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오우크쇼트의 學習과 敎授 9월 27일 17:00(제출)1. 오우크쇼트에서 인간의 ‘학습’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pp.50~53,)학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하여 알게 되는 포괄적인 영위이다. 이러한 학습은 선택과 자기 통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적인 존재에게만 가능하므로 학습은 인간만이 가능한 활동이다. 인간의 활동 중 학습인 것과 학습 아닌 것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예컨대 자동차 운전을 학습하는 것과 실제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다르지만 이 구분은 그다지 완전하지 않다. 즉, 학습은 또 다른 학습으로 이어지고 학습 그 자체가 이미 학습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정리하면 학습은 인간의 활동이고, 인간의 활동은 무엇인가 학습의 요소를 항상 포함하므로 학습은 인간의 활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의미한다.2. ①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그리고 ②교사의 사명은? (pp.53~54, 56~59)가르치는 자, 즉 교사의 상대방은 학습자(일반)가 아니라 학생이다.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학습은 오직 ‘가르치는 것’의 상대어로서의 학습이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계획적, 의도적으로 학생을 인간의 성취 세계 속으로 입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란 학생의 입장에서 이 입문이 촉진되도록 말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학생이란 ‘교사에게 알려진 학습자’이며, 학생이 없는 교사는 상상할 수 없고, 교사 없이 진정한 교육은 실현되기 힘들다. 학생을 ‘교사에게 알려진 학습자’라고 부르는 것은 교사란 자기 학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 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입문이란 계획된 규율과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교사는 자신이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음은 물론, 그 전수의 방법도 이미 고려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교수자로서의 교사의 사명은 자기의 학생으로 하여금 당장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는 사실들에 접하게 하는 것이다. 즉, 교사의 첫 번째 사명은 학생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두 번째 사명은 자기가 전달하려는 정보를 보다 배우기 쉽도록, 그 정보를 구성하는 사실들의 불확성 또는 무기력성이 바뀌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셋째, 교사는 다소간 임의적인 교과의 조직 속에서 정보를 학생에게 어떤 순서로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끝으로, 교사는 학생에게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4. 인간의 앎(*지식, 성취물, 정신세계, 문명)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情報’와 ‘判斷’은 어떤 것인가?(pp.47~53)지식은 ‘정보’와 ‘판단’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정보는 지식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부분이며, 정보에 해당하는 지식의 내용을 항목으로 열거할 수 있다. 정보는 사실들, 지적 활동의 결과로서의 세부 사항들로 구성되며,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성립된다. 이러한 정보의 중요성은 능력과 관련된 규칙이나 명제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정보에 의해 주어지는 규칙 또는 명제가 특정한 능력이나 기술과 관련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로, 하나는 정보가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선결 조건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둘째, 정보가 어떤 행위가 수행되고 난 이후에 그 행위가 올바르게 수행되었는지를 판별하는 사후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즉, 정보는 행위수행 능력과 관련된 규칙이나 명제로 작용하는 지식인 것이다.정보는 지식의 한 가지 구성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지식이 될 수 없으므로 반드시 ‘판단’이 필요하다. 판단은 지식의 묵시적 측면, 즉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다. 판단은 원칙상 규칙이나 명제의 형태로 언어화하기 불가능한 요소이며, 그 내용을 정보로 환원한다든가 또는 정보의 경우와 같이 항목으로 열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판단은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규칙이나 명제의 적절성 여부를 결정하며, 어떤 행위를 수행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역할을 한다.5. ①情報를 전달하는 ‘敎授’와 判斷을 전달하는 ‘傳授’는 무엇이며, ②전달 방식에서의 차이점은?