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독후감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을 읽고목차I. 프롤로그II. 구성 ? 단계별 성장과정? 두 개의 세계 그리고 데미안?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전쟁, 종말의 상징III. 〈데미안〉과 융의 심리학- 그림자 반영- 인도자 원형?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재탄생의 환상? 에바 부인IV. 에필로그I. 프롤로그1919년 작가 헤르만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소설 〈데미안〉을 썼다.일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쓴 소설로 주인공 싱클레어의 소년 시절의 모험, 생각들과 고뇌가 극복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는데, 소년 에밀 싱클레어가 10살 라틴어학생시절부터 18살에 이르는 대학생 시절과 군 복무 시기를 서술하고 있다.싱클레어는 한 유복한 기독교의 가정에서 안정과 평온함 속에서 성장하는 데 크로머라는 아주 나쁜 친구가 그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고 괴롭힌다.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악의 세계를 경험하며 방황할 때 데미안이라는 상급반 친구가 나타나 크로머를 쫓아낸다.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친구가 되었고 데미안은 들려주는 여러 가지 이야기는 그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견해와 성경의 독자적인 해석 등은 싱클레어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규범에 위배된 다른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스스로 혼란스러워한다.싱클레어는 그럼에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내면성을 형성해가기 시작한다. 그 자신 스스로가 새롭고 온전한 전체로서의 인간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인식하게 된다.이러한 주인공의 성장단계를 살펴보면서 소년의 심리적인 것과 내면의 변화 특별히 헤세가 영향 받았다는 융의 심리학의 도식에 기대어 소설을 분석해봄이 〈데미안〉을 다각도로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II. 구성 - 단계별 성장과정- 두 개의 세계 그리고 〈데미안〉:싱클레어를 둘러싼 세계는 온화한 부모님과 누나가 있는 평화로운 가정이다. 어느 날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싱클레어는 용기를 과시하고 싶어 동네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노라고 거짓 허세를 부렸다. 이것을 빌미로 동시에 모든 규범에 대한 다른 시각을 싱클레어에게 열었다. 기존 규범의 단순한 수용은 더 이상 아니었다. 또 십자기의 두 강도 이야기에서 데미안은 예수에게 고백하거나 자신의 영혼을 맡기지 않은 다른 한 강도를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는 그가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어쩌면 카인의 후예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싱클레어가 지켜온 신앙적 의식이 포괄적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음에 그는 혼란스러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소년의 의식 지평의 확대를 경험시키기도 한다.데미안의 의견을 들은 이후로 싱클레어는 내면이 혼돈스러워 더 이상 기쁨이 없어졌다. 그는 내적 분규로 데미안과 헤어진다. 데미안으로부터 야기된 의혹과 인식의 흔들림은 동시에 싱클레어로 하여금 모든 규범에 대한 비판과 탐구의 출발점에 서게 했다.-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싱클레어는 김나지움에 다니기 위해 St시로 갔다. 혼자가 된 싱클레어는 공허와 고립 그리고 쓸쓸함을 잊으려 술을 마시고 무질서한 생활을 한다. 점점 타락하고 황폐해진 그는 학교에서 퇴학경고도 받는다.그즈음 우연히 한 소녀를 보고 미음이 요동치고 몰래 그녀를 숭배하기까지 한다. 그녀를 본 후 싱클레어에게 정결함과 질서에 대한 동경이 다시 일깨워지고 아름다움과 품위를 갖춘 태도로 다시 그를 정상적이고 단정한 소년으로 세운다.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생각하며 싱클레어는 그림을 그렸다. 완성된 그림은 매의 머리를 가진 새의 모습이다. 이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냈고 데미안은 “새는 알을 까고 나와 아브락시스 신에게로 날아 간다”는 말로 답을 보냈다.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몸부림치는 모습은 곧 싱클레어의 방황과 고독에 이입된다. 싱클레어는 수업시간에 아브락시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신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계속 이 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도서관에 가기도 또는 꿈의 영상에 집착하기도 했다.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 친구가 되어 아브락시스에 대해 묻기도 했다.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에게 들은 것은 인간의 과제란 가능성을 찾으며 상징적 대상이기도 하다. 에바 부인은 그래서 모든 존재의 어머니로 그 자신을 더 깊은 내면으로 인도했다. 이런 점에서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상징적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에바 부인은 삶에 관한 그리고 인간의 자아에 대한 여러 가지를 싱클레어에게 말해주었다. 싱클레어는 그 스스로 독자적으로 고유한 인간이 되어가야 함을 인식한다.- 전쟁, 종말의 상징1차 대전의 발발로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장에 나온다. 전선병원에 누운 싱클레어 곁에 데미안이 있다. 데미안으로부터 에바 부인의 인사를 전해 받고 싱클레어는 자신이 완성된 인간인 것 같았다.다음 날 데미안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데미안과 닮아있는 자신을 모습을 느낀다. 