적인 IQ 차이와 같이 다양한 능력과 성격적 특성으로 나타나 능력의 차이가 없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예로 우리 사회의 대학 진학률을 부모와 대조하여 보았을 때 부모의 교육수준과 자녀의 4년제 대학 진학률 고졸인 부모와 대학을 진학한 부모 차이를 봤을 때 약 30% 차이가 나며, 부모 소득에 따른 유명 대학 진학률은 18배 차이, 부모 소득 수준에 따른 자녀 임금 수준은 약 19% 차이와 같은 통계자료가 나타난다. 또한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수도권 대학에 높은 진학률을 보인다. 즉 부모의 배경과 환경은 자녀의 학벌을 비롯해 임금의 차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사회는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왜냐하면 환경의 차이와 같은 요소 때문에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육환경이나 능력적 차이로 직업적 영향이나 소득의 불평등, 경제적 지위나 정치평등한 기회를 준 것 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불평등 하다고 생각한다.필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대안을 찾아보겠다. 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에서의 역량의 개념과 피터싱어에 나오는 차별시정조치의 개념을 이용할 것이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구조를 추가해서 학벌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겠다.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는 환경적 차이와 능력적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불리한 집단에 차별시정조치에 따라 차등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 차등의 원칙이란 불리한 집단 혹은 소득의 분배에 우선적 대우를 해줌에 따라 발생한 사회 계층 사이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즉, 차별에 대한 역차별을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 개념 속에 불평등을 포섭한 것은 인간의 능력, 특질, 이해 관계, 관심 등에서 서로 동등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르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하는 것이 실제적인 평등이라는 점이다.이러한 차별시정조치는 사회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사람들이나 교육 환경이 열악한 사람,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사회 약자들에게 차별하여 사회에서 조금 더 희망적인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 예상한다. 다시 말해서 차별시정조치는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사회의 복지를 소득의 분배에 따른 차등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차등 대우는 역량의 개념으로 차등하게 대할 수 있고 생각한다. ‘역량’이란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의 물음이 될 수 있다. 즉 역량은 ‘실질적 자유’이자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러한 개념을 이용하여 개인이 공정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제공받기 위해 어떠한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것 인지 알아봐야 한다.누스바움은 10대 핵심역량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통제를 최저로 보장해야한다고 한다. 이러한 보장이 있다면 불평등한 지위에 놓인 사람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들에게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는 것은 정당한 이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보장이 안될 때 차등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차등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대학교 농어촌전형을 들 수 있다. 농어촌에서의 교육수준은 도시지역의 학교수준에 비하여 많이 부족 하고 지원적인 측면이나 제도적 측면이나 많이 부족한 사실이다. 이러한 부족한 여건을 조금 더 정당화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진학에서 농어촌 특별 전형과 같은 제도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제도는 대학교 학벌사회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같은 선상의 출발의 기회는 학벌사회에서 취업으로 이어지는 기업에서도 이러한 채용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은 사회적 목표인 평등의 관점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적 대우를 해주며 사회적 배경과 격차에 대한 갈등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바뀌어야 학벌불평등 구조를 탈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차별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차별이 새로운 역차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평등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 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소득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 차등의 원칙을 노동도 안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간다고 이러한 제도를 적용하면 억지가 아니냐고 불평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차별시정조치는 사람의 권리를 침해 할 수 도 있다. 차별시정조치와 관련된 미국 법정 판례를 보면 배키는 같이 입학정원의 16%를 불리한 소수집단 학생에게 할당함으로 시험점수로 틀림없이 입학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불합격 하게 됐다. 시험이 어떤 학생이 매우 불리한 환경에서 자랐을 때 그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좋은 환경의 다른 학생보다 더 가망이 클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것은 차별시정조치에 해당하지만 학생들이 더 높은 입학시험 점수를 받은 다른 학생들 보다 실제로 자질이 낫다는 견해를 지지할 증거가 없고 또한 다수의 판사들은 미국 헌법이나 한다.