(pp.68~74)교수는 정보의 전달과 판단의 전수(일러주기, 넣어주기)라는 이중 활동, 학습은 ‘정보의 획득’과 ‘판단의 소유’라는 이중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정보의 교수의 실제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일러주기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공공연하게 식별할 수 있는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되, 학생에게 당장 실제적 유용성과 전연 무관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무엇보다 학생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를 선정해야 한다. 둘째, 교사는 전달하려는 정보가 학생들에게 쉽게 학습되도록 조직해야 한다. 조직방식의 전형적인 예는 ‘사고의 양식’에 의한 조직이 아닌 ‘교과’에 의한 조직이다. 셋째, 교사는 임의적인 교과의 조직 속에서 정보를 학생에게 어떤 순서로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끝으로, 교사는 학생에게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학생은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상황에 닥치면 즉각적으로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판단의 전수는 정보가 전달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될 수 없다. 그렇다고 판단이 교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판단은 정보처럼 규칙이나 명제의 형태로 표현될 수 없으므로 ‘일러주기’에 의해 교수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판단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가르쳐질 수 있다. 즉, 학생에게 판단이란 정보의 획득에 수반되는 부산물로서 학습되는 것이며, 교사에게 판단은 정보의 교수(일러주기)과정에서 그것과 동시에 간접적으로 전수(넣어주기)되는 것이다.6. 요즘 ‘문제해결 학습’(PBL)에서는 학습자가 학습 목표와 학습 과제를 선정하려고 한다. 문제 해결 학습은 오우크쇼트가 말하고 있는 “문화 유산의 상속, 또는 정신세계로의 입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문제해결학습은 J.듀이의 진보주의에 기초를 두고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문제를 놓고 그것을 해결하는 어린이의 주체적인 태도능력을 계발하는 가운데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려는 학습 지도의 한 형태이다. 이는 실천적인 지식의 형성이 중심이 되며, 교사 중심이라기보다 학생 중심이다.반면 오우크쇼트의 정신세계 입문 교육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즉각적으로 격리하는 학교에서 교사를 중심으로 기능적 지식을 교수하므로 흥미를 중시하는 학생 중심의 문제해결학습과 충돌한다.7. 요즘 ‘배움중심’ 수업에서의 교사의 위치는 ‘동료 학습자, 학습자료 제공자’이다. 이는 오우크쇼트에서 ‘정보’를 전달을 통해 ‘판단’을 전수하는 교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2021년 가을학기(화7-8) 敎育哲學·敎育史 硏究 問題아래에 열거된 질문은 각 장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문제로서(독서의 가이드로서) 제시된 것입니다.1장. 플라톤의 교육론 2021. 9. 13. 17:00(제출)1. 통상적인 질문과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일’(산파술)의 차이는? (pp.2~3)통상적인 질문과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일은 ‘질문하는 목적’과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방식(사고의유무)’에 차이가 있다. 일상적 질문은 자신이 모르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으로, 해당 분야의권위자가 답을 제시하면 쉽게 해소된다.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일은 상대방의 사고에 대해 필요한 질문을 하여 상대방이 다양한 생각을 하고스스로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질문을 받는 당사자는 질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혼자 생각할 수 없었던 자신의 사고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학습하고 탐색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일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사고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2. 플라톤에 있어서 (形式, 이데아, ‘善’ / ‘善’의 형식)는 무엇인가? (pp.5~7)플라톤에 있어서 실재란 지상에 있는 모사품의 원형을 말한다. 실재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형식으로 표현된다. 형식은 한 사물 속에 들어 있으면서 그 사물을 그 사물이게 해주는 가장 주된 성질이나 특징으로, 이데아라고도 한다. 이데아는 각 사물에 들어있는 참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고의 대상이 된다. 