자신 속에 내재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둘은 하나로 합쳐진 하나의 존재로 그 후 어떠한 어려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사람이 될 것이며 밝음과 어두움, 이 양면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III. 〈데미안〉과 융의 심리학이 장은 융 심리학의 용어 일부를 데미안의 소설에 적용시켜보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작가 헤세가 반드시 융의 심리학적 이론에 따라 이 소설을 작성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헤세 자신이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개인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는 중에 집필된 것으로 한 개인의 성장과정 내지 개인화과정을 다루는 중에 융의 견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 전제된다.이 글을 작성하면서 융 심리학의 정확한 관찰과 견해를 자세히 따르기는 부담스럽다. 융이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소설의 내용에 일일이 다 적용해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융이 세운 심리학적 유형의 도식에 따라 〈데미안〉의 분석을 감히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을 융 심리학에 기대어 분석해보려는 시도는 어디까지나 우선 헤세가 융의 심리학을 경험하면서 그의 내면에 받은 영향이 〈데미안〉에 은연 중 드러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시도되는 것임을 밝힌다.1차 대전을 전후로 헤르만 헤세에게 여러 개인적인 어려움이자처럼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융이 제시한 그림자는 시와 영감 등 긍정적인 면이 자리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본능을 포함한 부정적인 요소로 기록된다.비류하고 사악한 사내아이 크로머가 싱클레어의 허세를 소문내겠다고 협박하고 계속 무엇을 선물로 요구 하거나 돈까지 뜯어내며 괴롭힌다. 크로머에 얽매여 빠져나오지 못한 채 꿈속에서도 싱클레어는 그림자처럼 함께 살았다. (데미안 46쪽)싱클레어는 강한 남자라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발동시켜 보았으나 좌절된 채 그림자에 오히려 시달리게 된다. 내면으로부터 악한 것이 부분적으로 그에게 투영되기 시작했다.데미안이 나타나 그를 나쁜 친구에게서 구해주었을 때 싱클레어는 내면의 그림자 부분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에서 한 개인의 개성화의 시작 즉 성장이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싱클레어는 내면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등하게 통합하게 되면서 개인화의 발달과정의 입문에 서있게 된다.융 심리학에 따르면 싱클레어의 기조적 무의식 즉 내면에 배치되어 있던 심리저변이 외부 세계에 반영된 자연스런 결과라고 본다. 무의식 속에 있던 열등한 사례로 나쁜 소년 크로머를 들 수 있다. 악마 또는 사탄과 같은 크로머의 괴롭힘과 파렴치한 협박은 융의 심리학적 의미로 분명한 그림자이다. 다른 면에서는 크로머는 반영된 그림자가 아니라 도덕과 위배되는 일방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크로머 때문에 부모님과 누나의 돈을 훔치고 온화하고 순결한 누나를 깡패 크로머에게 데려가야 하는 직전까지 노예상태로 머물며 무자비한 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편으로 그는 크로머를 만나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경건함과는 분리되어 어두움을 모르는 아버지보다 스스로 부모에게 거역하려는 자기가 더 낫다는 등 외부세계에 맞서는 분석을 시작하며 첫 번째 내면화 단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가 크로머에 대한 그림자 반영을 인식하기 시작하지만 이것에 완전히 묶여 괴로워하면서도 이 그림자에게서 전혀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인도자 원형데미안:싱클레어의 상급진짜 사나이라고 말했다. 성경에 대해 다른 의견을 과감하게 펼치는 데미안에 대해 싱클레어는 당황했다. 이런 일의 반복으로 싱클레어도 주변의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느낄 때 부모님조차도 아들의 이런 모습에 당황해했다. 싱클레어의 의식저변이 이렇게 변화되고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데미안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되어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싱클레어의 유년시절도 이렇게 끝났다. 그도 김나지움(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낯선 도시로 갔다. 기족을 떠나 완전 혼자가 된 싱클레어는 타향에서 공허와 고립감으로 술을 마시고 점점 문란한 생활로 방탕해져 퇴학경고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베아트리체 ;길에서 술을 퍼마시다 우연히 본 소녀에게 싱클레어는 마음이 빼앗겼다. 고상하고 윤곽이 뚜렷한 숙녀였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보이는 청소년의 흔적도 마음에 들었다. 싱클레어는 그녀를 짝사랑하며 숭배하는 마음에 그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신곡〉에 나오는 영혼을 인도하는 인물로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여인의 이름이다.베아트리체와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이 드높은 영상을 만난 후 마음이 감화된 싱클레어는 술집 출입과 밤에 배회하는 일을 멈추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며 단정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인도했듯 이 소녀의 영상도 싱클레어를 반듯하게 인도해 주었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소년의 생활을 훈계시키고 극복하게 한다는 해석을 듣기도 했다. 어쨌든 베아트리체의 존재는 싱클레어의 자아의식에 대한 수문장으로 그를 안전한 길로 인도 한다.싱클레어를 이끌고 있는 데미안과 베아트리체의 공통점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합된 자웅동체 혹은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혼합된 “총체성” 또는 “새로운 전체”라는 말로 융 심리학의 이론에서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다.피스토리우스:싱클레어가 한 번은 전령새(Wappenvogel)의 꿈을 꾸었다. 몸 절반은 땅에 묻혀있는 매의 머리를 가진 맹금의 모이다.
