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문학 레포트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줄거리를 읽었을 때 뭔가 제일 여성차별을 잘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 때문이다. 주로 혜완의 시점으로 스토리는 이어지지만 주인공은 혜완, 경혜, 영선 이다. 세 인물이 받아왔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말해준다.이 책을 보는 내내 속이 갑갑하고 분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너무 잘 보여줬다. 사실 옛날 책이라 어느 정도는 지금보다 심하게 되어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옛날 이야기 같지 않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일이 많이 써져있어서 놀랬다. 일단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힘이다. 여성과 남성의 힘은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난다. 심지어 예전에 엄청약한 남성의 힘이 운동하는 여성의 힘보다 더 세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었다. 그래서 혜완이 맞았을 때 반항을 하지 못 했던 것 과 경환에게 되갚아주지 못하는 것은 매우 공감되고 슬픈 이야기 였다. 나도 알바를 할 때 보면 남성분이 컴플레인을 거는 것과 여성분이 컴플레인을 거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감이 달랐다. 남성분이 술 마시고 얘기를 걸면 혹시 맞을까 봐 걱정된 적이 있다. 이렇듯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예전엔 어땠을까,,? 남편한테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 애초에 혜완이 맞고만 있을까?, 영선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을까? 아마 얘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그리고 결혼을 함으로써 여성이 일을 포기하는 얘기에서 또한 답답했다. 육아를 할 사사람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항상 포기하는쪽은 여성일까? 예전부터 당연히 그렇게 해왔고 지금또한 포기하는 쪽은 보통 여성이다. 아기를 낳기 위해 일년이란 시간을 몸상해가며 희생했는데 그 후의 삶까지 희생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것 같다. 책에서는 남편이 심지어 바람까지 피기 때문에 여성의 커리어는 더 중요한 것 같다. 아기때문에 포기한 여성의 미래는 남편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대처할 수 없게 한다. 나같아도 이혼을 하고 싶어도 내가 능력이 없다면 망설여질 것 같다. 차라리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면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 40, 50 대 때 직업을 포기하고 주부로써 살다가 이혼을 해서 내 앞가림을 해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그리고 같은 상황,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경혜, 혜완, 영선의 다른 대처법이 눈에 띄었다. 혜완은 책에 나와있는 데로 무모할 정도로 어떻게 보면 속이 시원해지게 이혼을 바로 선택했다. 나도 이 방법이 제일 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혜완이 글을 써서 어떻게든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로 경혜를 보면 결국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익숙해지고 돈만 있으면 괜찮다는 마인드가 된다. 만약 경혜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남편의 바람 대상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이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능력이 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면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여성이 겪는 삶에 대해 잘 나타낸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공감은 많이 되서 책의 몰입도는 좋았다. 나는 지금은 여성평등이 거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와 지금이 썩 다른 것 같진 않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평등이 더 이루어지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많이 읽고 느끼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종교와 인간한국의 종교에 대하여1.목차기독교불교유교무교2. 참고사이트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B%8F%85%EA%B5%90#%EA%B8%B0%EB%8F%85%EA%B5%90%EC%9D%98_%EC%A0%84%ED%8C%8C위키백과>기독교https://namu.wiki/w/기독교#s-2나무위키>기독교https://ko.wikipedia.org/wiki/%EB%B6%88%EA%B5%90위키백과>불교http://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319430001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782838&cid=62093&categoryId=62093네이버>지식백과>불교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14446&cid=50765&categoryId=50778네이버>지식백과>무교https://namu.wiki/w/유교나무위키>유교https://ko.wikipedia.org/wiki/유교위키백과>유교https://namu.wiki/w/무교?from=%EB%AC%B4%EC%86%8D%EC%8B%A0%EC%95%99나무위키>무교3. 참고문헌황필호 “집문당, , 2002”기독교우선, 기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유대교와의 차이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한 후 초기 기독교부터 현대 기독교까지 기독교가 언제 들어와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했는지 설명하겠습니다.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아 따르며,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인식하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입니다. 세계에 약 24억명의 신자 수를 지니고 있으며,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따르는 계시의 전통과 역사성을 계승하였는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보고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들이 단결하기를 바랐습니다. 군인황제 시대가 끝난 후에 정권을 잡은 디오클렌티아누스 황제 역시 전례 없는 강경한 기독교 탄압을 시도하였습니다. 전임 황제였던 데키우스, 발레리아누스 황제 또한 강경한 탄압을 했지만 일찍 죽는 바람에 탄압이 중단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중도 퇴위 후 즉위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드디어 사회 정치적 요인으로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합법 종교로 공인하였습니다. 그의 목적은 기독교의 유일신을 섬기게 하여 로마 황제를 대중들에게 성인 같은 위치로 낙인 받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군인황제 시대 때의 아우렐리아누스가 최초로 시도하였으나 그는 기독교의 신이 아닌 태양신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의 유일신앙이 콘스탄티누스의 목적에 더 걸맞았습니다. 이 방식은 대성공을 거두며 거짓말처럼 황제가 조금만 실책을 저지르면 즉시 암살당하고 승자의 황제계승 패턴이 중단되었습니다. 또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신전의 은닉금을 쓸 수 있었고, 그 금으로 재무장한 군대와 경제를 안정시켰습니다. 그 후 기독교는 4세기 중반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그리스 로마 신앙을 부흥시키는 정책으로 인해 견제 받기도 하였으나 훗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중세초기 시대 5세기 경부터는 서유럽과 북유럽, 동유럽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 전례에 따르면 기원후 423년 성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5세기 후반에는 오늘날 서유럽 지역에 전파되고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 클로비스 1세가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 후 다른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들을 정복하면서 기독교도 같이 전파되었습니다. 