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지도자인 내가 원하는 신규간호사와 채용방법1. 근거기반간호를 수행하는 신규간호사근거기반간호는 현 임상에서 환자에게 최적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중요하다. 간호업무의 질은 간호사가 습득한 지식의 질에 달려 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확한 간호를 수행하기 위하여 간호연구를 바탕으로 한 간호실무가 증가하게 되었고, 이를 근거기반실무(Evidence-Based Practice, EBP) 또는 근거기반간호(Evicence-based nursing, EBN)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근거기반간호는 임상간호사가 간호연구를 통해 검증된 최상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환자를 위한 임상적 판단을 수행하는 것이다. 근거기반간호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임상적 전문성, 환자의 선호도, 사회적 가치를 통합한 최상의 간호를 수행하는 과정으로 근거기반간호를 통해 보건의료실무의 안전성, 효과성, 비용 효과성을 도모할 수 있다. 현재까지 근거기반간호는 자원을 가장 비용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최상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한 합리적인 접근법으로 여긴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근거기반간호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신규간호사가 필요하다. 근거기반간호를 간호현장에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근거기반실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간호사를 채용해야만 할 것이다. 간호사가 되기 전 간호학생들은 학교에서 핵심기본간호술을 배운다. 핵심기본간호술은 간호사에게 꼭 필요한 핵심 실무역량을 기를 수 있는 지식이다. 이론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핵심기본간호술은 실제 임상에서 필요한 기술로써 신규간호사를 채용할 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근거기반간호를 수행하는 간호사, 실기능력과 적응 능력이 뛰어난 간호사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지, 프로토콜의 순서를 잘 알고 있는 간호사를 채용할 것이다. 이를 평가하기 위한 채용방법으로는 다음과 같다.2. 리더십이 있는 신규간호사보건의료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간호사가 근무환경에 적응하면서 대상자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리더십의 역할에는 의사결정자, 의사소통자, 평가자, 촉진자, 위험감수자, 멘토, 에너자이저, 코치, 상담가, 선생님, 비판적 사고자, 완충자, 지지자, 비전 제시자, 예측가, 영향인, 창조적 문제해결자, 변화주도자, 외교자, 역할모델 및 혁신가 등이 있다. 리더는 항상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신규 간호사에게도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간호사는 임상실무 리더로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가 안전하고 양질의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리더십이 필요하다. 따라서 간호지도자인 필자는 리더십이 있는 신규간호사를 채용하도록 하겠다. 리더십이 있는 신규간호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채용방법은 다음과 같다.3.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신규간호사누구나 처음부터 업무에 능숙하게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규간호사가 되었을 때는 업무에 익숙하지 못해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 것이다. 입사 후 프리셉터 선생님으로부터 간호업무를 배운 후 완전히 독립하게 될 때까지 그리고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간호정보조사지 기록, 주사 및 수액 처치, 인계사항 정리, 지참약 정리, 간호진단 및 간호기록, 낙상, 욕창, 중증도 확인 등의 수많은 간호업무를 처리할 때는 경력 있고 실력 있는 간호사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오류, 실수를 보고하지 않고 숨기려고 하는 간호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곧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실수를 정직하게 보고하고, 앞으로 발전해나가려고 하는 신뢰할 수 있는 간호사를 채용할 것이다.
노인에게 꼭 필요한 교육 [ 치매 예방 ] 간호학과 학년 반 조 학번 : 지도교수 :치매란 무엇인가 ? 치매 = 뇌의 병 + 일상생활의 어려움정상노인과 치매노인의 차이 건망증 ● 사건의 세세한 부분만 잊는다 . ● 귀띔을 해 주면 금방 기억한다 . ● 대부분 기억력 감소를 인지하고 메모 등을 이용하여 이를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 치매 ● 사건 자체를 잊는다 . ● 귀띔을 해 주어도 기억하지 못한다 . ● 본인의 기억력 저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치매에 대한 오해들 나이 들면 다 치매가 된다 . 치매에 걸리면 다 대소변도 못 가린다 . 치매는 치료해도 소용이 없다 . 치매는 정상 노화과정과 다르다 . 주로 치매 말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증상이다 . 퇴행성 치매도 치료하면 진행이 느려진다 .치매의 증상 1. 초기 치매 ● 초기 치매의 특징은 ‘ 최근 기억의 감퇴 ' 가 시작됨 ●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성격이나 기분의 변화 ( 우울증 , 짜증 , 의기소침 ) 가 나타남 ● 기억장애 ( 최근 일이나 대화 내용 망각 , 오래된 일은 비교적 잘 기억 ) 가 나타나고 집중력이 저하됨 ● 점차 진행되면서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기 시작하여 주변 사람들의 다소간의 도움을 필요함치매의 증상 2 . 