성, 성곽의 기능Palais : 주로 평지에 위치한 왕이나 제후들의 거주지 Castle: 전쟁에 대비한 수비망 역할. 적의 동태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아주 높은 곳에 위치.성 – 산성Burg Eltz: 12세기 모젤 강변 바위 위에 세워짐. 오늘날까지 Eltz가문이 살고 있는 개인 성. 6세기 동안은 수리로 일체 문을 열지 않았음. 오늘날 이 성은 8-45m에 이르는 높은 탑들과 내, 외부로 낭만적인 전망을 지닌다.성 – 물의 성칠론 성 Burg Chillon: 21세기 사보옝(Savoyen) 백작이세운 가문의 저택 . 탑이 있는 여러 개의 주거공간, 내. 외부를 둘러 싸고 있는 담들 , 세 개의 반원형 탑들, 성문의 탑, 작은 예배당과 여러 창고 등으로 이루어짐. 레만 호수의 바위절벽 위에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물의 성기본형: 주성: 성주의 거주지. 부속성: 집행을 맡으며 수비대가 있다. 주성과 부속성은 개인이 만든 섬 위에 위치하고 다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쟁과 불화 시에 정복과 방어를 하던 성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사라졌다. 높은 성은 무너져가는 데 비해 오늘 날 물의 성은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물의 성 (Water Castle, Wasser Schloss)기본 건축형: -주성과 부속성이 있다. - 물은 방어의 수단이자 건축의 표현 수단. - 도개교로 건물과 육지를 연결(적이 관찰되면 다리를 닫음)도개교평화 시에는 높은 성탑이 의미를 상실. 대신 운하제도와 수비벽이 확장되었고, 낮고 견고한 모서리 탑이 앞 성과 주 성의 측면을 보호할 수 있었다. 16세기 무장해제 시절에는 새로운 무기제도가 권력의 확대 위에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방어 능력도 갖추어졌다.물의 성 – 무장해제의 시대르네상스 : 새로운 양식이 도입. 이탈리아보다 100년 늦게 독일 중부에 도착. 특히 박공 벽에 이 양식을 사용했으나 아직 고딕의 삼각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건축가들은 이 제한을 극복하려고 장식을 곁들이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 (바로크 건축양식의 시기) 물로 성을 두른다는 원칙은 그대로였으나 물의 띠가 평화시기에는 운하의 의미로 바뀜. (물 제방은 더 이상 방어의 기능이 아니라 건축의 표현수단). 이전에는 전략상의 이유로 들여다 볼 수 없었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운하와 성벽이 평평해지거나 낮아짐. 일직선의 가로수 길이 성의 조망지축으로 도입되고 실제 둘러싸여 있는 주택을 사실보다 더 넓어 보이게 하는 사각형의 정원이 만들어짐. 전쟁 후는 생활공간을 외부로 노출시키면서 환상력을 동원시켰다.물의 성 – 바로크 건축양식프랑스 혁명(1789) 후에 전 사회의 구성도 변화. 예술분야에서는 오히려 안티크의 이상 즉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게 됨. 건축분야에서는 바로크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중용의 고전주의 형태로 돌아감. ( 독일 중부지방에서는 이 양식을 찾아보기가 어려움) 뮌스터에서는 고전주의 양식의 성이 세워지거나 수리되기도 하였다. (하르코덴 Harkotten의 성 또는 하비벡 Haviybeck의 슈타펠 Stapel 가문의 성이 그 예 ) 고전양식의 부활 대신 19세기 건축 예술은 중세, 신 낭만주의, 신고딕, 신르네상스 양식으로 많은 장식을 갖춘 건축붐이 일어났다. 19세기 중엽에 전쟁으로 파괴, 그 후 교회당 건축이 많이 건축되고 성의 건축은 후퇴. 성주들은 그들의 성을 완전 새롭게 건축하기 시작.물의 성 – 예술창작의 고안이 바뀐 고전주의물의 성 - 바로크와 고전주의 건축양식평화의 시기에는 성 내부가 들여다 보인다. 성주의 과시욕.그리스.로마의 신전형태 같은 고전주의 양식의 물의 성물의 성 – 독일 뮌스터(Münster) 근교 지역을 중심으로슈타인푸르트 성 (Steinfurt) 다르펠트 성 ( Darfeld) 아하우스 성 (Ahaus) 푀게딩 성 (Vogeding 게르멘 성 (Germen) 안홀트 성 (Anholt) 비쉐링 성 (Vischering) 베스트벤켈 성 (Westwinkel) 리나 성 (Lina, Linne)민덴 성의 도개교슈타인푸르트 성30년 전쟁 때 심하게 파손. 타원형 배열의 주성과 두 번째 섬의 부속성은 마주 보며 반원형으로 열려있다.수비성, 890년에 시작된 뮌스터의 슈타인푸르트 가문의 성아하우스 성 - 7년 전쟁 때 프랑스군이 훼손1766년 요한 콘라드 술라운에 의해 복구두 개의 섬에 위치. 개선문 통해 바로 보이는 주성과 연결되어 있다. 4개의 정자가 방어적 인상을 준다.. 1829년 암스테르담의 Hermann Oldenkott가 구입해 담배공장을 차림. 1945년 화재, 1948년 복구, 바로크 성. 개선문에 문장무기가 새겨져 있고 두 개의 초소가 있다. 둘러싸인 광장(마당)은 밝은 사암의 문과 검붉은 벽돌건물들과 대조를 이룸. 성 자체가 완전한 콤팍트를 이룬다.게멘성 - 17세기 중엽에 건축여러 개 겹친 건축양식이 있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바로크 지붕형식의 13세기 망루이다. 1411년 Heinrich III von Gemen이 지은 정사각형의 요새 성곽이 성으로 변모된 예. 수비강화를 위해 지붕면적에 참나무의 발코니를 세웠고 서쪽 돌출부는 두터운 성벽. 16. 17. 18세기에 수비벽으로 강화 - 이 수비벽은 물의 영향으로부터 뿐 아니라 닫혀진 둥근 요새의 연대사적인 그림을 강조.12세기 때 세워짐. 주 성으로 향하던 내리치는 격자로 안전을 지키던 문이 이제 이제 거대한 현관으로 개조되었고 성주가 거주하는 성의 창문은 커졌다. 단독의 섬에 위치한 부속성은 세 개의 날개 모양으로 벌려 주 성을 감싸고 있다(주 성을 지킨다는 의미도 포함): 성문의 탑은 여러 겹으로 솟아 오른 모자를 쓰고, 작은 돌출탑들이 생기있게 손짓하는 건물군을 지나 두터운 탑과 대조를 이루며 서있다. 두 개의 분리된 섬에 부속성과 주 성이 지워져 있고 여러개의 섬 정원들이 둘러싸여 있다. 1647년부터 Salm제후에 속함. 가장 오래된 부분이 13세기의 망대이다. 오늘날은 호텔로 개조. 18세기의 대칭적으로 세워진 바로크 정원과 19세기에 영국식으로 공원은 관공객들을 유인. : 레오폴드 공원. 소위 Anholter의 스위스라 칭해짐. 성 – 12세기에 축성, 1647년 이후 살렘Salm가문의 소유.두 개의 분리된 섬에 부속성과 주성이 여러 개의 섬 정원들에 둘러싸임. 안전을 담당했던 격자문은 거대한 현관으로 개조. 주성의 창문은 커졌다. 단독 섬에 위치한 부속성은 세 개의 날개 모양으로 주성을 감싸고 있다. 