    사회과학| 2020.11.20| 5페이지| 1,5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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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기후변화와 책임 평가A+최고예요
    국내 기후변화 피해와 책임다들 기온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가? 필자는 최근에 지금 시기에 이런 날씨가 하는 경험을 종종하곤 한다. 평소에는 이러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없어, 그냥 넘어가다가 기후가 우리 인체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실감하고, 기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작은 고체나 액체 입자로 공기 속을 떠도는 에어로졸, 산불 등 지구 내부적인 요소와 태양활동 변화를 포함하는 자연적 요인 그리고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사용 증가와 온실가스 증가, 열대우림과 북방 침엽수림 벌채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온실효과를 증가시키는 인위적 요인이 있다. 이 중에서 우리 인류가 부추긴 인위적 요인은 지구온난화를 가속 시켜 인류와 생태계에 큰 위협 초래하였고,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위협에 가담하였다.국립기상연구소에서는 온실효과를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이 일어날 시기에는 270ppm이였고, 최근에서는 390ppm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렇게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온은 1912년에서 1970년 사이 약 60년 동안 0.5°c가 올랐고, 1971년에서 2005년까지 약 35년 동안 1°c가 올랐다. 앞으로 이 시기는 더 짧아져 1°c가 오르는데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대기 오염을 야기한 우리 인간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오지 않고, 전혀 관계없는 피해자를 만들었다. 유명 시사 잡지 [타임]에서는 지구상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이 급증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삼림 파괴로 인해 생물의 멸종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생물의 멸종은 고대에 존재했던 생물들이 멸종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멸종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할 정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엔의 「밀레니엄 지구 생태계 보고서」에서는 생물의 멸종이다. 무엇하나 잘 못이 없는데도 말이다. 멸종한 동·식물의 생물 복원은 어렵다. 우리는 이러한 멸종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즉 이기적인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금 더 사회적 가치가 높은 생명의 존중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필자는 인간이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더 민감한 동·식물들이 입는 피해의 심각성과 그 심각성이 얼마나 가까이서 나타나는지 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미치는 사례와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에 대해서 보겠다.우리나라는 중위도 온대성 기후에 위치하여 4계절이 뚜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20년대와 1990년대를 비교 했을 때 평균기온이 1.7°c가 오르면서 전 세계 평균 기온 상승률보다 0.74°c가 더 높다. 이러한 기온 증가는 겨울이 한 달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현상과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제주도 해수면은 22cm가 상승하고 태풍과 게릴라성 호우가 증가 하였다. 즉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는 증거가 되고 있고 기후변화로 온난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주도의 겨울은 사라져 가고 있다. 2011년 국립기상연구소는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간다면 390ppm이 2100년에는 940ppm으로 보고 있고 한국은 지난 100년 간 1.8°c가 상승했지만 2020년에는 1.5°c가 상승하고 2050년에는 3.7°c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된다면 겨울은 완전히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게 되고 여름이 길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1°c가 상승할 때 마다 지구 생물10%가 멸종하고 30만 명의 인구가 기후 관련 질병이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생물은 50년 까지 20~30%가 멸종 할 것으로 본다.로마클럽 보고서, WHO, UNEP는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범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과학적 근거를 통하여 이산화탄소의 발생의 책임을 인류로 보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대량 소비형의 사회가 유지 될 경우 21세기 말에는 온도가 최대 6.4 좋은 삶의 개념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기후변화로 입는 피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실천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가 실천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지구온난화는 생태계, 기상재해, 건강, 등 다양한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기온 상승에 따라 현재 서식지에서 생물종의 멸종 위험성이 커지고 농산물 주산지가 북상하는가 하면 해수면 상승에 따라 저지대 침수, 열파, 홍수, 가뭄 등으로 사망자가 증가 하고 있다. 또한 모기와 해충이 질병을 옮기는 분포를 확대 시키고 있고, 이러한 피해는 빈곤층, 노령층 또한 재개발국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생활문화양식 변화에 따른 농림, 수산물의 서식지가 바뀌고 새로운 식문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생활이 변화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국가적 대응과 정부 내에서 환경단체나 환경부와 같은 이해관계들과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나 환경단체, 각 단체들은 각 자 개인적인 선택을 할 순 있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선택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선이 되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실천은 각 단체들의 선택도 단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방향에서 결정해야한다. 