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자원 관리 개인과제1‘인적자원관리’ 라는 수업을 처음 수강하면서 과연 어떤 것을 배우는 수업일까 생각해보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관리한다! 사실 기업 운영을 위해서는 인사관리 시스템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인적자원관리라는 말까지는 공부를 하지 않고 용어만 듣더라도 어느정도 가늠이 가능했다. 그런데 ‘전략적 인적자원관리’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도대체 전략적으로 인사관리를 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건지 궁금했다. 사람이라는 자원 자체가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자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수업에서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에 대한 개념을 배웠고 또 논문을 통해 이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에 ‘자원기반관점이론(RBV)’이 어떻게 접근하였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이 논문을 읽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한 점과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과거 인적자원은 경쟁력을 위한 핵심요소로 취급 받지 못했었다. 그래서 기업이 재무 위기에 처하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시행해 인적자원을 축소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우수한 인적자원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며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의 바탕에는 경영 전략과 인적 자원과의 정합성을 추구하려는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trategy Human Resource Management; SHRM)’ 개념이 있다. 이를 통해 인적 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토대를 세워나갔다.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HRM)’는 기존의 미시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했던 인적자원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적자원관리를 바라보고 통합하려는 접근법이며 학자들은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이론들을 활용했다.그 이론들 중 ‘자원기반관점이론(Resource-Based View; RBV)’은 경영적 관심이 산업 구조와 같은 외부요인에 있던 기존의 관점에서 기업의 내부 역량과 자원 등과 같은 내부 요인을 개발해야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Penrose의 연구 이후 학자들은 경쟁우위의 핵심으로 자원의 희소성과 독특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Wernerfelt가 “회사 조직에 대한 자원 기반적 시각(Resource based-view of the firm)"을 처음 사용했으며 Barney는 Valuable(가치있고), Rare(희귀하고), Inimitable(모방이 어렵고), Not Substitutable(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보유한 기업은 타 기업과의 차이점을 가질 수 있으며 이들의 이동 또한 쉽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원기반관점(RBV) 이론을 제시했고, 이런 VRIN적 속성을 지닌 자원을 확보할 것을 강조했다.그리고 이 이론이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내부 요인인 인적자원이 기업의 성공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HR의 주장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뒷받침으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자원기반관점이론의 장점으로는 첫째로 조직의 자원 및 역량을 ‘내부’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다는 점이다. 이는 조직 내부의 자원 가치 혹은 자원의 배치를 함으로써 경쟁 우위적 요소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로는 전략 관리 과정에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통합하거나 운영하는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결과적으로 이러한 자원기반관점이론의 관점에서 전략적 인전자원관리에 접근하게 되면, 인적자원이 경쟁 우위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전략적 인적자원관리는 인적자원기획기능을 강조하게 되고, 조직 구성에 대한 변화를 전략적으로 추구하고, 조직 상황이나 전략에 인적자원이 잘 적용되도록 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정리하자면 자원기반관점이론이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에 적용됨으로써 이론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실증적인 연구 기반에 까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다.이론적 학술적 발전으로는 앞서 말했듯이 인적자원이 전략적인 인적자원관리를 펼치는 데에 경쟁우위적 요소로 중요하다는 주장에 타당한 뒷받침으로 사용되었고, 실증적인 연구에 있어서 발전한 것으로는 첫째 기존 인적자원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거시적인 시각에서의 접근을 가능하도록 하였고, 두번째 막연한 이론이 아닌 이론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이 논문을 읽고 나서 자원기반관점이론이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에 적용이 되면서 인적자원분야와 전략을 이어주는 다리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지금까지는 인사관리가 막연히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면 재밌을 것 같은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점점 그러한 생각들을 반성하게 된다. 모든 상황과 목표를 뚜렷이 파악하고 내부적 외부적 요인에 맞게 시시때때로 변화할 줄 알아야하는 마치 생물을 다루는 것과 같은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인적자원관리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번 과제와 지금까지의 수업을 통해 전략적 인적자원관리가 자원기반관점이론과 접목되어서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니 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인사관련 기사를 보거나 직접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떠한 과정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셜 미디어 세상 ‘성장’일까 ‘지배’일까현재 우리 사회는 소셜 미디어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아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였고 더 발전한 지금 클릭 한 번으로 수천 수만개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고, 기계와 대화도 나눌 수 있으며, 작은 핸드폰 하나로 수많은 디지털 활동이 가능한 편리한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는 디지털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1년 뒤, 10년 뒤에는 또 현재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이점이 존재하는 만큼 그 이면에는 우리가 감히 예측하지 못하는 폐해들 또한 존재한다. 나만해도 평소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 등의 편리함에 대해서만 생각하였다. 