성문의 탑은 여러 겹으로 솟아 오른 모자모양으로 덮임. 작은 돌출탑들이 건물군을 지나며 두터운 탑과 대조를 이룬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13세기의 망대. 18세기 대칭으로 조성된 바로크 정원과 19세기에 영국식으로 조경한 레오폴드 공원은 “안홀트의 스위스”라 칭해짐. 성주 Salem이 스위스의 피어발드슈테트제Vierwälderderstättersee를 무척 좋아하여 스위스의 모티브를 (1895 – 902) 옮김.안홀트 성비쉐링 성 –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중세 성들의 하나비쉐링 성 - 16세기부터 현재에는 거주지.망루탑이 없는 대신 둥근 모양의 요새가 뛰어남. 집 주변 호수로 부터 직접 솟아오른 둥근 고리모양의 벽이 특징. 주 성과 부속성을 둘러싼 호수가 성을 완벽하게 수비하고 있다. 복잡한 성벽과 도랑의 개축은 호수 속 두 개의 섬 위에 위치한 주 성과 부속 성을 보호. 사다리 모양의 부속성은 철로 된 도개교 (1546. 1945년 다시 재건축)위에 있음. 최근에 세운 나무다리가 주 성으로 연결. 부속성의 이층은 1519년에는 무기고였다. 남쪽 둥근 벽에 화려하게 장식된 돌출부는 망을 보는 기능.뮌스터의 교황 게르하르트 폰 에어 마르크 Gerhard von der Mark가 13세기에 Lüdingshaus 가문을 방어하기 위해 세움.베스트빈켈 성 1225년 건축. 30년 전쟁 후(평화조약 1648 후) 성주들은 수비 성곽. 1555년의 성주는 메르벨트 백작.베스트빈켈 성 Westerwinkel무기로 장식된 돌출부, 현관 그리고 돌십자로 이루어진 창은 강하게 각진 인상. 다른 긴 성채와는 달리 여기서는 전체 건물군의 배열에서나 각 개개의 문짝에서 정사면체의 각진 모서리형이 지배하고음을 암시 - 특히 모서리의 솟아오른 사각의 탑은 바로크식 모자모양을 가진 반면 측면을 엄호하는 날개 건물에는 돌십자로 이루어진 창문이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본다..성의 위치는 두 개의 섬으로 뻗어있고 서쪽 정원에 둥근 성주의 집과 부속성. 성주의 집은 또 한번 더 분리된 호수로 싸여있고 삼면에 하나의 성벽이 지키고 있고 네 번째가 부속성을 지키고 있다. 성으로 가는 입구는 각진 길이 섬의 정원을 지나 부속성의 다리로 연결된다. 성주 저택의 사각으로 길게 뻗은 날개 건물은 정사각형의 마당에 군집: 네 개의 누각에 있는 각진 탑이 높이 솟아 바로크 모자를 쓰고 날개건물의 박공지붕에 연결되어 있다. 측면을 엄호하는 날개 건물의 돌십자 창문에서 고풍스러움은 수비적인 성격과 동시에 시대 변천에 따라 성의 모습도 변하고 있음을 암시해준다.베스트빈켈 성30년 전쟁 시는 높은 담이 수비를 담당 1663-68에는 속세로 환원되어 개인주택으로 개조. 영국식 공원리나 성 - 13-15 세기에 지워짐. 사냥의 성이 딸려 있음부속성은 불규칙한 각진 모습. 조망대와 총구가 벽으로 싸임. 성벽 모서리에 성문의 탑이 세워짐. 13세기에는 문의 탑과 육각 탑들에 싸여 원형 성벽으로 싸임. 스페인 후계자 전쟁이 있던 1701년과 1704년에 크게 손실. 부속성에 1730년 사냥의 성이 세워짐. 주 성은 인공 언덕 위에 솟아 있음. 1730년경 쾰른의 제후 클레멘스 아우구스트Clemens August가 사냥의 성으로 개조. 1926년 크레벨트 Krefeld시가 이 성을 사들여 대대적인 수리.사냥의 성이 있는 리나성13-15 세기에 지워짐. 성채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사각형.물의 성 나가기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뮌스터 근교에 산재한 230여 개의 크고 작은 물의 성들 중 일부는 오늘 날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개조. 일부는 개인 저택 또는 박물관이다. 과거의 수비성은 오늘날은 낭만의 성으로 주목 받으며 유럽의 주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성곽과 성들이 폐허의 모습으ow}
유럽의 양식 미술아르 누보유럽의 양식 미술 - 아르누보1. 들어가는 말2. 예술의 형태2.1. 선과 평면 구성2.2. 평면 구성의 서곡3. 주된 특징3.1. 아름다운 삶의 현상으로서의 예술3.2. 장식적인 기능3.2.1. 실내장식 및 건축4. 아르 누보의 영향과 의의1. 들어가는 말세기 말 1890년경부터 1910년 사이에 극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미의 신비스런 세계에 대한 향수를 선과 단면으로만 표현하던 예술이 있었으니 곧 아르누보, 일련의 유미주의 예술은 이미 서유럽을 넘어서서 전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양식으로 짧은 시간에 확산되었다.전통적인, 역사적인 예술의 구조와 형태와는 달리 선과 평면 구도로 이루어진 완전히 새롭게 시도된 예술로서 프랑스에서는 아르 누보(Art Nouveau) 또는 L’Art pour L’Art)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Jugendstil) 오스트리아의 제체시온 양식(Sezessionstil) 영국의 Modern Style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개되었다.프랑스의 에밀 갈레(Emile Galle), 빅토어 오르타(Victor Horta),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 (Antonio Gaudi), 네덜란드의 앙리 반 데 벨데 (Henry van de Velde), 독일 뮌헨의 잡지 “유겐트(Jugend)”나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협회 “제체씨온(Sezession)”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들이 특히 건축에서 궁선과 단면 그대로를 특징적으로 사용했으며 공예 부분에 있어서도 유려한 곡선, 때로는 마치 식물의 생장을 암시하듯 끊임없이 뻗어가는 선의 유희를 예술창작에 도입하였다. 언급된 예술가들은 서로 친분이나 국제적으로도 교류가 없었지만 당시의 공통된 삶의 감정 즉 삶과 예술의 일치라는 기본 명제가 그들의 예술속의 표출되고 있었다. 보다 생기 있는 원천적인 아름다움을 데카당스적인 시대 감정과 결부시켜 표현해 보려는 충동이 이들 예술가들이 내면에 확산되고 있었다.이들이 활동했던 19세기말의 유럽사회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따른 불안정한 시기 아르 누보(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로 불림)가 생겨났다.2. 예술의 형태2.1. 선과 평면 구성종래의 미술이 지향하는 형태의 표현이나 음영보다는 주로 선으로 이루어진 미술이다. 