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어 레포트1. 한국 수화 언어가 한국에서 관념적 공용어로써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수어가 한국에서 관념적 공용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화 언어와 한국어(편의상 본 레포트에서는 한글과 구어를 묶어 한국어라 지칭하겠습니다.)는 두 개의 개별 언어다.’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수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수어와 한국어는 동일한 언어라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학기에 ‘한국 수어’ 수업을 수강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어와 한국어는 같은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만이 ‘목소리’, ‘손과 비수지’로 다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어순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는 두 개의 개별 언어임에도 불구하고요. 이런 인식에서 오는 가장 큰 문제점이자 실수가 농인에게 구화를 요구하는 태도라 생각됩니다.한글을 배우는 농인은 외국어를 배우는 청인과 같다는 사실을 교수님의 말씀과 수업 시간에 시청한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선입견이 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청인은 소리를 통해 한글을 깨우치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반면 농인은 손과 비수지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문자와 수어를 통해 한글을 깨우칩니다. 구화를 사용하는 농인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말’로서의 한국어를 따로 배우게 됩니다. 청인이 말하는 법, 읽는 법을 동시에 배운다면 농인은 청인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이 한국어를 배웁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수어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때문에 특수학교에서조차 수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위치한 ‘수어 교육 대안학교’와 같은 학교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실제 농인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수어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학생들은 “선생님의 수어를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이 수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가르치는 느낌이었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현행 초등학교 교육과정상 영어를 학교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입니다. 출생 이후로 약 10년간 한국어를 습득할 시간을 가진 후, 습득한 한국어를 바탕으로 영어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대로 된 수어 교육을 받지 못한 농인 아동에게 구화를 요구하는 행위는 한국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청인 아동에게 영어를 구사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같거나, 혹은 더욱 가혹한 행위라 사료됩니다.청인과 농인은 언어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다릅니다. 청인은 언어자극을 청각적 피질로 받아들이는 반면, 농인은 언어자극을 공감각적 피질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청각장애 아동이 초기 언어지도를 위해 수어를 활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특수학교에서는 수어 관련된 교육과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우리 사회는 수적으로 청인이 우세하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주류인 농인이 주류인 청인에게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런 이유로 농인이 구화를 배운다거나, 언어치료를 받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수어와 한국어를 개별 언어로 인식하는 것이 대중화된다면, 농인이 1차로 수화를 제대로 습득한 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농인의 언어 습득력과 학습력이 자연히 높아질 것입니다.핀란드는 한국보다 농인의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20년 전부터 수어를 언어로 인정한 나라입니다. 핀란드의 농인은 정보 접근권, 문화향유권을 비롯한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어가 공용어로 인정받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언어로써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농인 기본권 보장의 토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따라서 수어는 한국어의 부수적 언어가 아니라, 개별 언어라는 대중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공용어로 지정되는 일이 필요합니다.2. 농인의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해 어떠한 사회제도가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가?본 항목의 소주제에서 ‘문화향유권’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단편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전시회에도 작품 설명이 있고, 영화도 자막이 제공되는데 과연 농인의 문화향유권에 대해 작성할 거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영화관에서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는 외국 영화뿐이며, 한국 영화는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전시회나 박물관에서는 명시된 정보 외에 추가 설명을 위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지만 농인은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청인의 입장인 저는 지금까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니 농인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청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문화향유권’하면 먼저 떠오르는 문화는 영화관람, 전시회 관람처럼 영화, 미술, 사진 등을 감상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범위에는 관광, 유적지 탐방, 문화 교육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농인의 문화향유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영화관에서는 지정 날짜, 지정 시간, 지정 영화관에서만 배리어 프리영화를 제공합니다. 