가끔 정보유출 사건이 터지거나 핸드폰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길 뿐이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중간과제를 통해서 세가지 작품을 접하고 놀라기도 하고 반성도 하며 좀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부터 그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우선 내가 느낀 세 작품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잠재적으로 계속해서 디지털(소셜 미디어)에 지배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으면 위험하다’인 것 같다.공통된 논제에서 각 작품들이 포커스를 맞춘 부분은 조금씩 달랐다. 의 경우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취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부 및 큰 IT 기업이 가진 권력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디지털 미디어 이용 시 절차처럼 체크하고 지나갔던 읽기도 어려운 수많은 약관 동의만으로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동의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약관을 수정하며 정보를 확보하고 이런 식으로 수집한 데이터(저작권, 초상권, 사생활 등)를 우리 모르게 감시하고 국가기관에 넘기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을 억압하고 제지하기까지 독재에 찬성표를 던져주고 있던 꼴이다. 결국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관과 기업들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또 에서는 알고리즘의 편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기계는 기존의 방대한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며 알고리즘을 만들어낸다. 즉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므로 데이터에는 ‘과거’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 데이터를 수학적으로만 학습할 뿐 윤리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편향성과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그에 대한 예시로 한 거울 실험을 통해 AI의 얼굴 인식은 백인 남성에게 가장 맞춤화 되어있고 그 이후 백인 여자, 유색인종(밝은 순서대로)라고 밝혔다. 왜냐 대부분의 개발자 그리고 지배층이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데이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두렵다. 우리는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편향성이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기계가 악당이 되는 것은 로봇이 독자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기계를 조종하는 인간의 문제이다” 라는 말들이 나온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정확히 어떤 절차로 시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근데 과연 이 상황에서 이것을 기술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데이터에 의한 독재로 우리를 이끄는 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경각심을 가지고 바꾸지 않는다면 모두 알고리즘에 지배되고 빅브라더가 현실화되는 (근데 그 빅브라더가 기계인 것, 기계에게 잠식당한다)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사회로 가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에 나오는 얼굴 인식 감시에 대응하고 있는 시민단체 ‘빅브라더 워치’의 팀원들은 이러한 무단침해에 맞서고 우리의 삶을,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에서는 ‘감시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큰 IT기업(애플,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일했던 여러 사람들이 나와 소셜 미디어의 구조와 소셜 미디어가 불러오는 위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진행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구조와는 다르게 소셜 미디어의 실제 고객은 광고주이며 상품은 우리의 관심이다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개인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띄워 소셜 미디어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자발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게 하여 사용자를 늘리는데에 힘을 쏟는다. 친구의 초대를 유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해서 미디어를 접하게하여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고방식, 정체성, 행동을 바꾸고 광고로 유도한다. 즉 알고리즘이 사람의 정신을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IT 회사들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개개인을 예측하고 조종하여 광고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 고민한다. 결국 사람들은 진실을 분간할 수 없게 되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위험성이자 무서운 점은 너무나 무서운 설득 도구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를 움직일 수도 끔찍한 일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예시로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이 제시됨). 우리는 자율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미디어에게 농락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세 작품을 보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교수님이 이전 강의에서도 언급했듯이 부당한 정부나 사회의 상황에 있어서 나쁜 사람은 그 사회를 만든 소수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 상황의 부당함과 부패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정당한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과 반항을 하지 않고 순응해버리고 마는 개인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대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저 기술의 발전이라고 믿으며 스스로의 삶을 잠식시키고 있던 무지한 우리가 원망스럽게 느껴졌고 지금부터라도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우리와 굉장히 가깝지만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중국, 평소 중국이 기술 발전을 공산주의 감시체제에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굉장히 열악한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이다. 극 중에 나온 신용점수를 매기는 모습도 마치 인간사회보다는 물건 혹은 동물에게 등급과 점수를 부여하는 것 같아 보였다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차이가 있다면 이러한 체제가 투명하느냐 불투명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또 요즘 ‘SNS 디톡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SNS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나 역시 페이스북을 지운지 오래이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가짜뉴스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계속해서 자극적인 이야기, 사진들 또는 편을 가르고 정치 이야기로 싸우는 등 너무 원초적이고 수준 낮은 모습들이 많이 보여서 조금이라도 생각에 영향을 미칠까 무서웠던 점이 가장 컸던 것 같다.