중 기 치매 ● 중기 단계 치매의 특징은 초기단계에서 보였던 기억력 감퇴 , 언어 능력 등의 증상은 더욱 악화되며 , 대체적으로 사회적 판단에 장애 를 보임 ● 기억력 장애가 심화 ( 오래된 기억까지 망각 ) 되며 시간관념이 흐려지고 , 길을 잃는 경우 발생함 ● 점차 진행되면서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동작에도 어려움을 보여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함치매의 증상 3 . 말 기 치매 ●말기 치매의 특징은 모든 지적 능력이 심하게 손상 되고 , 일상생활의 능력이 저하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없게 됨 ● 기억장애 더욱 심화 ( 대부분의 기억망각 ) 되며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를 알아보지 못하며 언어 장애가 심화됨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전적으로 주변의 도움에 의존치매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 고령화 사회 ●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은 2060년에는 40.1%를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며 급격한 고령화 추세는 필연적으로 치매노인의 급속한 증가를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 ● 치매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인지기능과 일상생활능력의 저하가 동반되기 때문에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타인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다 . ●치매의 진단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신경써야 될 점 ● 치매라는 질병은 치매를 앓는 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는 병이다 . 따라서 가족수발자들을 지지하는 간호도 필요하다 . ● 노인이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치매예방 방법을 알려준다 . ●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 - 치매예방 3:3:3 수칙● 3 권 ● 3 금 ● 3 행 치매 예방 3.3.3● 3 권 치매 예방 3.3.3 1. 운동을 생활화하기 2. 뇌 건강 식사하기 - 오메가 3, DHA 가 많은 생선 , 과일 , 채소 , 견과류 3. 머리 쓰기 - 글쓰기 , 고스톱 , 퍼즐 맞추기 , 책읽기● 3 금 치매 예방 3.3.3 절주하기 - 1 주일에 1~2 번 1 번에 1~2 잔 2. 금연하기 3. 뇌 손상 예방하기● 3 행 치매 예방 3.3.3 1. 건강검진 받기 2. 치매 조기발견 - 치매 선별검사 / 보건소 3. 소통 - 사람 , 환경참고문헌 부산광역시 광역치매센터 https :// busan.nid.or.kr/home/main/main.aspx 대전광역시 광역치매센터 https :// daejeon.nid.or.kr/home/main/main.aspx{nameOfApplication=Show}
자타공인 생태도시독일의 함부르크제출일자 :교과목명 ∙ 담당교수명담당교수명교수님학과 ∙ 학번제출자- 목차 -Ⅰ. 개요Ⅱ. 본론함부르크의 도시계획깃털계획Biotope(도시생태현황지도)제작함부르크 도시의 녹지공간함부르크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함부르크 하펜시티(1) 하펜시티의 역사적 배경(2) 하펜시티의 개발(3) 하펜시티 마스터플랜Ⅲ. 결론Ⅳ. 조사를 통해 느낀 점Ⅰ. 개요보통 ‘생태도시’라고 하면 작은 규모의 도시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생태도시’이다. 함부르크는 깃털계획과 Biotope(도시생태현황지도)제작을 통해 종합적인 도시계획을 세웠다. 함부르크의 생태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녹지공간을 알아보고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번영과 쇠퇴를 모두 거친 하펜시티의 역사적 배경과 개발 내용을 통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함부르크의 도시계획(1). 깃털계획자연보호와 경제성장이 모순되지 않고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선 순환 구조가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어 왔지만, 실제로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내기 힘들기에 함부르크 도시의 계획과 발전은 특별하다. 함부르크 도시계획은 1920년‘깃털계획’에서 시작되었다. 깃털계획은 자연을 침해하지 않고 발전의 축으로 삼는 것인데 함부르크는 이것을 지침으로 불필요한 확장을 억제하고 구 도심을 최대한 재생하고 재개발하였다. 그 결과 함부르크에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옛 모습을 간직한 구 도심이 여전히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2) Biotope(도시생태현황지도)제작Biotope(도시생태현황지도)이란 도시지역과 개발예정지역, 강 유역 및 산림지역 등을 대상으로 녹지 사용현황과 지표들을 지도에 표시하여 도시 전역을 생태적 특성에 따라 유형화라고 보전가치 별로 등급화해 지도상에 표시하는 방법이다. 함부르크 Biotope지도를 갱신해 왔으며, 자연환경 법, 보전 및 개발계획을 환경정책화 하는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데 활용해 왔다. Biotope의 활용은 수집한 도시환경 및 자연생태계의 객관적이고 정밀한 기초자료를 통해 훼손된 도시환경의 생태적 잠재성을 평가하고 생태복원체계 수립, 환경친화적인 휴양공간 확보, 도시생태계를 고려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에 있어 친환경개발로의 유도를 가능하게 했다.2. 