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건축- 인류문명이 발생한 후 단순한 보호막으로써의 기능을 지닌 건축양식메소포타미아 건축-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생한 문명의 건축양식이집트 건축-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배경으로 전개되었던 건축양식에게 건축-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에게해 문명의 건축양식, 목재, 석재, 벽돌 등을 섞은 건축양식그리스 건축- 도리스인의 철기 문명으로 디테일이 섬세하고 조합이 복잡해진 건축 양식로마 건축- 그리스와 헬레니즘 현상, 로마인의 구조기술 중심의 실용주의에 영향을 받은 건축양식
1. 원시 건축.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생인류의 기원은 한 종에서 다양한 종으로 나뉘고 서로 경쟁 끝에 남은 종만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고로 진화론에 따라 인류가 대를 잇고, 이를 위해선 생존과 번식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건축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안식처를 마련한 인류가 그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 비로소 자신의 대를 물려줄 수 있었다. 집의 필요성을 느낀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우연히 발견된 불을 사용하면서 동굴과 같은 자연 속 은신처에서 삶을 영위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17,000여년 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속 벽화와 동물의 형상으로 보이는 조각품이 출토되 그 당시 인류가 얼마나 높은 지적 수준에 다달았는 가를 볼 수 있다.15,000여년 전부터 전개된 신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가 아닌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을 가능케 한 간석기를 사용함으로써 수렵, 채집의 문화에서 확장된 정착 농경 생활과 동물의 가축화를 이루는데, 이는 ‘움집’이라는 건축 양식의 발달로 가능하게 된다. 정착생활 초기의 인간은 원활한 식량 수급이 가능한 큰 강이나 바닷가의 모래 퇴적지, 혹은 이와 가까운 구릉지를 생활 터전으로 자리잡곤 했고 점차 평지로도 옮겨가 한 곳에 정착하여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줄 집을 인위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움집은 바닥을 다진 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순서로 만들었고 내부는 음식물 저장을 위한 구덩이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있다. 한 채에는 5명 정도 살았고 남자들은 보통 출입구 가까운 곳에, 여자는 움집 안쪽에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움집 4~5채가 모여 하나의 부락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예리코 정착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은 약 8.5m 높이의 돌탑으로 신석기 초기 권력 투쟁의 증표 또는 주민들을 연결시기는 요소로써 작용한다고 밝혔다. 그 당시 일몰을 재건한 결과 하지 때 정착지 언덕의 그늘이 돌탑을 싸고 전체 마을을 뒤덮었다는 분석을 통해 돌탑 건축물이 마을 사람들의 원시적 두려움과 우주론곳에 살고 있을 거라는 고대인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슈타르의 문’은 아시리아 멸망 후 신 바빌로니아가 바벨탑을 세우고 요새화된 도시 성벽에 아치로 된 8개의 기념비적인 정문을 건축한 것 중의 하나이다. 다양한 색채의 유약벽돌을 이용해 벽면을 장식한 기법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세폴리스 왕궁’은 다리우스 1세의 타차라 궁, 크세르크세스 1세의 하디시 궁, 알현실로 사용하던 아파다나, 왕궁의 입구인 크세르크세스 문이 있다. 평면 상의 왕궁은 크고 작은 정사각형이 많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많은 기둥이 사용되었다. 이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건축 양식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 것이다. 배치를 보면 많은 기둥들이 의식용 통로를 이루지 않고 중앙 집중 공간을 질서있게 채워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실을 배치한 이후 남는 공간들은 옥외 정원으로 사용되었고, 크세르크세스 문의 경우 예외적으로 축을 갖는 배치를 지니고 있다. 왕궁의 알현실은 매우 거대했는데 이는 넓은 내부 공간을 통해 제국의 웅장함과 영광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편안하고 느슨한 비형식적 배치를 갖는 것은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인상을 주고, 방문객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또한 알현실에 비해 왕궁의 크기가 작은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공공적 의식 기능에 대한 관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3. 이집트 건축이집트는 통일왕조가 세워진 B.C. 3200년 경부터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된B.C. 530년 경까지 나일강 유역을 배경으로 전개되어 강의 규칙적인 범람으로 풍부한 옥토를 형성함으로써 신에 대한 감사와 현세의 풍요를 내세에까지 확장시켰다. 또한 사후 세계에 대한 안전과 행복을 확보하려는 강박관념적인 종교 형태를 발전시켰다.대표적인 건축 양식 중 분묘 건축으로는 B.C. 300년 경의 마스타바가 있다. 벽돌이나 석재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구조물로서 평평하거나 단이 있는 경사면을 가진 분묘 건축의 시초이다. 