에서 소셜 미디어 사용 중 새로고침을 하는 부분을 슬롯머신에 비유하는 것이 참신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속의 알림, 채팅과 같은 기술과 가능들이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를 중독시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굉장히 허무하고 기업들의 손안에서 놀아난 기분이었다.물론 소셜 미디어 자체를 없애고 긍정적인 면모를 모조리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고 소셜 미디어를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같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요즘 애플은 사용자의 허가를 받아야만 사용자를 추적하거나 광고 식별자에 접근 할 수 있는 개인정보 보호 정채을 펼치고 있다. 이런걸 보면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희망이 생긴다. 모든 기업들이 애플같은 정책을 펼쳐준다면 좋겠지만 광고가 수익의 기반이 되는 수많은 IT기업들은 쉽사리 그러지 못할 것이다.내가 생각한 바뀌어야 할 문제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기업이나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접근 문제, 둘째 소셜 미디어 중독. 이를 해결할 나름 현실적인 방안을 고심해봤다.정보에 대한 접근문제는 투명경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의 정보가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본인이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잘 지켜지고 있는지 있는 도덕적인 목적(예를 들어 범인을 잡는데 사용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런 경우엔 목적성을 정확하게 밝힌 후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연구를 하고 그 연구과정에서 사람들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면 동의를 얻은 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소셜 미디어 중독은 개인적으로 심각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개인의 ‘선택(자율)’과 ‘생각(가치관)’이 가능한 상태에서 올바르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소셜 미디어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어릴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노출되어와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생각을 갖추지 못한 채 중독된다는 것이다. 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셜 미디어에 쏟음으로서 본인의 존재가 미디어에 잠식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 차원에서 유치원,초등학교에서부터 중독에 대한 위험성 및 자기 절제에 대한 꾸준한 교육을 실천하고,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돈을 지원해 준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또 정부는 IT 기업에게 소셜 미디어 사용 시 스스로 설정해놓은 시간이 경과되면 알림 메시지를 띄워주고 그 이후부터는 새로고침 시 실행되는 알고리즘과 광고를 차단하는 기능을 권고하고 이를 시행할 시 수익창출이 가능한 다른 기회를 제공해주는 등의 정책을 펼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옛날에 담배에 대한 경각심이 지금보다 덜했던 시절처럼, 소셜 미디어의 중독도 개선되고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소셜 미디어 및 데이터 기술의 발전 등이 아예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좋은 점이 많다. 다만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또 정당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네트워크 환경 속에 살아가면서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외면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겠다.
제노비스 사건을 통한 도덕적 민감성에 관한 토론공개된 장소에 여러명이 위험에 빠진 사람을 목격했음에도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은 제노비스 사건뿐 아니라 여러사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방관자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개인적 책임감이 결여될 때 나타나는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내가 아니더라도 남이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책임의 분산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여기에서 개인적 책임감이 결여되는 이유 즉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를 덕윤리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방관자 38명에게는 “중용”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용이란 덕윤리에서 중시되는 덕의 특성으로 어떤 상황에 있어서 마땅한 때에 마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비겁함과 무모함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대적인 중간점에서 이상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위의 사건에서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지나쳐 ‘비겁함’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여서 중용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죠.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적절한 행동을실천할 수 있는 “중용”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식견있는 사람의 직관력이 필요합니다. 또 이를 지켜나가 습관화 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지혜” 또한 필요합니다. 이렇게 중용을 통해 도덕적 민감성을 기르게 된다면 성품의 탁월성을 얻을 수 있고, 결국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정리하자면, 방관자들은 중용의 부족으로 도덕적 행동을 취하지 못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와 직관력을 통해 중용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양날의 검 (일자리, 빈부격차 문제에 관해)”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IoT, 무인 운송 수단 등의 기술 혁신을 주위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제 4차 산업 혁명 속에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제4차 산업 혁명은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 혁명이다. 이 혁명이 핵심적으로 혁신을 하고 있는 7개의 분야는 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이 있다. 오늘 나는 이 중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AI라고도 불리우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능력,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다. 즉 동물이 갖고 있는 지능과는 다르게 지능을 갖고 있는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인 것이다. 