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도 좋아하고 내 인생 1순위 영화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화인 이터널선샤인(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쓰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는 밑에 있는 질문에 따른 답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봐보자.1. 사랑에 지치는 이유는 뭘까?·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통통튀고 충동적인 매력에 빠져 사랑을 했지만 그런 매력에 지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을 할 때 초기에는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정 등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된다. 이는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력은 스스로를 항상 긴장된 상태로 만들게 하고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에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서로의 노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작아지고 무뎌지며 이전과 같은 배려를 해줄 수 없게 되지만, 이전과 다른 배려에 서로가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사랑에 지쳤다.’라고 표현한다고 생각한다.2. 나랑 똑같은 사람이랑 사귀면 덜 싸울까?· 나와 똑같은 사람과 연애를 하면 싸우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다툼이라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다툼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가 맞춰나가는 행위이고 서로를 애정하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위다.3. 마지막 장면 :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느 때와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죽일 듯이 싸우고 실망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보내며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한 번의 위기를 지난 사람들이기에 더욱 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그들만의 연애의 형태를 지니고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4. 기억이 사라져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이 지워진 후 다시 마주친다면 또 다시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것은 곧 지워지지 않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지워졌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를 이끌 것이다.5. 결말에 대한 해석 : 사랑은 운명인가? 사랑은 의지(훈육)인가?·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테이프의 내용을 듣고 서로의 미운감정들이 생각이 나고 다시 서로를 미워하고 지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레멘타인은 반복되는 것이 싫어 떠나려 하지만 조엘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을한다. 이에 클레멘타인도 좋다며 웃으면서 서로를 사랑한다. 이 장면을 보고 사랑은 의지라고 해도 맞고 운명이라 해도 맞다고 생각이든다. 기억을 지운 후 서로에게 다시 이끌려 사랑을 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운명이라는 쪽에 더욱 동의를 하게한다.
디자이너 보고서-나카무라 히로키에 대해서-10210585 패션디자인학과 김의준1. 패션과 소통하다, 나카무라 히로키패션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기초적인 수단으로써 활용이 된다. 그렇기에 나의 일생동안 형성되어온 가치관이 패션에 영향을 주기도 혹은 표현하는 과정 가운데 도리어 내가 그 패션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디자이너 또한 본인이 만들어낸 브랜드 가운데에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녹여냄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영향을 준 디자이너이다. 나 또한 그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이후 전개되는 글 내용 가운데에서 나카무라 히로키에 대한 일생과 그의 브랜드 비즈빔(visvim)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표현해낸 자신만의 가치관과 반대로 어떤 영향을 많은 사람에게 주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그림 1. 나카무라 히로키위의 사진에 나온 사람이 나카무라 히로키이다. VJ특공대에 나오는 맛집 사장님같이 생겼지만 비즈빔(visvim)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이다. 먼저 그의 생애부터 돌아보자.2. 나카무라 히로키의 대해서1) 나카무라 히로키의 생애나카무라 히로키는 일본 야마나시 현 고후 출신이지만 성장기에는 대부분 도쿄에서 지냈다.. 그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패션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초등학교 때부터 패션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머니는 직물 제조업에서 종사하였는데 일찍부터 생각이 트인 분들이었는지 그에게 일본 문화에 갇히지 않는 경험을 쌓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이러한 부모님의 교육방식 때문에 분카 고등학교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 코디 혼과 알래스카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했다. 알래스카에서 고래를 관찰하고 스노우보딩, 캠핑, 여행 등을 다니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여행을 가기 전 짐을 쌀 때 옷가지들을 챙기면서 하나하나 옷들의 색감이 어떻게 어울릴지, 모자부터 양말까지 다 따져보았다. 캠핑할 때 친구들은 본인의 차림새가 어떻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 그냥 눈이 오고 추운 날씨에서 제 기능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도 불구하고, 히로키는 미국에 빈티지 리바이스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와 친구들은 여행을 갔다 오면서 자신들이 도쿄에서 빈티지 리바이스와 레드윙 부츠를 신는 유일한 사람들처럼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참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2) 나카무라 히로키의 브랜드, 비즈빔그 후에 나카무라 히로키는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디자인, 판매, 마케팅과 같은 일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 브랜드가 버튼이라는 브랜드이다. 디자이너로 8년간 일을 했고 버튼의 일본 지사에서 스노우보드 디자이너 및 마케터로 활동하면서 아웃도어 웨어에 대한 이해를 키웠다. 그리고 좀 지난 후에,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줄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비즈빔이라는 브랜드를 2000년에 설립하였다.비즈빔(visvim)은 의미가 없는 단어이다. 나카무라 히로키가 평소에 V가 들어간 로고명을 좋아해서 사전을 찾아보다 눈에 띈 두 글자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vis(힘)가 vim(폭력)의 단어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서 두 단어를 합쳤다고 한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중히 하는 디자이너이다. 물건을 만든다면 좋은 것, 후대에 남을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2000년에 신발 브랜드로 시작하여 2003년부터 맨즈웨어, 액세서리, 벨트, 향수까지 취급하는 토탈 브랜드로 확대되었다. 