끊임없는 선의 유려하고도 힘 있는 연결은 끝없이 뻗어가며 생장하는 자연의 원초적인 모습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이 시대 산업의 발달과 대도시의 형성에 대한 혐오감은 저절로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에로의 도피적인 현상까지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삶의 감정이 여기서도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표현된 선 자체가 장식적이면서도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앙리 반 데 발데 Henry van de velde의 공예작품〈책상〉에서 전체적인 인상은 움직이는 느낌이다. 육중한 책상이 양끝으로 뻗어 가는 마치 성장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1)회화에서는 가늘고 섬세한 선의 유희는 자연히 여린 꽃과 그 줄기, 연못의 표면에 파동 치는 물그림자나 연못 위를 헤엄쳐가는 백조의 가늘고도 긴 모가지 등이 즐겨 사용되던 주된 모티브들이다. 역동하는 부드러운 선을 나타내기 위한 최상의 소재로서 여인의 가냘픈 몸의 선이 다양한 형태로 사용된다. 꽃 속 소녀의 모습이 꽃줄기와 어우러지고 흘러내리는 긴 곱슬머리가 흐르는 냇물 속에 함께 흔들리며 반영되고 있다. 특히 춤추는 여인의 몸과 이에 휘감기는 무희복의 역동적인 선의 묘사는 아르 누보 회화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살리고 있다. 토마스 하이네(Thomas Theodor Heine)의 〈제르펜티넨 무용수Serpentinentanzerin〉(1900)에서 표현된 소녀의 몸, 의상과 향로의 연기 등이 굽이굽이 서로 율동적으로 함께 운무하고 있다. 춤을 추는 여인의 자기도취는 담 너머 직선으로 병렬된 수목들과 구분을 이루고 있다. (그림 2)아르 누보의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주선율로 볼 수 있는 곡선의 연결은 꽤 규칙적인 문양을 이루는 아라베스크 형태와 대상의 실제의 모습과는 먼 여러 다양한 모양이 종합적으로 복합되어 이루어져 있는 형태도 보이는데, 후자의 경엉켜 물 흐르듯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에서 그림의 평면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인상주의 미술이 아르 누보로 가는 길목에서 포스터 미술이 그 도약을 담당하고 있다. 토우로즈 로트레크 (Thulouse Lautrec)의 〈춤추는 제인 아브릴 Jane Avril〉(1889)에서 이미 아르 누보 미술의 시작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래픽은 극한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 스타킹을 신은 캉캉 춤 무용수의 다리와 전면에 크게 그려진 악기와 연주하는 손은 그림의 실제성이나 원근을 나타내기 보다는 오히려 장식적인 성격을 띄우고 있다. 이 도안화한 내용과 급한 선의 연결은 이미 도래하는 새로운 양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림 4) 이와 같은 포스터의 출연 이후로 평면 구도를 기조로 하는 많은 장식적인 작품들이 창작되었다.그림 43. 주된 특징아르 누보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면과 미술사적인 면에서 뚜렷한 독자적인 성격을 확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포괄적이고 시대적 경향과 결부되어 해석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삶의 현상을 현실생활에 적용해 보려는 장식 예술로서의 기능이 언급 되고 있다.3.1. 아름다운 삶의 현상으로서의 예술이 예술이 꾀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운 자체 즉 미의 예찬이다. 그래서 인간 내면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향수적인 것들 - 태고적 신비와 가 볼 수 없는 동화의 나라라든지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노스탈지에와 죽음과 밤의 경모 등?그 시대 산업사회의 기계문명 그리고 피상적이고 속물근성으로 타락한 시민계급과 대조를 이루며 신 낭만주의적인 삶의 긍정이 추구 된다. 또한 영혼의 환희와 소생에 대한 추구가 자연히 새 소망과 청춘을 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문학과 미술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모티브로 등장한다. 이것에 파생되어 묘사되는 소녀의 모습은 섬세하고 여리게 표현된다. 애련의 여주인공들이 그들의 유약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남자들과 악마들을 결국 도취상태에 빠뜨리기까지 한다고 한다.만약 이 소녀들이 춤을 출 때 리듬에 따라 원게 연관되어 일상생활의 새로운 취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심 과제가 되었다. 화가들은 이제 홀로 그의 창작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욕구를 아름다운 형태로 연출 시켜야만 했다.3.2.1. 실내장식 및 건축곡선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장식적인 성격은 무엇보다도 실내공간의 치장에 적합하였다. 식물 줄기의 성장에서 영감 받아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선은 움직이듯이 계단의 손잡이와 둥근 창틀이 있는 건물이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이 양식이 생활 전반에 확대되기 이전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의 공예창작을 위한 그의 노력이 있었다. 모리스는 산업사회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되는 디자인이 공예품의 형태의 발전을 저지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다시 수공업 제작에 눈을 돌려 1861년 예술 공예 및 실내장식품 제작회사를 설립하였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공예품 제작의 시대적 요청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루이 마조렐(Louis Majorelle)이 1901년경에 디자인 한 은 자연스럽고 여린 식물들로 어우러진, 생생하게 움직이는 인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계단의 손잡이는 긴 꽃줄기와 이파리들을 지니고 휘어져 자라는 식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림 5)계속되는 예로 한 건물로 들어 갈 때 식물의 움직이는 모양으로 장식된 현관의 손잡이를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벽면에 유려한 선으로 흐르는 듯 조각된 부조를 볼지도 모르고 전체적으로 여린 느낌을 주는 장식장 위의 꽃과 식물이 모양을 따온 꽃병이나 촛대 등을 보게 된다. 