또한 산업 기업, 국민을 아우르는 지구온난화 극복을 위해 다각적인 정책이 요구되어야 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개인적 실천을 할 수 있게끔 사회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한라산에는 솜다리라는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은 에델바이스로도 불리 우며 한라산에 고산지대에 분포해 있었다. 1979년에는 1,800m일대에 1996년에는 1,900m에 분포 하였다. 이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분포도가 이동해 간 것이고, 기온이 더 상승한다면 1950m인 한라산에는 더 이상 에델바이스가 갈 곳이 없게 된다. 그 외에도 눈개쑥부쟁이, 섬바위장대, 한라고들빼기, 한라구절초 등 용을 연구하던 중 개미가 놀라운 이산화탄소 추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는 해충의 양 조절하고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개미를 죽이고 있다. 농업과학원 박해철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곤충의 다양성과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식물의 번식을 돕는 벌과 나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에 반해 해충인 꽃매미는 아열대성 기후에 살고 인도, 베트남, 일본에 분포하는 잡식성 곤충이다. 하지만 2006년에는 1ha, 2009년에는 2765ha의 크기로 분포도가 크게 넓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원인은 한국의 기온이 크게 상승한 것이 꽃매미가 월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농촌진흥청은 중국에서 넘어온 해충 멸강나방이 40배 급증하였고 벼농사에 피해를 주는 애멸구 또한 5배가 증가하며 온난화가 빨라질수록 해충의 유입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후변화는 일반 곤충류를 해충으로 바뀔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다. 대벌레와 갈색여치도 급증하면서 해충화가 되었다. 해충화는 기후변화 이전에는 생태균형에 맞는 밀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기후변화로 번식의 속도가 증가하고 개체증가가 너무 빨리 이루어져 발행한다.먹이사슬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마뱀이 사라지면서 생태계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잠재적 피해 변온동물인 도마뱀은 햇볕을 좋아하지만 기온이 높아지면 그늘을 찾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활동은 위축된다. 먹이를 찾는 활동이 감소되면서 도마뱀은 힘이 다한 채로 죽는다고 한다. 전 세계 도마뱀 가운데 5%가 멸종하였다. 새와 뱀의 먹잇감이면서 곤충들의 포식자인 도마뱀은 생태계에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개구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란기는 빨라지고 있지만 기온의 상승 속도를 따라 성장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여 멸종될 것으로 보고 있고, 우리 주변의 개구리는 벌써 30%가 줄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기면서 생태계 교란과 파괴 등을 야기 할 것이다.국내 포유류도 기후변화로 고생하고 있다. 2010년 경북 울진군 등산로 등에서 산양 19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삼척시 국내에 새롭게 발견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연구원은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날아온 미기록 조류가 모두 69종에 이르는 걸로 보고 있다. 제주도 조천읍 북촌에서는 검은슴새가 발견 되었다.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열대지방의 서식종이 발견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분포권이 확장되고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열대어종이 우리나라에 발견되면서 새들도 먹이를 찾아 북상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북반구의 많은 새들은 적합한 서식지와 먹이를 찾아 북쪽으로 가고 그 빈자리를 보다 남쪽에서 이동해온 새들이 차지했다. 여름 철새들도 남쪽 이동을 포기하고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하는 개체 수가 증가했다. 극지, 고산지대인 추운 곳에 살던 생물은 수난시대를 맞았다. 그 반대로 더위에 강한 적합한 생물은 혜택을 보고 있다.화석연료의 지나친 사용은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빨라지게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생물의 멸종 속도가 과거에 비해 1,000배 빨라질 것이고 기후변화로 조류의 12%, 포유류의 25%, 양서류의 32%가 100년 안에 멸종 될 위기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크리스 토마스 교수팀이 남아프리카, 브라질,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코스타리카의 6곳에서 식물,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곤충류 등 1,103 종의 생물들이 지구온난화로 받은 영향을 조사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가 많은 생물종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멸종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100여 년 동안 1.7°c가 증가함에 따라 철새 이동 시기와 서식지에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아열대 조류가 되돌아가지 않고 국내에 머물러 있고, 여름철새가 겨울에 남쪽으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는 텃세화현상도 있다. 국내 40년 동안 650종의 조류 가운데 64종이 사라졌다.국립환경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백로과에 속하는 왜가리와 중대백로는 주로 봄철에 우리나라에 찾아와 번식하고 가을이면 월동지인 열대와 아열대로 남하하는 조류지만 최근에는 가을에도 남쪽으로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월
    생활/환경| 2020.11.20| 6페이지| 1,0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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