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동양(東洋)동양의 의미는 지역과 시간에 따라 변했다.중국의 경우 먼저 동양을 처음 호칭했던 시기는 이 당시에는 중국인들이 남해로의 항해가 활발했던 송원시대였다. 원 당시의 동양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자바 섬과 필리핀 방면을 말한다. 서양은 남인도 연안을 의미한다. 명 대에는 정화(鄭和)의 항해에 의해 중국인의 항해 범위가 널리 확대되었다. 하지만 명 중대의 해금정책으로 잠시 동양이라는 말의 사용이 없어졌다. 1567년 해금 해제 이후에는 이후 중국인의 남해 항해는 다시 활발해졌다. 동서양고(東西洋考)에서는 동양을 중국의 해항을 나와 대만, 필리핀, 몰카 제도 방면으로 향하는 항로에 속하는 지방, 서양은 중국의 해항에서 인도 지나, 말레이반도, 스마트라, 자바 방면으로 항로에 따른 지방으로 설명했다. 중국의 항로에 따라 동양과, 서양을 구분했고 그러므로 중국의 항해권 밖에 있던 인도양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정화 이전 시대에 인도양 방면을 서양으로 호칭하였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명나라 말기 유럽인들의 내항 이후 이 인식은 달라졌다. 중국의 해외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로 동양과 서양의 전체적인 의미가 크게 바뀌었다. 중국인은 처음 신래(新來)했던 유럽인을 이전의 서양보다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대서양인’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유럽이 서양으로 칭해졌다. 청나라 때는 동양을 오로지 일본만을 가리키는 호칭이 되었다.일본의 경우에는 명치 이후 근대 역사학의 발전 과정에서 동양 개념 성립되었다. 근대 역사학의 성립과정은 동양이란 개념의 창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때 객관성과 실증성을 강조하면서 아시아를 대상화하여 동양이란 개념을 창출하고 아시아의 중심에 일본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또한 동양이란 개념을 구미(歐美)를 가리키는 서양과 대립하여 사용했다. 20세기의 동양이란 서구에 대하여 아시아, 특히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지리·문화적 실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전에 세계의 체제였던 중화(中華)에 대항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라 볼상의 체계라 할 수 있다. 일본도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여 자국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하였다.일본도 자국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열등한 타자가 필요했었고 그 타자를 대만, 조선, 중국 등의 국가와 민족으로 설정하였다. 이 국가와 민족들은 철저하게 ‘비문명’, ‘미개화’, ‘열등’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다. 일본은 이전에 서양이 설정하였던 열등한 아시아라는 의식을 거부하며 동시에 아시아를 깔보는 우월감을 팽창시켰다.2.문화권문화권이란 공통된 문화를 갖는 민족들이 사는 지역의 범위를 말한다. 이 문화권의 공통성의 지표로서 종교와 언어가 존재한다.종교에 대해서 폴 탈리히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태라고 말했다. 또한 르네 지라르는 ‘종교는 모든 것의 기원이자 모든 것의 핵심’이라 말할 정도로 종교는 인간의 문화에서 중요한 개념이며 종교를 살펴보는 것은 곧 문화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언어는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면서 그 언어에는 사람들의 정신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즉 언어는 민족의 보편적인 문화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훔볼트는 인간은 언어 속에서 사고하며 언어가 속한 민족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고권을 형성하여 언어 안에 한 민족의 삶과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공자는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라고 말하며 언어의 중요성을 명시했다.신채호 선생은 시가 융성하면 나라도 융성하며, 시가 쇠퇴하면 나라도 쇠퇴하며, 시가 살아있으면 나라도 역시 살아있으며, 시가 망하면 나라도 역시 망한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시란 언어를 의미한다.최남선 선생은‘언어는 문화의 척량(尺量)인데, 한 민족의 사회변천, 문화 추이가 언어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음으로 특히 문적(文籍) 없는 고대사, 고대문화의 연구에 있어서는 그 가치와 효용이 더욱 큰 것이다.’라고 하여 언어의 가치를 말하였다.허웅 교수는 ‘언어는 그 민족의 한 민족으로서의 가장 대신 오직 한글만 쓰는 한글전용이 보편화 되었음에도 한자의 형태만 없어졌을 뿐 읽기와 의미의 결합은 남아 있으므로 아직 한자의 영향은 많다고 볼 수 있다.중국문화권의 특징들에 대해 말하면, 먼저 중국 문명은 황하(黃河) 유역에서 번영되기 시작했고 주나라 대에 예교문화가 발전하였다. 특히 이 중국 문화권을 설명하려면 춘추시대의 학자인 공자의 의해서 생긴‘유교’ 사상이 중요하다. 또한 유교는 중국의 풍토성과 연관이 깊어 사람들과 잘 융화되었고 사회정책으로서 농사를 장려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전통적인 정책을 하였다. 중국뿐 아니라 한자문화권 모두 국민의 대부분이 농민인 농업 국가였다.4.심상지리심상지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지리상의 지역을 의미한다. 심상지리는 거짓이 되거나 조작된 공간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순히 사람들의 머리에서 상상되고 인식되는 공간개념이다. 이 심상지리는 주체와 시대에 따라 항상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심상지리는 실제와도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공간이다. 주체가 어떻게 인식하고 상상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심상지리는 마음이나 관념 속에서 형성된 지리적 개념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심상지리는 탈식민지 이론 중의 하나로서 제국주의의 세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다.아프리카를 개발이 덜 된 야만적인 곳으로 인식한다던가, 중동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심상지리의 예이다. 