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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 비평문 평가A+최고예요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탄생과 종말에 언제나 관심을 가진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의문에서 출발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러한 관심과 의문을 신앙적 세계관으로 풀어내는 종교는 인간의 삶과 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또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상의 종말과 인류 존속의 문제를 풀어내는 재난 문학과 재난 영화는 오늘날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대중적인 장르가 되었다. 이러한 재난 문학과 재난 영화는 신선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사건, 인물 간의 치열한 갈등 등을 그려내며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하기에 오락적인 장르이기도 하지만, 종래에는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한 고찰로 이끌기에 의미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종말의 직전에서 생존을 향한 욕구는 가장 극대화되고, 윤리에 구애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동시에 종말에 다다라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의 도덕과 신념을 확인할 수도 있다. 즉 재난을 다루는 문학과 영화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인을 알 수 없이 실명에 이르는 질병에 사람들이 감염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 버린다’라는 재난적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그에 파생되는 인간 사회의 변화와 삶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소설이다. 우리는 이 원인 불명의 ‘백색 질병’에 의해 사회가 붕괴되는 양상과 더불어, 정부와 시민, 강자와 약자, 여성과 남성 등의 관계성과 선과 악, 억압과 자유, 이기주의와 연대의식, 배반과 신뢰, 혐오와 사랑 등의 가치를 흥미롭게 읽어나가게 된다. 작품에서‘의사의 아내’로 통칭되는 주인공은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로, 재난에 의한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생생하게 목격하는 증인이다. 이 주인공이 속해 있는 공간이 변화함에 따라 위기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주인공이 속한 첫 번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잘 조직된 사회 속의 시민들은 대체로 정부를 신뢰하고, 저마다의 욕망과 가치를 좇으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백색 질병에 걸려 눈이 멀기 이전에 평범한 생활을 하던 세계이지만, 사실은 눈 먼 상태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유롭고 평화로운 문명 사회의 세계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실명의 질병에 걸리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주인공의 남편인 의사가 눈이 멀자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주인공은 자신도 눈이 먼 체 하며 남편을 따라 함께 정신병원에 격리된다. 이곳은 주인공이 속하게 되는 두 번째 공간으로, 격리를 명분으로 수용된 감염자들이 자유와 권리를 억압받는 한편, 질병에 의해 사회 체계가 붕괴되는 양상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정부는 무조건적인 배제와 격리, 그리고 군사를 동원한 폭력적 방식으로 감염자들을 대하고, 감염자들의 회복을 위해 최소한의 의료적 지원(물, 식량, 생리 현상, 병이나 부상 등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들)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배반한다. 눈이 먼 인간들은 가장 중요한 감각 기관의 기능을 상실한 채 자유를 억압당하자 본래 그들이 누리던 청결과 아름다움, 문화와 예술, 신뢰와 유대를 점차 잊어간다. 그 대신 생존, 본능, 욕구 등 태초의 인류의 삶을 작동시키던 원리가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즉 이 공간은 인간이 원래 속해 있던 사회에서 밀쳐져 나와, 본인들이 본래 영위하던 생활 대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여 생활해야 할 공간이다. 눈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고 갇힌 사람들은 허기와 불안에 잠식되어, 오로지 굶주리지 않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식에 의해 살아간다.수용소 바깥의 사회에서는 백색 질병의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교통, 의료, 금융 등 전반적인 사회 체계가 하나 둘씩 마비되기 시작한다. 수용소에 격리되는 감염자의 수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여 수용인원을 초과하는데, 제공되는 식량은 그들은 독점한 식량과 그들이 사용하는 총기, 폭력과 살인을 불사하는 폭압적인 방식,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을 만큼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불공평함에 순응하게 만들었다.사람들의 값 나가는 소유물이 식량에 대한 대가라는 터무니 없는 명목으로 갈취당하고, 힘과 권력에 도취되어 최후의 양심조차 잃은 듯한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들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굶주림과 무자비한 폭력의 공포를 코앞에 둔 이들에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이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자조하던 인간들은 지옥 중에서도 최하층을 맞닥뜨리게 된 셈이며, 여기서 인간 사회의 맨얼굴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힘과 권력을 무기로 폭력과 불합리한 압제,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강자와, 이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생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여성 인권 유린을 방관, 합리화, 외면한 남성들이 폭력에 굴종한 약자임과 동시에, 같은 약자에 대한 폭력에 은연중에 동조한 가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다행히도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이 지점에서 분노가 격발되고 불합리함을 뒤엎는 반동이 일어난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여자인 주인공은 끔찍한 방식으로 여성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행태를 낱낱이 목격하고 깡패들의 두목을 가위로 찔러 살인한다. 