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임스 매디슨의 생애 개요1) 초기 생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매디슨은 초년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였 다. 혁명 전쟁 당시에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주장하며 독립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정치 활 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버지니아 주 대표로서 대륙회의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며 버지니아 주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치가로 본격 데뷔하였다.2) 미국 건국의 아버지 및 헌법의 아버지로써의 활동: 매디슨은 13개 식민 주의 독립 직후 연 합규약을 대체할 신헌법을 만들기 위해 소집된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합중국 의 건국과 연방헌법 제정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3) 연방 하원 의원: 미국 건국 이후 매디슨은 버지니아 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4선까지 재임 하였다. 매디슨은 재임 기간 동안 정치적 동료인 제퍼슨과 함께 최초의 미국 정당인 민주공화당 을 창당하였으며, 권리장전1이 연방 헌법에 반영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4) 국무장관: 제퍼슨 내각에서 5대 국무장관으로 역임하며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의 영토를 확장시켰다.5) 대통령: 제퍼슨 대통령의 후임으로 미국 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영국과 다시 갈등을 겪어 미영전쟁을 치렀다.6) 저작: 매디슨은 반연방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성된 “연방주의자 논집”과 “미국 헌법”, “권리 장전”의 저자 중 한 명으로 몹시 유명하다. 특히 “연방주의자 논집 제10번”은 현재까지도 미국 헌 법의 정치 철학과 작동 원리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다.2. 시대적 배경 및 영향받은 인물 소개1) 시대적 배경: 독립 전쟁 이후 미국 건국 과정에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연방파와 개 별 주의 독자적 권리를 지지하는 반연방파의 대립이 심화된 상태였다. 당시 연합규약은 각 주에 대해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었으므로, 주(state) 간 사무와 외교 등을 담당할 중앙정부의 필요성과 폭압적 중앙정부였던 영국으로부터..<중 략>
나는 이번 학기(21-2) 한류(Hallyu)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수강하며 한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가 공부해야 할 부문을 다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았고, 그 이유와 함께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첫번째, 한류 및 한국 대중문화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고민해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한류 문화의 포맷이 특정한 모양을 띈 채 고유성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한류 역시 타문화와 마찬가지로 문화 구성체이기에 그것의 외형, 내형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주체 역시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는 먼저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발생한 근대성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20 년대의 경우 유행가요와 유행가가 등장했고, 30 년대에 이르러서는 음반 제작 활동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식민 지배로 인해 당시 한국 대중문화는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 문화의 신파성과 민족 비운이나 비감, 운명 앞의 무력함을 담은 한국적인 새로운 문학적 특징이 더해져 한국 대중문화는 혼종성이라는 특수성을 갖게 되었다.일본으로부터 해방이후 1950 년대의 한국 대중문화는 미군정의 통치아래 미국 대중문화로부터 새로운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그러한 영향력을 더욱 촉진시키고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계기가 된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그림을 통해 자신이 뜻하는 바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의도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자 책을 쓰기 시작했고, 정보 저장 목적뿐 아니라 단순 오락을 위해서 소설과 문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표현 욕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누군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활자로부터 현장감과 생동감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그에 따라 <연극>이 등장하였고, 인간 사회 전체의 오락문화에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여러 문제점을 발견했다. 일관된 내용을 제공할 수 없었고, 공연 수행에 시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상영기와 필름이 발명 이후 연극을 스크린에서 표현하는 시도로 이어지며 <영화>가 탄생하였다. <영화>는 기존 연극이 가진 한계를 거의 상쇄함과(특히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 동시에 문화 유행이 되었고 동시에 관련 사업 투자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관객들도 본인이 원하는 시공간적 조건 하 다채로운 시청각 요소가 첨가된 연극을 스크린 속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범국가적인 인기 문화가 된 영화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기는 오락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은 앞의 과정을 통해 주류 산업이 된 영화 시장 속에서 국가 개입(스크린 쿼터제)과 영향을 파악하였단 점 그리고 현재 발생 중인 탈규제의 움직임과 우려 역시 다룸으로써 독자들이 시장의 정치적 구성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이해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설명과 도입 배경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둘째, 그러한 규제의 시장 영향을 알아봄으로써 국내 시장이 얻은 수혜를 통해 그 당위성을 증명한다. 셋째, 현재 시장에서 보이는 탈규제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을 예측하고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겠다.
I. 들어가며 만약 당신이라면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는 시대와 상황을 불문하고 국가 대부분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논쟁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익히 알려져 있듯 전자를 택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몸소 경험한 채 ‘절대 항복’을 선언했던 그들의 선택지는 자명했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이 취한 태도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미국의 질서에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꼬리가 되길 자처했다. 심지어 일본의 철저한 대미 복종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가져야만 한다. 일본은 왜 그러한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는가? 그것이 과연 옳은가? 자주 노선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없었나? 있었다면 왜 성공하지 못했나?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이 책에서 흔쾌히 찾을 수 있다. <중략>III. 본론이 책은 우리나라의 외교가 아닌 일본과 미국 간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 독자들은 다소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하지만 시각을 견지한 채로 이 책을 강독한다면 우리 역시 수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다섯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