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대학교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정보사회와 디지털문화 레포트학 번 :성 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공통 ) 형○ 과 제 명 : 컴퓨터에서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과 다음, 네이버 등에 접속한 후 일정한검색어로 검색을 해 보시오. 그 후 여러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에서 어떤차이가 나타나는지를 서술하고 왜 그런 차이가 발생 했을지에 대해분석해 보시오.- 이하 과제 작성서 론포털의 정의 및 특징포털사이트는 인터넷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최초로 들어가는 사이트를 말하며, 현재는 의미가 더욱 확장이 되어 정보 검색 서비스나 커뮤니티와 같이 사용자가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터넷 비즈니스를 펼쳐 나갈 수 있는 사이트를 통칭하는 말이다.가상공간(Cyber space)에서 커뮤니티를 형성시켜 더 많은 사용자와 홈페이지 사용량을 확보할 경우, 광고수입과 사용자 정보를 활용한 마케팅 수입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이며, 이 때문에 전 세계 주요 인터넷서비스 및 컨텐츠 제공업자들은 자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최대 포털사이트로 키우는데 전력하고 있다.차츰,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와 수익 모델의 다변화로 게임, 메일, 검색, 커뮤니티, 뉴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문의 의미가 아닌 다양한 정보와 열린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포털 사이트는 특징에 따라 3단계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가 있다.제1세대 포털 : 정보 검색 위주의 서비스제2세대 포털 : 각종 서비스가 단순 부가, 확장되는 서비스제3세대 포털 :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며, 각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편리한 인터넷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서비스이러한 포털사이트는 현재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이 급속되어 보급되어 우리의 일상생황에서 포털사이트의 영향력은 날이 갈소록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포피빈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인터넷 전문 기업이다.이런, 네이버의 비약적인 성장은 1996년 6월 네이버컴(주)설립이 후 네이버 포털사이트를 운영 한 후 네이버 지식IN 서비스의 성공에서 그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네이버의 지식 IN은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이용자들끼리 궁금한 사항을 묻고 답할 수 있는 것으로 포털사이트의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또한 지금 현재의 네이버는 통합검색 지식검색 같은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고 성공시키면서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으며, 카페와 차별화된 블로그, 그리고 다음 카페의 아성을 뛰어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뉴스 또한 주요 일간지(조?중?동 포함, 스포츠 신문)의 신문기사를 볼 수 있는 창을 메인에 배치하여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또한, 검색은 네이버라는 인식을 만들어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포털 사이트의 제왕적 존재라 할 수 있겠다.이러한 네이버의 역사 등을 백과전을 인용하여 보면, 1999년 6월 29일 네이버컴(주)으로 설립한 뒤, 2000년 7월 (주)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주)원큐를 흡수합병하였고, 2001년 엔에이치엔(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2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하였으며, 2003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주)솔루션홀딩스, 모바일 멀티미디어기술 전문개발업체 (주)아이브이엔테크놀로지를 인수하였고. (주)두산 세계대백과 '엔싸이버'와 지식 데이터베이스 공동구축에 대한 제휴를 체결하였다. 2004년 6월 중국 해홍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공동경영을 시작하였고, 11월 게임개발스튜디오인 NHN게임스, 2005년 7월 미국법인 NHN USA를 설립하였다.2006년 10월 스토리지 전문업체 데이타코러스를 인수하였고, 2008년 11월 코스닥 상장을 폐지한 후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하였다. 2009년 1월 마이크로블로크 사이트 '미투데이'를 인수하였고, 2월 여행 정보 사이트 '윙버스'를 인수하였다. 같은 해 5월 물적분할로 엔에이치아이비피(주)를 설립한 자 격이었던 다음은 1995년 2월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자본금 5000만 원, 상근 직원은 설립자인 이재웅 사장을 포함해 직원 3명이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무료로 웹메일을 쓸 수 있는 ‘한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과거 PC통신 중심이던 일반인들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이전되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온라인 쇼핑몰 ‘다음쇼핑’을 열었다. 같은 해 7월 ‘다음 금융플라자’를 열면서 증권, 보험, 부동산 등 재테크 정보를 서비스했다. 