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Aviation1. 서론세계의 항공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수월하게 알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욱 짧은 우리 나라의 항공에 대한 역사는 그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소홀해 지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항공 종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항공의 역사는 기본적인 교양이 되어야 하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항공 분야는 항공기 제작분야와 항공기 수송분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항공기 제작분야 보다는 항공기 수송분야에 중점을 두어 조사하였으며 우리 나라 항공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위인들의 업적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2. 우리 나라 항공의 역사aviation 이나 aviator 의 어원은 프랑스어이고 1880년 중반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이후 제 1차 세계대전까지 사용되지 않았다. 항공 역사의 시작은 라이트형제가 세계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1903년 12월 17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 볼 때 세계 항공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가 상당히 짧다고 할 수 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로 비행에 성공했을 당시, 우리의 국내 사정은 국가가 흥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고, 이 때에는 근대 과학 문명에 어두운 시대였다. 우리 나라 상공에 처음으로 비행기가 나타난 것은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후 10년이 지난 1913년인데, 일본 해군 중위인 나라하라가 50마력의 기관을 갖춘 비행기를 타고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공개 비행을 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당시의 비행은 지금 보면 상당히 유치한 수준이었으나 비행기를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는 큰 놀라움을 주었을 것이다.조선시대의 비차그렇다면 1913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비행기가 전혀 날지 않았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는 커녕 그와 비슷한 것 조차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게 6명이 있다.독립운동 시대의 항공 역사1919년 3?1독립운동 등 당시 국내외 상황에 고무된 미국의 동포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서 여러 방안을 모색했다. 1920년에는 캘리포니아의 북쪽 윌로스에 사관 양성을 위한 군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던 김종림의 지원으로 연습용 비행기 3대를 사들이고 미국인 비행사를 고용해 농장 한 쪽에 활주로까지 만들었다. 이 비행기에는 태극 마크와 함께 ‘조선항공대’를 의미하는 KAC 라는 표지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 서부지역에 몰아 닥친 풍수해로 인해 자금을 대던 동포들의 형편이 어렵게 돼 해체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비행기를 군사와 선전에 이용할 것을 구상하게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0년 1월에 기록한 일기를 보면, 비행기와 조종사를 구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인들과 접촉한 내용들이 상세하게 언급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은 재정난 등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 군벌 휘하에 있는 여러 비행학교에 우리 젊은이들을 추천해 비행사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여러 군벌들이 각기 항공학교를 설립, 공군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우리 청년들은 유력 인사의 추천만 있으면 이 항공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임시정부의 역할이 컸으며, 뒷날 광복군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우리 나라 비행의 선구자, 안창남우리 나라 상공에서 최초로 비행한 한국인 비행사는 안창남이다. 그는 1917년에 개최된 곡예 비행 대회에서 스미스의 곡예 비행을 본 후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하였으며 1921년 22세의 나이로 일본 항공국에서 실시한 제1회 비행사면허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하고 그 이듬해 12월 경성악대(京城樂隊)의 우렁찬 환영의 음악과 5만 군중의 환호성을 받으며 여의도 상공에서 쌍엽 비행을 한 최초의 한국인 파일럿이다. 그가 곡예 비행을 마친 5년에는 대한민국항공사(KNA)를 직접 설립, 사장이 되었다. 