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의 이해REPORT교육학개론목차Ⅰ. 서론Ⅱ. 본론ⅰ. 교육사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영역ⅱ. 동서양의 교육전통ⅲ. 교수와 교육사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앞으로 선생님이 될 예비교사로서 교육학에 관심을 갖고, 교육사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영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또한 동서양의 전통교육에 대해 숙지해 현재와 미래의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본다. 마지막으로 교사와 교육사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미래에 우리는 교사로서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될지 알아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참다운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교사가 되어야하는지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과 교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만큼 효과적이고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대부분 대학교에 진학해서 교사를 희망할 때 처음 교육사를 접하게 된다. 심지어 교육사는 과거의 일을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소하고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학개론 과제를 통해 교육사를 이해하고 과거의 교육을 현재와 미래에 가져다 쓸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또한 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여 미래 예비 교사로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시간을 비롯해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질이 충분한지 깨우치고 한걸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올바른 교육관을 갖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참다운 교육은 무엇이고, 그러한 교육이 일어나기 위해 어떠한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교육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Ⅱ. 본론ⅰ. 교육사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영역시대는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로 잡는다. 때문에 교육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나간 교육의 역사 중에서 교육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실들을 파악하고 체계를 잡아나가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이아의 한 철 내용들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역사 구성을 시도하였다. 1967년에 출간된 그의 『교육문제사(A History of the Problems of Education)』 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제1장 교육목적론/ 제2장 정치와 교육/ 제3장 국가주의와 교육/ 제4장 교육에 있어서 경제적 영향/ 제5장 교육철학/ 제6장 교육 심리학/ 제7-8장 교수방법 I ? II/ 제9-10장 교육과정 I ? II/ 제11장 종교교육과 교육과정/ 제12장 형식적 교육과 비형식적 교육/ 제13장 초등교육/ 제14장 중등교육/ 제15장 고등교육/ 제16장 교사의 전문 교육/ 제17장 공·사립교육/ 제18장 교육행정과 장학/ 제19장 학교와 진보교육문제사는 현대의 각 교육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초·중고등학교사를 비롯하여 교육철학과 심리학, 교육방법과 교육과정, 교육행정등과 같은 교육학 하위 학문분야의 역사도 탐구하고 있으며, 종교 교육이나 교사교육 등과 같이 특정 교육문제에 대한 역사까지 탐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교육사 연구가 왕조사 중심, 편년체 중심, 정치사 중심과 같이 거시적 관점으로만 연구되는 점을 비판하며 사회사(social history)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사회사에서는 일반대중을 역사의 중시에 두고 이들의 일상적 나날들을 역사의 재료로 삼는다. 사회사에서는 왕조나 사회의 상층부의 생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관심을 가지기에 정치문제 보다는 인구나 성(性), 가족 등 인간의 보편적 생활을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사회사에서는 심성사라는 새로운 연구법도 동원해 역사 연구에서 도외시되었던 보통 사람들의 집단태도, 의식, 사고를 고찰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육사회사는 종래 제도의 국가사 연구에서 벗어나 제도의 일상사를 연구하고 종래의 개별사 연구에서 벗어나 전체사를 연구한다. 마지막으로 종래의 사상사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심성사 연구에 관심을 가진다.ⅱ. 동서양의 교육전통1) 우리나라의 교육 전통(1) 고대의학으로 각기 입학자격과 수업연한, 교수구성, 교수내용이 달랐다. 문종 때의 기록을 보면 국자감의 교육이 매우 열악했음을 알 수 있다. 국자감 교육이 부진한 것은 국가 재정의 부족으로 충분한 교육재정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재상 소태보등은 “국학의 양사는 소비가 막대하여 민폐가 되며 또 중국의 법은 그대로 우리나라에 시행하기 어려우니 국학을 폐지하자.”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자감의 교육이 부진한 상태에서 16대 예종과 17대의 인종에 이르러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이루게 된다. 예종은 양현고와 무학재를 설치하였다. 인종은 식목도감을 두고 학식을 상정하여 국자감에 구체적인 학규를 정하였다. 