2000년 8월 국내 단일 사이트로는 처음으로 하루 페이지뷰가 1억 회를 넘었다. 2002년 1월 영화주간지 을 발간하는 미디어2.0을 인수해 영화 섹션 서비스를 강화했다. 2003년 각 언론사의 뉴스와 함께 다음이 독자적으로 뉴스를 생산해 네티즌들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다음’을 열었다. 2003년 6월 ‘다음다이렉트자동차 보험’을 설립했다. 2004년 8월 미국의 인터넷 포털 라이코스를 인수 합병하면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2004년 8월 ‘다음 플래닛’을 열었고, 2005년 2월 온켓을 인수해 마켓 플레이스 사업에 진출했다. 2006년 3월 교보문고와 제휴해 도서 전문 검색을 제공했다. 2007년 1월 동영상 통합 브랜드 ‘tv팟’, 4월 UCC 통합 섹션 ‘UCC 세상’을 열었다. 다음은 대표적인 이메일로 자리잡은 한메일 이외에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파일을 전송하고 채팅까지 즐길 수 있는 다음메신저,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 영화·드라마·게임·이종격투기 등을 제공하는 큐브(CUVE), 어린이를 위한 꿈나무, 여성을 위한 미즈넷, 여행, 운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관련 회사로 온라인 음반 쇼핑몰인 오이뮤직과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 커리어다음, 다음소프트 등이 있다.하지만, 다음의 찬란했던 역사도 네이버의 등장과 지식IN 서비스 등에서 네이버에 밀리면서 현재 시장 지배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약 15터넷 사이트 통합을 완료했다. 네이트는 설립 당시 라이코스, 넷츠고, 넓게는 SK텔레콤 가입자들까지 포함하는 포털 사이트로 출범했다. SK라는 대기업을 등에 업고 이동통신과의 연계, 기존 사이트를 인수 합병해 세력을 확장했다. 무선 인터넷을 기본으로 TTL, UTO와 같은 이동통신 사이트와 연계했다. 2003년 싸이월드를 인수 합병한 후에는 커뮤니티 기능을 추가함과 동시에 접속자 수가 증가했다. 라이코스와의 합병 전에는 포털 순위 20위권에서 맴돌다가 통합 직후 8위에 올라섰다. 합병 직전 900만 명 선을 유지한 방문자수도 2003년 말 500만 명 이상이 늘어난 1400만 명을 넘어섰다. 2009년 2월 엠파스를, 같은 해 9월 싸이월드를 각각 통합했다. 싸이월드를 통해 제공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 ‘네이트온’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현재 포털 순위 3위에 올라 있다.또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포털사이트의 개념과는 조금 상이하지만 국제적인 기업인 구글에 대해 알아보면 구글(Google)은 웹 검색, 클라우드 컴퓨팅, 광고를 주 사업 영역으로 하는 미국의 다국적 회사로 1998년에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BackRub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구글은 미국 전체 인터넷 검색의 2/3, 전 세계의 70%를 장악했다. 2008년에 구글은 자사 웹 페이지 인덱스 크기가 1조 개를 돌파했다고 발표했으며 다른 어떤 검색 엔진보다도 3배 이상 큰 인덱스를 관리한다. 2009년 초 구글에서 매일 수십억 개의 검색 결과 페이지가 방문되고, 수백억 개의 구글 광고가 노출되었다.구글의 이름은 10100을 뜻하는 구골을 잘못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매우 큰 유한수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엄청난 규모의 검색엔진을 만들겠다'는 설립자들의 목표와 맞아 떨어졌으나 구골이라는 도메인이 선점되어 있어 바뀌었다. '왓박스'(whatbox)라는 이름도 고려되었으나 포르노 사이트를 연상시키는 웻박스(watbox)와 유러에 달하는 미국 온라인 광고 시장과 540억 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온라인 광고 시장의 40%를 독식했다.구글은 PDF, 포스트스크립트,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플래시 문서들을 포함한 웹 문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외에 구글 이미지 검색, Google 뉴스 한국, 구글 뉴스그룹, 구글 웹 디렉토리, 구글 비디오, Froogle 서비스에서 이름이 변경된 상품 검색, 구글 맵, 구글 어스 등의 주요 검색 서비스가 있다.또한 검색 서비스 외에 추가적인 서비스들을 제공하는데 이에는 2004년 시작된 이메일 서비스인 Gmail와 YouTube, 피카사, Google 사전, Google 리더, iGoogle, 기업 사용자를 위해서 각종 웹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구글 앱스[1] 등이 있다.2011년 1월 4일, 모토로라 인코퍼레이티드는 휴대전화사업과 본사의사업부분이 불안정적으로 운영됨에대한 걱정과 사업부 실적의 부진으로 인해 모토로라 인코퍼레이티드의 자회사로 분리하기로 결정하었다.2011년 8월 15일, 모토로라는 더 발전적이고 공격적인 사업을 위해 새로운 모기업을 찾게되고, 대상기업이 된 구글은 인수할때 각 주당 63%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총 125억 달러(당시 한화 약 13조5천125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구글의 인수에도 불구하고, 모토로라는 여전히 기존 장치의 안드로이드 버전 업그레이드 서비스와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014년 1월 30일, 구글은 모토로라의 분리된 사업부 중 '스마트폰 제조분야'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고 레노버에게 총 29억1천만 달러(당시 한화 약 3조100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하였다.검색엔진[편집]구글 검색의 특징 중 하나는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링크를 분석하여 많이 연결된 페이지를 더 좋은 문서로 판단하는 것인데 이것을 페이지랭크(PageRank)라고 한다. 구글의 알고리즘은 접속빈도가 잦고 연관성이 높은 링크를 상위에 노출할 뿐 아니라, 신뢰성에도 가산점을 부여한다. 특정 링크의 클릭률이나 특정 링크가