민간항공의 개척은 우리 나라 항공사에 최초의 민간항공 개발이라는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자신도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이 사업을 키워 나감으로써 일등 비행사로부터 탁월한 항공 사업가로 전환의 계기를 맞은 것이다. 1953년에는 비행시간 3천 시간을 돌파해 미국 민간항공연맹으로부터 무사고 비행기록 표창을 받은 최초의 동양인이 되었다. 1956년에는 처음으로 한미(韓美)항공협정 체결을 성공시켜 미국 보잉사로부터 1백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내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KNA는 보람과 함께 그에게 많은 출혈과 희생을 요구했다. 1958년 2월 16일 돌이킬 수 없는 비운이 닥치고 말았다. KNA소속 여객기 창랑호가 북한간첩들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속초에서 여객기가 불시착하는 등 잇달은 사고와 노선 결항이 잦아 KNA는 여객을 외국항공에 빼앗기는 등 중대한 타격을 받고 마침내 파산 직전에 몰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나라 항공업계에 생애를 바쳐 초석을 마련한 개척자였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정계에도 투신하여 민의원을 지내기도 하였으나 KNA의 도산과 4?19, 5?16등 정치적 변혁이 휘몰아치면서 4대 민의원 낙선등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결국 그는 1962년 여의도 공항을 눈앞에 둔 한강하류에서 60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한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 박경원최초의 한국인 여자 파일럿은 박경원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지 22 년만인 1926년 12월 28일 가마다(蒲田) 일본 비행학교에서 비행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동양권에서도 최초로 여자 파일럿이 된 박경원은 당시로선 보기 드문 영광과 명성을 한 몸에 듬뿍 안은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박경원은 1901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 여자로서의 매력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손등이 솥뚜에 학업을 포기하고 박경원은 파일럿의 꿈에 끝까지 도전하여 많은 화제를 뿌렸었다. 박경원은 마침내 1926년 12월 28일 2년제 가마다 일본 비행학교 졸업과 동시에 3등 비행사 자격을 얻었다. 박경원의 비행사 자격 취득은 개인의 영광이며 한국인 최초의 여자 파일럿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여자 파일럿에 대해서는 박경원보다는 1925년 3월에 중국 운남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여자 장교가 되었던 권기옥(權基玉)을 내세우는 주장도 있으나 권기옥은 어디까지나 중국 군인 신분으로 그 군대의 훈련 과정의 한 분야인 비행과정을 마쳤기 때문에 비행사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권기옥은 한국인 최초의 여자 비행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인 최초의 공군 여장교로 기록하는 것이 더 빛나리라 본다. 3등 비행사 자격을 받은 박경원은 일년 반쯤 지나서 2등 비행사 자격을 또 받았다. 그러나 1933년 모국방문 비행차 대구로 오던 중 일본 상공에서 박경원의 비행기가 심한 안개로 추락, 우리나라 항공계를 위하여 무한한 희망과 기대를 걸게 했던 박경원, 서른 셋이라는 나이에 아까운 청춘이 희생되고 말았다.한국 최초의 비행장, 여의도 비행장일제시대 때 우리 나라의 항공 산업은 당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거의 모든 산업이 일본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군국주의 확대와 대륙 침략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했었다. 일제는 유사시 군사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비행장이 1916년 10월 건설된 여의도 비행장이었다.일제 시대의 여의도 비행장은 간이 비행장으로 출발했으나 1932년에 이르러 활주로, 항공표지, 야간조명 등이 설치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민간항공인 KNA의 최초 비행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비행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군사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 때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대한 국민 항공 공사(Korea National Airlines : KNA)앞okker)사의 F-27 항공기 2대를 1964년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프로펠러기로는 외국 항공사와 경쟁이 될 수 없었다대한 항공 공사의 민영화-오늘날의 대한 항공 탄생정부의 국영 항공 공사 설립 이후 한국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진입하였으나 국영 대한 항공 공사의 경영부실로 인해 정부는 민영화를 결정하였고 당시 운송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한진상사㈜가 그 운영권을 인수, 주식회사 대한항공으로 출발하였다. 그 당시 자본금 총액은 14억 5000천만원, 직원 수는 514명이었다.대한 항공의 역사대한 항공은 1972년에 4.19 태평양 노선을 개발함으로서 전 세계 대륙 진출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민영화 당시의 국제선은 오직 일본 노선에 취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한 항공은 초기의 영업 전략을 국제화에 두고 1971년 4월 태평양 횡단 미주 화물 노선을 개설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19일에는 미주여객노선 취항도 실현하였다. 이로써 당시 미주이민 교포들의 숙원사업이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민 항공의 제트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그 후 1977년 뉴욕진출을 위한 한미항공협정 회담을 시작한 이래 2년여의 각고 끝에 1979년 3월 29일 서울~뉴욕 노선을 취항하는 쾌거를 이뤄 세계일주 노선의 실현을 향한 디딤돌을 마련했다. 1975년에는 3.14 서울~파리 여객노선 취항으로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당시 유럽시장은 전세계 수출품의 40%이상과 세계 항공화물의 70%을 점유하는 거대 시장이었다. 1975년 3월 서울~파리 노선 취항과 이듬해에 취리히 노선을 추가하면서 유럽시장 진출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5.21 서울~ 바레인 노선을 취항하여 중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우리 나라의 해외건설 용역 수출은 1976년 중동 진출로 본격화되었다. 이에 건설 사업 인력의 중동진출이 급격히 늘어나며 대한 항공도 정기 노선을 개설하였다. 곧이어 사우디, 쿠웨이트 노선진출로 이어지면서 중동노선의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었고 당시 여객사업다.
