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를 읽고-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 대하여목차서론본론결론참고자료서론‘유형지에서’의 유형지를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군대가 많이 떠올랐다. 유형지의 각종 등장 인물과 도구는 군대의 것들을 하나하나 비유하기에 적절한 부분들이 많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D.P.’가 이슈가 되었다. ‘D.P.’를 본 수많은 군필자들은 드라마 속의 내용에 공감하였고, 여전히 군대 내에서 부조리가 허다하다고 이야기했다.‘D.P’속 가혹 행위와 부조리가 화제가 되자 국방부는 지금까지 국방부 및 각 군에서는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명을 하자마자 다음 날에 해군 일병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언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바뀌고 있긴 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따라서 이 레포트에서는 ‘유형지에서’의 어떤 부분에서 군대와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유형지에서’를 통해서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본론‘적어도 여기 헐벗은 산비탈에 둘러싸인 모래투성이의 깊고 외딴 계곡에는 장교와 답사 연구자 말고는, 유죄 판결을 받은 그 병사와 사병 한 명밖에 없었다.’ – 161p처형 기계가 있던 유형지의 ‘그’ 공간은 바깥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폐쇄적인 곳, 즉 군대와 같다고 생각했다. 최근에야 일과 이후 핸드폰 사용이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회와의 소통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부조리는 바깥으로 극히 일부분만 새어 나가고 있고, 사실 크게 관심을 받지도 못한다. ‘유형지에서’의 처형 기계도 마찬가지다. 답사 탐험가는 유형지에서 처형 기계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장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알게 된 이후에도 그저 잠시 흥미를 가졌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그래서 처형 기계가 군대에서의 부조리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또한 장교는 군대 내의 간부들을, 장교의 말에 그저 따라야만 하는 사병과 죄수는 현재 군대에서 복무 중인 군인들을 떠올리게 했다.‘답사 연구자는 항명과 상관 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 병사에 대한 처형을 집행하는 현장에 참석하라고 그에게 요구한 사령관의 초대에 단지 예의상 응한 것 같았다.’ – 161p‘내가 어떤 의견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건 다른 어느 누구의 견해와 다를 바 없는 한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 182p‘이곳의 상황이 이러하니 그런 유혹을 크게 받을 만했다. 재판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고 사형 집행이 비인간적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176p마지막으로 답사 연구자는 그가 처형 현장에 참여해달라는 초대를 받아 유형지를 방문한 손님이었던 것처럼 군대 밖의 일반인을 떠올리게 했다. 군대 밖의 일반인도 답사 연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사 연구자는 유형지에서 벌어지는 일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또 끼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모든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이 잠시 화제가 되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진다. 그들도 그러한 부조리가 잘못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결론이렇게 부조리의 발생으로 군대 내에서 사고가 나고 그 사고가 화제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드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일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반복되고 있는 문제는 군대 내에서 제대로 처리조차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방관하는 군대 밖의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결국 처형 기계는 붕괴되었고, 장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요즘 군대도 어쨌든 부조리는 예전에 비하면 덜 하고, 부조리를 보고만 있는 간부들도 덜 하다.‘두 사람은 지금이라도 보트에 뛰어오를 수 있었겠지만, 답사 연구자가 뱃바닥에 있던 매듭이 지어진 묵직한 닻줄을 집어 들고 위협하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보트에 뛰어오를 수 없었다.’ – 196p그러나 책의 마지막, 죄수와 사병은 유형지를 떠나고 싶어했지만 답사 연구자는 그들을 버리고 떠난다. 그렇게 그들을 버리고 떠난 답사 연구자가 세상에 그러한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릴까? 또한 붕괴된 처형 기계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질까? 나는 결국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뀌어 가고 있다는 병영 부조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이슈가 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해결하러 나서지 않으며 그에 대한 이슈는 항상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리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말이다.이미 문제가 많은 상태인 내부에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들 정말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는다. 따라서 외부에서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 그대로인 것이다. 처형 기계를 영원히 멈출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답사 연구자다.참고자료 Hyperlink "https://www.korea.kr/news/policyBriefingView.do?newsId=156469594%20" https://www.korea.kr/news/policyBriefingView.do?newsId=156469594 –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관한 국방부 반응‘유형지에서’ – 프란츠 카프카 (열린책들, 2009, p161-196)