즉, 실재(형식, 이데아)는 감각 작용이 보여주는 겉모양과 변화의 이면에 들어 있는 가장 참된 것이다.선(善)은 아름다움의 예시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실재는 영원히 모든 면에서 아름답지만, 다수의 아름다운 것들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여기서 아름다움의 실재란 선의 이데아 즉, 다수의 선 중에서도 가장 좋은 ‘최상의 선’에, 다수의 아름다운 것들은 ‘다수의 선’에 해당한다. 요약하면 선은 위계를 이루며, 위계의 정점에는 최상의 선, 즉 선의 이데아가 있다는 것이다.3. 플라톤의 교육론은 학습자의 발달 단계에 따라 初期 교육과 後期 교육으로 兩分된다. 초기 교육과 후기 교육을 각각 특징짓고 있는 것은 ‘무시케’(*음악, 문학, 조형예술) 교육과 數學(혹은 개별 교과) 교육이다. ‘무시케’ 교육의 ①대상(수준), ②목적, ③역할(교육적 기능)은 무엇인가? (pp.13~17)무시케 교육은 예술, 자연, 인간의 삶, ‘어디에서나 영혼을 에워싸고 도는’ 선의 무한히 다양한 형식을 식별하고 인식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학과 음악, 조형예술이 이뤄진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허구지만 이야기에 도덕적 가치와 인간의 삶, 됨됨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포함하면 허구에도 진리가 들어 있다. 이는 최상의 선과 본질상 다르지 않다. 즉, 최상의 선이 구현된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최상의 선을 상상하고 친숙해지는 것이 무시케 교육의 목적이다. 좋은 이야기로 구성된 무시케 교과를 배운 아이들은 건강한 환경에서 균형 잡힌 품성과 최상의 선에 관한 본능적인 직감을 갖춘다. 즉, 무시케 교육은 선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직감을 심어줌으로써 판단력과 정서, 태도와 동기 행위 등이 선을 중심으로 합일된 사람을 길러낸다.4. 올바로 된 ‘무시케’ 교육의 결과는? (잘못된 ‘무시케’ 교육의 결과는?) (pp.17~18)정서와 감정, 태도와 가치관, 분별력과 행위의 교육을 포괄한 무시케 교육은 선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직감을 심어줌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무시케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정서와 판단의 불일치, 판단과 행위의 괴리가 생기지 않는다. 즉, 올바른 무시케 교육은 일상의 삶에서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며, 그에 상응하는 정서를 품고, 분별력과 정서에 일관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5. ‘무시케’ 교육의 한계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개별 교과교육의 역할은? (pp.18~20)무시케 교육은 감각을 통해 파악 가능한 선의 유형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무시케 교육은 감각을 통해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불완전하므로 감각이 사물에 관하여 확실하게 알려주는 바가 없다는 결함을 가진다.반면, 개별 교과교육은 무시케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고, 감각경험이 일으키는 모순의 지각을 통해 변하지 않는 선을 추구함으로써 보다 확고하게 선을 소유하려고 노력한다. 즉, 개별 교과교육은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총체로서의 세계 질서와 자신의 선을 이해함으로써 최상의 선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이 된다.6. 플라톤에서 변증법(*哲學)이 의미하는 바는? (p.23)플라톤의 변증법은 개별 교과를 성립시키는 가설조차 탐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설명되지 않은 것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하는 교과 또는 학문의 이상이다. 이는 인간이 실현 불가능한 순수한 이상이자 자신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삼아야 할 최종적 목표이다. 유한성에 갇힌 인간이 완벽하게 학습하는 일이 불가능한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술로 짧게나마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하는 생활 습관이 탐구의 방법으로 진술된 것을 뜻하기도 한다.(7) 플라톤의 교육체계에서 학습자의 발달단계와, 그에 상응하는 교육 내용의 관계는? (강의교수만 작성)8. 플라톤의 음악론을 계승한 알란 불룸(『미국정신의 종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서 음악 교육의 중요성은―특히, 이성과 열정의 관계에서 볼 때― 무엇인가?음악은 음악에 따르는 여러 활동을 정당화하고 충족의 기쁨을 제공해주므로 사람의 이성적인 의심을 던져버린다. 그러나 이성이 개발되지 않은 어린 시절에 음악은 학생으로서 이성의 기쁨을 알 수 없으므로 이성으로부터의 제약을 견뎌낼 수 없다. 따라서 음악이 학창 시절 교육의 중심에 놓여야 할 이유는 사람의 열정을 적절히 보살피는 동시에 열정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이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9. 알란 불룸에 의하면,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만연된 록 음악의 폐해는 무엇인가?(특히 록의 가사와 록이 주는 환희와 관련하여)록 음악은 성적 욕구에만 호소력을 발휘하므로 야만적이다. 