- 비오는 날 -‘비오는 날’이란 손창섭의 소설을 접하고 나서 처음으로 받는 느낌은 글 전체에서 풍겨오는 음울한 분위기일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1.4후퇴 때 동생 동옥과 함께 월남하는 동욱, 소아마비로 이상 성격이 된 동욱의 동생이며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지만 오빠가 가출하자 떠나버리는 동옥, 이글의 화자이며 동욱의 친구이고 월남해서 잡화를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는 원구라는 인물들을 통해 손창섭은 전후상황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그 음울한 분위기 안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元求)의 마음은 강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東旭)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에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이 우뉘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접어 있는 인생들이었다.글의 서두만 보더라도 이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비’라는 것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비’라는 것이 원구가 동욱 오뉘를 찾아갈때마다 내리며 소설이 끝날 때 까지 계속 내린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앞이 캄캄하게 막혀 있음을 암시한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으니 소설 속의 모든 사태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 부재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절망적이고 무의미한 것을 말한다.또한 이 소설에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대목은 외부 세계에 적대감을 가진 채 철저히 불신으로 살아가던 동옥을 향한 원구의 관심이다. 처음 친구 동욱을 찾아 이 폐가를 방문한 원구에게 보여지던 동옥의 태도는 적대감과 무관심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이러한 동옥에게 원구는 불쾌감을 갖는다. 그러나 동옥의 적대감이 그녀의 신체적 불구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 원구는 그녀에게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보낸다. 자기의 관심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 동옥의 태도에 흥미와 기쁨을 느낀다.정말 동옥의 태도는 원구가 찾아가는 회수에 따라 현저히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동옥은 원구를 보자 얼굴을 붉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원구를 보자 동옥은 해죽이 웃어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울한 미소였다. 찾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동옥의 태도가 원구에게는 꽤 반가운 것이었다. 인사불성에 빠졌던 환자가 제 정신으로 돌아올 때처럼 고마웠다. 첫 번째 불렀을 때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없던 환자가, 두 번째 부르자 눈을 간신이 떴고, 세 번째 불렀을 때는 제법 완전히 눈을 떠서 좌우를 둘러보다가 물 좀 하고 입을 열었을 경우와 같은 반가움을, 원구는 동옥에게서 경험하는 것이었다.위의 내용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아주 작지만 화해가 싹트기 시작 한다는 인간성 회복의 조짐으로도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중한 믿음은 곧 깨져버리고 만다. 초상화를 팔아서 어렵게 모은 돈을 집주인이 사기를 쳐 달아나고 이에 참지 못한 동욱은 불구의 여동생을 버려 둔 채 군대에 입대해 버리고 동옥조차 원구가 가보지 못한 사이에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만다. 작품 끝에 새로온 집주인이 동옥을 사창가에 팔아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나오는데 그것으로써 인간간의 화해는 깨져버리고 만다.
물류관리 혁신 전략- 목 차 -제 1 장. 서 론 ??????????????????????? 1제 1 절. 물류관리 혁신전략의 목적 ??????????????? 1제 2 절. 보고서의 작성방법 및 구성 ??????????????? 2제 2 장.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 3제 1 절. BPR의 등장 배경과 도입의 필요성 ???????????? 3제 2 절. BPR의 정의 ?????????????????????? 4제 3 절. BPR의 목표 ?????????????????????? 5제 4 절. BPR의 특징 ?????????????????????? 6제 5 절. BPR의 조직 혁신과의 관계 ??????????????? 7제 6 절. 물류적 관점에서의 리엔지니어링 ????????????? 8제 7 절. BPR의 추진 시 문제점 ????????????????? 9제 8 절. BPR의 성공요소 ???????????????????? 11제 3 장. 시간기준 물류 혁신전략 ????????????? 14제 1 절. 시간의 중요성 ????????????????????? 14제 2 절. 리드타임의 개념 ???????????????????? 16제 3 절. 신속반응(Quick Response : QR) ????????????? 19제 4 절. Just In Time과 물류 ?????????????????? 