역사란 무엇인가? 레포트첫 번째 주제는 역사는 어떤 의미이며 사료란 무엇일까? 와 역사가는 있는 그대로 역사를 인식할 수 있을까? 이다. 초기의 역사라는 단어는 탐구하여 알아낸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16세기에 이르러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라는 단어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과거를 탐구하여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사료란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나 증거를 제공해 주는 모든 것이다. 사료는 형태에 따라 문자 사료와 비문자 사료로 나뉘고, 성격에 따라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1차 사료가 2차 사료보다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차 사료의 신빙성에 대해 세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기록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이나 사건을 편향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순히 사실을 편향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기억의 비정확성으로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자료도 역사적인 사실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편향성이나 왜곡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가는 철저한 사료 비판을 통해 사료의 가치를 평가해 내야 한다. 사료 비판은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나누어진다. 사료 비판을 철저히 하면 할수록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가가 사료를 아무리 철저히 분석한다고 해도 100% 진실을 밝혀낼 수는 없다. 역사가가 사료를 인식하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사료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역사가가 갖고 있는 제약은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역사가가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역사가가 편견에 사로잡혀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식의 한계로 역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와 역사는 발견되는 것인가, 발명되는 것인가? 이다.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말하고, 사실(史實)은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事實)을 말한다.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기준으로 나눈다.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이 끼친 영향에 따라 등급을 매길 수 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중요도는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사실에 역사가의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일상적인 사실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므로 역사로 기록될 수 없다. 이렇게 역사가의 서술은 사회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이 사회의 평가 작업이 결국은 역사적 사실의 등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글쓴이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정말 그럴 것 같다. 과거는 실재하지 않고, 사료의 작성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기억의 한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역사가도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차피 모두가 편견과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니 마음대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역사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새로운 문서나 사실이 발견되기도 하고 기존에 알려져 있던 문서를 새로 읽으면서 밝혀지는 사실도 많다.특히 고고학, 고문서학, 통계학과 같은 역사 보조학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가들의 관심이 바뀌고 있다. 19세기까지 역사가들은 정치에,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경제에, 아날학파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사회경제사, 심성사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1970년대 이후는 문화사라는 새로운 경향이 주도하고 있다.마지막 주제는 당파성은 역사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와 역사는 과학인가, 문학인가? 이다.역사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현재의 관심과 가치관을 가지고 과거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다시 말해 모든 역사가는 자신의 프리즘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는 그 프리즘을 통과해야 역사가 된다. 따라서 과거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며, 새롭게 가치가 매겨진다. 역사가가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말로 한다면 역사는 특정한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의 소수나 피지배자들에게는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누구든지 세상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문학의 영역에 속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지식을 시, 역사, 철학, 신학의 네 분야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과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의 성격이 과학적 성격과 관념적 성격 두 가지가 섞여 있다고 말했다. 콩트로 대표되는 실증주의자들은 인간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사실을 확인하고 수학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법칙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랑케는 문헌 비판, 사료 비판을 역사학의 기본으로 확립하였다. 랑케는 관찰 대상인 과거가 관찰자인 역사가와는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역사가의 주관을 삽입하지 않고 과거의 사실이 스스로 빛을 발하도록 했다. 따라서 랑케에게 있어서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었다. 뷰리는 한 강연에서 역사학은 과학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인식론 레포트황설중 작가의 인식론에서는 인식론을 회의주의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가장 먼저 상식적 실재론에 대해서 설명한다. 상식적 실재론은 소박실재론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물리적 대상이 우리 밖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서 우리가 오감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견해를 말한다. 피론주의자들은 우리가 서로 상이한 감각 경험 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감각의 상이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감각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데카르트에 의하면 감각의 확실성조차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권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것을 의심할 수 있다.