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는 3개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2부는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로 이루어진다.1부에서는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고 하며 우리도 차별을 알아채지 못하면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어 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차별감수성의 사각지대에 있으며 차별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없는 세상에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차별을 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특권들을 발견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버스 좌석에 앉는 것 같은 경우에도 특권이라고 생각 들지 않지만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좌석이 따로 없기 때문에 타지 못하는 점도 우리의 특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살펴보면 우리도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2부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하게 차별이 정당화 되고 차별화되는 사례들이 다뤄진다. 특히 우리가 생각 없이 보는 코미디에서 흑인 분장이나 바보 분장 한 것을 보면서 재미있게 웃으며 본 것이 있다. 이 또한 인종차별이고 인지차별인데도 아무런 의식 없이 보며 즐긴 것이 누구에게는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장애인 비하라는 말에 왜 웃자고 하는 말에 덤비냐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학급수준을 성적별로 나누어 수준별로 수업하고, 노키즈존이라는 가게에 대해서도 되물어 보면서 나아가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3부에서는 차별에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일어나는 사람들과 그것을 대응하는 우리들에 대해 말한다. 차별을 하고서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몰랐고, 네가 예민하다고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해주면서,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닌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우리는 제한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생각이 그 시야의 갇힌다. 차별을 받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예민하고 불평이 많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게 된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지, 나의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지 성찰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평가나 측정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오류 없이 정확하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생각할 때 한 가지만 보고 그 결과로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어빙 고프면에 따르면 부정적인 고정관념인 낙인이 내면화되는 형상에 주목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며,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특정한 방식의 시험으로 사람이 수십 년에 어떻게 될지 미래까지 예측하는 차별도 존재한다. 대학이 주는 교육의 질, 인맥, 기회 등이 있지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대학의 간판이고 그 간판이 개인의 능력도 판단하고 실제로 능력과 기회를 만든다. 책에서는 고정관념이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지만 긍정적인 작용도 한다며, 소위 명문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그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고 이것이 실제로 현실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런 고정관념은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명문대학 학생들은 그들에게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러한 능력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지방대생,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얻으며 그것이 당연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잘못된 현상이라고 비판하고 싶다.또한 우리가 자주 쓰는 ‘다문화아동’이라는 단어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다양한 문화의 상호존중과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인 다문화주의에서 온 것인데,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가 진짜 한국인이 아닌 우리와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런 사소한 것도 모르는 우리는 다문화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이다. 이 권력을 잘 쓰면 매우 의미 있으며 시민이 권력을 획득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부하가 상사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권력관계는 기존과 달라진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싫다는 표현은 다르다. 나는 이 들을 보면서 저자의 생각에 비판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이런 발언 또한 저자도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자 또한 알지 못하게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표현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자제해야 할 표현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사람들에게는 각자 정의의 범위가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미치는 영역은 한계선이 있고 어떠한 경계를 중심으로 정의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적으로 생각되거나 비인간화되고 잔인하게 대해도 된다고 느낀다. 심리적 작용을 통해 사람들은 불평등의 상황을 평등하다고 여기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상황을 불평등하다고 느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우리 모두에게는 표현하는데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다수와 소수의 자유는 같지 않다고 본다. 소수는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필요하지 않은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주의하지만 다수는 소수의 의견에 거침없이 공격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사실상 침묵을 강요하기도 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삶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지위의 유동성에 따라 개인의 만족감이 달라진다. 불평등이 있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안심하지만 그 편안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생에 걸쳐 쏟는 수고로움은 엄청나다.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흔한 말처럼, 열등한 지위에서 겪어야 하는 모욕과 무시를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이 따라올 것이라 예상되는 성취들을 최소한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이다.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가야 정말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지도 알 수 없고 결국 일정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이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학식과 경험이 많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