23제 5 절. 효율적 소비자대응(ECR:Efficient Consumer Response) ??? 25제 4 장. u-SCM (Ubiquitous Supply Chain Management)??? 28제 1 절.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 28제 2 절. 공급망관리 (SCM : Supply Chain Management) ?????? 31제 3 절. 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 33제 4 절. 공급망관리에서의 유비쿼터표인 고객만족 내지 가치창출(價値創出)의 관점에서 물류활동의 핵심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여 경쟁우위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물류부문에서 리엔지니어링 핵심요인은 다음과 같다.고객만족의 향상고객요구의 다양화·개성화·복합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물류서비스의 질을 향상, 리드 타임을 단축, 적정 재고수준의 유지, 최소의 물류비용 등에 집중한다.물류업무의 프로세스고객요구의 관점에서 조직간·기업간 업무의 흐름을 고찰하여 종래의 직능별·사업별 계층조직을 고객 지향적으로 횡단적 조직의 재설계가 필요하다.제로베이스에서 재구축기업의 외부환경 변화에 적절히 적응하도록 기존관습이나 전제를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고객 지향적으로 물류업무의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경쟁우위 확보물류혁신을 실시하여 현재 약화된 물류업무의 체질과 물류경쟁력에 의한 국제적인 차원에서 강화시켜 경쟁우위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2. 물류 리엔지니어링의 대상과 범위부문 내 리엔지니어링과 물류비 전략부문 내(functional base) 리엔지니어링은 1개 부문에서 하위 기능별 업무의 흐름을 중심으로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류부문의 경우 제품의 포장 - 제품의 창고보관 - 출고지시 - 제품의 상차 및 운송 - 제품의 하차 및 인도 등 하위 기능별 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부문 간 리엔지니어링과 물류비 전략부문 간(cross functional level) 리엔지니어링은 기업 내 여러 부문 간에서 직능별로 복수업무의 흐름을 대상으로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체의 경우 제품의 기획 - 부품의 조달물류 - 생산물류 - 제품의 영업 및 판매물류와 같은 기능별 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기업 내 리엔지니어링과 물류비 전략기업 내(enterprise base) 리엔지니어링은 1개 기업의 모든 사업전체에 걸친 업무의 흐름을 중심으로 프로세스를 재구축하론이고 지속적인 개선도 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Supply Chain전체의 성과향상과 리드타임 단축을 위해 필요한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2. 리드타임 갭(lead time gap)거의 모든 조직은 원자재를 조달하고 제품을 제조한 후, 고객에게 배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고객이 그 제품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보다 길다는 기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차이가 바로 리드타임의 갭이다. 고객의 주문 사이클은 주문을 내고 상품이 도착할 때가지 고객이 기꺼이 기다리려고 하는 시간의 길이다. 이 시간이 바로 주문충족에 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기간이 몇 달이 될 수도 있고, 또 몇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리드타임(Lead time gap)시장의 경쟁상황과 제품의 특성에 따라 고객이 기꺼이 기다리려고 하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예컨대 특별한 사양을 부착한 차량의 인도까지는 몇 주를 기꺼이 기다리고자 하는 고객도 새로운 타이어를 위해서는 단 몇 시간도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전통적인 조직형태에서는 물류 리드타임과 고객의 주문 사이클 (즉, 고객의 배달 기대시간)의 차이를 메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재고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대개 예측을 포함한다.불행히도 기업들은 아무리 정교한 예측기겁을 동원한다 해도, 그 정확도는 언제나 오차를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예측에서의 실수는 결국 과잉재고나, 재고부족의 문제로 귀착된다.만약 물류리드타임과 고객이 요구하는 주문 사이클을 완전히 일치시킬 수 있는 기업이 존재한다면, 그런 기업은 예측이 필요 없고, 재고 또한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이 존재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결국, 물류관리의 과제는 이 두 가지 리드타임의 차이를 축소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물류 리드타임을 단축시키고, 고객 주문 사이클을 길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연쇄 전체의 리드 타임이나 원가의 절감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POS 정보나 수?발주정보를 거래처 기업 간뿐만 아니라 공급연쇄상의 전체 기업으로 공유화해서 공급연쇄 전체의 효율화를 지향하고 있다.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4가지 전략과 그 목표를 차례로 살펴보면 첫째, 점포에서의 효율적 품목구비는 재고의 생산성과 점포 공간사용의 최적화가 목표이며 두 번째, 효율적 재고보충은 재고보충 시스템의 시간과 원가의 최적화를 위한 것이다. 