입학자격은 각 학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다. 국자감은 문무관 3품 이상의 자손과 훈관 2품, 대현공 이상 또는 경관 4품, 대 3품 이상 봉훈자의 아들을 입학하게 했으며, 태학은 문무 5품 이상의 자손과 정ㆍ종 3품의 증손 또는 훈관 3품 이상의 유봉자의 아들을 입학하게 했다. 사문학은 훈관 3품 이상과 유봉 4품 및 문무관 7품 이상의 아들을 입학하게 했다. 서학, 율학, 산학은 8품 이상의 아들 또는 서민의 자제 및 7품 이상의 아들로서 입학하게 했다. 그리고 국자감, 태학, 사문학에는 잡로와 공, 상, 악에 종사하는 자의 자손, 대소공친 범가자의 자손, 가계가 부정한 자, 악역을 범하고 귀향한 자의 자손, 향 부곡인의 자손, 사죄를 범한 자의 자손은 입학을 허용치 않았다. 이로써 국자감의 유학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신분에 따라서 차등을 두었으며, 기술계 교육의 대상은 유학계에 비하여 신분이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에는 국자감의 육학 가운데 기술계 삼학은 국자감에서 분리해서 기타 잡과와 같이 해당 관청에서 교육하게 되고, 국자감의 성격은 유학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하였다. 예종과 인종의 국학진흥책으로 국학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의종(毅宗)과 곧 이어지는 최씨 무단 정치, 그리고 몽고와의 치열한 전쟁은 국자감의인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와 오경(예기, 춘추, 시전, 서전, 주역)인데 이 사서오경을 각 과목에 따라 나누어 구재(九齋)를 만들어 교육했다. 그러나 도교나 불교서적은 잡서로 취급하여 금지했다. 구재는 성균관 유생이 먼저 대학재에 들어가 대학을 배우고 일정한 시험을 보아 합격하게 되면, 논어재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논어재에서 맹자재, 중용재, 예기재, 춘추재, 시재, 서재, 역재의 순으로 이수하는데, 그 예는 대학재에서 논어재로 오르는 것과 같다. 구재과정의 성적은 명부에 적어 성균관에 비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과거시험이 있으면 성적을 참조하였다. 성균관교육에서 제술은 사서의, 오경의, 시, 부, 송, 책 등이 있었다. 사서의와 오경의는 경서의 본문을 보고 논설을 전개하는 것이며, 부ㆍ송ㆍ시는 문장을 짓는 것이고, 책은 국가의 정책을 논의하는 과목이다. 이러한 경전교육과 제술은 1개월을 단위로 하여 20일간은 경서를 가르치고, 4일간은 경서를 고강(考講, 시험)하며, 나머지 6일간은 제술을 교육하였다. 이러한 성균관의 교육내용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과목과 대체로 비슷하였다. 조선시대 성균관의 교육은 과거시험 과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조선의 사학은 동서학당이 확충된 고려의 오부학당을 그대로 이어받은 학교로서 태종 대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한성의 남부, 중부, 서부, 동부에 차례로 세워졌다. 태종이 즉위한 후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동왕 5년에 국도를 한성으로 옮기게 되자 사학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태종은 국가의 지도 이념인 유학의 진흥을 위해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동왕 11년(1411) 10월에 남부학당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학당 중에서 최초로 독립된 학사를 갖게 된 것이다. 또 동년 11월에는 중국 송나라의 외학제를 토대로 오부학당제를 제정하는 등 사학 발전의 토대를 세웠다. 사학은 성균관의 예비 학교이며 하급 교육기관이다. 사학의 교육 목적은 소학지도를 성취하는 것인데 이는 성균관이 대학지도를 목표로 하는 데에 비 근대교육의 시행에 공헌한 집단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기독교 선교사의 대부분은 미국인들로서 1880년대 초반에 한국에 선교사가 입국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설립된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 등을 들 수가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에 아펜젤러가 개설하여 초기에 2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에서 출발되었다. 배재학당그림 Ⅱ-1 배재학당 출처 - 네이버은 1886년에 고종황제가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함으로써 더욱 발전을 하게 된다. 배재학당은 배재학당규칙을 제정하여 근대학교의 형태를 완전하게 갖추었다. 배재학당의 교육내용은 영어, 성경이 중심이 되고 한문, 천문, 수학, 역사 등의 근대 학문에 의한 교과목을 교육하였다.그림 Ⅱ-2 이화학당이화학당은 여선교사인 미국인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튼(Scranton) 부인이 1886년에 여학생 한명을 상대로 방 한 칸으로 개설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었다. 당시 왕비(민비)는 이화학당이라는 편액을 내려 주어 교명을 지었다. 이화학당은 초기에 그 발전이 미흡하였다. 교육단계는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고 찬송가를 영어로 가르치며 산술, 언문, 역사, 한문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과 교사의 확보도 어려웠다. 정해진 학규가 생긴 것도 1903년경이었다. 근대교육에서 여성의 교육에 어려움이 있었다.그림 Ⅱ-3 경신학당(언더우드학당)경신학교는 언더우드목사가 1886년에 한성 정동에 고아원을 설립한 것에 비롯된다. 언더우드는 고아원에서 고아들을 상대로 자선사업과 교육 사업을 실시하다가 1891년에 학교체제로 전환하여 언더우드학당(예수교학당)으로 개편하였다. 예수교학당에서는 체조 작문 산술 지리 등의 교과를 가르쳤다.이들 기독교계 학교의 건학정신은 기독교 교육과 인간 가치의 증진, 여권신장, 그리고 남녀평등과 민주주의 가치의 교육이었다.관공립학교는 갑오개혁 이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갑오개혁 이전의 관공립학교로는 동문학과 육영공원이 있다. 국가에서는 개방정책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