록의 가사는 풋사랑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유혹을 칭송하고 강화한다. 이는 진정한 사랑과 결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가치를 뿌려 기존의 권위에 반항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항의 결과 예시로, 잘못된 탐닉과 사랑은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낳고, 록 음악을 통해 같은 감정을 소유한다는 착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교제의 바탕이 된다. 즉, 록의 가사에 주가 되는 커다란 주제인 ‘성과 증오, 위선적인 형태의 형제애인 아첨’은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망가뜨린다.
11장 西學, 實學의 교육사상 11월 29일, 17:00 (제출)1. 성리학에서, ①천(*이법신)의 개념과, ②天에 접근하는 방법은? (pp.245-247, 253)① 성리학에서의 천은 인격신적인 관념이 아니라 자연론적·자연신적인 관념이다. 성리학의 천 관념에 의하면, 태극(곧 이)은 인간 본성 안에 이로 내재하는 것이어서(性卽理성즉리) 천과 인간의 본성(본연 지성)은 동일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또한 天(하늘)은 지각 능력이 없는 지성)은 동일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또한 天(하늘)은 지각 능력이 없는 이법으로 간주되었다. 성리학의 천은 모든 개별적 존재의 생성 근거와 그 변화 과정을 통할하는 원리로만 인식되는 것으로서 초월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격신은 아니었다. 또한 주자가 생각하는 천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성이 되어 하나의 본연지성으로 남게 되고 마음 밖에서는 天理라는 앎이 없는 이법으로만 남게 되어 주재의 위력과 권능을 잃어버린다. 천이 성으로 수렴되면서 성만 남고 천은 감춰진다. 성이 주체가 되고 천은 객체가 되며, 인간이 주체가 되고 하늘은 객체가 되어 버린다.② 성리학에서 우주의 궁극자로 파악된 태극(하늘)은 무의지적?자연적인 이법으로서, 신앙 안에서의 숭배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도문학(격물치지)의 과정에서 다뤄지는 형이상학적,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에서의 수기는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주자는 천과 성을 일치시키고 성을 통해 천(이법)을 탐구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 사회에서 하늘은 이기론 내의 이법으로만 인식되었다. 도문학을 통해 하늘에 접근하는 방법 말고는, 관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천에 접근할 수 없었다. 겱국 천은 도문학에 관여하는 사람들만의 독점물이 되고, 도문학에서 제외된 서민하우는 천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었다.2. 서학의 유입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다양한(①사족(성리학자), ②북학파 실학자(박지원), ③초기 서학자(청년 다산)) 반응의 양상은? (pp.247-250, 註26).① 사족(성리학자): 성리학의 이념에 철저하여 이단 사상 체계로 파악된 서학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② 북학파 실학자: 서학을 이원적으로 파악하여, 서학의 이적 측면(*천주교 사상)은 거부하고 기적측면(*서양 과학)만을 선별하여 수용한다.③ 초기 서학자: 서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려는 입장으로서, 당시의 지배 사상인 성리학에 회의감을드러낸다. 이들에 의해 조선의 천주교회가 성립되었다.3. 성리학과 구별되는, 에 제시된 西學사상의 관점을, ①人·物性 문제, ②심성론 안에서 德의 문제, ③天(*인격신)의 문제로 구분하여 각각 파악해 보면? (pp.227-231)①인물성 문제에서 마테오 리치는 인성과 물성을 엄격하게 분리한다. 그는 3혼설(영혼, 각혼, 초혼)의 분류 방식에 따라 인간만이 가진 영혼의 독특성(*①몸은 죽더라도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영혼의 불멸성, ②동물들과는 달리 인간만큼은 선을 행하고자 하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도의의 가능성, ③인간만이 구체적인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뽑아낼수 있다는 추론의 능력) 3가지를 추출해 냄으로써, 인간은 각혼을 지닌 동물, 초혼을 지닌 식물과는 본성이 다름을 분명히 한다. “사물들은 서로 이어져 있으면 같은 몸이며, 끊어져 있으면 다른 몸이다”하여 인물성 이론을 주장한다.②심성론 안에서 덕의 문제에서는 덕의 외재론을 제시한다. 성리학 안에서 인간의 심성 안에 본래 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덕(인의예지의 4덕 = 명덕)에 대하여, 마테오 리치는 덕을 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한 행도을 본 후에 추론한 개념이라 하여 성리학과는 상반된 논리를 제기한다. 그는 선한 행동을 하면 덕이 출현하는 것이고 선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덕을 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즉, 덕은 인간의 마음속에 원래는 없던 것이지만 선한 행동을 반복하여 실천하게 되면 ‘습관의 형성’과도 같이 심성 속에 덕이 쌓인다는 덕의 축적론을 제시한다.③천(*인격신)의 문제: 마테오 리치는 초월성을 지닌 인격신의 존재를 제시한다. 