방송통신대학교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한국사회 문제학 번 :성 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E ) 형○ 과 제 명 : 우리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전쟁이나 냉전 혹은 분단의 영향에대해서 기술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어떤 실천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하시오.- 이하 과제 작성서 론시대가 낳은 슬픈 역사-분단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시대의 상처 속에 남과 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된지 어느덧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민족이었던 남과 북의 공동적인 역사 인식도,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 형제의 뜨거운 눈물도 시대의 흐름 속에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하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소설가 조정래의 작품 “태백산맥”과 “한강” 등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또 다른 역사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한다. 비록 소설속의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안에 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픔은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조정래의 최신작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어르신이 있다. 6.25 전쟁 중에 잃어 버린 아들을 닮은 사람을 볼 때마다 자신의 아들과도 같이 보여 꼭 만나고야 마는 그런 어르신이 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닮은 사람마저 보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은 분명, 우리 시대의 아픈 과거가 남긴 상처가 아닐까 한다.어느덧 6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제 남과 북은 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인식조차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과, 우리나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과 그러한 것이 왜 중요한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분명, 그러한 노력이 모여 통일로 나아가는 작은 걸음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본론1분열리게 되는데 미군과 소련군 대표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비회담을 열기도 하였으며, 1946년 3월 20일 미소 공동위원회 1차 회담이 열리게 되는데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조항에 따라 제1차 회의를 열었는데 미국측 대표로는 소장 아놀드, 소련측 대표로는 중장 스티코프이었습니다. 이 때,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는 5년 동안의 신탁통치가 과도기 정치로서 요구되었으나 남한의 우익정당과 사회단체는 신탁통치를 반대하였다. 또한 1946년 5월 1일 공동성명 제7호까지 발표하였으나 아무런 결실도 없이 5월 6일부터 휴회에 들어가게 된다.그 후 1947년 5월 21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7월 신탁통치 반대투쟁 단체를 둘러싼 논란과 미국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결국 미소 공동위원회는 결렬 되며, 미국과 소련은 한국에 자기들이 유리한 정부를 세우려고 고집하다가 결국 결렬되어 남북이 정권을 수립하게 됩니다.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결의와 국민의 열망에 따라 마침내 남한에서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참정권을 행사한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하며, 이 선거에 의해 구성된 제헌 국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항 민주 공화국의 헌법을 제정한다.이어 1948년 8월 15일 제헌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하게 되며,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한다. 광복 후 3년간 미 군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후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 할 목적으로 6.25 전쟁을 일으키고 유엔군의 개입과 다시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길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유엔군 대표와 공산군 대표가 1951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2년 17일 동안 개성과 판문점에서 협상을 벌인 끝에 3조 63항의 휴전조인문에 합의 서명한다. 이렇게 남북23 평화 통일 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상호 불가침 협정 체결로 1991년 실현되었으며, 교류와 협력, 토착 인구 비례에 따른 자유 총선의 내용을 담고 있다.이어서 전두환 정부에서는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으로 1982년에 민족 통일 협의회 구성, 국민 투표로 통일 헌법 확정, 남북한 총선 실시, 통일 민주 공화국 건설이라는 통일 방안을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대남 도발로 인해 남북한의 관계가 악화되며 대남 쌀 지원과 88서울 올림픽을 앞둔 국제 정세로 인해 남북 고향 방문단 (최초 이산가족 방문), 예술단 교환본론3북한의 계층구조익히 잘 알고 있듯이 사회구조란 사회 구성원 간 상호작용 속에 드러나는 정형화된 질서를 의미한다. 사회질서는 구성원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체제 지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으며 계층제도는 사회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제도이다. 사회계층이란 물질적 혹은 상징적 보상이 특정한 기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화된 구조화된 불평드을 의미한다. 계층 개념으로 계급이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그 정의에 대한 분명한 합의는 없다.