함부르크 도시의 녹지공간함부르크의 도시는 2차세계대전과 대화재가 일어나면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항구도시의 쇠락으로 인해서 도시의 질이 굉장히 낙후된 도시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도시 공간들이 재생되어, 지금의 아름다운 함부르크 도시로 만들어졌다. 함부르크의 생태도시로서의 면모는 녹지 비율에서 볼 수 있는데 숲의 면적이 시 전체의 14%나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호수와 강, 수로의 면적도 8%에 달한다. 그리고 숲과 호수를 포함해서 도시 전체의 28%가 경관보호 및 자연보호 지역이다. 함부르크 녹지공간 시스템은 크게 2가지의 링 형으로 큰 외곽지역의 녹지공간 링과 안쪽의 옛 성곽 지역부분의 작은 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그 링을 다시 방사형으로 연결해주는 작은 녹지공간들과 수공간으로 인해서 함부르크의 도시민의 삶의 질은 녹지공간과 수공간에 접하기 수월해진다. 이처럼 도시에서 수공간과 녹지공간을 크게 접하게 만들어 대부분의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림1 > 알스터 호수 전경. (사진 출처 : 함부르크시)함부르크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함부르크시가 특히 ‘온실가스 감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함부르크는 기후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고위도의 항구도시이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시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5%나 절감하며 기후변화에 대비해 왔으며 이후 2020년까지 40%, 2050년까지 80%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환경수도로 선정되었다. 함부르크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도시 내 건물들의 조명은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LED로 바꾸거나 냉난방 시스템을 절전형 제품으로 교체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주거환경이 좋지 않거나 낙후된 곳은 ‘재생’해서 활용하고 있다.4. 함부르크 하펜시티하펜시티의 역사적 배경하펜시티 개발구역은 독일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해안교통의 요충지이며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해안 관문의 역할을 수행하는 항만구역인 슈파이허슈타트와 커뷔터슈피제에 위치한다. 하펜시티 개발구역은 함부르크시의 도시발전과 산업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195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대형 컨테이너 항만시대의 도래는 하펜시티 개발구역의 경제적 침체를 가져다 주었다. 얕은 수심조건을 가진 하펜시티 개발구역은 대형 컨테이너선의 접안이 불가능하였고, 이로 인해 항만의 기능은 점차적으로 상실되었다. 1980년대 산업구조와 경제적 요건들의 변화로 하펜시티 개발구역은 쇠퇴하게 되고 도시민의 발길이 닳지 않는 도시와 단절된 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하펜시티의 개발1980년대부터 유럽도시의 수변공간은 기존의 쇠퇴하는 도시공간에서 새로운 기능전환을 수용하는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장이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하펜시티 개발구역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유럽의 수변공간 개발 프로젝트 중에 가장 큰 규모이며 도심 속 생태도시 구축 프로젝트인 “하펜시티”구축을 위한 공사가 2003년부터 실행되었다. 하펜시티 개발구역은 기후변화와 엘베강의 범람으로 수몰되어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함부르크시가 둑을 쌓아 물길을 막는 대신 지반을 높이고 건물 아래쪽에 4m정도 높이의 공간을 두어 물이 들어와도 지장이 없게 했다. 또한 인도 역시 지면에서 4m정도 떨어진 높이에 있도록 하여 강이 범람해도 통행에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림 2 > 지상에서 한 층 높이만큼 떨하펜시티 마스터플랜하펜시티 마스터플랜이 추구하는 목표는 기존 도심과의 구항만의 워터프론트 지역의 접근성과 연결성을 강화하여 하펜시티 개발에서 발생되는 개발 활력을 구도심에 불어 넣어 구도심과 신도심의 통합과 동반성장을 하는 것이다.< 그림 3 > 실선 안쪽이 재생되는 항구지역인 하펜시티 (사진 출처 : hafencity.com)< 표 1 > 하펜시티의 개발 내용분류주요 내용개발 목적수변공간 개발을 통해 함부르크시의 도시 면적의 40%를 증가시켜 부족한 도심 기능 해결40,000여개의 일자리 확보를 통한 고용창출과 침체된 경제 성장 촉진12,000명의 주거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공급으로 미래적 도시인구 증가에 대비친환경적 수변공간 개발을 통한 도시민의 삶의 질적 향상 도모개발 방향낙후된 도심 수변공간은 주거시설, 업무시설, 상업시설, 문화 및 교육시설 등의 복합개발을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부지 위치시청까지의 거리 800m, 중앙역까지의 거리 1.1km로 함부르크시중앙에 입지부지 면적총 면적 155ha로 수공간 55ha 포함개발 단계부지를 총 10개의 개발 구역으로 나누고 개발 단계를 5단계로정하여 부지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순차적으로 개발착공 시기2001년 잔토어카이(Sandtorkai)개발로 시공착수완공 시기2025년 개발 완료 에정개발 주체함부르크시가 100% 출자한 자회사 하펜시티 개발 공사(Hafencity Hamburg Gmbh)총 공사비68억 유로(Euro)구체적 내용으로는 해양 박물관, 필하모니 홀, 대학교, 과학센터 등과 같은 사회 문화시설 건설과 공원, 수변 산책로, 다양한 오픈 스페이스 등 도시민의 휴식처를 제공해 주는 도시 공공 공간을 조성하여 포화상태에 놓인 함부르크 도심의 기능을 보완 및 충족 시키고자 하였다.Ⅲ. 