그는 우주의 궁극자인 天主에게 全知全能(전지전능)의 능력을 부여한다. 천주는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나아가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니고서 은밀하게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고 인간이 일에 간여하며 인간의 삶을 주재하는 인격신으로 규정한다. 그는 천과 성을 분리한 후 천을 숭배하는 신앙적 태도를 보인다. 그는 수사론에서 있어서도 온전한 수신은 인격신인 천주와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며, 선의 근원을 인간의 심성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심성 밖의 인격식에 둔다. 사람의 심성 안에는 선의 덩어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본성의 경향(성 기호)만 존재할 뿐이라고 하며, 온전한 선의 실천을 천주와의 만남 속에서 찾는다.4. 성리학과 다른, 다산의 수양론에서, ①‘덕’과 ‘호선오악의 기호’의 관계, ②‘선행의 실천’과 ‘덕의 축적’의 관계는? (pp.256~257)①‘덕’과 ‘호선악악의 기호(성향)’의 관계: 다산은 성리학과는 달리 덕의 내재론을 배격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덕(선의 덩어리)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도의의 가능성(곧, 호선악악의 기호: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향)만 있다고 본다.②‘선행의 실천’과 ‘덕의 축적’의 관계: 다산이 규정하고 있는 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일을 행한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인간의 내면에는 본래 덕이 없으므로, 마음속에 이미 구비된 덕을 밖으로 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없던 덕을 마음속에 쌓아가야 한다는 덕의 외재론과 덕의 축적론을 주장한다. ‘선행의 지속이 오래되면 증험이 있고 덕이 쌓이게 된다’고 하여 덕의 획득을 지속적인 선의 실천에서 모색한다.5. 다산에 있어서 도문학(*궁리, 격물치지)와 수신(*거경과 誠意, 明善)의 관계는? (pp.241~245)성리학은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에서 찾으며,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는 수신이 불충분한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되면 ‘기질도 열악하면서 도문학의 기회조차 없는’ 서민하우의 경우 수신과 도덕성 개선의 가능성은 약화된다. 다산은 수신에 있어서, 성의정심(존덕성) 앞에 격물치지(도문학)를 두지 않을 (수신의 방법을 격물치지에서 찾지 않을)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격물치지 자체는 지리한 일이고 끝없는 탐구의 과정으로서 격물치지에 이른 후에 일을 실행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한다.다산은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를 각각 별개의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고, 도문학의 공부는 덕성 함양과는 관계가 없다고 본다. 나아가 수신은 격물치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격신인 상제의 임재성과 관련된다고 보아, 도덕 수양의 근거를 도문학이 아니라 지천에서 찾고 있다.6. 다산의 수양론을 통해 볼 때, 본성적(*본연성:性嗜好;성기호)으로 ‘호선오악’(好善惡惡)하지만, 현실적(*기질성)으로 난선이악’(難善易惡)한 인간에게 있어서(p.255,264), ‘덕을 획득하는 일’과 ‘인격신의 임재성’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pp.255~256, 258~260, 263~265)
10장 性理學의 교육사상 11월 22일, 17:00 (제출)1. 공자와 맹자에서, ?군자가 치인(治人)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시해야할 것(pp.221~222)과, ?원시유교에서 수기치인관(修己治人觀)의 기본 구조를 정덕(正德)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관점에서 설명하면(pp.222~223)?? 공자와 맹자는, 군자의 할 일이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다스리는 일, 즉 치인이라고 한다. 치인을 달성하는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도는 인간 자체 즉, 백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백성 교화의 유일한 방법은 치자, 즉 군자 자신이 먼저 개선?수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가 치인을 하고자 할 때 중요시해야 할 것은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원시유교의 수기치인관은 정덕과 이용후생이 서로 구분되나, 군자의 정덕이 사회적 이용후생의 원인이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군자가 담당해야 할 일은 정덕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비록 이용후생과는 전혀 다른 일이기는 하나, 군자가 정덕을 실현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회적으로 볼 때는 이용후생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2-1. 