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과제 (사도)한국사 08분반 20204418 경영학과 이혜빈8일, 사도세자가 죽기까지 뒤주에 갇혀있던 시간이다. 조선의 세자인 사도가, 아버지인 임금에게 죽임을 당한 그의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다. 그것도 흔하게 유배를 보냈다거나, 사약을 마시는 형벌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고통스럽게도 뒤주에 갇혀 8일간의 괴로움을 견디다 탈수와 배고픔으로 죽었다. 영조 나이 42세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던 사도 세자가 어찌하여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의 길었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사도가 그려냈다.사도는 영조의 차남으로, 후궁 영빈 이씨에게서 태어났다. 첫 아들이 일찍이 죽은 탓에 42세의 나이에 후사를 이을 아들을 얻게 된 영조에게 사도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보여주었던 남다른 총명함으로 인해 3살 무렵까지는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무명옷과 비단옷을 구분하여 사치스러운 옷은 입지 않겠다며 영특함을 보였던 일이 영조실록에 기록되어있을 정도이다. 영화에서도 어린 사도가 보여주는 학문적인 성과에 영조가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의 부자 관계는 사도가 4살 무렵부터 점점 어긋나기 시작해 결국은 우리 모두가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그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것일까. 재위 기간 내내 정통성 문제에 시달렸던 영조는 완벽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만 했던 위치에 있었다. 그는 숙종의 아들이었지만 무수리인 어머니를 두었기에 미천한 신분이라는 무시를 받으며 스스로의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에 시달리곤 했다. 게다가 영조의 형이었던 선왕 경종이 갑자기 승하한 탓에 영조에 의한 타살을 의심하는 세력에도 맞서야만 했다. 이러한 세력들을 잠재우고 신하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그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군주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평생에 걸쳐 신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영조의 눈에 자유분방한 자질을 타고 났던 그의 아들 사도는 기대에 차지 않는 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사도도 영조의 바람대로 학문을 갈고 닦아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세자이고 싶었다. 사실 사도는 영조의 기대에만 미치지 못했을 뿐 매우 영특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영조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영조는 신하들이 오히려 말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세자에게 과도한 조기교육과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을 양의 학문을 소화하기를 강요한다. 어린 아이에게는 벅찰 수밖에 없는 공부를 시켜놓고서는 소화하지 못한다며 다그치기까지 한다. 결국 9살 무렵부터의 사도는 영조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며 매일 아침 영조의 기분을 살피고 10살이 되자 영조가 사도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혹독해져 그 둘의 관계는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