이집트 왕조 초기에 왕, 왕족, 귀족의 분묘로써 건설되고 후에 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철기로 인한 문명의 질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으로 전문직이 등장하고 군역과 노동 등에서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리적 관점에서 그리스는 지중해성 기후로 날씨가 대부분 좋은 편이어서 옥외공간을 활용한 공간을 살펴볼 수 있고 풍부한 대리석을 보유하고 있어 재료적인 특성으로 건축물에 정교하고 세련된 미를 표현해 낼 수 있는데, 이는 오더와 그 오더에 따른 평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도릭ㆍ이오닉ㆍ코린티안 오더로 나뉘는데, 도릭 오더는 그리스 최초의 오더로써 남성적이고 강한 느낌을 주며 기둥 윗부분을 안으로 기울여 안정감 있게 처리했다. 이오닉 오더는 여성적,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양방향의 회오리형 주두를 지니고 있고 그 중간에는 아바크스나 큐마로 장식되어 있다. 코린티안 오더는 이오닉 오더보다 더 가늘고 높으며 아칸더스의 잎을 2~3단 장식해놓은 주두로 형성되어있다. 평면적으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문과 하나의 방인 ‘셀라’, 그 전면엔 열주로 지붕을 버텨 적어도 한쪽 면이 개방된 ‘포티코’, 전면까지 연장된 측벽 사이에 두 기둥이 자리한 ‘인 안티스’, 셀라가 단일 혹은 이중의 열주로 둘러싸인 ‘페리프테랄’ 등의 형식이 존재했다.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크로 폴리스의 입구 건물인 프로필레아(Propylaea)는 지형 조건상 건물의 비대칭적 배치가 드러나며 유일하게 직선축에 의한 접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정면 기둥들의 중앙을 지나 2열의 의식행렬용 이오닉 기둥들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이와 외부의 도릭 기둥을 보았을 때 다양한 특색들을 조합하려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최초의 온전한 이오니아식 건축물로써 프로필레아와 대조적으로 정교한 비례를 보인다. 이는 건물의 상승효과도 누릴 수 있어 신전으로써의 상징성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게 된다. 파르테논 신전은 셀라가 두 부분으로 나뉘고 사면에 열주가 있는 페리프테랄 형식을 띤다. 열주의 상부를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고 건축물이지 못하여 로마의 건축양식에서 사용되었던 기둥과 보에 의한 가구식 구조와 기둥, 아치에 의한 아케이드 구법 두 가지 구조방식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기독교 건축의 발달로 대부분의 건축활동이 기독교에 집중되어 교회, 세례당 등의 기독교 건축물이 발달했지만 그 이외에 건축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발달도 부진했다.급속한 교세 확장에 비해 교회재정이 빈약하여 새로운 건물의 건설이 곤란했는데, 필요한 공간인 집회공간, 제단, 사제석 등의 기능이 로마시대의 공공 건물이었던 바실리카의 기능과 유사하여 그 건축물을 교회건물로 전용하고 계승하게 되었다. 이를 바실리카식 교회(Basilican Church)라고 부르는데 구조 계획에서 좁은 간격의 열주와 엔타블레이쳐에 의한 가구식 구조, 다소 넓은 간격의 열주와 아치에 의한 아케이드 구조 두가지 방식을 계승하여 건축했다. 동서를 주축으로 하여 건물을 배치하고 서측입구를 통해 사방이 열주랑으로 둘러쌓인 중정에 진입하며 중정에서 전실을 통과하여 교회내부로 진입하는 배치와 진입계획이 있었다. 평면은 내부공간에서 입구와 후진을 연결하는 수평축을 형성하고, 수평축에 의한 방향성은 신자들의 입구로부터 계단으로 유도하는 방향성을 지녔으며 수평축이 집중되는 반원형의 후진은 내부공간을 수렴하여 통합하는 형태를 띤다. 신랑 양측 열주의 반복적인 율동감과 투시성이 수평축에 의해 방향성을 강조하는 효과가 난다. 내부공간의 입구에서부터 신랑 그리고 제단까지 이르는 긴 수평축에 의한 방향성은 중세 교회 건축의 본질적, 핵심적인 요소이다.세례당은 작고 둥근 모양의 로마식 건물들에서 발전하였고 종교적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세례는 그리스도 교도의 중요한 입교의식이므로 이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일반적으로 회당 밖에 만들었고 그 중앙에 의식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수조가 놓여졌다. 그래서 보통 교회의 안마당이나 앞뜰과 맞닿아 있다. A.D. 6C 이후 세례당은 점차 교회의 예배실로 축소되기 시작하였다.카타콤베(Catacombe)는 사람이 죽된 특성이 강조되었다.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은 A.D. 526~A.D. 547에 건축되었으며, 평면이 팔각형의 집중식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중앙 홀 주위에는 8개의 대지주가 놓이며 그 위에 높이 솟은 돔을 떠받치고 있다. 이 지주들 사이에는 각각 2개의 원주들이 반원형의 앱스(Apse) 공간을 형성하여 주회랑(ambulatory) 쪽으로 들어가게 평면이 구성되어 있어서 중심공간 주위에는 광활하고 여유가 있으며 유동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실부분 쪽에는 깊은 축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어 집중적인 중앙 홀이 주가 되고 2차적인 직선축을 이루는 공간이 부차적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주출입구 홀인 나르텍스 공간을 주축성에 대해 약간 경사지게 만든 것은 건축공간 처리에 매우 교묘함을 느끼게 한다.8. 사라센 건축아라비야 유목민인 사라센족에 의해 정복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스페인등을 포함한 사라센제국에서 회교를 배경으로 하여 A.D. 7C부터 A.D. 17C까지 회교사원인 모스크에 집중되어 전개된 회교중심의 건축 양식이다. 건축재료는 소성벽돌, 석재, 콘크리트 등이 구조체로서 주로 사용되었고 마감재료로는 유약타일, 석재판넬, 금속판, 테라코타 등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사용되었다.사라센인들은 그들의 독창적인 건축전통을 지니지 못했다. 급속한 교세 확장과 영토 확장에 따라 정복 지방의 건축 양식을 수용하곤 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비잔틴, 페르시아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아치 및 아케이드 구법이 발달했는데, 초기에는 시리아에서 유래된 첨두형 아치를 사용하였고 점차 장식적 효과를 위해 다영하고 장식적인 형태의 엽상형 아치, 마제형 아치 등을 사용해서 다양한 아치와 열주에 의해 연속 아케이드를 구성했다.돔 구조는 페르시아의 스퀸치(Squinch)에서 유래된 것으로 펜던티브와 함께 정방형의 평면 위에 돔을 만들어 놓는 방법 중 하나이다. 첨탑이나 돔과 같은 상부 구조를 지지하기 위하여 정방형의 각 모퉁이를 가로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