성리학에서 이와 기의 의미는? (pp.223~224)- 성리학은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각 그렇게 된 까닭과 그에 따른 마땅한 법칙이 있는데, 이것을 ‘이’라고 한다. 또한 형이상의 도(道)로서 생물의 근본이 되는 ‘이’의 형이하적 그릇이 바로 ‘기’이다.2-2, 성리학에서는 만물에 구분이 나타나는 것과, 사람마다 인식(賢·愚; 현·우)과 도덕성(聖·惡; 성·악)에서 차이를 나타나는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pp.224~225)- 천지의 사물들이 다양한 것은 ‘이’가 다양하다는 것을 뜻하며, 이런 다양한 이(理)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을 태극이라 한다. 성리학에 따르면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킨 근원적인 존재이자, 개개의 만물들 속에 내재되어있다. 이렇게 만물이 모두 온전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분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기질’ 때문인데, 각각 가진 기질의 특성에 따라 본성의 어떤 특성한 부분만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는 본래의 밝음이 흐려지기도 한다.성리학에서는 사람의 인식과 도덕성이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래 타고난 바는 모두 동일하나, 기품과 인품에 의하여 그것이 가려지고 드러나는 정도가 다르며, 그 정도에 따라 인식과 도덕성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다른 사물과 다른 것은, 인간이 모든 만물 중 유독 빼어나고 온전한 기질을 타고나 태극을 구현시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2-3. 성리학에서의 심성수양의 방법은? (pp.225~226)성리학에서의 학문은 탁하고 그릇된 기질에 가려져 있는 인간 본연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 즉 심성수양이다. 주자는 사람의 마음은 사물을 비추는 거울이나 물과 같은데,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거울 자체나 물 자체의 본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거울에 먼지가 끼거나 물이 요동함으로써 사물의 본래의 모습이 흐려지고 왜곡되는 이치와 같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평소 경건하게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노력을 기울여 그것을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이 만들고, 이를 보존하여 조금도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리학에서 학습자가 수양하여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음으로써 올바른 이치를 탐구하고 그것을 따르며, 그를 통해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여 바로 잡도록 하여야 된다는 것이다.3. 성리학에서는 어떤 논리로 修身(수신,곧 修己수기)만 되면 이 우주의 만사는 저절로 다스려지게 된다고 보는가? 그리고 이를 本末論(*근본(根本)과 말단(末端)론)과, 수기와 치인의 관계로 설명하면?(pp.223~224, 226~227, 261~262)성리학에서는 이 우주는 태극의 구현체이고, 또 이 태극은 각각의 사물 속에 내재해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성리학자들은 인간에게 내재된 태극을 ‘명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만물의 이치를 구비하고 있으며, 만사에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심성수양을 통해 외적 현상이나 사물의 올바른 이법을 이해하고 또 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한다면, 이는 다시 외적 현상이나 사물, 사람들에게 감화를 준다고 말한다. 수기된 자의 올바른 대응책은 인간 본연의 성품에서 우러나온 것이므로, 그 본연한 성품이 우주 만물에 다 공통된 것인 한 그것은 우주 만물에 두루 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따라서 성리학에서 외부 사물이나 사람을 다르시려는 일, 즉 치인의 근본은 ‘수신’이며, 치인은 수신의 결과일 뿐이다. 참다운 치인은 수신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며, 따라서 나라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말단에는 수기된 자들을 등용하여야 한다. 수신된 자들이 등용되면 현실적인 문제들은 올바르게 처리가 되지만, 소인들이 등용되어 그들이 문제들을 처리하려 들면 사회현실은 그만큼 더 잘못되는 결과가 오게 되기 때문이다.4.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에 대한 설명에서 성리학자 주자와 실학자 다산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pp.227~231)구분주자(주희)다산 정약용명덕(明德)명덕은 태극과 동일한 것으로, 인간의 마음에 내재해 있다. 따라서 태극을 지닌 인간이 곧 작은 우주와 같다. 명덕을 밝힌다는 것이 곧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명덕은 효, 제, 자 또는 인륜이며, 이는 인간의 마음 외적인 것이다. 이때 인륜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 즉 인간 사회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모든 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효, 제, 자는 그 대표적인 덕목이다. 