아프리카는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나고 발전해왔던 장소이며 중동 역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켰던 곳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유럽이나 서구를 이상적인 곳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으로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바로 심상지리의 특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5.만주만주(滿州)라는 용어는 청나라 태종이 황제가 되면서 군신들의 권유로 후금(後金)을 만주로 개칭한 것을 시작으로 청의 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 이후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라는 의미이다. 또한 백산흑수(白山黑水, 백두산과 흑룡강)라고 불린다.근현대에 들어서는 만주는 동아시아의 여러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이다. 한족의 이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의 과잉 인구 및 경지 부족을 완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입장에서 동방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일본의 입장에서 제국주의 시절 중국 대륙의 진출로의 교두보로서의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조선의 항일운동가나 유대인, 이슬람족, 소련의 탄압으로 도망친 백계 러시아인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윤휘탁 교수는 ‘만주는 동아시아의 여러 문제들을 해소해 주는 돌파구였고 새로운 삶의 안식처였다. 따라서 민족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만주는 물리적 충돌의 각축장으로 바뀌었고 동아시아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라고 설명했다.시대에 따라 만주의 개념과 역사는 지속적으로 변화하였는데 일제 강점시기에는 침략을 위해 중국과 무관한 역사 지리적 개념으로서 만주를 설명하고 만들어냈다면, 지금 중국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근대적 영토 개념으로서 ‘동북’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6.통일적 다민족국가론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이 동북공정, 서북공정, 서남공정 둥의 역사공정에서 기본으로 삼는 논리로서 지금 현재 중국의 영토에 있는 모든 민족들은 광의(廣意)의 중국인에 속하며 그들 민족 또한 중국의 역사와 직결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1954년 중국 헌법에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인식이 등장하였으며, 이후 페이샤오통의 ‘중화민족다원일체격국론‘을 통해 중국의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들이 결집하여 하나의 중화민족을 이룬다는 논리를 정립했고 이를 정책화 시키는데 까지 이르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역사상 존재했던 주변 소수민족들은 현재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소수민족들의 조상이며 이들이 한족의 ’형제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사의 범위를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기반으로 한 중국 영토 내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로 설정하였다.통일과학원과 동북 3성이 연합하여 추진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2002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중국사회과학원 소속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주관하여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동북공정의 논리는 남북한에서 고조선사·고구려사·발해사를 한국사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논리들을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분석함과 아울러서 기존의 관련 연구 자료들을 발굴·정리·분석하여 그러한 역사가 중국사의 일환임을 설명할 수 있는 대응논리를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응논리를 조선족 사회에 주입시켜 그들의 민족정체성 혼란을 예방하는 동시에 중화민족 논리를 재확립시키고 강화하는 데 있으며 향후 남북통일이 중국 동북사회 혹은 조선족사회에 미칠지 모르는 영향들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거기에 미리 대처함과 아울러, 대응논리를 바탕으로 동북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데 있다. 결국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소수민족 문제의 돌출과 확대를 차단함으롯서 중국의 국가적인 안정을 꾀하려는 거시적인 정책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5개의 부류로 나누어 편성하였으며 하위항목을 110개로 설정하여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연구과제는 고대 중국 강역 연구이론, 한국고대사 (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동북 지방사 연구 등이 있다.동북공정의 특징은 국가가 처음으로 직접 역사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이는 개별 연구자들의 주장이었지 국가의 주장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동북공정은 국가사업으로써 공개적으로 조직하고 체계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이가 학자들 차원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거나 정치와 학술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또한, 동북공정이 중국영토 내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기존에 주장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뿐 아니라 고조선 역시 중국의 역사라 주장하며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한반도의 민족구성에 한족의 요소를 끼워 넣는 등 한국사 전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