농인은 영화를 선택해서 볼 권리 없이, 영화관에서 제공해 주는 영화만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시회, 박물관 및 관광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청인은 문화 관광해설사나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풍부한 배움을 얻을 수 있으나 농인에게는 몇 줄의 설명서가 전부입니다. 문화 센터에서는 다양한 문화 교육을 제공하지만, 수어 통역사가 기관마다 배치된 것이 아니라 농인은 쉽게 교육받을 수 없습니다.우리나라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에 따르면 문화향유권은 누구나 제약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은 문화생활에 일정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회제도 마련이 필요합니다.독일의 경우, 농인이 문화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화시설 홈페이지에 수어 동영상으로 이용 방법을 제공하고 있으며, 농인 방문자를 위해 ‘PDA(개인 정보 단말기)’와 같은 기기를 통해 수어 해설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경우, 농인이 도서관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농도서와 수어 영상 도서 비치, 홈페이지에 수어 동영상 제공, 직원 대상 수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로 비추어 봤을 때, 농인의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제도는 ‘문화시설 당 수어 통역사 배치. 불가 시 직원에게 기본 수어 교육 실시’라 생각합니다. 수어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농인의 문화향유는 자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제 선정 배경 및 목적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연휴로 쓰레기 배출량이 늘어나, 재활용 쓰레기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환경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히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늘어난 재활용 쓰레기가 야기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쓰레기가 남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 지속가능한 디자인 방법론 중에서도 생분해 분야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이어 이번 사례조사 소주제를 ‘생분해 분야에서의 신소재’로 선정해 현재까지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인 다양한 소재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다양한 사례를 알아봄과 동시에 표를 사용한 분석을 통해 현재 생분해 분야의 한계와 개선점을 알아보려 한다.통계 조사세계적으로 대기, 토양, 수질 오염과 환경 파괴, 오염도가 높아지며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 최근 40년간 극심한 기후변화 사례가 4배 증가하기도 했다.이미 지구는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설정한 한도에 다다르고 있으며, WMO(세계기상기구)는 온실가스 증가를 막지 않으면 지구 온도가 3.5도 이상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표2]를 보면 OECD 협약을 맺은 국가들은 변화한 기후에 따른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있지만,비OECD 국가들의 배출량은 여전히 늘고 있어, 그 총량인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You’ve came close to becoming an accessory after the fact.” 이는 영화 중의 대사는 아니지만, 루시엔 카에 대한 신문 기사가 실린 것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에서 읽을 수 있는 기사의 한 부분으로, 루시엔 카의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 중 한 명이 루시엔 카에게 했던 말이다. 중학교에서 토요일마다 진행되던 인문학 수업에서 영화를 소재로 진행되는 수업을 청강한 이후로, 영화를 볼 때는 영화의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그 외의 미장센을 분석하면서 보는 습관이 들었다. 또, 미장센을 분석하며 감상하는 편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감상하기 위해 열심히 스크린에 집중하다 보니 위 기사의 내용을 읽게 되었다. 영화를 감상할 당시에는 이 내용 외에는 읽을 시간이 부족해 앞뒤 문맥상 왜, 어쩌다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이후에 기사의 앞, 뒤 내용을 찾아보았는데, 앞 내용은 루시엔의 변호사가 법원에 루시엔 카가 할 말이 없다고 전한 것이었고, 뒤 내용은 잭 케루악에 관한 이야기여서 결국 영화 내용을 토대로 검사가 루시엔 카에게 저 말을 한 이유를 유추해보았는데, 루시엔 카가 데이비드 캐머러의 액세서리가 될 뻔했다, 혹은 자신이 원하는 일,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는 남자들의 액세서리가 될 뻔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남자들이 대가를 치르고, 루시엔을 취하는 식으로. 얼핏 보면 남자들이 루시엔의 노예가 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이 기사의 한 부분을 읽고, 어디선가 읽었던, 어느 남자가 자신의 형제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외적으로 뛰어난 아내를 얻고, 그 아내는 자신이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한 글이 떠올랐다.아직 살아온 세월이 짧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 외의 다른 시대는 살아보지 못해, 이전에는 어떠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말과 현재 사회적 문제점들, 분위기를 통해 유추해 보자면,때보다 심각한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외모가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남에게 보여지는 직업을 가진’ 유명인이나 연예인, 모델은 물론이고 일반인까지도 외모 관리에 필사적이다. 통계청에 올라와 있는 ‘성형수술 경험 및 목적과 미용목적으로 성형수술을 한 이유’라는 제목의 통계표를 보면, 2017년에는 성형수술을 한 만 15~18세의 사람들의 성형수술 목적은 5.5 퍼센트가 의료였으며, 94.5 퍼센트가 미용이었다. 만 19~29세의 사람들은 13.6 퍼센트가 의료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시행했으며, 86.4 퍼센트가 미용 목적이었다. 