결론자연보호와 인간의 발전을 함께 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함부르크는 깃털계획을 지침으로 불필요한 확장을 억제하고 Biotope(도시생태현황지도)제작을 통해 생태적 특성을 활용하여 친환경개발을 하는 등 많력은 우리나라와 같이 생태도시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에게 있어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전 세계에서 인간의 개발은 계속 될 것이기에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질 것이며 그 둘의 조화를 이루는 해결방안인 생태도시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더욱 부각 될 것이다.Ⅳ. 조사를 통해 느낀 점자연보존 보다는 인간을 위한 개발을 많이 하는 대도시에서 살고 있기에 생태도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의 함부르크를 조사하면서 생태도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함부르크가 다양한 방법과 계획들을 통해 발전해 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특히 하펜시티를 조사하면서 도시 개발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존할 수 있게 도와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 개발과 환경 보존을 함께할 수 있는 생태도시의 개발이 증가된 전세계의 미래가 기대 된다.두산백과사전 두피디아 Hyperlink "http://www.doopedia.co.kr/" www.doopedia.co.kr – 표지그림첨부 Hyperlink "http://blog.naver.com/energyplanet/220548785239" http://blog.naver.com/energyplanet/220548785239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Hyperlink "http://ecoroko.tistory.com/224" http://ecoroko.tistory.com/224 유럽의 환경수도, 함부르크(Hamburg) Hyperlink "http://dtong.tistory.com/9" http://dtong.tistory.com/9 > [북유럽의 여름] 독일 함부르크 – 함부르크의 녹지공간과 친수공간 생태도시 구축을 위한 계획 특성에 관한 연구 –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Hyperlink "file:///C:/Users/cslmh/Desktop/kieaet_201208_003.pdf" file:///C:/Users/cslmh/Desktop/kieaet_201208_003.pdf< 그림 3 >사.com
슈바이처의 생애제출일자교과목명 ∙ 담당교수명학과 ∙ 학년학번제출자- 목차 –Ⅰ. 서론Ⅱ. 본론슈바이처의 생애와 연보슈바이처에 대한 일화들슈바이처의 활동신학 활동음악 활동아프리카에서의 의료 활동슈바이처 명언슈바이처 저서Ⅲ. 결론Ⅰ. 서론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인류애를 실천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의학계를 빛낸 인물인 슈바이처이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인물인 슈바이처는 단지 사상만을 내세운 인물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가 의사, 음악가, 철학자, 개신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로서 한평생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그의 생애와 활동, 명언 등을 통해 슈바이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슈바이처의 생애와 연보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875년 1월 14일 알자스 지방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루트비히 슈바이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영토분쟁이 일어나 양국의 인종과 문화와 언어가 공존했다. 이 지역은 슈바이처가 출생할 당시에는 독일령으로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었으나 제 1차 세계대전 후 알자스가 프랑스령이 되었기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 연주에 뛰어났으며 그가 다니던 권스바흐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1893년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파리와 베를린에서 칸트의 종교 철학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5년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프랑스 선교단의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서른 살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서른부터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자’라고 결심하고 모교 의학부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1913년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 해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랑바레네에 정착하여 의료 봉사활동을리카 생활을 회상하며 쓴 책인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1921년)를 출판, 강연하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그의 의료 봉사활동이 주목 받게 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그는 1924년 다시 랑바레네로 가서 활동을 재개하였고, 어려움 끝에 큰 병원을 설립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전도와 치료에 전념하였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노벨상의 상금으로 나환자 촌을 세웠다. 1960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가 독립하여 가봉 공화국이 되었으나, 흑인들의 슈바이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은 변화가 없어 새로 창설된 적도성십자 훈장으로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슈바이처는 90세의 생일이 지나고 건강이 나빠져 1965년 9월 4일 랑바레네에서 사망했다.