의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데카르트는 이렇게 의심하는 동안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마침내 데카르트가 찾아냈다고 선언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인식론에서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다. 20세기 철학의 혁명가이자 반데카르트주의자였던 니체에 의하면 모든 사고 활동은 사고하는 자를 필요로 한다고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언어 문법이 그런 식으로 표현하도록 구조화된 탓이라고 주장한다. 상식적 실재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는 사과를 있는 그대로 직접 지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사과와 접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사유에 있어서나 추리에 있어서나 그 자신의 관념 이외에는 다른 아무런 직접적인 대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이 관념만을 숙고하며 숙고할 수 있다. 물리적 대상은 우리 마음에 직접 나타나지 않고, 우리의 관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 바깥의 물리적 대상과 우리 마음 사이에 관념을 설정함으로써 상식적 실재론의 난점을 보완하려는 입장이 대표 실재론이다. 대표 실재론에 의하면, 물리적 대상이 지각되는 방식은 물리적 대상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각하는 관찰자와도 관련된다. 그렇다면 어떤 관념이 외부의 물리적 대상에 의해 야기되며, 어떤 관념이 우리의 감각에 의존될까? 로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일 성질과 제이 성질이라는 개념을 동원한다. 제일 성질은 어떤 물리적 대상이 지각되는 조건들에 상관없이 또 지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때에도 그 대상이 자체 내에 갖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크기, 모양, 질량 및 운동과 같은 것들이 속한다. 반면 제이 성질은 대상 자체가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단지 지각하는 어떤 사람에게 감각을 일으키는 힘으로서 대상이 소유하고 있는 성질이다. 색깔, 냄새, 맛 등을 포함한다. 제일 성질은 지각 조건과 관계없이 고정되고 불변적이며 측정 가능한 반면 제이 성질은 지각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가변적이고 측정 불가능하다. 외부 세계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감각을 통해 생긴 관념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그 이후 버클리는 관념론이라는 이론을 내놓는다.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으로 나뉘는데 주관적 관념론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는 것이란 마음과 마음속의 감각 경험(관념)들뿐이라는 것이고, 객관적 관념론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이 지각하고 있지 않더라도 무한 정신인 신에 의해 이미 지각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원래부터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표 실재론이나 관념론은 자기모순을 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흄은 철저하게 지각에 머물면서 우리들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관찰하고자 했다. 흄이 도달한 결론은 회의주의와 연결된다. 회의주의는 자연주의에 의해 극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주의는 회의주의를 이론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인식론에서 회의주의는 매우 물리치기 어려운 난적으로 등장한다. 고대 피론주의자인 아그리파에 의해 구성된 다섯 가지의 회의적 논변형식들은 첫 번째는 철학적 의견이나 믿음들의 상이성의 논변형식이고 두 번째는 독단적인 전제 설정의 논변형식, 세 번째는 무한 소급의 논변형식이며, 네 번째는 순환의 논변형식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상대성의 논변형식이다. 회의주의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 것처럼 보이면서, 회의주의에 의존하는 신앙주의가 생겨났다. 신앙주의는 참된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에 우리의 철학적 지식은 무력하기 때문에, 오로지 믿음만이 우리가 의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몽테뉴, 파스칼, 베일로 대표되는 근세 신앙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칸트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판 철학을 내세운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기 전에, 먼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우리의 고유한 인식 능력을 검사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알면 그 범위 안에서 객관적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 철학은 회의주의와 목표를 공유하는 협력자로서 만난다. 헤겔은 사변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들을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필연적인 계기들로 이해하고 파악하기 때문에, 사변에게는 타자에 맞서는 타자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변은 회의주의의 길을 통해 서로 모순되는 일면적인 개념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의미 연관 속에서 파악한다. 사변은 이렇게 회의주의와 함께 전진하면서 회의주의를 넘어선다. 아펠은 아그리파의 논증 자체가 아니라 아그리파의 논증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을 탐구하고 이 조건을 밝힘으로써 논변형식들을 물리치려 했다. 선험화용론이란 "아그리파의 논변형식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딜타이는 자연과학이 자연 현상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 반면, 정신과학은 결코 자연의 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삶의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현실성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명과 이해를 구분하면서 우리는 자연은 설명하는데 반해, 정신적 삶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가다머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항상 무언가를 암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무로부터 갑자기 그것에 대한 이해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해의 배경으로서 이미 항상 암암리에 선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책의 끝부분에서 ‘우리 삶에서 인식론이 왜 필요한가?’라며 인식론 자체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프래그머티스트인 로티의 주장에 글쓴이는 인식론의 제한적인 효용성이나 전면적인 무용성을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바로 인식론적 물음 자체에 대한 숙고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삶의 개선을 외치는 것은 우리를 미혹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세계의 앎에 대한 본성과 한계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