헨리 반 데 벨데의 (1902)는 마치 나무 둥지위로 가지가 뻗어가는 모습으로 초가 꽂히는 작은 그릇 모양의 받침대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 꼭대기 중앙에 남과 여의 가는 형상이 디자인 되어 있다. 각 방향으로 끊임없이 뻗어가는 각각의 초 받침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촛대 그 자체인 하나로 포용되는 인상을 준다. 모든 중심이 촛대가 이루어지는 원초적인 선을 연결시키고 운반하는 촛대의 몸통에 쏠려 있다. (그림 6)실내에서 실용성과 장식장을 동시에 갖춘 공이고도 환상적인 분위기의 건축물들을 세웠다. (1884-1926) 또는 (1905-1907) 등의 건축에 예술가의 장식적이고 움직이는 선을 표현해 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건물의 표면이 돌조각, 유리, 사기와 모자이크 등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건물 구조 자체가 흘러내리듯 유기적으로 역동하는 것 같은 구성에서 아르 누보를 특징짓는다.(그림 9. 10) 독일의 다름슈타트(Darmstadt) 시에 집결된 몇 몇의 특히 요셉 마리아 오프리히(Josef Maria Obrich)작품들도 이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건물의 밝고 환상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물벽면에도 양식의 장식을 볼 수 있다. 아우구스트 엔델(Aufust Endell)은 포토스튜디오 엘비라 (Photoatelier Elvira)의 건물벽면에 부조형식의 장식물을 조각하였다 불꽃 모양의 긴장감 있는 대상들이 그룹을 지어 벽면에 헤엄치듯이 장식되어 있다.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부조 장식물은 딱딱한 느낌의 입구와 창문의 틀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 11)그림 5 그림 6그림 7 그림 8그림 9 그림 10 그림 113.2.2. 책표지의 도안아르 누보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꿈이나 환상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는 문학 세계에서도 낭만과 신화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상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동일한 예술적 충동은 미술과 문학의 본질적으로 다른 표현수단의 한계를 넘어서 내용적으로 비슷한 소재가 택해지거나 구성과 기법에 있어서도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예를 들면 동시대의 문학작품 하이리히 만(Heinrich Mann)의 중편 소설 에서 어린 콘테시나는 백작인 아버지를 출생 전에 여의고 어머니와 외롭게 살고 있다. 아버지가 남긴 성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살고 있었다. 그녀의 창백하고도 투명한 피부, 허약한 그러면서도 아직 아기 같은 성숙되지 않는 마르고 긴 몸매는 숲속에서도 환상적인 그림을 이룬다. 콘테시나 같은 청순가련한 비현실적인 소녀의 묘사는 1900년경의 문학과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통된 모티다.
게르만족의 신화태동에서 라그나뢰크까지중부유럽과 북유럽 선사시대에 생겨난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게르만 문학의 위대한 소재가 되고 있다.게르만족이 기원한 곳,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는 북부와 중부 유럽에서 기독교 이전의 게르만 사람들의 이야기아이슬란드 텍스트 -에다 (Edda)에서〈〈운문 에다〉는 850년-1200사이의 익명의 저자들의 30편을 모음 . 〈산문 에다〉는 1220년경 아이슬란드 역사가인 스노리 스튀르들리손(Snori Sturluson)에 의해 편찬게르만 신화“트로야의 망명객들은 오딘 족장의 명령을 받는다. 그는 승리를 거두어 군대를 이끌고 게르만 지역과 덴마크를 거쳐 스웨덴에 도착하여 길피라는 왕의 환영을 받는다. 이것이 산문 에다가 시작되는 부분. 길피 왕은 세 신들이 앉아 있는 큰 홀에서 에시르의 지혜와 번영의 원천에 대해 묻는다. 신들은 갈피 왕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신화라고 부르는 것이다.”유래1부. 신들의 이야기거인의 모습을 한 이미르와 그에게 젖을 먹이는 암소 아우듬라최초의 세계우주(질서)와 혼돈남쪽의 열기와 북쪽의 추위가 만나는 곳에 생명체 태어남암소가 얼음 덩어리 하나 핥았을 때 부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나왔다. 이 남자의 손자들 중 하나가 위대한 신 오딘이다.시체 몸의 각 부위들이 바다, 호수, 바위가 되고 두개골은 하늘로. 눈썹은 뒷날 인간이 살게 되는 미드가르드Midgard 신들의 위한 거처는 아스가르드. 두 신족과 거인족, 요정에 가까운 알펜과 인간 등 그들은 모두 아홉 세계에서 각각의 주거지를 확보 하며 살고 있다. 세계의 중심에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이그드라실 Yggdrasill 이 있고 그 가지는 전 세계로 뻗어있다.우주의 창조오딘(보단)신들의 아버지. 오딘에게 12 형제가 있다. 거인 이미르를 죽이고 그 시체로 우주를 만들었다. 인간에게 루네 문자를 소개루네 문자토르 Thor – 천둥의 신. 그의 무기는 망치였다.오딘과 프리그인기있는 신들인기있는 신들오딘과 프리그프레이야 Freyja발퀴레프레야 Freyr지구르트 Sigrud북유럽의 신들은 결코 벌주는 신, 두려움을 주는 위력적인 존재 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인간들에게 무조건 굴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간에게 강압적인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거인들의 악한 행위로부터 인간들 보호하며 세계의 보존을 위해 진력한다 인간적 속성을 지니고 인간들과 친밀하며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신들이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남신과 여신 모두 벌꿀술로 연회를 즐기고 매일 회의를 열기 위해 우주수인 물푸레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북유럽 개르만족의 신들세계의 종말 Ragnaroek -신들과 세계의 죽음을 의미. -눈보라, 화산, 폭발, 홍수,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세계를 해체한다. -라그나뢰크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존재는 두 명의 인간과 오딘의 아들들 그리고 발더 신이 저승 에서 부활한다. -물푸레나무의 그루터기가 불에 그을리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낙원을 형성한다.