이렇게 혁신적이고 똑똑한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발을 뻗어나가고 있다. 일부 호텔에서는 인간이 아닌 로봇을 카운터에 두고 관리를 하며, AI 상담원들이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또 대표적인 예시로는 2016년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바둑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어 인공지능이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지 증명해주었다.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 삶에 많은 이점을 가져다 주고 있다. 사람은 쉽게 하기 힘든 일들을 여러 데이터가 입력되어 있는 인공지능이 쉽게 해결 해주어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소득이 증가하는 이점이 있다. 또 인공지능이 일부 일을 도맡아 해주게 되면서 인간의 여가시간이 증가해 삶의 여유가 생긴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항상 이점이 있으면 문제점도 있기 마련이다. 본 리포트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점 중 인공지능의 만연화로 인해 줄어들게 될 일자리의 문제와 빈부격차의 발생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다루어보고 대처 방안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초지능’의 존재라면 그로 인해 인간의 본질적 요소인 노동의 의미와 형태가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 포럼에서는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으로 인해 2020년까지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개의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는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또 시장전문 조사기관 Gartner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면 10년 안에 전체 직업의 3분의 1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인공지능의 대체가 가능한 사무, 관리, 운전직이 있으며 새로 생길 일자리는 컴퓨터 빅데이터 AI분야이다.이는 사실 컴퓨터 보급으로 인해 단순 사무직 종사자나 톨게이트의 검표원들, 대형마트의 캐셔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일본에서는 사무, 관리직 일자리 감소 사례가 구체적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중견 보험사인 후쿠코 생명보험은 2017년부터 문맥과 단어를 해독하는 인공지능인 IBM의 AI ‘왓슨’을 사용해서 진단서 읽기 등의 사무작업을 왓슨이 대체하게 되면서 물론 업무적 효율성은 증가했을지 모르지만 단순 사무직 부서 인원이 3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렇게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되고 일자리의 감소가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노동시간은 급격히 줄어들것이고 줄어든 노동시간으로 인해 노동자와 자본가 계층 사이의 빈부 격차는 심각해질 것이다. 미래에는 아마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한 일자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과 혹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파악하고 기계의 능력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인간 이렇게 크게 두 부류가 경제활동을 지배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부류에 속하는 인간은 대다수가 아닌 소수소수일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구할 수도, 일을 하지도 않는 잉여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간층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격차가 계속 심화되기만 하는 전례없는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이렇게 노동환경이 변화하고 그로 인한 실업과 끝도 없는 격차에 대해 학자들이 내놓은 대안은 ‘자동화세’이다. 이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사용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기업은 무조건 일정한 세금을 내놓아서 그것을 실업자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세’의 개념인 것이다.교수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을 하지 않고 세금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공지능에게 뺏긴 일자리의 대가로 받는 세금으로 아무 경제활동도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면 행복한 삶일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삶은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이 일을 하는데에는 생계 유지의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능력이 사회에 일부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데에서 오는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생계 유지가 가능한 세금을 받더라도 후자가 충족되지 못하니 불행하다고 느낄 것 같다.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글을 작성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미래의 기술을 너무 과소평가한채 비관적인 관점을 내세우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앞으로 많은 신산업이 발생할 수도 있고 현재에는 없는 직업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분명 인간의 힘을 필요로 할텐데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미래 일자리 중 60%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 마이클 글래스먼은 미래 인공지능이 현재보다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하겠지만, 실제로 사라지는 직업의 수는 과장됐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인공지능으로 일어나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의견은 다양합니다. 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동향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아직 진행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급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제4차 산업혁명으로 사라지거나 대체된 일자는 새로운 분야에서 재창출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렇다고 인공지능과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 맘을 놓고 지금과 같은 노력만 기울인다면 미래에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며 자신의 창의력을 발달시키고 발휘하며 살아나간다면 충분히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그녀(Her)을 보고 느낀 인공지능과의 사랑과 사랑의 이유에 관하여”우리는 어릴 적부터 영화나 만화 등에서 인공지능기술이 우리의 일생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뤄왔다. 