슈바이처의 연보를 간단하게 로 확인할 수 있다. 슈바이처의 연보출생 1875.1.14 ~ 사망 1965.9.41875년1월 14일 프랑스 알자스 카이저스베르크에서 출생.1894년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1900년신학박사 학위를 취득.1905년≪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발표.1913년의학박사 학위를 취득.1914년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메리카(현재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의료봉사를 시작.1917년제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독일로 송환.1921년≪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출판.1924년다시 랑바레네로 가서 의료봉사를 재개.1928년괴테상 수상.1952년노벨 평화상 수상.1965년9월 4일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사망.슈바이처의 생애에 관련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슈바이처 부부 일가 랑바레네의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슈바이처슈바이처에 대한 일화들슈바이처가 195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갈 때에 일어난 일이다. 슈바이처를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기차 안의 특등칸을 뒤졌지만 그는 없었다. 그래서 기자들 묻자 그는“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는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어린 시절, 슈바이처와의 싸움에 진 친구가“나도 너처럼 매일 고기 스프를 먹었다면 살이 찌고 힘이 세져서 너에게 지지 않았을 거야”라고 한 말에 큰 충격을 받고 기름진 음식과 비싼 옷을 멀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슈바이처의 활동신학 활동1893년에 슈바이처는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 들어가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예수와 바울 연구에서 나왔으며, 18세기때부터 이어진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서 연구를 심화시키는데 기여했다. 슈바이처의 대표작 ≪예수 생애 연구사≫(1906년)와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1930년)는 출간 당시‘자유주의 신학자’의 작품으로 오늘날에는 현대 신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음악 활동슈바이처는 어릴 때부터 오르간을 배워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1906년 파리의 바흐 협회 설립에 협력하고, 그곳에서 오르간 연주자를 겸하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봉사를 위해 기금 마련을 위해서 유럽순회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으며, 소니음반을 통해 바흐의 푸가 등을 음반녹음 하였다.아프리카에서의 의료 활동1913년 4월에 슈바이처 부부는 선교지인 랑바레네에 도착했다. 백인 의사(훗날 사람들은 백인 의사(훗날 사람들은 슈바이처를‘오강가’즉‘주술사’라고 불렀다)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멀리서부터 환자들이 하루 수십 명씩 찾아왔는데, 병원 건물이 미완성 상태라서 닭장을 임시 진료실로 사용했다. 슈바이처 부부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어느 정도 구색과 규모를 갖춘 병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6년간 머물다가1924년에 슈바이처는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병원 업무에 필수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부인은 건강 악화로 고향에 남았지만, 다른 의사와 간호사 등이 동행했다. 슈바이처는 1913년부터 1965년까지 52년 동안 13차례에 걸쳐서 아프리카에 머물렀는데,수 있다. 성실성이란 정신생활의 기본이다. 성실성이 튼튼히 자리하는 곳에 평온이 깃든다. 평온은 성실성의 깃발이다.- 인간의 미래는 인간의 마음에 있다.- 모든 환자의 내면에는 자신만의 의사가 있다.- 원자력 전쟁에서는 승자가 없다. 있는 것은 패자뿐이다.- 성공의 커다란 비결은 절대 지치지 않는 인간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이란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의 정신이 죽어 있는 삶을 이른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한 사람이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는 아니다. 행복이 성공의 열쇠이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중요한 순간에 타인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생명의 외경 윤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과 그들이 운명에 관심을 두고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으로서 봉사하라고 요구한다.-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 가운데에서 인간의 진리가 발견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야말로 이 세상의 아무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부이다.