세 번째는 효율적 판매촉진인데 이것은 유통과 소비자에 대한 판매촉진 시스템의 전체 효율을 위한 것이며, 네 번째 전략인 효율적 상품도입은 신상품 개발효율과 도입 효과의 최대화가 목표이다(Kurt Salmon Associates, 1993, p. 4)이 4가지 전략을 위해서는 재고체류의 삭감을 목적으로한 통과형 센터를 사용한 유닛 로드 시스템인 크로스 도킹(cross docking), 그리고 POS 데이터에 기초한 공급업자(vendor, 주로 메이커)에 의한 연속재고보충방식(CRP)등의 로지스틱스가 실시된다.2. ECR의 프로세스지금까지는 식품업계에서 ECR의 개발과 실행이 이루어졌으나 그 특성상 다양한 산업과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CSC(computer science corporation)에 의하면 ECR성공의 열쇠는 회계, 마케팅, 또는 제조와 같은 전통적인 관리의 기능영역보다는 유통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은 제조업체와 소매점 모두를 위한 사업전략의 핵심요소를 나타내고 있으며, ECR의 포괄적 실시에 있어서 통합되어야만 하는 7가지 기본 능력을 나열하고 있다. ECR : 각 개별 파트너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운용가용능력먼저 EDI, 지속적 보충, 컴퓨터지원 주문, 흐름을 통한 유통으로 구성되는 4가지는 보충 로지스틱스에 관련되는 4가지 실무방향과 동일하다. 활동기준원가계산(ABC)은 기업들이 로지스틱스 프로세스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과업에 대한 원가/가치 관계를 평가하고,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제거하거나 재설계하 리더에서 방사된 전자기장이 투과함으로 리더기는 Tag와 직접 접속하지 않고 데이터를 전송 받을 수가 있으며, RFID 리더기의 형태는 크게 고정형과 이동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고정형은 출입구나 계산대, 생산라인 등에 고정되어 Tag의 정보를 받고, 이동형은 Gun타입이나 PDA 형으로 이동이 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안테나RFID 안테나는 무선주파수를 이용하여 Tag의 데이터를 읽고 쓰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이다. RFID 안테나는 다양한 사이즈와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동선의 두께, 감는 정도, 지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RFID 안테나는 그 목적과 조건에 맞는 사이즈와 모양으로 제작되는데 일반적으로 수신 거리가 길수록 안테나의 크기도 커져 고가격을 형성하게 된다.주파수저주파고주파극초단파마이크로파125.134㎑13.56㎒433.92㎒860~960㎒2.45㎓인식거리60㎝미만60㎝까지~50~100m~3.5~10m~1m이내일반특성?비교적 고가?환경에 의한성능저하 거의 없음?저주파보다 저가?짧은 인식 거리와 대중 태그인식이 필요한 응용분야에 적합?긴 인식거리?실시간 추적및 컨테이너내부습도, 충격 등 환경센싱?IC기술발달로가장 저가로생산 가능?다중 태그 인식 거리와 성능이 가장뛰어남?900대역 태그와유사한 특성?환경에 대한 영향을 가장 많이받음동작방식수동형수동형능동형능동/수동형능동/수동형적용분야?공정자동화?출입?통제/보안?동물관리?수화물관리?대여 물품 관리?교통카드?출입통제/보안?컨테이너 관리?실시간 위치추적?공급망관리?자동통행료징수?위조방지인식속도저속 ←… … → 고속환경영향강인 ←… … → 민감태그크기대형 ←… … → 소형RFID의 주파수 대역별 특성 비교4. RFID의 적용분야RFID는 그 특성에 따라 활용범위도 광범위하며 공정관리,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운송, 신용카드 등의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먼저, 공정관리 면을 살펴보면 공정별 수행 현황에 대한 정보를 쓰고, 불량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공정라인 상에서 있다.
역사스페셜 -수레편- 을 보고요즘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의 역사로 쓸려고 하는 이 때에 고구려에 대한 역사 스페셜을 보게 되어서 참 기뻤다. 그리고 처음에는 고구려의 수레가 왜 우리 교통학과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 했지만 보고나니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느낀 점 또한 많이 있었다.그 당시 수레는 오늘날의 자동차와 마찬가지였다.신분차이에 의한 수레의 크기와 장식이 모두 달랐고, 벽화속의 수레가 용도에 따라 사람이 타는 것과 짐을 싣는 것 등의 형태가 모두 다양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수레는 빈번히 사용되었고 고구려 사회의 빼 놓을 수 없는 문화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수레는 고구려인의 필수품이자 재산목록 1호였던 것이다.고대에 수레는 선진화된 문화였다. 단순히 수레만을 가지고는 큰 의미를 가질 순 없다. 하지만 수레가 가지고 있는 교통, 통신, 수송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고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통신과 수송 또한 발달하지 않았다. 수레가 싣고 다니는 사람과 짐은 통신과 수송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길은 교통 또한 발달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고대시대의 수레와 수레가 다니기 위한 길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이러한 수레를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는 그 당시의 막강한 군사력, 막강한 경제력, 대단한 물동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동북아의 굳게 자리 잡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지원은 그가 중국에 갔다 와서 쓴 열하일기에서 수레의 미사용으로 조선이 흥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 고구려는 빈번한 수레의 사용으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는 반대되는 내용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수레를 사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나라의 국가적 흥망은 그 나라의 교통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