820년대에서 83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북유럽의 전파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기원후 1,000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동유럽의 슬라브족에게 기동을 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불교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시작된 종교입니다. 불교는 그가 펼친 가르침이자 또한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될 것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Buddha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이라고도 합니다. 누가나 부처가 되는 길을 갈 수 있고, 그 이치를 깨달아 터득할 수 있으므로 불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보통 부처님이라고 말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샤카(석가)’ 족의 ‘성자(muni)’를 뜻한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o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석가모니는 석가모니세존, 석가여래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립니다.고타마 싯타르타는 6년의 고행 끝에 그동안 행했던 인도 전통의 수행 방법을 비롯한 모든 수행법의 한계를 깨닫고,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진리의 길을 발견하여 마침내 석가모니, 즉 부처가 되었습니다. 싯타르타가 출생한 시대는 브라만교의 지배력이 상실되고, 현실의 도덕적 삶을 위한 지침이 되기 어려운 육사외도의 사상이 유행하는 시기였습니다. 싯타르타는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편견에 빠져 있는 육사외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삶의 고통은 어디서 오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끝에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진리를 깨우침으로써 불교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부처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펼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의 불교를 ‘근본 불교’혹은 ‘원시 불교’또는 ‘초기 불교’라고 합니다.1천여년에 걸친 불교의 전파과정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이 3 대륙에 포교단을 파견해 전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점 서역 지방을 거쳐 동북아시아 일대로 확산되었고 기원후 7~8세기경에는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고 9세기 이후에는 티베트와 네팔 등 히말라야 오지로 전파되었습니다.인도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2-4세기)의 3대 왕이었던 아소카왕은 정복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였으나 전쟁의 참상에 충격을 받고 불교로 귀의하였습니다. 이에 압도하기 시작하였으며 7세기경 이슬람교의 발생은 불교에 외압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흡수와 변질, 외압으로 인해 불교는 9세기경 인도에서 점차 사양일로를 걷기 시작하여 13세기 초에는 인도 땅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쇠퇴와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으로 전파되거나, 이미 전파된 지역에서 교학 연구나 교세 확장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동하였습니다.유교유교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고 공자, 맹자, 순자가 확립한 유교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개 된 후의 유교가 확립되면서 어떻게 다른 나라들로 전파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유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의 학문을 이르는 말입니다. 시조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라고도 합니다. 지켜야 할 인륜의 명분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여 명교라고도 부릅니다. 인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이념으로 삼고, 핵심인 수기치인은 유교가 실현하고자 하는 진리입니다.공자는 주나라 전성기의 이상적인 질서를 중시하여 패악질이 난무하는 춘추시대의 혼란한 사회 질서의 재건을 시도하였습니다. 공자는 인을 가장 중시하였으며, 인은 곧 효(孝)이며 제(悌)라 하여 인의 근본을 가족적 결합의 윤리에서 시작하여 애정을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그것을 인간 사회의 질서 있는 조화적 결합의 원리로 삼고, 정치에도 전개 시켰습니다. 그 후 맹자가 나타나 인의 실천을 위한 의(義)의 덕을 내세워 인의(仁義)를 병창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선이라 하여 내면적인 도덕론을 펴고, 선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덕치로서의 왕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의 체계가 잡혔습니다. 얼마 후 순자가 나타나 맹자의 내면화에 반대이론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이므로 외면적, 객관적인 에에 의해서만 수양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여 예를 강조하였습니다.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후 사상의 통일을 도모한다는 명분하에 분서갱유 등을 통하여 유교경전과 유학자들을 탄압하였습니다. 그 여파로 한나라때에 이르러서는 인 역사, 특징 4가지를 설명한 후 오늘날 무교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있을 수 있는 배경과 무교라는 종교가 국민과 얼마나 관계 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무교란 무당이 의식이 주재자가 되는 종교 현상입니다. 한국의 무속신앙을 타 종교와 대등한 종교 현상으로써 인식할 때 사용하는 명칭입니다. 무속, 무속신앙을 종교로 보지 않고 미신으로 취급하는 역사적 천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무교란 신앙을 종교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무종교(無宗敎)를 무교 (無敎)라고 줄여서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나, 본문의 무교 (巫敎)와 동음이의어입니다.무교는 이미 고조선 시기에서부터 존재했습니다. 단군신화에는 천황환웅이 신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 하는 장소이자 굿당으로, 천황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 한 무당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고시대의 무교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들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신라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남해 차차웅), 고구려에서는 사무라는 명칭이 있었습니다. 위상이 높았던 무교는 후세에 문화가 진화하고 유교, 불교, 도교를 비롯한 외래종교들이 들어 오자 점차 쇠락 하며 공통점이 강한 도교와 융합이 이루어졌고, 불교, 유교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오늘날 무교는 가장 오래된 신앙체계 중의 하나로서, 세계 여러 곳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고대인뿐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종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교의 일반적 특징 네가지는 첫째, 대부분의 무교는 제재초복의 현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중의 얼을 사로잡는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둘째, 평등주의 입니다. 특히 인류 역사 이래 보편적 현상인 남성우월주의보다는 남녀평들을 주장합니다. 셋째, 녹색주의를 주장합니다. 자연과 함께 살았으며 환경친환경적인 성격입니다. 넷째, 공동체주의 입니다. 고대 한민족의 무교신앙에서 하늘과 인간과 자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