- 낙천주의자는 모든 장소에서 청신호밖에는 보지 않는 사람이다. 비관주의자는 붉은 정지신호밖에는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현명한 사람이란 색맹을 말한다.-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은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생생한 진리는 인간 사색에 의하여 산출된 것뿐이다. 사색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동료를 위하여 잠시라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해도 당신은 남들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돈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자존산할 수 없다. 우리는 떨어지는 물방울에서는 힘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위틈으로 들어가서 얼어붙는다면 그것은 바위를 파괴한다. 물은 증기가 되면 가장 강한 엔진들의 피스톤을 움직인다. 이처럼 아이디어 속에는 막강한 힘이 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슈바이처의 저서1905년 ≪음악가ㆍ시인 요한제바스티안 바흐≫1906년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법과 오르간 음악≫1921년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1931년 ≪나의 생애와 사상≫ – 자서전사도 바울로의 신비현셰계의 평화 문제바흐의 오르간 작품하늘의 축복Ⅲ. 결론필자는 해외인물 중에서 슈바이처를 존경한다. 그 이유는 슈바이처의 생애를 본받고 싶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 자신의 생애를 바친 용기 있고 헌신적인 인물이었고, 또한 의사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한 분이셨다.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슈바이처처럼 헌신을 다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의 모습을 닮아 가고 싶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지위와 돈을 포기하며 오로지 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던 슈바이처의 생애를 조사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필자는 그의 봉사정신을 본받아 헌신적인 간호사가 될 것이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슈바이처 지음, 지경자 옮김, ≪나의 생애와 사상(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1990년, 홍신문화사네이버캐스트> 인물과 역사▼ > 인물세계사 ▼ > 알베르트 슈바이처네이버 지식백과 인명사전네이버 위키백과 Hyperlink "http://gdlsg.tistory.com/1318" h네
Gloomy Sunday 비평문제출일자 :교과목명담당교수명학과 ∙ 학번제출자글루미 선데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TV서프라이즈를 통해서였다. 그 당시에는 노래를 통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놀라웠을 뿐 다른 것들은 크게 생각하기 못했다. 그러나 비평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져 예전과는 다른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시대 배경이다. 영화에서 등장한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공존하는 헝가리에서 독일이라는 폭력 앞에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시기였는데 글루미 선데이의 노래에 그 슬픔이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고 부다페스트에 독일군이 되어 돌아온 한스는 자기가 가진 영향력으로 세 사람의 공간을 너무도 쉽게 넘나들었다. 자보는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았던 부엌을 내주기도 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독일군에게 경멸 당하기도 한다. 안드라스의 피아노를 멋대로 만지고, 타인이 있을 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던 일로나는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불렀고, 유대인인 자보가 잡혀갔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한스에게 몸을 바치기도 한다. 이처럼 세 사람과 독일군 한스는 그 시대를 닮아있었다. 영화에서는 비극적인 시대배경을 사랑으로 숨겨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은밀한 비밀처럼 말이다. 나치로부터 고통 받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억압받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다 문득 유대인들이 다른 나라를 억압했던 적은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유대인은 독일에 의해 학살당했던 슬픔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똑같이 학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군으로부터 대학살을 당했을 때 고문당했던 방법을 똑같이 이용하면서 말이다. 