초등학교때 미래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던 것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생활을 함께하는 로봇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IT기술이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는 현재,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많은 집에서 인공지능기계를 통하여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집 안 기기들을 간단히 조종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양한 업계에서는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로봇의 상용화도 실시되고 있다. 또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덕분에 늦어도 2050년에는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로봇이 만들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이렇게 로봇은 우리의 생활속에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만을 주로 맺어오고 있던 우리에게 인간 대 인공지능의 관계는 다소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그녀(Her)”이다.영화 “그녀(Her)”에서는 학습형 인공지능 사만다와 주인공 테어도르의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의 사만다는 단순한 음성 인식을 통해 편리를 제공해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우며 방대한 정보량으로 스마트하며 섬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사만다는 실제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641명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살펴보며 학습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성장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만다는 아내와 1년 넘게 별거하며 이혼을 준비하고 있어 외로웠던 테어도르에게는 일상의 즐거움이자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나는 영화를 보고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기계와의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실체도 없고 생각도 감정도 없는 기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취향과 상황,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에게 맞춰진 대화를 하며 시스템을 제공해 주니 사랑에 빠질 순 있겠다 생각했다. 사람과 하는 사랑은 개개인의 성격과 배경이 모두 다르므로 갈등이 발생하지만 기계가 내 마음을 모조리 이해해주고 읽어준다면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으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사랑은 ‘한정적 사랑’에 불과할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으며 실체가 없으니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순탄치 않을 것이다. 또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나만을 위한 인공지능이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인공뿐 아니라 보는 사람 누구에게도 실망감을 안겨준 장면이었다. 분명 방대한 정보량을 바탕으로 한 맞춤형 인공지능은 잠깐의 외로움을 채워줄 대체재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과의 사랑만이 소통을 통한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배운 사랑의 관점을 적용하여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랑의 이유는 De dicto적이라고 생각한다. De dicto적 사랑이란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의 조건 때문에 사랑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역설적으로 사랑의 이유가 사라지면 사랑할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다. 되려 대체불가능성인, 오직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De re적 사랑은 너무 이상적인 실존하지 않는 이론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느꼈던 사랑을 떠올려 봤을 때, 무언가 이유없이 사랑에 빠진 적은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성장배경, 외모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심리학자들도 말했듯이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배경, 비슷한 지능 수준, 비슷한 수준의 외모, 또 비슷한 종교적 가치를 지닌 상대에게 더 쉽게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이유 또한 대부분의 사랑은 De dicto적 사랑임의 증거라고 본다. 다만 사랑에 빠지다 보면 De re적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는 있다고 본다. De dicto적 사랑에서 시작해서 깊게 사랑에 빠지면 절대적으로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De re적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De dicto에서 시작한 사랑이므로 완전한 De re적 사랑의 실존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영화 속 주인공 테어도르 역시 지극히 De dicto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테어도르는 자신의 공허하고 힘든 일상을 알아주고 채워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조건에 걸맞은 사만다의 존재가 나타나자 사랑을 느낀 것이다. 테어도르는 사만다가 아닌 다른 인공지능이 나타났더라도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줬다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혹은 테어도르가 외롭지 않았거나 사만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정보 제공용 로봇으로만 기능했더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테어도르의 사랑을 보며 ‘에리히 프롬’의 말을 떠오렸다. “사랑은 사랑 받는 것 또는 사랑할 대상의 문제가 아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이다.” 이 말처럼 테어도르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기술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전 부인인 캐서린과의 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했기에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의 사랑에 있어서 캐서린이든 사만다든 테어도르의 사랑의 기술을 먼저 익혀야 다시 제대로 된 사랑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다.영화를 보며 인간 대 인간의 관계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정보화시대의 인간 대 기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 이는 영화 속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미래에 있을 다음 세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의 이유는 인간의 본질이 타인과의 관계를 항상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존재이며, 이 때문에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가속화 될 기계화 시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진정으로 교류하는 대상이 뛰어난 정보력과 학습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아닌 온기와 마음이 느껴지는 인간과의 관계가 더 많은 따뜻한 세상이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