만 30~39세의 사람들은 9.3 퍼센트가 의료 목적이었으며, 나머지 86.4 퍼센트가 미용 목적이었다. 2018년에 성형수술을 한 만 15~18세의 사람들의 성형수술 목적은 0.0 퍼센트가 의료였으며, 100.0 퍼센트가 미용이었다. 만 19~29세의 사람들은 0.5 퍼센트가 의료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시행했으며, 99.5%가 미용 목적이었다. 만 30~39세의 사람들은 4.0 퍼센트가 의료 목적이었으며, 나머지 96.0 퍼센트가 미용 목적이었다. 비록 두 해에 걸친 통계자료 밖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이 통계표를 토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외모를 가꾸는 것일까?흔히들 본인을 왜 꾸미냐는 말에 ‘자기만족을 위해서’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루시엔 카의 사례를 보면,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일지 오히려 되묻고 싶어진다. 루시엔 카는 아름다운 외관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그것이 범죄로까지 이어졌다. 다시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는 답변으로 돌아가 보자. 위와 같은 답변을 들었을 때 흔히들 반문하는 말은, ‘그렇다면 무인도에 홀로 조난을 당해도 화장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도 이에 대해 ‘당연하다. 무인도에 가서도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는 보니, 무인도에 홀로 있는 것과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은 ‘혼자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인데, 혼자 집에 있을 때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샤워를 한다거나, 양치, 세수 등의 기본적인 그루밍은 하지만, 화장과 같은 치장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집에서 원피스를 입거나,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도 없다. 이 점들을 함께 고려하며 생각해보면, 자신을 꾸미는 행위는 결국,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임이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외모적 콤플렉스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외모적 콤플렉스도 대부분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서, 혹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답해주고 싶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또다시 무인도를 가정해보자. 무인도에서 살고 있는 신장 130cm의 A 씨는 평생 무인도에서 살며,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작은 키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A 씨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길 가능성이 있게 된다.외모를 중시하는 현시대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 자신은 외모를 많이 본다고 하면 비난을 받는다. 다들 내면보다 외면을 중시하는 세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스펙, 성격, 나이 등 모든 것이 똑같고, 외면만 다른 사람이 있다면 둘 중에서 외면이 더 나은 사람을 고르는 것이나 첫 만남에서 상대가 아름다운 외면을 가지고 있다면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적 분위기상으로도 그렇고, 유전적으로도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개체에게 끌리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외모에 집착하고, 타인의 외모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너는 코만 좀 더 높으면 정말 예쁠 많을 텐데’, ‘너는 비율만 좋았어도 완벽할 텐데’와 같은 말을 한 번 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듣게 되면, ‘정말 그런가? 이것이 문제가 되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향신문에서 2018년 9월 19일에서 22일에 남자 65명, 여자 36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들 중 62.7 퍼센트는 최근 한 달 동안 외모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이나 외모를 비난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1회 이상 들은 비중은 16.4 퍼센트였으며, 5회 이상도 17.6 퍼센트로 적지 않았다. 외모를 지적하는 발언을 들은 응답자들의 81 퍼센트가 불쾌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으며, 28.2 퍼센트는 이로 인해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던, 그렇지 않던 이런 발언들로 통해 우리 사회는 외모에 집착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을 낳게 된다.외면을 중시하는 세태를 사회의 잘못이라거나,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특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시발점을 특정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도 먼저 나서서 ‘이 사태를 바로잡아보자’는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실행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실 개인의 의식적 차원에서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것, 외관만 보고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개선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외모지상주의가 문제인 것은 알지만,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피해들과 그에 따른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향신문에서 실시했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외모지상주의를 어디서 접했냐는 질문 (복수 응답 가능)에 대중매체에서 접했다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접했다는 응답자는 75.1 퍼센트였다. SNS가 63.4 퍼센트, 언론 매체가 44.8 퍼센트였다. 위 응답자들 중 46.2 퍼센트가 스트레스 증가, 대인기피 등 정신건강 악화를 겪었다. 30 퍼센트는 성격 변화를 겪었으며, 21.4 퍼센트는 식이 장애 등 신체 건강 악화를 경험했고, 9.2 퍼센트는 소비 증가 등 경제적 피해를, 5.6 퍼센트는 과대, 허위광고에 따른 사기 피해를 겪었으며, 성형, 시술 부작용이 3.3 퍼센트로 뒤따랐다. 