북한은 1950년대 말 전후 복구사업을 마감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주의 제도개혁을 서둘러 왔다. 그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전체 주민을 출신성분별로 조사하는 작업이었다. 이 성분 조사사업은 북한주민 전체에 대해 가족의 계급적 배경과 사회적 활동을 조사함으로써, 주민들의 정치성향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통제하기 위한 ‘북한식’ 계급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이 계급정책을 공식적으로 수립한 것은 1958년 전체 주민에 대한 성분을 조사하고, 출신성분에 따라 주민을 분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58년부터 1960년 말까지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1966년 4월부터 1967년 3월까지 주민재등록사업 등을 실시하며 꾸준히 성분 조사를 실시하였다.북한의 차별적인 성분정책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의 통제행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 가부장제가 아직도 엄격히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상당한 경우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이러한 여러 상황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봤을 때, 북한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차별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는 북한의 여성 정책이 여성을 참다운 인격체로서 사회참여를 장려하였다기보다는 노동력 착취와 체제유지의 방편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는 북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사에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지금까지, 기본적인 북한의 계층구조에 대해 알아 보았다. 그헝다면 이러한 북한 계층의 계층구조와 계층이동의 특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할 듯 싶다.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로 이동하는 현상을 계층이동이라고 한다. 수직적 이동은 계층적 지위가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이동을 지칭하며, 수평적 이동은 계층적 지위에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 지역 간 또는 직업 간 이루어지는 이동을 의미한다. 이 중 북한주민의 계층이동은 주로 수평적 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00년대 들어 시장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부분적이나마 계층이동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를 보면, 적대계층 주민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상층이동을 경험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제적 지위의 변화를 통한 계층이동이 활발하다고 결론짓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지위의 상승은 정치적 배경과 사적 연줄망, 기술 수준, 물질적 신분상승 욕구 등이 주요 요인이며, 이들 요인은 기존의 성분정책에 따라 상당히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이러한, 북한의 계층구조는 인위적이며 폐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바, 그 특징으로는 첫째, 북한의 계층은 출신성분과 ‘당성’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조화되었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은 소득,직업, 교육 수준 등 일정부분 객관적인 요소에 의하여 측정되지만규정짓는 또 하나의 특성이 될 수 있음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북한주민의 가치관과 일상생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북한의 경우 일상생활과 여가 등의 상당히 획일화되어 있으며, 일상생활의 획일화는 보다 효과적인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북한 주민의 가치관의 형성은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과 김일성의 권력 강화, 김정일 및 김정은의 권력 승계, 그리고 최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지배논리를 개발하는 한편, 정치교육을 통해 이런 논리의 전파에 주력하였다. 북한이 발전시켜온 가치관의 논리들은 크게 사회주의 혁명 논리, 사회 안정주의, 위기 극복논리로 나눌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 논리는 구체제인 봉전주의와 타도대상인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새로운 공산주의(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논리에 의하면, 봉건주의는 ‘썩어빠진 사회’이며 자본주의 사회는 불평등 착취 사회로서 혁명의 대상이 된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로서 집단적 노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하는 이상 사회로 그려지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논리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부여자라며 김일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사회정치적 생명론과 직결되며 김일성의 전체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한다.따라서, 북한주민은 김일성 일가를 정점으로 하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평등주의, 집단주의, 획일주의, 수령중심주의 가치관을 발달시켜해 했다. 이들 가치관은 북한당국이 지향하는 체제 성격에 부합한다는 의미에서 이상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북한 주민이 이런 가치관을 전적으로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당국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반면 내면적으로는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현실적 가치관을 발달시켜 왔다. 결국 북한주민의 행동양식은 이상적 가치관과 현실적 가치관 사이의 타협의 산물이며, 이런 맥락에서 북한주민의 가치관은 이중성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또한,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을