새로운 세계의 태동라그나뢰크 이후 대서양으로 부터 새로운 세상이 솟아 올랐다. 새로운 태양이 하늘에서 빛났고 대지는 신선한 풀로 덮혔다. 야그드라실은 과실을 맺었고 그 뿌리는 새로운 대제에 뿌리를 박았다. 몇 몇 신들이 라그나뢰크에서 살아남았다. 오딘의 아들 비다와 바리 그리고 토르의 아들들 마그니와 모디였다. 세상과 인간 창조에 오딘과 함께 참여했던 오딘신의 동생 빌도 살아남았다. 그들은 아스가르드 때 보다도 더 크고 멋지게 요새를 건설할 것이다. 인간도 살아남았다. 두 사람이 무시무시한 사건 때 야그드라실 가지 속에 숨어있다 살아난 것이다. 그들은 삶과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깨끗하고 순수한 증오가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생존한 신들은 인가들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전능한 신이 다시 돌아와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신은 이미 있었고 또 항상 있을 것이다. 그는 이름이 없다. 이 신은 한 때 우주를 창조했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만물의 아버지라 불렸다. 이렇게 땅과 새로운 시작이 있게 될 것이다.북유럽신화의 종말과 특징. . . ...지속성과 진지함 결여로 기독교에 그 자리를 내어 줌게르만 신화와 설화는 그리스 신화와는 달리 이분법적 대립과 싸움이 있다신과 거인 영웅, 용, 난쟁이, 그사이의 보물 이야기게르만 신들의 세계는 야만적 불안. 슬픔과 우수에 젖어 있다이런 특징은 비장함과 체념으로 중세문학에도 반영니벨룽겐의 노래는 한 종족의 비장한 최후. 즉 장엄함과 몰락의 정서가 다루어져 있다.앞으로 계속 될 이야기- 초기전설에서 비친 영웅들의 실상이 나타남. - 영웅 지그프리트 등장. - 오딘의 후손이자 베른의 영웅, 디트리히 등장. -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둘러싼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게르만 신화와 전설: 라이너 테츠너 지음 성금숙 옮김. 범우사 2008{nameOfApplication=Show}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31-1883)생애와 음악적 특성개관바그너는 1813년 라이프찌히에서 출생한 독일 음악가 프로이센 제국의 독일통일과정과 번영을 함께 겪었다. 1848년 혁명의 실패 이후로 스위스에서의 망명생활을 비롯한 방랑생활. 특히 파리에서 격심한 궁핍을 겪음. 그 시대 다른 지식인처럼 쇼펜하우어 철학에 탐닉. 1870- 80년대 반유대주의 표명 (영국의 반유대주의자 인종주의 체임벌린이 그의 사위) 당대 1830- 40 사이의 정신적 사조들을 평생동안 받아들임: 프루동의 사회주의, 바쿠닌의 무정부주의,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낭만주의적 사고와 민족주의 등. 그래서 그의 생애 속에는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함께 투영되고 있다바그너는 정치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이미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전공 오페라 대본을 썼으며 음악 지휘자이자 악장. 독일의 후기낭만파 음악의 대가. 문학, 음악, 춤, 무대 장치 등이 하나로 아우러진 종합예술 악극을 최초로 만들었다.개관생애연보: 1813. 5. 22 라이프찌히에서 출생. 1836 미나 프라너와 결혼 1837 러시아 리가에서 음악 감독, 1839 해임. 1842 드레스덴에서 “리엔지” 초연 성공. 1842 작센의 왕립 악단장으로 임명되고 “탄호이저”와 “로엔그린”을 작곡. 오페라 “지그프리트의 죽음” 스케치. 1864 뮌헨에서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라인강의 황금” “발퀴레”가 초연. 스위스에서 프란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알게 됨. 1870 코지마 리스트와 결혼 1872 바이로이트에서 오페라 축제 극장을 짓기 시작해 1876 8월에 완공. 개관기념으로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 1877-82 마지막 오페라 “파르찌팔” 완성. 1883 베니스에서 죽음.바그너 음악의 사상적 배경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보았고 48혁명을 경험, (1849년 드레스덴 혁명에 가담하여 수배를 당했다. 스위스로 망명) 그 시대의 정신사조에 영향 받음 : 프루동의 사회주의, 바쿠닌의 무정부주의,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낭만파 유산, 민족주의 등. 1840년 파리에서의 방랑 시기에 독일 작가 하이네를 알게 되어 “네덜란드 사람”과 “탄호이저”의 소재 얻음. 이 때 리스트도 알게 됨. 50년대 쇼펜하우어에 탐닉. 추방령이 해제되어 독일로 돌아 온 후 루드비히 2세를 만나게 된다. 1870-80년대 반유대주의 받아들임.바그너와 루드비히Ludwig 2세방랑생활 청산하고 귀국하여 새로운 작품 상영을 시도했으나 파탄. 1846년 5월 4일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를 만나게 됨. 51세의 예술가와 19세의 왕 -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감각의 만남. 1864년 5월 3일에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의 소환을 받았다. 왕은 바그너의 빚을 맡아 주었으며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왕은 4000굴덴을 지급할 약속을 하고, 뒤에 그것을 배액으로 늘렸으며, 《니벨룽겐의 반지》 전편(全編)의 작곡에 대해서는 30,000굴덴의 지출을 보증했다. 이 때부터 바그너는 한때 뮌헨에 정주하여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등의 자작을 초연하고, 왕의 원조와 보증을 얻어 《반지》의 완성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훗 날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위한 축제극장 건립에 루드비히 왕이 전면적인 힘이 되었다. (Bayreuther Festspiele) 하지만 바이에른에서의 바그너의 오만과 헤게모니적 행동은 뮌헨 교회와 사회의 규범과 어긋나 두 사람의 관계 붕괴.축제 극장음악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Bayreuthe Festival)이 열리는 곳. 바이로이트 그뤼넨 휘겔에 위치. 바그너와 아내 코지마는 자신들의 음악을 상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을 열망해 왔다. 바그너는 오페라 공연을 위한 설계와 건축에 직접 관여 1876년 완공 후 개관기념으로 〈니벨룽겐의 반지〉 전 곡을 초연.