이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사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신체적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다. 더 이상 이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상황이 아닌 것이다.루시엔 카의 사례와 현재 사회의 외모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루시엔 카의 사례는 실제 범죄 사건이 일어났고, 현재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면에서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현재 외모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겪은 사람들이 제2의, 제3의 피해자를 계속해서 낳을 수 있고, 자신에게 이런 피해를 심어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예를 들면 그로 인한 외모 평가를 (“예쁘다”라고 했다 해서 그것이 듣는 사람에게도 칭찬으로 들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예쁘다”라는 말도 외모 평가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분 나쁠 수 있다.) 듣거나, 성희롱적 발언을 듣는다거나, 스토킹 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례 등)도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적지 않은, 아니, 많은 수의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루시엔 카와 현재 사회 문제점의 형상은 다르게 나타날지라도, 모두 그 출발점은 ‘외면’으로, 같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루시엔 카도, 현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외모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재 사회 사람들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으며, 개인의 인식 변화로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외모로 인한 더 많은 피해자들을 낳기 전에 .
인터랙티브 디자인 보고서인쇄물 포스터와 웹 포스터의 차이 및인터랙션이 더해졌을 때 웹 포스터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2019212060 시각디자인학과 강수진포스터는 일반적으로 벽이나 수직면에 부착하기 위해 고안된?종이?출력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포스터는 문자적 요소와?그래픽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지만, 순수하게 문자나 그래픽으로만 구성할 수도 있다. 포스터는 관심 유발과 정보 전달의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포스터는 여러 용도로 쓰이는데,?흔히 홍보의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예술품의 복제나, 특정 주제에 대한 교육 목적으로도 쓰인다. 넓게는 전단지도 포스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대 이집트에서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려는 목적의 전단을 포스터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포스터는 이후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현재 포스터의 형태로 발전했다. 1480년 즈음, 목판인쇄에 의한 최초의 포스터 중 하나가 영국의 W. 캑스턴에 의해 제작되었다. 르네상스를 거쳐 16세기에는 상업의 흥성과 함께 활판인쇄의 제품 포스터가 출현, 17~18세기에 걸쳐 번성했다. 그러나 포스터가 광고매체로서 근대적 기능을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의 산업혁명 및 이와 더불어 인쇄기술이 발달한 19세기 이후부터이다. 1800년 독일의 A. 제네펠더에 의해 개발된 석판 인쇄술로 색채 복사가 가능하게 되었고, 영국에서는 인쇄산업의 혁신으로 활판술, 다색인쇄술이 크게 발달했다. 파리에서는 근대 포스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J. 세레가 자신의 공방에서 석판인쇄 포스터를 찍기 시작했고, 당대 일류 화가들이 포스터 제작에 참여해 파리 시민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이들 포스터의 주제는 주로 카바레, 서커스 등의 광고와 상품, 서적 광고 등으로 대담한 색채 표현, 뛰어난 데생, 일본판화의 영향에 기인한 단순하고 신선한 구도 등으로 ‘포스터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한편, 영국에서도 포스터 디자인의 개화기를 맞아 베이거스타프 형제, D. 하디, 비어즐리 등의 작가들이 활약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포스터는 바우하우스의 영향 아래 레터링과 레이아웃 등의 근대화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근대 포스터가 선전매체로서의 구실을 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모병, 방첩의 내용을 담은 포스터는 그 위력과 중요성이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전후 상업 선전 분야에 널리 이용되었다. 포스터가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화가의 부업 성격에서 벗어나 전문 디자이너의 손으로 넘어갔다.전통적인 포스터가 인쇄물 포스터라면, 웹 포스터는 현대적 의미의 포스터라 볼 수 있다. 인터넷, IT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현대에 와서 자리 잡게 된 포스터의 형식이니 말이다. 웹 포스터는 용어 그대로 ‘웹용 포스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인쇄물 포스터가 인쇄되어 실제의 공간에 부착되어 포스터의 기능을 한다면, 웹 포스터는 웹상에 전시되어 제 기능을 한다. 인쇄물 포스터와 웹 포스터의 차이로는 전시 방식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는 ‘모션’이 아닐까 한다. 웹 포스터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웹상에 전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쇄물로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포스터의 각 요소가 움직이게 할 수도, 혹은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요소가 달라지는 것을 ‘인터랙션’이라 칭한다.인터랙션 디자인은 인간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상호 간 작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디자인분야이다. 주로?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인터랙티브 아트, 혹은?미디어 아트와는 구분된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컴퓨터의 발달에 따라?