오직 두 사람의 언어, 그리고 고독에 대하여-김영하의 소설‘오직 두 사람’을 읽고소리없이 다가와 가슴을 젖시는 이슬비처럼.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을 읽고 잠시 생각해 본다.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그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던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세상에 이름 지어진 수많은 관계 속에 조금은 특별하며 낯선 관계 맺음의 이야기.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 은 규정짓기 어려운 부녀간의 정서와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그렇기에 우선,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조금은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운 부녀만이 공유하고 있는 ‘모국어적 감성’이 두 사람의 삶의 정서를 담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듯 하다.여기서 모국어란 태생적인 감성의 공유, 혹은 본능적 교감의 다른 말일 것이며, 삶의 정서를 담고 있는 언어를 공유하듯 오직 두 사람만이 감성을 공유함을 뜻하기 때문이다.이 소설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는 ‘나’의 독백과도 같은 편지글로 시작된다.‘나’는 화자인 동시에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를 어느 이름 모를언니에게 독백처럼 전하는 서술자이기도 하다.화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와 나,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이란 모두 희끄무레한 안개 속처럼 흐릿한 기억속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화자는 이를 두고 ‘아마 무엇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로 그저 추정하는 ‘아마’의 영역이라 표현한다. 오직 아버지와 함께했던 소소한 추억과 기억만이 생생하게 도드라질 뿐이며, 나머지 가족과의 관계는 뿌연 안개처럼 흐릿하기에 이 소설에서는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버지와 나와의 특수한 동질적 관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처럼 보이며 가족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화자인 나와 아버지의 ‘모국어적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모국어적 감성이란 운명과도 같은 숙명으로 아버지와 나에게만 허락되는 감성적 공유이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이 부녀가 공유하고 있는 감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 답을 먼저 구해야 할 듯하나안타깝게도 김영하의 작품 ‘오직 두 사람’에서는 명확히 그 이유가 드러나지 않으며, 어렴풋하게나마 20대에 모교의 교수로 임용된 아버지는 어린 딸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유독 화자와 가까웠다는 설명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화들이 존재할 뿐이다.가령 이런식이다. 다른 가족은 남겨둔채 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유럽 배낭여행, 이혼 후 아버지의 여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일련의 모습들. 분명 이러한 관계 설정은 다른 가족은 배제된 채 연결되는 것이기에 무척 낯선 풍경을 자아내며 특이한 삶의 모습을 띄고 있다.낯선 풍경 속 아버지와 나, 그리고 해체된 가족. 파편화된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에서 유독 화자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아버지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학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 어울리지 않게 ‘이들이들한 자신의 육체에 자부심을 느끼며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들락거리고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유럽 배낭여행에서 자신의 무지와 실수를 딸에게 감추는데 급급하여 혼동한 다른 작품을 아류작으로 치부하는 등 권위의 상실에 불안해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화자인 딸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노출한다.딸은 또 어떠한가. 아버지의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소울 메이트와 같은 특별한(?) 관계 맺음에 익숙해져 버린 화자는 또래 남자들과의 이성적 만남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바라는 예술사 전공의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채 학원 강사로 생계를 꾸려간다.그 즈음,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수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어서 수렁인 줄도 몰랐구나 싶어’ 아버지를 남겨두고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의 평온한 삶이 결국은 내 것이 아니라는 허전함과 고독을 느끼며 그것이 오랜시간 펴 온 담배를 끊은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과도 같은 공허함인지 애써 상황을 부정하는 현실속에서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함을 알고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음을’ 깨닫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나는 여기서 화자가 미국 생활에서 맺게 되는 파편화된 가족과의 관계 맺음에 집중하고 싶다. 