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국의역사와문화 2021 (Section 001)201524412 곽민수2021.04.06환관의 탄생환관은 ‘궁 안에서 왕의 여인들과 간통하지 않는 남자의 힘을 가진 인간’으로 소개 된다. 이는 천계의 질서를 인간에게도 적용하여 왕을 위한 혹은 기득권자들을 위한 제도이다. 따라서 자의적 자궁自宮을 하던, 타의적인 거세를 당하던 이는 권력자들의 필요와 수요에 의해 생겨났다. 중국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환관의 존재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처럼 존재해 왔다. 그리스 등의 국가에서 약 기원전 6세기경부터 환관 매매에 대한 기록이 있고, 야만인일수록 충성심이 강하다는 인식으로 백인보단 흑인 환관이 더욱 인기가 있었다. 중국에서 환관의 탄생은 질투심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질투가 상당히 심한 민족임을 알 수 있는데, 라는 유교 서적에 나와 있는 남녀 간의 여러 엄격한 작법作法들을 통해 유추를 해볼 수 있다. 환관이 되는 과정은 상당히 비인간적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환관제도가 계속해서 성행했던 이유에는 기득권들의 욕심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출세에 대한 욕심 또한 크게 작용하였다. 부모 혹은 가족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하여 궁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환관을 택했다. 하지만 궁형이나 납치와 같은 방법으로 생겨난 환관들도 있었기에 이후 공자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뜻에 따라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장 큰 효孝이기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꽤나 환관 열풍이 식게 되었다.환관과 권력환관의 직무는 24아문衙門이라 하여 12감監, 4사司, 8국局으로 구분하였다. 크게 환관의 모든 직무들은 제조업이나, 왕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기술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외교나 정치를 담당하는 환관부터 왕의 잠자리를 담당하는 다소 특이한 직업의 환관도 있었지만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곁에서 돕는 직업인만큼 환관의 능력과 힘은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인정을 받고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서 자연스레 세력싸움이 생겨나게 되고 환관은 중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환관들이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여관女官이 필요로 했다. 제 3의 성性이라고 불려오지만, 왕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라고는 여자였으므로 여관 역시 환관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환관 또한 여관을 거쳐야만 했다. 한나라 때 황태후의 거처에는 환관들뿐이라서 자연스레 자신의 중요한 정무를 환관에게 상담하고 이는 환관에게 국정 참여의 기회를 주어 권세를 쥐어주는 원인이 되었다. 이 무렵 환관들은 조직을 만들었고 이들과 외척은 유자 관료들을 물리치고 정권을 농단하며 사욕을 채웠다. 당나라 시대에도 비슷한 계기로 환관들이 힘을 더욱 얻게 되었는데, 황태후와 마찬가지로 현종은 고력사에게 많은 의지를 하였고 이로 인해 고력사의 위세가 치솟고 환관시대를 열게 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환관이 권세를 떨쳤는데, 군주독재를 원했던 태조에 의해 관민 대다수가 무기력해졌고 이런 그들 대신 독재군주를 등에 업은 환관은 어느 다른 시대보다 더욱 권세가 대단했다.전통과 풍습환관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현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거나 현재 사회와는 맞지 않는 옛 이야기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의 정책이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필요로 한다. 과거 여러 전통과 풍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같은 미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현대만큼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신에 의지하고 동경하며 지내왔다. 환관의 기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천계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에 황제 중심의 사회를 지내게 된 것이고, 이러한 풍습 혹은 사상이 당시 사람들에겐 의심의 겨를이 없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부다처제 또한 지금과는 시대착오적인 제도이다. 비록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신을 해석하고 만들었지만 이 또한 분명히 신神적 존재를 연관 짓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의 발달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고 과거와는 달리 신을 부정하는 여러 증거를 찾아내게 된 현재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그 모습과 외형은 다르지만 환관의 역할을 하는 인물, 민주주의 속 각 사회에서 황제로 군림하고자 하는 인물 등 여전히 사람의 욕심은 과거나 현재가 다름없다.인간의 욕심환관의 존재 이유에는 두 가지 욕심이 필요로 했었다. 기득권자들의 권력 욕심과 서민들의 출세 욕심이다. 환관의 경우 한에서의 외척, 당에서의 여화 그리고 명에서 관료와 같이 계속해서 그들의 측근을 모으고 힘을 빌려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분명 절대 권력자가 존재하는 한 본인들이 그 위치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관들은 끊임없이 힘에 도전했다. 물론 종이를 발명한 채윤이나 의 사마천과 같은 환관도 존재하지만, 의 환관들은 대다수 권력을 탐하고 이리저리 정치하기 바쁜 인물들이었다. 속된말로 신분상승을 위해 마치 중성화 수술을 하는 강아지처럼 사람이기를 포기해서까지 욕심을 내는 이들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환관의 모습에서만 아니라 여관女官과 같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심은 있었고, 이들 간의 세력싸움이 결국 파국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1908년 마지막 환관이 세상을 떠나기 전, 즉 20세기에 들어올 때 까지 환관 제도가 있었다는 것에 중국 사회가 얼마나 질투와 욕심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현재 중국사회의 모습을 보면 공산국가로 독재체제를 유지하는데, 그 속내의 모습은 과거 역사 속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