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등장한 이후 급속도로 발전되었으며 많은 부분에 있어 물리적인 디자인 영역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전산학의 영역과 같이 일하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가 가장 필요한 분야이다. 인간 중심의 디자인,?사용성,?접근성은 인터랙션 디자인이 추구하는 주요 목표이며 좋은 인터랙션 디자인을 하기 위해 사용자 조사 등을 통한 연구와 테스트를 거쳐서 완성된다. 해당 프로세스를 ‘사용자 중심 설계’라 부른다. 사용자 중심 설계는 사용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사용자의 한계 능력과 상황에 맞춘 디자인 프로세스를 과정을 거친다. 정리하자면 사용자를 중심으로 사고하여 만들어 내는 접근 방법이자?디자인 사상인 것이다. 디자인의 각 단계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집중적인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지며 최종적 단계에서의 결과물인 디자인은 인간 사용자의 편의와 복지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를 위해 각 단계의 디자인 문제 해결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고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에 대한 분석과 예상을 하는?디자인 리서치를 하게 된다. 이때 실제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실제 사용자의 행태와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른 디자인 사상과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사용자로 하여금 시스템이나 기능에 맞추어 적응하게 하거나 학습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특히 사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지에 따른?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최적화를 통해 디자인 이상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아라페쉬인 간의 교류를 통한 보편성‘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중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을 읽고마가렛 미드에 대해서 배우고 그녀의 사상을 ‘1. 다양한 인간 집단들 간의 교류를 통한 보편성을 추구한다. 2. 인성은 문화를 통해 결정된다는 문화결정론을 띤다. 3. 개인을 기본단위로 하여 문화 속의 개인을 설명하고자 한다.’의 세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상이 어느 학자의 것인지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우지 않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사회문화 과목의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있던 바, 이 사상을 대학교 수업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이 사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심도 있게 알아보고 싶어서 자연스레 이 사상의 주인인 마가렛 미드가 집필한 책인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마가렛 미드의 사상 중에서 첫 번째, 두 번째 항목이 가장 인상 깊었고, 아라페쉬인들이 어쩌면 저렇게 온순하고 비공격적인 성향을 띨 수 있을지, 남성 여성 모두 여성적 성향을 띠는지가 궁금하였다. 그에 대한 답은 책을 읽으며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산속에서 사는 아라페쉬인이 어떻게 다른 인간 집단과 교류를 하는지가 더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래서 책의 많은 챕터 중에서 내가 맡은 1부인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의 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과의 교류를 어떻게 하고, 또 그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어떻게 아라페쉬인들 간에 보편성을 띄는지를 중심으로 독서를 진행했다.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은 주로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과의 교류를 주로 하는데, 이때 이들은 ‘인어길’, ‘독사길’, ‘석양길’이라고 불리우는 세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여러 갈래의 오솔길을 통해서 교류를 하고, 주로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 이 둘의 거래에서는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주로 이익을 보게 되는데, 이는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의 물건도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가지고 와서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 전해주는 일도 종종 있어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운반자 노릇을 해 준 대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무작정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해변가로 오길 기다리기보다 직접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을 만나러 여정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들은 주로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으로부터 외국의 문물, 선진 문물과 각종 신식 문화(춤, 음악, 과자 만드는 법 등)를 전수받기 때문에 해변을 자기네들이 사는 산간지역보다 더 나은 곳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바다에서 가까운 지역을 행복의 근원지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해변마을은 ‘어머니 마을’로 일컬어지고 자기네들로부터 해변의 관습을 구입해 가는 더 깊은 산 속 마을들은 ‘딸 마을’로 불리운다.”는 이 인용글만 봐도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들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들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을 테지만, 다음 인용글을 보면 그 이유와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들을 더 구체적으로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만약 해변사람들이 없다면 산간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이나 흥분거리가 없었을 것이며, 며칠을 즐겁게 지내는 데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절약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평원 사람들이 없다면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므로 이들은 노쇠해서 죽을 때까지 평온하고도 존중받는 삶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평원과 해변에서 오는 영향이 없었더라면 산 속에는 단조로운 나날만이 있었을 것이다. 