무력하게 엎드려 있던 남성들은 여성을 희생하여 배를 채웠던 행동을 돌아보고, 여성과 남성은 더 이상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침해되지 않게 똘똘 뭉쳐 투쟁한다. 한 여자가 깡패들의 방에 불을 질러 모든 병동이 불길에 휩싸이자 재소자들은 폐쇄적인 격리자 수감소에서, 불합리와 타락의 온상에서 드디어 탈출하게 된다.주인공이 두 번째로 속했던 이 공간은 사회에서 동떨어진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이며, 그로 인해 인간의 윤리가 최저의 수준까지 타락하게 되는 세계이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기에 이곳에서 폭력, 살인, 강간이 자행되는 것을 막을 수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암울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살아남는 인간적인 가치도 있었다. 약자가 억압받는 곳이지만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는 배려가 남아 있으며, 이기주의가 팽배한 곳이지만 위기에서 함께 살아남을 방도를 모색하며, 오해와 편견이 만연한 곳이지만 이를 초월하는 사랑을 피워내며, 여성이 성적 폭력과 고통을 겪는 공간이지만 여성들의 연대는 더 강해진다.‘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처럼, 이 눈먼 자들이 수용된 곳은 인간이 가진 추악하고도 선한 면이 그 어느때보다도 진실하게 드러나는 세계이다.정신병원을 탈출해 자유를 얻은 주인공과 눈먼 자들에게는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수용소 안에서 투쟁하는 사이, 수용소 바깥의 사회에서는 결국 모든 인류가 백색 질병에 감염되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사회, 조직과 체계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개인 혹은 소집단을 이루고,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더 큰 혼란의 도시가 주인공이 속하게 되는 세 번째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종말과 구원 따위를 떠들어대는 사이비의 사상이 성행하고, 성당의 성상들은 눈먼 인간과 똑같이 눈이 가려지는 신성 모독을 당한다. 눈먼 사람들은 더 이상 성상들을 볼 수 없으므로, 인간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신 또한 볼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음악, 그림, 조각들은 그것들을 감상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인간들이 아무것도 볼 수 없기에 방치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들은 인간이 볼 수 없게 되자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들이 되었다.또한 사람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타인을 약탈하기를 서슴지 않고, 거리 곳곳에는 오물이 방치되어 악취가 진동한다. 이들은 약육강식의 생태에, 앞을 더듬거리며 이리저리 방황하기만 할 뿐인 무질서한 생활에, 진동하는 악취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는 야생 동물의 모습과 흡사하다. 분명 이들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니 시체잃으면서 과거에 그들이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도 잃어버렸다. 눈 멀기 이전에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나 감정, 방향은 모두 흩어지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정체성마저 거의 상실한 공허한 삶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눈먼 자들은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사람들이다.수많은 고초를 겪었던 격리병동에서도 인간다운 삶과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던 주인공은 이 혼란의 공간에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볼 수 있는 눈으로 식량을 구하고, 본래 거주하던 집을 되찾는다. 비가 내리자 더러운 몸과 의복을 씻어내리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안전한 은신처에서 일행들에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준다. 바깥의 사람들에 비하면 눈이 멀기 이전의 생활과 한없이 가까워진 상태가 된 것이다. 여자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일행을 버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았다는 이점을 이용해 타인을 휘두르거나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과 책임감을 가지고 타인을 대한다. 인간이란 아무리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영원히 혼자 살 수 없고,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행할 수 있는 인간다움이었을 것이다.주인공이 두 번째로 속하게 된 이 공간은 살아 있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심층적인 고뇌가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눈먼 인간들은 살아 있으나 죽어 있다.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왜 죽었다고 판정할까. 인간들이 눈 멀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쌓아 온 추억, 취미, 취향 등 평생동안 결을 갈고 닦아온 모든 감정과 습관들을 잊었기 때문이다. 매일 샤워를 하고, 취향에 맞는 새 옷을 꺼내 입는 것, 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 내가 추구했던 목표, 좋아했던 그림, 조각, 내가 의지했던 성상들. 그 모든 것들이 모이고 축다.
    독후감/창작| 2020.12.11| 5페이지| 2,000원| 조회(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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