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는 기원전 3세기초 한나라 왕 ‘안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신분은 서공자庶公子였다.한나라는 지리적으로 중국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나라였다. 사방의 국경을 맞대고있어 잠시도 평온할 날이 없는 나라였고, 특히 서쪽의 진나라는 기원전 4세기에 상앙의법치주의를 채용해 국경의 개혁을 단행한 이래 급속히 세력을 뻗쳐 6개국을 누르고 중국통일을 목표로 삼기에 이르러 한에게는 최대의 위협국 이였다. 이에 한비는 법가들이 직접 체험한 역사적 교훈을 살려 한나라 왕에게 법가가 표방하는 정치노선을 채택하도록 요구하였으나 왕은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해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보고 가슴아파했다.스승 순자를 따라 인간을 본질적으로 실리지향적인 동물로 파악한다. 참이냐 거짓이냐’의 사실 인식만을 문제삼아 이해타산 앞에 무력하다는 것이다. 의리義理나 명분名分이 실리와의 괴리를 강조했다. 한비는 한의 왕에게 ‘법.술.세’에 대한 의견을 진언하였으나 번번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분孤憤』『오두五?』『정법定法』『현학顯學』들을 그는 절실하게 기록 하였다.한비의 이론을 실제로 활용한 것은 위협국인 진의 왕 정이다. 『고분』『오두』를 읽고 기뻐하던 진왕에게 진왕의 총애하는 재상이 되어있었던 한비의 친구 이사가 한비를 만나기 위해 한을 공략하면 한비를 사자로 보낼 것이라고 이간한다. 진왕 정은 한을 공격하고 예상대로 한은 화해의 목적으로 한비를 보내온다. 이사는 한비가 자신의 지위를 탐할까 염려되어 그를 옥에 가두게 하고 그를 돌려보내면 진의 내정을 알려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니 죽여야 한다고 진언 하였으며 옥으로 독약을 보내 자살을 강요 했다. 기원전 233년 한비는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한비는 비록 진나라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법가 사상은 진시황의 통치원칙이 되어 훗날 진나라 통치에 기여했다.한비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유가 관점이다. 유가에 의한 정치적 이상은 과거, 현재및 미래를 관통해 실현해야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과거의 것은 현실화 되어야 하는 것이다.백성은 많아지고 재화는 적어진다. “역사는 진화하므로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 새로운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한비에 의하면 역사상의 각 시대는질적 차이를 가지며 각각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 특수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 한다고 하였다. 아들선호사상을 예로 들며 인간 본성은 이해득실만 따질 뿐 도덕성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군주가 신하에게 충성심만을 요구 한다든지 도덕만으로 다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보았다. 이들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법을 제시한 것이다. 공자, 맹자, 유가의 인성론적 낙관론은 기껏해야 좋았던 옛날에 적합할 뿐 인간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비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순자와 의견을 같이 했으나 방법론으로 ‘두개의 칼자루’인 상과 벌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현실적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는 전제아래 법가의 통치방법은 ‘성악설’이 법치의 기본전제 조건이며 필요조건 이였다.한비는 체계적인 통치공학의 방법을 상앙의‘법’. 신불해의‘술’. 신도의‘세’로 새롭게 집대성했다. ‘법’은 넓은 의미에서 사회. 정치적 제도 곧 법을 말하고, ‘술’은 신하, 백성들로 하여금 법을 시행케 하고 준수하게 하는 군주의 통치기술 방법이다. 법, 술과 관련하여 떼놓을 수 없는 것이 ‘세’이다. 세는 법을 시행할 수 있는 권력기반 그 자체, 즉 ‘통치권’을 의미한다.법은 약속을 어긴 자가 받아야 하는 고대 형벌에서 유래한다. 후에 발전되어 형벌의 법,법제 또는 법식, 규범 또는 법칙을 의미하는 일체의 제도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목적은 어리석은 백성을 이롭게 하고 서민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법은 법으로 존립할 수 없다. 사적인 ‘덕’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갖는 ‘법’으로 통치할 것을 강조한다. 공정한 법의 시행을 통해서만 통치의 객관성이 확보 될 수 있다.‘술’이란 임무에 따라 벼슬을 주고 명목에 따라 실적을 따지며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통치수단이다. 한비는 군주가 이러한 ‘법술’을 채용하는 것이 부국강병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관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 그 직위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 군주가 상벌을 엄격히 시행하면 무능력자는 관직을 맡으려 하지 않아 능력 있는 자들만 관직에 남게 된다. 상벌의 집행권을 군주 스스로 행사 하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법치에 있어 개인에 대한 평가는 형과 명의 일치 여부에 의한다. 일치하면 합법이지만 불일치하면 합법이 아니다. 이는 곧 개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기준이 된다.‘세’는 군주가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 즉 권력기반이라 할 수 있다. 법과 술의 비인격적 장치들을 통해 군주가 사회를 통치하는 사회, 완전히 성취된 법가의 이상향 속에서 군주 자신의 인격은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군주의 위상은 남이 명령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군주는 국가를 통치하는 기구를 가졌기 때문에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바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이다. 관료들은 완벽한 통치에 관한 자신들의 이상을 달성하는데 그들의 승진과 강등은 위로부터 임의적이나 편파적인 결정들로부터 차단 될 수 있다.한비는 오로지 군주권의 확립만이 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 개념과 사 개념을 대립시켜 공공의 이익과 사리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원칙 을 밝힌 것이다. 유가 사상이 이상적이라면 법가 사상은 현질 주의적이다.법의 제정은 군주에 의존한다. 법은 군주가 제정하지만 객관적인 행위 기준이기 때문에 부여하는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 신하의 직책과 임무는 명령을 받아 그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즉, 신하의 직능은 “유위‘로 천하에 의해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