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운인간의 유한성은 우리가 존재해 왔던 억겁의 세월동안 인류를 수 없이 좌절시키고 공포로 몰아넣었다. 허나 긴 시간에 걸쳐 이뤄낸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은 그 유한성이 주는 공포감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으로 무장하게 된 것도, 한낱 대자연의 입김에 꺼져버릴 촛불신세를 면하기 위한 인류의 발버둥이 기원에 있을지도 모른다.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즈상의 수상자로 하버드 전 교수이자 서울대 초청교수로서 활동했던, 그야말로 이 시대의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특이점의 해소에 대한 논문을 써 당시의 커다란 난제 하나를 증명해낸 공로로 필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흔히 위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은 그 공로에 가려 인간성 자체는 대중들로부터 쉽게 알려지지 않기 마련이다. 허나 우리는 히로나카처럼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업적들은 그들의 성격, 경험, 능력 그리고 노력이 적절히 섞여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히로나카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다섯 형제 중 하나로 정신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그의 집은 전쟁이 끝날 무렵 농지조사로 땅을 몰수당했고 이내 몰락하고 만다. 허나 그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를 가지신 분이었다.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면서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당당한 풍채를 지니며 생활했다. 히로나카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굳센 자세를 배웠다. 그렇다면 그는 어머니에게서 학문적 재능을 물려받았을까? 과연 그의 어머니가 학구열에 불타는 분이었던가? 그것 역시 절대 아니다. 급격히 무너진 집의 지붕아래서 열다섯 명의 자녀를 키운다는 상상을 해보라. 절대 넘치는 열정과 관심, 학구열만으로 그들 모두를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생각 자체의 중요성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히로나카가 세계의 수많은 천재들 사이에서 꿋꿋이 자신의 일을 계속 해 왔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몸소 보였던 겸손과 다른 이들과의 차이에 대한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는 그 깊은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윤동주 평전윤동주의 시와 인생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송우혜 시인의 을 읽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광복이 얼마 남지 않은 1945년에 삶을 거두었다. 그는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그의 할아버지인 윤하현 장로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다. 윤동주의 아명(兒名)은 ‘해환’이었다. 해처럼 빛난다, 라는 뜻의 이름은 훗날 민족시인 청년시인으로 불리울 윤동주의 아명으로 더할 나위 어울린다.그는 28년의 삶을 살았지만 그 중 14년은 명동마을에서 보내었다. 14년간의 명동마을, 그리고 명동소학교 재학시절은 윤동주 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윤동주의 재학 이전에는 다소 군사적인 교육분위기가 컸었지만 마침 윤동주의 재학 시절에는 문학과 가까운 수업을 가르쳤다고 한다. 특히 언어와 관련해선, 한글(조선어), 일본어, 조선어를 모두 배워야했었고, 그와 더불어 만주어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재학 당시 그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는 월간문학잡지를 꾸준히 구독하며 문학적인 소양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들만의 월간 잡지를 몇 호 발간하기도 하였다. 송몽규와는 꾸준히 문학적인 교류를 주고 받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직 미성년자였던 송몽규가 일반인들과 문학 경쟁을 하는 에서 작품 응모를 하여 콩트 부문 당선을 한 일이었다. 이는 윤동주 시인이 문학적 동류이자 같은 마을 친구이던 송몽규에게 자극을 받기 시작하며 자신만의 문학관을 길러가기 시작한 촉발제라고 볼 수도 있다.윤동주는 후에 연희전문대학, 현재의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을 지속한다.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인문계 지식인들이 일제의 탄압에 끝없이 수모를 겪고 있었지만 그는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이유로 문학쪽으로 학업을 지속하게 된다. 그리고 윤동주는 연희전문대학의 재학 동안 , 등 뛰어난 시를 짓는다. 윤동주의 시 인생 중 연희전문대학의 재학 시절은 빼놓을 수 없을만큼 훌륭한 시작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후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히라누마 도우쥬우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한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당시 윤동주는 조선 독립에 대한 민족 연구를 위해서는 연희전문대학에서의 공부만으로는 충분치않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윤동주와 송몽규는 사상범으로 체포된다. 젊은 나이에 상당히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 윤동주가 만 27세의 나이로 옥살이를 하다 삶을 거두었다는 것은 다소 믿을 수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소 유력한 추측으로는 윤동주와 송몽규 등 당시의 체포된 조선인들에게 알 수 없는 주사를 놓아 생체실험을 했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수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어 어떤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인가 고민하다 를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프린스턴대학교의 교수가 진행한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서 한번뿐인 삶을 어떤 목적,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나름의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먼저 수전 울프 교수의 강의로 1부를 열고, 2부는 4명의 철학자의 논평, 그리고 3부는 다시 수전 울프 교수가 그 논평에 대해 답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먼저 1부에서 교수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삶이란, ‘가치 있는 삶’을 말하는 것같다. 교수는 가치있는 삶(또는 의미있는 삶)이란 주관적인 이끌림과 객관적인 매력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이는 다소 보편적으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한 개인이 주관적으로 열광하고 그 행위를 사랑한다면 그의 삶이 의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부의 후반에서는 삶은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일을 통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꾸준히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떠한 자극을 주어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러한 자극은 삶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무관한 가치와 연관해있을 때 발휘된다고 설파한다.2부에서는 무모한 열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존 쾨테), 뭔가를 성취해야만 삶은 의미 있는가(로버트 애덤스), 객관적인 가치를 담아야만 의미 있는 삶인가(노미 아르팔리), 중대한 관여와 벌집 심리학(조너선 하이트)?이렇게 총 4명의 철학자의 각각의 논평을 싣고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존 쾨테의 논평에 대한 얘기를 담자면, 그는 예술가 고갱의 삶을 예시로 삼아 가족을 버리고 예술을 택했던 그의 열정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그의 삶이 예술적인 엄청난 열정을 위해 윤리적으로 취했어야 할 의무에 대해 (예를 들면 가족을 책임지는 의무 등) 등한시했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봤을 때, 만약 그가 단순히 자신의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실력 없는 예술가였다면 우리의 평가가 과연 긍정적이었을까 하는 이야기이다.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던 점은 인정하지만, 후대의 우리가 평가하였을 때 그의 결과가 뛰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똑같은 평가가 내려졌을까? - 결론은 의미 있는 삶은 열정뿐만 아니라 결과에도 좌우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