명덕은 인간에 내재한 것이 아니기에, 인간은 그저 우주의 한 부분 내지는 피조물이며, 명적은 인륜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명덕을 밝힐 수 있다.만물과 인간의氣質性만물의 본연성은 모두 같으나 기질에 의해 서로 구별이 생기며, 본연성은 순하고 선하나 기질성은 선과 악이 혼재하고 있다. 따라서 본연성과 기질성은 서로 대립되는 두 실체이다.인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맑고 빼어나며 온전한 기질을 타고나 천지의 뜻을 구현시킬 가능성이 있다.본연성이란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이 되게 하며, 다른 사물과 그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사물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을 제외한 만물의 본연성은 곧 기질성이며, 인간에 있어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도의와 선이 바로 본연성이다. 따라서 기질을 쫓는 것은 동물에게는 본성 그 자체이지만, 인간에게는 본성이 아니라 그저 선택적인 것이다.인간의 본연성[*동물은 없음]인간은 동물과 달리 만물의 본연성인 덕의 뜻을 구현시킬 가능성이 있는 맑고 온전한 기질을 타고났다.인간은 동물과 달리 ‘선’을 쫓으려는 본연성을 가지고 있다. 도의와 선을 무시하고 기질의 욕구를 쫓는 것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덕(德)이란?덕을 획득/실현하는 방법덕이란 우주만물의 근원이요, 또 우주의 모든 이치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도 덕이 내재하기에, 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자신의 인식의 틀, 즉 마음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덕이란 선을 좋아하는 본성을 따라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들을 하나 둘 이루어 나감으로써 그러한 공적들이 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덕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 아니라, 마음 외부에 있는 인륜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현실 사회 속에서 살피고, 배우고,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9장, 『자녀 교육에서 아버지의 엄격함』에서 11월 8일 17:00 (제출)1. 케에르케고르는, 자녀의 도덕 교육을 위해 성장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아버지상을 요구하고 있다. ? 자녀의 성장 단계(3단계)에 따라 구분된 도덕 교육의 모델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며, ? 각기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녀의 도덕 교육을 위해 성장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아버지상]1단계는 이해와 자제가 부족한 어린 자녀에게 엄격한 아버지이다. 즉, 자녀에게 잘못을 지으면 처벌이 수반되는 것을 훈육하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낸다. 2단계, 초기 청소년기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수범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아버지가 가르치고자 하는 말에 상응하는 모범적 행위를 실천해 보임으로써 자녀가 아버지를 이상적인 자아로 삼아 성숙된 도덕적 삶을 살도록 간접 전달한다. 3단계,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통해 청년기 자녀에게 도덕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즉, 아버지가 신을 섬기는 모습은 아버지가 자녀의 도덕적 삶에 상대적 기준이고, 그로 인해 부모가 떠난 후에도 자녀의 도덕적 완성을 향한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지도할 신에게 지금까지 부모가 맡았던 기능을 양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각기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하는 이유]요즘 학생들은 예전 학생들보다 조심성이 적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문제아가 많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이유를 전통적 부모의 양육 방식과 다른 요즘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버지들이 명확한 지침을 설정하지 못하고, 전통적으로 아버지들이 지녀왔던 엄격함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즉,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하는 해결책은 아버지의 본능 회복으로 학생들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다른 아버지상 모습을 제시한다.2. 세 가지(심리주의, 전통주의, 낭만주의) 도덕관은 각각, ?아동의 도덕성을 각각 어떻게 상정하고 있으며, ?아동의 양육 방식에서 어떤 차이를 나타내며, ?또한 아동의 도덕성은 각각 어떤 방식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보는가?[? 