산 속은 너무 황폐하여 이웃에서는 누구도 그들의 수확물을 탐내지 않으며, 너무나 살기가 힘들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군대도 침입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생활의 어려움과 가혹함 외에 다른 즐거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아라페쉬인들은 그들의 주된 기쁨과 새로운 시도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 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꼼짝없이 갇혀 있어 괴로움을 당한다거나 나쁜 환경적 조건의 희생자들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생을 무엇인가를 길러내는 모험으로 여긴다. 아이를 기르고, 돼지를 기르며, 고구마, 타로, 코코넛, 사고야자를 기르면서 이들은 충실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만물의 성장의 법칙을 따라 살아간다.”위에서 다룬 내용의 방식대로 아라페쉬인들을 상호간에 교류를 하고,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들 사이에 보편성을 띄게 된다. 특히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과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의 중간에 위치한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의 경우,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서 들여온 문화와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서 들여온 문화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다닐 일이 있을 때에는 아기를 그물자루 속에 넣어 이마로부터 늘어뜨려 업고 다니거나 나무껍질 멜빵 속에 넣어 가슴에 안고 다니기도 한다. 후자의 방법은 해변에서 온 관습이며 그물자루에 넣는 것은 평원사람들의 방식으로 이들은 아이의 건강상태에 따라 양쪽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를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아라페쉬인들의 교류 방식은 이처럼 물질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춤이나 혼인과 같이 비물질적으로 이루어 지기도 한다. 비물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교류는 물질적인 교류와는 달리 정신적 만족감을 주거나, 세대를 넘어선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데, 특히 혼인이 그렇고, 특히 자신이 속한 성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과 혼인관계를 맺었을 때 더더욱 그런데 그 이유는 다음에서 알 수 있다. “먼 지역의 성원과 결혼관계를 맺으면 다른 이로운 점이 있다. 우호적 관계의 범주가 넓어지므로 다음 세대가 더 넓은 지역 안에서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것이고, 힘들고 추운 여행길에도 여러 곳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원혼 관계는 두 지역 사람들을 앞으로 오랫동안 또 운이 좋으면 영원히 연결해 준다. 그러한 결혼에서 태어난 자손들은 이 결혼을 늘 기억하여 어머니 마을에서 온 모든 사람들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이들이 잔치에 오게 되면 정중하게 환대한다. 게다가 새 신부를 해변 지역의 마을에서 데려오게 되면, 여러 가지 진귀한 기술을 익힌 그녀가 그 기술을 딸들과 며느리들에게 전수하는 이점이 있다. 그 한 경우로서 울루스를 만드는 법, 즉 풀치마를 엮어 짜는 비법은 다섯 세대 전에 다구아르(Daguar)에서 시집 온 신부가 수아비비스(Suabibis)의 사람들에게 전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은 아내가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리게 되어 마술에 호소하게 되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무작정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이상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 그리고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과의 교류를 어떻게 하고, 또 그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어떻게 아라페쉬인들 간에 보편성을 띄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이들의 교류는 외부(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부터 전수받거나 전해받은 선진 문물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 전해지고,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들이 외부로부터 전해받은 것을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 전해짐으로 이루어진다. 그 반대 방향으로는 평원에 사는 아라페쉬인의 문물과 문화를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이 해변에 사는 아라페쉬인에게 전해주는 경우가 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은 서로 필요한 생필품을 나누어 갖게 되며, 나아가서는 문화생활, 여가생활을 공유하게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들의 교류는 먼 구성원과의 혼인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이 경우 세대에 걸쳐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교류활동을 통해 아라페쉬인들은 세부적인 특징은 다를지라도 전반적인 면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띄게 된다. 독서를 통해 바라던 대로 마가렛 미드의 사상 중 ‘다양한 인간 집단들 간의 교류를 통한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고, 마가렛 미드가 왜 이 부분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후세대로 하여금 이를 마가렛 미드의 대표 사상 중 한가지로 손꼽게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책의 서술 방식으로 보면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1. 산 속의 생활에서의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문화, 수입의 경로, 생활 등)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객관적이고 열거식으로 서술 된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라페쉬인의 생활에 관한 점도 마치 새로운 문화를 직접 접해보는 듯한 기분으로, 심지어는 뉴기니아에 가서 직접 이들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