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1년부터 매년 공연이 열림. 극장에서 매년 7/25 -8/28 한 달 동안 공연됨. 1883년 바그너 사후 후손들에 의해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의 노이슈바인슈타인 성루드비히왕과 바그너와의 만남바그너의 악극의 특징악극: 가장 독일적인 오페라를 만들기를 열망했던 바그너는 거의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진 19세기의 오페라 대신 음악을 연극의 극적 전개와 결합시켜 악극이라는 장르를 새로 개척했다. 1. 중세의 신화와 작품에서 온 독일적인 소재: 로엔그린>, 트리스탄…>,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파르찌팔), 북유럽의 신화를 모은 에다>. 2. 제의적 성격: 대규모 연출, 기독교와 이교도 혼합으로 강렬한 종교적 신비적 속성을 띈다. 몸속 깊숙한 곳에서 원형적인 원시의 힘이 밖으로 터져 나옴, 집단도취적 성격은 독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독특한 제의로 확대.3. 제의와 대중성 부담스러운 음악 언어의 문제, 신화 소재 자체가 생소, 소재에 대한 배경 지식의 부재. 19세기 배경의 틀 안에서 작동되므로 독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대중적, 인기있는 음악 최고의 블록버스터, 화려한 대형무대와 대규모 인원이 동원. 원형적 제의가 주는 감동은 엄청나며, 멜로드라마적 줄거리가 특징적이다.바그너의 악극의 특징 강렬, 길고 무거운 느낌이 있는 작품들 중 하나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악보악극의 주제공감각을 지닌 낭만주의 문학이 주제. a) 예술가의 비극: 천재의 문제-사회 속에서의 예술가의 고독과 천재성 즉 예술가의 고립과 사회와의 갈등. b) 순결함과 구원: 기독교적 사유(영혼을 사랑하는 순결한 여인의 모습, 예) 탄호이저의 엘리자베스) c)몰락과 죽음에의 동경: 기독교적 사유와 게르만 뿌리(신화와 영웅전설이 지닌 몰락의 방향은 죽음, 낭만주의의 동경과 동일) 몇 몇 작품들은 대단히 민족적, 애국적. 탄호이저>에서 중세 독일의 문학적 황금기를 향한 낭만주의적 동경이 나타난다. 즉 위대한 과거를 재현해 보여줌.〈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바그너(R, Wagner)의 악극 4부작. 설화의 소재들을 거대한 제의의 방식으로 무대에 올림. 기독교와 이교도의 혼합으로 강렬한 종교적 신비적 속성을 띄우며 민중을 집단 도취적 성격으로 이끌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독특한 의식으로 확대되어갔다.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한 종족이 비장한 최후를 맞는 장면에서는 장엄함과 몰락의 정서가 절정을 이루었다. 몰락과 죽음에의 동경으로 이끄는 집단 도취는 민중의 열광을 끌어내어 이 작품 상연 이 후로 바그너는 거의 새로운 민족 신화의 대변자이자 예언자로 추앙되기까지 했다.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 순환하는 자연, 순환하는 황금 전체를 아우르는 틀은 자연. 물의 여인들의 장면부터 시작. 신들의 황혼에서 마지막 다시 불과 물이 한데 아우러짐. 생명의 원천이 물에서 시작해 물에서 끝난다. 황금은 라인의 딸들의 노래로 끝나고 발퀴레는 지그프리트를 따라 온 폭풍우로 시작 마지막에 브륀힐데를 둘러싼 불로 장면이 끝난다. 지그프리트 등장은 땅속 존재인 난쟁이의 대장간에서 시작된다. 대장간에는 흙과 불이 함께 한다. 작품시작과 끝을 자연의 원소가 둘러싼다. 반지의 둥근 모양은 자연과 생명의 순환을 의미. 대립하는 힘 보물을 둘러싼 힘의 대립: 알베리히와 보탄. 세계 개혁의 열렬한 의지, 세계에서 물러나는 보단의 체념과 지그프리트의 운명이 제시.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퀴레 등장.니벨룽겐의 반지 “라인강의 황금” 에서 물의 여인들 등장을 특수무대장치로 표현.니체와 바그너두 사람이 친교는 1868년부터 이루어짐 . 그전에 이미 바그너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영향 받음. 바그너에 광적으로 열광한 니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음악에 도취된 상태에서 삶이 예술로 화할 때 삶 자체가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바그너 악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냄. 그러나 바그너의 음악은 '무대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최면 상태에 빠뜨리고 세뇌한다'고 비판하기 시작.니체의 바그너 비판데카당스 비판, 몰락과 하강(죽음)을 동경하는 근원이 된 기독교적 사유에 비판. 불안의 요소, 퇴폐와 몰락의 방향성을 읽었다. 바그너 작품에 나타나는 병적인 요소를 비판. 악극에 숨은 최면성과 권력을 비판 무대의 감각성은세뇌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은 최면상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매혹된다. 바그너의 주제에는 강력한 게르만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니체는 진실한 예술에서는 이런 대규모 성공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바그너와 히틀러히틀러 (Adolf Hitler 1889 -1945)는 청년시절부터 바그너의 이데올로기와 음악을 흠모. 게르만 신화에 바탕을 둔 〈로엔그린〉을 관람한 후 열광적인 바그너 음악의 애호자가 됨. 바그너의 이데올로기와 음악을 독일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영웅적인 신화와 결합시키고자 했다. (히틀러 자신의 세계관에 바그너의 음악을 이용하였다.)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이 독일인의 자긍심을 드높여준다고 평했으며 독일의 우월주의를 세뇌시켜 나치주의를 달성하고자 바그너 음악을 택한다 독일 우월주의 감정 상승을 위해 나치 집회 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 의 서곡을 연주하게 했다. (가두 행진 때는 '순례자의 합창'을 연주. 유대인 가스학살 때도 이 음악을 연주)영향바그너의 영향력은 현대 음악 분야 뿐만 아닌 미술, 철학, 문학 , 정치, 시각 예술과 극장의 무대예술에도 미쳤다. 정교하고 화려하며 동시에 무겁고 장중한 음악에 많은 이들이 열광 하거나 또는 거부해 옴. 니체의 예언대로 타락한 천재적 바그너가 나치주의에 영향을 줬고 인종갈등을 포함한 세계전쟁이라는 끔찍한 결과도 가져왔다고 바그너 음악의 부정적 영향을 논하고 있다. 오늘 날에도 그의 음악에 쉽게 '도취'되는 중독성이 남아있음.{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