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는가 1. 쟁점영화 는 아들 빌리를 둔 부모인 테드와 조안나가 이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양육권 소송을 소재로 다룬다. 영화의 결말에서 엄마인 조안나가 승소하지만 빌리가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테드라고 생각하여 데려가지 않는다. 조안나의 선택으로 빌리는 테드와 함께 살게 되지만 영화 속 재판부는 조안나의 승소로 판단했다. 이번 과제에서는 재판부의 판단과는 관계없이 누가 빌리의 양육자가 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주장을 서술한다.2. 자신의 주장과 그 논거결론적으로 영화 속 재판부와는 다르게 테드가 빌리의 양육자로서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아래와 같다.첫 번째로, 현재는 빌리의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조안나가 집을 떠난 후 그녀의 개인적 이유가 무엇이었던 지에 관계없이 빌리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빈자리가 매우 컸을 것이다. 18개월 동안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테드가 빌리에게 들였던 노력은 상당하고 그로 인해 부자만의 생활이 빌리에게도 이미 익숙해진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빌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라와, 생활반경이 모두 포함된 뉴욕에서의 안정적인 환경이 테드의 서투름 속에서도 일상에 적응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적응한 환경인데 조안나조차 18개월동안 적응한 캘리포니아에서 빌리가 느낄 낯설음과 불안감이 아이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두 번째는 조안나가 빌리를 대했던 태도가 불안정하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애정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의 선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현재는 조안나가 정신 치료를 통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빌리를 다시 돌볼 여유가 생겼지만, 다시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빌리에 대한 책임감보다 회피를 선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반대로 테드는 육아에 적응하느라 일을 소홀히 하게 되어 직장까지 잃었지만, 양육권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기 위해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낮은 연봉이라도 선택하여 직장을 구하려 했던 것에서 본인보다는 빌리를 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누가 더 빌리를 사랑하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누가 더 빌리를 위해 본인을 희생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더 실리적이다. 그리고 이것의 답은 테드라고 생각한다. 조안나의 선택이 빌리를 더 잘 키우기 위해 본인을 먼저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여도 양육권을 결정하는 부분에서는 빌리의 복리를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세 번째는 아이의 성별도 고려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에 있어서 아이의 성별은 청소년기에 맞이할 2차 성징이나, 자아정체성 확립 등과 같은 정신적 변화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테드 본인이 자라온 청소년기와 성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빌리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을 것이다.3. 예상되는 반론과 그의 논거테드가 양육권자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반대 측에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 가지 반론이 있다.첫 번째는 조안나가 떠난 원인이었던 테드의 무관심이다. 테드는 사회적 위치와 자신의 커리어를 상향시키기 위해 가정에 관심을 두지 않고 육아와 빌리의 성장에 무지했다. 그로 인해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서투르고, 심지어는 테드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가 크게 다쳤다. 아이의 안전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육아와 가정에 익숙한 조안나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이 주장에 대한 논거이다.두 번째는 새로 구한 조안나의 직장이 테드보다 연봉이 많다는 것이다.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경제적 지원이 필수이다. 빌리에게 보다 유복한 의식주,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게 위해서는 연봉이 더 높아 경제적 지원을 더 잘 할 수 있는 조안나가 양육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세 번째는 빌리의 나이에는 모성이 필수라는 것이다. 성년이 아닌 미성년에게는 아빠의 역할보다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성은 생래적인 것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느끼는 본능적인 애정을 말한다. 모성애가 아버지보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이 더 크다는 것이 이 주장에 대한 논거이다.4. 재반론반론으로 제기된 세 가지 주장에 대한 재반론은 아래와 같다.첫 번째로 가정에 대한 테드의 무관심은 과거의 일이며, 부주의는 주체에 상관없이 생길 수 있는 흔한 경우라는 것이다. 과거 테드가 일에 대한 욕심으로 가정에 소홀히 했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나, 현재는 빌리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테드의 삶을 고려했을 때 아이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 조안나가 없던 18개월 동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에 적응하였고, 빌리 또한 함께 적응하는 과정에서 조안나에게 의존적이던 이전보다 자립심이 형성되었다. 아이의 성장에서 자립심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놀이터에서의 부주의로 인해 빌리가 다친 일은 무관심으로 인한 부주의가 아닌, 한순간의 실수로 인한 것이다. 당시에 테드가 아닌 다른 보호자가 곁에 있었더라도 그 또한 부주의하여 벌어질 수 있었던 사고이다. 따라서 테드가 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여 양육권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은 수용하기 어렵다.두 번째로 경제적 여유라는 것은 당장의 연봉을 비교하며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테드가 지금까지의 커리어보다 낮은 연봉의 직업을 선택했을 뿐, 충분히 더 높은 연봉의 직업을 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이 더 많은 테드 또한 육아에 필요한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