신발 브랜드로 시작한 비즈빔(visvim)은 나카무라 히로키가 사미족이 사는 북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여행 중에 자신이 만든 양가죽으로 된 프로토타입의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발이 엄청나게 추웠다고 한다. 그 부족 중 한 명의 여인은 히로키가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순록 가죽 부츠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그 원시적인 사미 부츠는 자신이 신어본 신발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통기성이 있고, 기능적인 신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 영감을 받고 만든 신발의 종류가 유명한 폴크 시리즈이다.이보다 더 유명한 비즈빔(visvim)의 대표적인 상품은 F지와라 히로시가 보여준 Fun Boy Three의 레코드 커버를 보여준 것에 여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후지와라 히로시가 히로키에게 리드 싱어인 테리 홀의 모카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히로키는 미국 인디언들의 모카신과 런닝슈즈의 비브람솔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영원한 물건을 만들기를 고대한 그는, 신발들의 솔이 다 닳아 해지면 솔 교체가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시간이 지나 신으면 신을수록 신발이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길들어 색다른 멋으로 보인다. 히로키는 이 신발들을 착용할 때 절대 양말을 신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신발의 자재를 피부로 느끼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사람들이 몇백 년 동안 모카신을 신었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히로키의 제품을 입거나 신는 사람들이 다 히로키의 생각처럼 맨발로 신발을 신거나, 디자이너의 가치관에 맞게 옷을 입지는 않지만, 그냥 넘기는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쯤은 히로키의 가치관이나 만든 이유에 맞게 입거나 신어보면 좋을 것 같다.그림 2. 비즈빔(visvim)의 fbt시리즈 사진은 비즈빔(visvim)의 대표적인 제품인 FBT 시리즈의 사진이다. 착용감은 매우 편하다고 하나 직접 구매하여 신어본 바로는 엄청 편한 것은 모르겠다. 칸예 웨스트도 착용하는 등 유행을 휩쓸기도 했고 지금도 꾸준히 판매가 잘 되는 아이템이다. 풋웨어 중심의 컬렉션이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후 2009년에 파리에서 컬렉션이 공개되어 인기를 얻었으며, 2010년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브랜드인 몽클레어에서도 디자인을 담당했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몽클레어에서 협업 한 최초의 일본인이다. 그 후 2013년부터는 여성복 브랜드인 wmv도 시작하였다.나카무라 히로키의 비즈빔(visvim)은 헝거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헝거 마케팅이란 말 그대로 소비자를 배고프고 갈증 나게 만드는 마케팅을 말한다. 비즈빔은(visvim)은 제품의 희소성을 높여 소비자들을 배고픈 상태로 만들어 구매 욕구를 를 가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들도 수주회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제품을 많이 사는 VIP 고객이나 지인들이 수주회를 간다. 수주회에서도 바로 구매를 할 수 있으며 수주회를 가는 일반 사람 중에는 한국 사람도 있다. 가격대는 상당히 비싼 편이며, 국내에서는 소수의 마니아 층들에 인기를 얻고 있다. 내가 비즈빔(visvim)을 처음 알았을 때도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현재에는 더 오른 가격으로 옷을 웬만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구매할 생각도 하지 못할 것 같다.나카무라 히로키는 일 년에 3분의 1 정도만 일본에서 머무른다. 집은 미국에 있고, 유럽의 소재 전시회를 둘러본다든가 하는 등 여행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여행을 통해 만난 소재나 물건들을 통해 영감을 받고, 그것이 창작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이 입고 싶은, 좋아하는 것을 만들자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과 같이 만들기를 하는 일 자체가 취미 같다고 한다. 예를 들면 멕시코에서 나바호 블랭킷을 파는 친구들을 사귀면서 많은 영감을 받고, 현재 비즈빔(visvim)의 직조 기술이나 염색기법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하나의 컬렉션까지 나오게 되었다.나카무라 히로키는 항상 핸드메이드의 감성을 대량생산에 접목하고 싶어 했다. 그의 고민은 전통적인 것을 지금의 기술이나 자신 내부의 감성과 잘 융합 시켜 현재에 제안 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미래로 이어가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염색을 옛날 방식으로 한다. 직접 손으로 하고 일본의 전통의상이나 다른 나라의 의상을 히로키의 멋대로 재해석해서 만들어진 옷들이 많다. 이런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참 아이디어가 참신하다고 생각이 든다. 비즈빔은 때론 코치닐(벌레)을 으깨서 염료를 만든다. 1킬로 그램의 염료를 만들 때 8만에서 10만 마리의 벌레가 필요하다. 이처럼 히로키는 옛날 방식을 사랑한다. 나 또한 이러한 천연 염색 방식에서 나오는 색감이나 다고 생각한다.그림 3. 비즈빔(visvim)의 염색장면위에 사진은 천연 염색기법으로 염색을 하는 사진이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이렇게 직접 사람의 손으로 염색을 하는 방식을 애정하고 지켜나가고 있고 각 지역의 장인들과도 교류를 많이 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노선을 취하는 브랜드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기계 문명에 대척점에 선 전통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갖는 매력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대 기계 문명의 문화예술, 그를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이 갖는 한계를 전통문화 속에서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지면을 할애하여 풀어보아야 할 방대한 주제이다. 이 주제에 대해 몸소 뛰어들며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탐구를 이어나가는 비즈빔의 컬렉션들은 앞으로도 계속 흥미진진할 것 같다.그리고 나카무라 히로키는 트랜드의 방향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을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살아가며 느끼는 것 중에서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것, 그런 것을 물건으로 내보이려 한다. 보통의 패션의 니즈 같은 것도 일절 보지 않고, 미디어에서 정보가 들어오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런웨이나 쇼를 보지 않는다. 어떠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 히트 상품이나 트렌드가 돼주었다면 그건 ’기쁘네요’라고 심플하고 덤덤하게 말을 했다. 물론 잘 팔리고 히트 상품이 된다면 기분은 좋겠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본인이 행복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나카무라 히로키는 본인의 제품이 잘 만들어지는 한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는 신경 안 쓴다고 한다. 히로키가 말하길 ’본인의 직업은 브랜드가 더 나아지게끔 하는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선 어디서든 생산할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렇기에 이태리,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에서 좋은 공장이나 공급자를 만난다면 그들을 사용한다고 말을 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즈빔(visvim)의 FBT 신발을 생산했었다. 그래서 엄청 예전 비즈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