어느 나라건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만 자신들이 당한 것만을 억울하고 비통해 하지 말고 가해자였을 때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독일로부터 피해를 받기만 한 유대인이 아닌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통해 양측의 역사를 공평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Hyperlink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50224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502240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사랑하는 관계이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만들어가는 삼각 로맨스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육체를 향한 갈망이나 마음을 사이에 둔 질투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 되어있지 않았다. 일로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자보에게 동의를 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싫으면 떠나가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보와의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드라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자보에게 충분히 미안해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드라스와 사랑에 빠지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연인관계에 있어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끝맺음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셋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 이였다. 자보가 시장상인에게 감자를 사고 있었는데 그 가격을 20에서 10으로 깎게 된다. 자보와 안드라스가 일로나를 반씩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비유한 것 같았다. 과연 두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상당히 의문스러웠지만 셋의 관계는 비교적 유지가 잘 되었다. 일로나와의 사랑을 반쪽씩만 가진 두 남자가 서로 간의 우정을 통해 나머지 절반을 채워가는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일로나와의 사랑에서도 각자 영역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로나는 안드라스도 사랑하지만 자보에 한해서만 욕조에서 함께 목욕하였기 때문이다.세 번째로 한스에 관해서 주목했다. 한스란 인물은 영화에서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였다. 초반부에 나왔을 때는 서툴고 어리숙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독한 사람으로 변하였다. 일로나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했을 때 거절당하고 물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 물에 빠지기 전 한스와 자보가 대화를 나누었다. 한스가 말한 글루미 선데이의 느낌은 마치 듣고 싶지 않은 얘길 해주는 느낌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실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그가 죽고 싶다는 마음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동기가 되어주는 노래였던 것 같다. 한스가 물에 빠지고 나서 자보가 그를 구해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자보는 반대로 한스에 의해서 죽게 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다는 말이 생각났다. 처음 그를 살려주었을 때는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고 감사를 표했으면서 자신의 이득이 되는 사람만 살리고 결국에는 자보를 죽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보가 그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유대인 1000명을 살린 독일의 사업가라고 사람들에게 존경 받으며 한평생 잘 먹고 잘살았을 한스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한스와 자보의 모습을 통해 히틀러의 비화에 대해 떠올랐다. 히틀러가 하사관으로 1차 대전 중 부상당한 상태에서 영국군 병사와 조우해서 사살될 뻔했으나 영국군 병사가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만약 영국군이 히틀러를 사살했다면 9400만명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를 낸 2차 대전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비윤리적인 생각이 들었다. 과격히 표현하자면 한스와 히틀러처럼 죽었어야 했던 사람이 살아나 세상에 해를 끼치고 가는 것이 화가 났다. 자보로 인해 새로이 살게 되었다면 감사하며 은헤를 갚고 살지 못할망정 오히려 죽음으로 몰고 갔던 한스가 미웠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에는 반전이 숨어있었다는 사실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일로나가 그를 죽이는 최고의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한스가 죽고 나서 부엌에서 일로나와 그의 아들의 모습이 나온다. 예전 일로나의 생일 때 생일 선물로 자보가 파란색의 액세서리를 선물했는데 설거지를 하는 일로나의 머리에 파란색의 액세서리가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아들의 아버지가 자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드라스의 글루미 선데이와 자보의 아들, 일로나가 함께 한스에게 복수를 한 것 같아 통쾌했다.영화를 통해서 글루미 선데이가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었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평생 잊지 못할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