따듯하게 포옹을 하며 반겨주는 어머니의 품이 실상은 그저 미국식 인사였음을, 엄마와 동생인 현정이가 나누는 대화에는 어둠이 없고 밝고 따뜻하지만 너무나 이성적인 외국어의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자신과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모국어를 구사하는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대상’ 그것이 아버지요, 운명과도 같은 대상이었기에 흡연 충동과 같이 커다란 결락을 느끼게 된다.
국민에게 한걸음 더 먼저 다가가는 공직자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지원 동기?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설레임과 함께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의 어려움 보다는 이제 그 꿈을 향해 나아 가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보다 더욱 크기에 공직자의 길을 걷고자 다짐했던 그때의 기억은 설레임과 함께 제게 다가왔습니다.하지만,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지금은 설레임 보다는 처음 공직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던 각오와 다짐을 진지하게 그리고 겸허하게 돌아보는 것이 미래의 제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 직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고민도 하였지만, 평생 공직의 길을 걸어오시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신 아버지의 삶과 말씀이 제가 공직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 습니다.“받들 봉(奉), 섬길 사(仕)-우리가 흔히 말하는 봉사의 진정한 의미는자신이 아닌 타인을 받들고 섬기는 일이다. 공직은 자기 자신을 낮춰 국민께 봉사하는 길이고 공무원은 그러한 공직의 길을 수행 하는 것이기에 한 평생 공무원으로서 살아온 내 자신의 삶이 자랑 스럽다”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저도 아버지와 같이 공익을 위하여 국민께 봉사하는 공직의 길이 제 자신의 천직이자 소명이라 생각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성장과정? 들녘의 풍요로움과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기에 어린시절은 친구들과 함께 어스름히 노을이 질 때까지 들녘을 뛰어 다녔던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또한, 진실되고 성실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의 교육방침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 의식을 체득하며 성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학창시절은 여느 평범한 학생과 마찬가지로 학업에 매진하였으나입시라는 틀 안에서도 친구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다졌으며 소소한배려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나 자신보다는’,‘우리’를 먼저 생각하는공동체 의식을 배워나갔던 시기이기도 합니다.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하기 싫어하고 귀찮지만누군가는 꼭 해야할 청소 같은 일들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하고자노력하였으며 그러한 솔선수범의 자세는 공동체 의식과 함께국민에게 한걸음 먼저 더 다가가는 공직자의 기본적 소양에 대한자세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주요경력 등? 경영학을 전공하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는배움을 나누는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남달리 뛰어난 지적능력이나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같이고민하고 소통하며 청소년기의 학생들과 함께 꿈을 향해 나아갈자신이 있었기에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꽤 오랫동안했습니다.비록 학교가 아닌 학원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와 배움을 나누고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같기에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친 기억은 제게 소중한 추억으로남아 있습니다.제가 공무원에 최종 합격한다면 관내의 어려운학생들을 위해 제가 가진 얕은 지식이나마 배움을 나누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인생관? 물질적인 만족이나 순간적인 이익보다는 진실되고 성실한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교육을 받아 왔고공직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아버지의 청렴한 모습과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시며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주위의 이웃에게 나눠주고자 따뜻한 국과 밥을 정성스레 만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자연스레 물질적인 가치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믿음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일찍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원칙과 소신이 가장 빠른 길이다’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와 믿음의 정신적인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