아동의 도덕성]첫째, 심리주의 도덕관에서 아동은 천성적으로 무도덕적인 존재로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즉, 도덕적 판단 능력을 습득하면서 도덕적인 존재로 변화한다. 둘째, 전통주의 도덕관에서 아동은 비도덕적인 존재로, 타고난 본능대로 행하는 아동의 욕구에만 맡겨두면, 도덕적 판단 능력을 습득해도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셋째, 낭만주의 도덕관에서 아동은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인 존재로, 도덕적 존재를 보존하려고 한다.[? 아동의 양육 방식 차이점]첫째, 심리주의 도덕관에서 부모는 아동을 무도덕적인 존재로 간주하여 아동의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관대하고 가볍게 생각한다. 둘째, 전통주의 도덕관에서 부모는 아동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하여 어린 자녀의 그릇된 행위가 반복될 때 엄한 훈육을 통해서라도 억제한다. 낭만주의에서 아동은 선한 본능에 따라 자랄 수 있도록 부모나 사회로부터 여유와 인내력만 얻어내면 도덕적 존재로 보존되지만, 부모가 아동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간섭 통제하면 비도덕적 존재로 변화한다.[? 아동의 도덕성 감각 방식]첫째, 심리주의 도덕관에서는 무도덕적인 아동을 도덕 교육 즉, 도덕 규범을 이해시키거나 도덕적 판단력을 신장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도덕과 관계 지으려는 활동이다. 반면, 전통적인 도덕관에서는 비도덕적인 아동을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문제를 지닌 아동을 도덕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려고 한다.3. 이 글은 요즘 우리 아버지들이 자녀의 도덕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가? (pp.210~212)바람직한 자녀 교육을 위해서 겉으로는 자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 전통적인 아버지들의 자녀에 대한 표현 방식이었으며, 아버지의 이러한 태도가 자녀의 도덕성 발달을 위해 당연하다는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가정은 어린 자녀의 바른 양육을 위해 절실했던 권위와 위엄을 지닌 존재인 ‘아버지’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대신, 자녀에게 친근하고 친구처럼 놀아줄 수 있는 ‘아빠’가 생겨났다. 아버지의 엄격함이 사라지면서 어릴 때부터 원하는 대로의 욕구를 다 채울 수 있는 것은 자녀의 욕구가 부모의 자식 사랑에 편승하여 규제 없이 개발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엄한 훈육을 통해 바른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자녀에게는 나중에 부모의 모범적인 삶도 교육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4. “한 사회의 도덕 교육은 그 사회 성인들의 도덕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을, ‘큰 자녀에게 수범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과 관련 지어 생각해 본다면?한 사회의 도덕 교육은 그 사회의 성인들의 도덕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을 큰 자녀에게 수범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큰 자녀는 아버지의 모범적인 삶을 보고 자라면서 자신도 아버지를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큰 자녀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를 사회 전반으로 넓혀보면 한 사회의 도덕 수준은 수범이 되는 조상의 도덕 수준을 보고 전해져오고 만들어진 것이다. 즉,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덕은 그 사회가 시작되었을 때의 조상에서부터 전승된 것으로, 조상 중에는 성인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도덕 교육은 그 사회의 성인들의 도덕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5.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우리 전통적인 도덕 교육의 방침이 지닌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pp.208~210)선천적으로 아동은 무도덕적인 측면과 비도덕적인 측면, 도덕적 측면을 모두 지니고 태어나는 복합적인 존재로 상정할 수 있다. 도덕성에서 아동을 복합적 존재로 생각한다면 3가지 도덕관을 조화시킨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세 가지 도덕관을 종합하는 자녀 교육 방식은 바로 우리의 전통적인 자녀 교육 방침이었던 ‘엄부자모’이다. 엄부자모는 아동의 비도덕적 측면을 억제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엄격함이, 아동의 무도덕적, 도덕적인 측면을 보호?보존?발전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애정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위엄있는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의 양대기둥은, 다른 한쪽의 남용과 약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확대해주는 관계 속에서, 자녀에 대한 교육적 영향력을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